나 혼자 살 수는 없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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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을 다룬 헐리우드 영화중 ‘디어 헌터(1978)’란 작품이 있다. 지난 해 세상을 떠난 거장 마이클 치미노가 감독했다. 전성기 시절의 로버트 드 니로,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영화로 이른바 워 무비(war movie)의 클래씩쯤 된다. 영화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의 불안과 황폐함을 담은 명작중의 명작이다. 그 해 오스카 영화제에 무려 9개 부문 후보로 올라 작품상 등 5개 부문을 휩쓸었다. 마이클 치미노에겐 감독상을 안겼다. 우리에겐 러시안 룰렛이라는 목숨을 내건 끔찍한 도박을 알려 준 바로 그 영화다. 전쟁의 참혹함속에 꽃핀 사나이들의 깊은 우정과 페이소스를 담았다. 이른바 인간애의 극치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 클리어턴 읍의 제철소에 다니는 세 명의 가난한 이민자 청년이 베트남으로 떠난다. 전투중 베트콩에게 생포된 이들은 잔인한 고문과 죽음의 공포로 인해 육신과 정신이 망가진다. 기회를 엿보던 이들은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던 중 탈출에 성공한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전우들과 헤어져 제대를 하고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은 같이 참전했던 친구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피비린내 짙은 전장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쯤 되면 이 영화를 본 남자들의 심장은 뜨거워질 것이 분명하다. 영화에는 대나무 망을 만들어 포로들을 흙탕물속에 가두어 두는 감옥이 등장한다. 가두리 양식장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되겠다. 가두리에 갇힌 물고기들에게 하루 서너 차례 사료를 뿌려주는 것처럼 포로들에게 오물 덩어리 밥을 던져주는 감옥이다.
애리조나 출신인 존 매케인 미 상원의원이 있다. 현재 미 상원 군사위원장이다. 그는 최근 북한의 핵도발과 관련, “한반도 전술핵재 배치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해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매케인은 트럼프와는 달리 미국인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페어 플레이 정신에 투철하고 용기있으며 그야말로 존경받는 정치인 이른바 스테이츠맨 (statesman)이다. 연전엔 미국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와 민주당 후보인 오바마에게 패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오바마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라는 참모들의 강권을 거부했다. 비열한 방법으로 이기기보다는 깨끗한 패배가 낫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패배 직후 오바마를 두고 위대한 미국을 건설한 최고의 적임자라며 깨끗이 승복해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바 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민주당 지지자이건 공화당 지지자이건 맥케인을 사랑한다.
그러나 매케인이 존경받는 것은 이 때문만은 아니다. 해군사관학교를 나온 매케인은 월남전 당시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포로로 잡혀 5년 가까이 갇혀 지냈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해군 대장으로 미 태평양 함대 사령관을 역임한 전형적인 무관 집안 출신. 그는 바로 ‘디어 헌터’에 등장하는 돼지우리 감옥에서 5년 가까이 갇혀 있다가 종전 후에 풀려나게 된다. 그러나 그가 5년 가까이 더러운 흙탕물 감옥에 잡혀 있은 것은 순전히 자신이 결정한 것이다. 당시 월맹군 수뇌부는 해군 대장 출신인 메케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의식해 석방을 권했으나 그는 부하동료들을 두고 혼자만 살아나갈 수 없다며 단호히 거부해다. 부하들과 끝까지 남아 있다가 종전 후에야 포로석방 과정을 거쳐 풀려난 인물이다. 그의 귀국 뉴스는 당시 월남전 패배로 우울했던 미국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조직의 리더 또는 지도자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어떠한 용기가 필요하지를 알게 해주는 적절한 예가 된다. 나는 맥케인을 보면서 한 인간에 대한 깊은 경외감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하루가 다르게 천박해져 가는 우리 주변, 특히 정치인들의 저열한 행태를 고통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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