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동의 문화시평 <5> 대한민국 국·공립미술관장의 허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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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컬럼에서 뮤지엄은 국격과 국가경쟁력의 중핵이라 말한 바 있다. 루브르나 테이트모던,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의 문화산업적 사례는 이미 상식이 되었다. 세계적인 미술관들이 가진 경쟁력은 우수한 컨텐츠인 작품과 프로그램, 그리고 학예와 운영의 전문성으로부터 비롯된다. 이것은 미술관이 가지는 지속가능성의 근간이기도 하다. 경쟁력의 지속가능을 위해선 전술한 두 가지 요소를 지속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최근 들어 디지털과 AI 기반의 환경변화에 부응하는 컨텐츠 개발과 시스템 개발에 모두가 매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LG와 뉴욕 구겐하임이 공동으로 설립한 ‘아트 앤 테크놀로지 이니셔티브’와 ‘LG 구겐하임 상’도 그 한 예이며, 미술관마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보이지 않는 노력이 치열하다.
미술관의 전문성은 학예분야와 경영 및 행정 분야의 전문인력에 의해 좌우된다. 미술관 조직은 양자의 기능이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국내 국공립의 경우, 일반적으로 경영파트는 국가나 지자체의 행정직 공무원들로, 학예 파트는 큐레이터로 일컬어지는 학예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장의 경우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학예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경영능력을 가진 인물이 맡도록 하여 두 영역을 효율적으로 관리 운영토록 한다. 미술관은 대개 기관의 전문성을 고려하여 독립적인 조직으로 하며 국립이나 서울특별시의 경우처럼 미술관을 특별히 책임운영기관으로 설정하여 관장 책임하에 독립성을 가지고 운영토록 하고 있다.
최근 대전광역시나 수원특례시의 미술관장을 행정직으로 임명하였고. 대구광역시의 경우, 구조조정 차원에서 시의 직영기구이던 미술관을 민간법인체인 대구문화예술진흥원 하부조직으로 배치하였다. 경기도 역시 문화재단 아래 미술관들을 두어 도와 재단의 이중 관리를 받으며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현장의 상식을 크게 무너뜨리는 행정을 펼쳐 비난을 사고 있다. 물론 행정직이나 경영전문가가 관장을 맡을 수도 있지만, 미술관의 중심 기능인 학예적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소극적인 관리행정 차원에 머물게 되어 미술관의 정체성이나 경쟁력을 창출하는 데 큰 제약을 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수준 높은 미술 향유 기회가 축소되는 것이다.
미술관장은 일반적으로 국가나 지역의 미술계의 나름의 권위와 품격을 가진 중진으로 미술관의 경쟁력을 견인하는 중추적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아직도 관장을 명예직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미술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문화 분야의 전문 경영자라 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80개에 달하는(2022년 현재) 우리의 국.공립 미술관의 경쟁력은 과연 어떠한가? 한국미술이 점점 더 국제무대의 관심을 받고 있고, 창의적 작가들과 시민들의 미술관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지만, 우리 미술관들의 경쟁력을 논하기엔 아직 창피한 수준이다.
한국의 국·공립미술관장들은 모두가 임기제 공무원으로 2~3년을 임기로 최장 5년 이내에서 재임용이 가능한 체제이다. 최소 10년 이상 동일 인물이 관장을 맡아 정체성과 경쟁력을 확보해가는 해외 미술관들의 사례는 차치하고라도, 이러한 여건 하에선 아무리 능력있는 관장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계획을 실현하기도 전에 임기를 마쳐야만 하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마저도 정권의 성향과 진영 논리에 따라 인사가 결정되는 상황이고 보면 미술관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에는 기본부터 부실한 실정이다. 미술관장을 해당 진영의 미술인들이나 화랑 관계자들의 사적이익을 위한 창구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감도 없지 않다. 현재 전 정권 말기에 재임명된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사례를 두고 알박기 인사라고 비판하는 여론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짧은 임기의 관장을 임명하는 절차 역시 너무도 행정 편의적이다. 모든 미술관의 관장은 공모를 통해 선발되는데, 공모 때만 되면 중복되는 전문 인력들이 공모를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볼썽사나운 형국이 연출된다. 대개는 서류 전형과 면접을 통해 3~5 배수의 최종 후보를 선발하게 되는데, 심사위원들의 자격이나 수준도 천차만별인데다, 형식만 공모지 사실은 사전에 염두에 둔 인물을 배수 내 포함시켜 선발한 뒤 지자체장이나 장관이 그를 최종 낙점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절차적 합리성 앞에 응모자들이 결과적으로 들러리를 서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자체나 기초자치단체들의 경우 선출직 지자체장의 선거 참모들이나 지인들을 내정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특히 국가를 대표하는 국립관장의 경우에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정치적 성향이나 진영 논리가 앞서다 보니 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높다. 이럴 바엔 차라리 국립중앙박물관장처럼 직급을 차관급으로 높여 복잡한 공모 절차를 거치지 말고 임명을 통해 행정력을 절약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여론이 많다.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는 관장의 자격도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대개는 미술전공자나 전시기획 경력을 가진 인사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미술관에서의 학예직 경력이 필수가 되어야 한다. 미술관의 학예직 경력과 비엔날레 등과 같은 일과성 행사의 감독, 화랑 운영자 또는 미술관을 모르는 이론가나 교수들의 역량은 서로 다른 것이며, 필수 경력이 결여된 인사들의 경우 미술관 조직관리와 운영에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여건을 충족하는 전문가들은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고 현장에서는 어떤 인물들이 적임자인지에 대한 인력 풀을 조성할 수 있을 정도여서, 이들 중 미술계가 공인하는 적임자를 임명하는 것이 훨씬 더 현장과 밀착된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근자에 들어 국립현대미술관은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경영전문가를 영입한 경우도 있고, 외국인 관장을 초빙하는 실험도 해보았지만, 한국 미술계의 실정을 잘 모를뿐더러 미술관 운영의 전문성을 고루 갖추지 못했었기에 실패하고 말았다.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현재로선 새로운 실험보다는 미술관학적 기본에 충실한 것이 우선으로 판단된다. 국가적 차원에서 정부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규모만 키울 것이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부터 위상을 한 단계 높이고 제대로 된 인력을 선발하여 경쟁력을 높여야 할 때이다.
K 아트에 대한 국제적 관심 고조에 부응하여 글로벌 미술관으로서의 위상을 갖추기 위해 인력과 제도의 획기적 쇄신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거창한 문화선진국의 구호가 무색하게 현재와 같이 하루살이 계약직 관장으로 일자리를 찾아 몰려다니는 모습을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나? 국내외 미술계와 미술관의 이해에 정통한 연륜과 경력을 갖춘 인물을 찾아 정치적 노선과 무관하게 최소 10년 정도 책임 운영을 맡겨보면 어떨까? 이것이 기본에 충실한 실험이 아닐까?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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