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 <33> 사소한 것들이 주는 기쁨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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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우선 나는 숲에 사는 베짱이나 여치같은 풀벌레들의 생김새를 또렷이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여름 밤 환하게 불 밝힌 거실 유리창에 날아와 붙는 녀석들을 거실 의자에 앉아 가까이에서 살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른아른한 풀빛 날개의 무늬들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뚜루루 뚜루루 소리를 낼 때마다 볼록이는 여치의 몸통부분의 그 섬세한 움직임도 바라볼 수 있었다.
가을이 되면서 여름 벌레인 베짱이와 여치들이 모습을 감추고 검은 벌레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풀섶의 귀뚜라미들이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귀뚜라미들의 개체도 마구 늘어나고 그것들이 울려내는 대자연의 교향악이 절정을 향해 치닫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녀석들은 어떻게 닫힌 창문과 방충망을 넘는 것인지 거실이나 서재, 주방이나 보일러실 어디에나 숨어들었다. 그리고는, 야심한 잠자리에 누운 내 귀청을 울리는 것이었다. 사람이 잠자리에 누운 빈 공간 어둠 속에서 우는 귀뚜라미 한두 마리 소리가 크고 당당하게 울려 퍼지곤 하였다. 나는 귀뚜라미 소리를 헤이다가 스르르 잠이 들곤 하였다.
바쁜 일상에 쫒기며 살다보니 저런 것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살았던 것이다. 이 세상을 인간만이 온통 차지하고 주인노릇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떤가, 베짱이 한 마리, 여치 한 마리 그리고, 귀뚜라미 한 마리가 살아가는 치열한 생명 현상들이 오히려 이 우주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저것들이 아른아른한 풀빛 무늬의 날개를 파득이고, 저것들이 열심히 푸르거나 검은 울음판을 갈아 또르르 또르르, 뚜루루 뚜루루 맑고 투명한 소리를 만들어 인간이 비워둔 숲을 채워간다. 오히려 저들이 이 우주의 주인이고 인간은 헛된 망상에 사로 잡혀 살면서 제가 이 우주의 주인인 걸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작고 미세한 것들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게 되면서 귀도 한결 맑아지고 눈도 한결 밝아진 걸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런 생명현상들을 귀히 알고 보호해야 한다는 깨달음도 갖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이사를 오면서 쓰던 가스오븐을 싣고 왔다. 그리고, 새로 짓는 집이 완공되기까지 며칠을 그냥 집밖에 놓아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놓고 보니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스오븐 뒤쪽 가스배관이 되어있는 공간으로 딱새 두 마리가 번갈아 드나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새들이 집을 비운 사이 그 쪽을 들여다보니, 놀라워라 아직 털도 나지 않은 딱새새끼 다섯 마리가 어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딱새 부부는 새끼들을 위한 둥지까지 가스오븐 속에 마련해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가스오븐을 실내로 들여놓을 수도, 거기에 불을 켤 수도 없게 된 것이었다. 도저히, 다섯 마리 딱새 새끼와 그 어미 새들의 희망을 짓밟을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열심히 벌레를 잡아 나르는 어미 딱새들을 숨어 바라보면서 어서 녀석들이 새끼를 키워 그들의 둥지를 떠나주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본성이 그런 게 아닐 텐데도 사람과 사람이 반목하고, 생명을 우습게 아는 잔인성이 인간 세상을 좀먹어가고 있다. 생명이야, 딱새 부부와 아직 털도 안 난, 다섯 마리 새끼 딱새의 그것인들 소중하지 않으랴. 자연현상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이렇게 직접적이고 본질적인 것이었던 것이다.
작고 사소한 것들을 보다 가까이 다가서서 볼 수 있고 그것들이 지닌 참 가치를 알아내는 일은 더없이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어느새 늦가을, 지상엔 하이얗게 서리가 덮이기 시작하였다. 녀석들의 모습을 다시 보려면 이제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동안 나는 맑은 귀와 밝은 눈이나 비워두고 기다려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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