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의 대명사 이 주열 총재와 한국은행 미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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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총재가 연임되었다. 1974년 김성환 총재 이후 4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연임된 이주열 총재는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총재 연임은 거의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 지명된 것은 큰 영광이지만 무엇보다도 한은으로서도 무척 영예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덧붙여서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중요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도 했다.
전례가 거의 없었던 것은 맞다. 본인에게 영광인 것도 맞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으로서도 영예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 총재의 지난 4년 임기 동안 한국은행의 업적이 다른 어떤 때보다도 뛰어났다면 그의 연임은 한국은행의 영예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외부에서 영입되어왔던 대부분의 다른 총재와 달리 그는 한국은행 출신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중요성이 인정받았다는 그의 주장은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들다.
먼저 한국은행의 업적을 살펴보자.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기준금리는 여섯 번 내렸고 2014년 4월 현 총재 취임 이후에만 2.5%에서 0.25%p 씩 5번 내렸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 기준금리가 도입된 이후 금리를 인하한 횟수로는 이주열 총재가 다섯 번으로 가장 많다. 전철환, 박승 및 이성태 총재 시에 네 번 내렸고 김중수 총재 때에는 세 번 내렸다. 금융위기 기간을 제외하면 역대 한은총재 중 임기 내 가장 큰 폭으로 기준금리를 내린 총재였다. 임기 중 금리를 올린 횟수로도 이주열 총재는 한 번으로 가장 적다. 김중수 총재 시에 다섯 번, 박승과 이성태 총재 시에 네 번 그리고 전철환 총재 때에 두 번 올렸다. 임기 내내 금리를 내린 총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9월 5.25%에서 2009년 2월 2.0%로 3.25%p 기준금리를 내린 것을 제외하면 이주열 총재 임기 중에 기준금리는 가장 자주 그리고 가파르게 내려갔다. 게다가 김대중 정부를 포함한 네 번의 정부 중에서 박근혜 정부의 기준금리 인하 폭이 제일 컸다. 김대중 정부 중 4.75%에서 4.25%로 10.5%인하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4.25%에서 5.0%로 17.6% 인상되었으며, 금융위기가 있었던 이명박 정부에서는 5.0%에서 2.75%로 45% 인하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2.75%에서 1.25%로 45%나 인하되었다.
이주열 총재 임기 중의 금리인하에 결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첫 번 째 이유는 금리인하의 당위성에 대해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 현오석 부총리와 최경환 부총리는 경제활성화 정책에 몰두하면서 한국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을 줄기차게 요구했었다. 척하면 삼척이라는 말이 그 때 나왔다. 기준금리를 여러 차례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소비나 투자나 경제성장에 미친 효과는 미미했다.
[그림.1] 최근 5명의 한은총재의 기준금리 정책
특히 2003년 이후에는 기준금리가 여러 차례 인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즉각 효과 (impact effect)및 1분기 직후 성장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2003년 Q2-Q3의 0.5%P 인하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은 당기에 오히려 2.2%P하락했고 1분기 뒤에도 인하 전 성장률 수준을 회복되지 못했다. 그것은 2004년 Q3-Q4의 0.5%P 인하나 2008Q4-2009Q1의 3.0%P 인하, 그리고 이명박 정부인 2012Q3-Q4의 0.5%P 인하 때에도 마찬가지였고 다섯 번에 걸친 박근혜 정부의 기준금리도 마찬가지다. 예금 잔액이 대출 잔액보다 두 배 가까이 크고 기준금리 인하 시 대출금리 인하폭보다 예금금리 인하폭이 두 배 가까이 큰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는 대출자의 금리부담을 줄이는 효과보다 이자수입의 감소가 네 배만큼 크기 때문에 내수를 위축시킬 것이 뻔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금리를 더 낮추자는 논리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실 역대 한국은행 총재 재임기간 중의 경제성장률 평균치는 이주열 총재 재임기간이 2.9%로 이성태 총재 재임 기간의 3.9%나 김중수 총재 재임 기간 3.1% 보다도 낮다.
한국은행의 저금리 정책은 또 다른 측면에서 부작용을 낳았다. 과도하게 낮은 금리는 경상수지 흑자 자금의 국내유입을 억제하고 반대로 해외 유출을 촉진하면서 통화당국의 통화금융관리 능력과 외환관리 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리게 된다. 2014년과 2017년 사이 국내유동성은 대규모로 해외로 빠져 나갔다. 국제수지 상의 금융계정에서는 총 3853억 달러의 대외자산 증가가 나타났는데 그 중 약 90%인 3433억 달러는 민간부문의 대외자산 증가이고 약 10%인 419억 달러 만이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 증가로 귀속되었다. 같은 기간 중 경상수지 흑자 누계가 3680억 달러였으므로 그 대부분이 민간부문의 해외자산 증가로 누출된 셈이다.
국내 민간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대외자산이 반드시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통화당국의 외환보유고와 함께 국내 민간부문이 보유하는 대외자산도 외환위기시에 요긴한 방어막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외환위기가 발생 했을 때에 민간부문의 대외자산을 얼마나 신속하게 효과적으로 국내로 유입하게 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한국은행의 장부상의 외환보유고 약 240억 달러의 대부분도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한 국내금융 기관에 대한 채권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 과도하게 낮은 금리로 인하여 가계부채가 폭증하면서 부동산 가격을 급격하게 높여 놓았다. 현재 가계부채는 이미 1500조를 넘어 임계점을 초과했다는 비판이 많다. 가계소득에 비해 과도한 가계부채는 금융기관의 전반적인 침몰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경제의 자생적 회복을 심각하게 훼손할 정도로 과도하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은행은 과도한 저금리로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가계부채를 임계점 이상으로 높여 놓았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거기에다가 저금리로 인한 낮은 예대금리차로 인해 은행산업의 침체가 지속되었다.은행은 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적정수준의 차이, 즉 예대마진을 바탕으로 하여 영업하고 성장한다. 그러나 초저금리 시대가 오래 지속되면서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은행산업이 심각한 생존의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독일의 도이치은행의 도산 소문도 그렇고 유럽과 미국의 은행산업 영업부진도 예대금리차 축소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나라 은행산업의 수익성은 최근 몇 년간 크게 떨어졌다.
이와 더불어 지나치게 낮은 저금리는 기업의 근본적인 개혁혁신 미루면서 손쉬운 차입을 통해 연명해 나가게 될 것이며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1997년 위기를 발생시킨 것과 같이 기업의 부채비율을 심각하게 상승시킬 것이다.
이주열 총재가 박근혜 정부 시절 기록적으로 금리를 내린 것이 정책적인 소신이었는지 아니면 은근한 인하압력에 대한 정치적인 호응이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상황에 따라 거리낌 없이 올릴 것 같던 분위기에서 급격한 자본유출 걱정은 없다면서 금리 인상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점은 매우 석연치 않다. 흔들리는 민생경제와 과도한 가계 부담을 우려하는 현 정부 하에서 총재 자리에 눈독을 들이는 누구라도 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공공연히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성장정책의 수단이 아니라 금융안정의 수단으로 활용되어만 한다.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라 국익적인 목적에서 운용되어야 한다. 적어도 한국은행 출신이라면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걸 위해서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다른 기관이라면 몰라도 한국의 중앙은행과 기준금리는 첫째, 한국경제에 대한 최고의 전문성이라는 소신을 갖고, 둘째, 책임 없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요구를 묵묵히 배제하여 중심을 잡으며 셋째, 오로지 긴 안목으로 금융시장의 안정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건전하고 성숙된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중앙은행이 흔들리면 한국경제가 흔들린다. 지난 4년 동안의 한국은행 기준금리 정책은 이주열 총재의 연임을 가능하게 한 ‘초저금리’의 기록만 세웠을 뿐 실물성장도, 금융안정도 물가안정도 이루지 못한 정책이었다. 누구의 영광이며 독립성과 중립성이 인정받았다고 자찬하면서 한국의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급격한 자본유출이 없다고 예단해서 말할 것이 아니라 금융안정을 위해 한국은행이 해야 할 이라면 자리를 걸고라도 하겠다고 했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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