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동의 문화시평 <6>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라는 낡은 옷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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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을 지나다 보면 건물 앞에 설치되어 있는 조각 작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대형건물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 숫자는 급속히 늘고 있어 도시의 중요한 문화적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문화예술진흥법에는 연면적 1만 ㎡ 이상의 건물을 지을 때 반드시 건축비의 1% 범위 내에서 조형물을 설치토록 법제화 되어 있는데, 이를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라 한다. 이 제도는 도심의 심미적 환경 조성과 동시에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돕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제도의 기원은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미국의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예술가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WPA 연방예술프로젝트’에서 비롯되었는데, 이후 미국은 물론 유럽 각국에서 소위 ‘1%법’이라는 제도로 정착되어 왔다. 우리의 경우도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되면서 ‘건축물 미술장식제도’가 실시되었다. 이를 통해 작가들의 창작 여건을 활성화하고 미술시장의 확대 효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다른 분야에 비해 조각가들이 이 제도를 대부분을 소화하게 되면서 유명 작가들을 중심으로 이 제도의 수혜를 받아왔다.
하지만 제도가 정착되어가는 과정에서 특정 작가군에게 기회가 집중되는 등 심의의 불공정성과 운영상의 문제점들도 드러나게 되었다. 이 제도가 확산되면서 화랑이나 조형연구소 등 대행업체들이 등장하게 되고 사업을 따기 위한 과열 경쟁으로 업체나 작가들과 건축주 혹은 시공회사 사이에 미술품 설치를 둘러싼 리베이트 등 불미스런 일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가 차지하는 시장 규모가 전체의 50%를 상회하는 상황이다 보니 화상이나 작가들의 수입과 직결되는 미술계의 큰 비지니스가 되었다. 하지만 작품의 질적 수준 향상이나 작가들의 창작 여건 개선은 답보상태이다.
이러한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제도개선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여전히 문제점들은 잔존하고 있다. 한 때는 사유 재산인 개인 건물을 대상으로 한 제도의 규제적 성격 때문에 규제개혁 대상에 올라 제도가 폐지될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물론 사적 건물을 대상으로 하지만 공공재로서의 성격이 강한 점을 감안하여 규제개혁 대상에서는 제외되기도 하였다.
이후 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11년부터 제도를 시대의 흐름에 맞게 현재와 같이 변경하였다. 무조건 미술작품을 설치하도록 하지 않고 건축주가 원할 경우, ‘선택적 기금제’를 도입하여 건물에 직접 미술품을 설치하는 대신, 설치 비용에 해당하는 경비의 70%를 문예진흥기금으로 기부할 수 있도록 이원화한 것이다. 이는 복잡한 심의 절차와 재심 등에 따르는 건축 공기의 지연 등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건물 앞 문패식 미술품 대신에 기부금을 기금으로 하여 특정 장소를 선정, 장소에 부합되는 대형 프로젝트형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선택적 기금제도를 선택하는 경우는 연간 92억원(2022년 기준) 정도로 전체 규모의 5% 내외에 그치고 있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작가들의 경우 리베이트를 불사하면서라도 사업을 따기 위해 기금납부액 수준인 70% 정도에 맞추어 미술작품을 제작하기 때문에 건축주에겐 ‘선택적 기금제도’가 주는 특별한 장점이 체감되지 않는다. 실제로 미술작품 심의에 여러 번 탈락하여 건설 공기의 단축이 절박한 건축주에게는 약간의 편익이 있을 뿐이며 작가들에게도 크게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조성된 기금을 통해 펼쳐지는 사업 역시 큰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선택적 기금으로 조성된 재원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이를 또 전국으로 배분하다 보니 당초 입법 취지를 살린 전범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 개선을 위해 법을 개정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변화된 환경 속에 매몰되어 가는 실정이다. 서울시의 경우, 한동안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조성되는 유형화된 작품들에 대해서는 선정을 보류하며 선택적 기금제도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이에 대한 현장의 반발이 매우 컸다. 뿐만 아니라, 최근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문화예술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공공미술사업에 많은 예산을 풀기도 하고, 지역자치단체는 독자적으로 유사한 사업들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성과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조성되고 있어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의 차별성이 무너지고 있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의 개념이 ‘공공미술’,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 등등으로 급속하게 진화 확산되고 기존의 제도와 개념으로는 변화된 현장의 인식과 환경을 능동적으로 소화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렇듯 제도운영과 정체성에 큰 혼선이 빚어지고 있어 2011년 개정된 미봉책으로서의 법과 제도를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실효성 있게 다시 손 보아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건축물 미술품 제도의 근본적인 입법 취지는 공공재로서의 가치가 강조된 점을 감안하여 이러한 기본을 살리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현재와 같이 벽화작업이나 마을미술프로젝트와 같이 다원화되어 있는 공공미술의 지원제도 역시 차별적으로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 향유자들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제도를 통해 좀 더 수준 높은 미술작품들을 향유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일회성으로 그치는 작품이 아니라 지역의 랜드마크로 문화산업 차원의 지속가능한 결과물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와 같이 건축주와 업체 사이의 비즈니스적 차원으로 양산되는 일차원적 구조로는 한계가 있다. 또한 문패 조각처럼 건물 단위의 협소한 공간에 의무적으로 설치되어 주변 공간과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거나 심의만 통과한 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흉물로 남겨지는 일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곤란하다. 설치되는 미술작품들은 혁신적인 도시 문화의 이미지로서 미래의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가지도록 그 인식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급적이면 선택적 기금제도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이 필요하며, 필요하다면 제도 전체를 선택적 기금제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선택적 기금제는 개별 건축주가 개별 부지에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것이 아닌 보다 공공성이 강한 열린 공간에 해당 지역의 수용자와 보다 친밀하고 지속적인 연계가 가능한 작품을 설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공공미술은 도시개발의 차원에서 중요한 이미지의 하나로서 가치 있는 관광자원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보다 안정된 재원 조성의 여건 안에서 다양한 공공미술 프로그램과 작품을 구축함으로써 지역문화 수준 및 시민 문화 향유 여건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아울러 기금을 통해 도심의 미술작품의 설치와 관리를 총괄하는 전담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는 방안의 검토가 필요하다. 현재 기금을 문화예술위원회가 관리하고 있으나 전담 조직이 없어 사업 운영의 소극성을 벗어날 수 없는 실정이다. 서울시의 공공미술프로젝트인 「서울은 미술관」은 전담 조직으로서의 좋은 사례가 될 듯하다. 이미 상식이 되어버린 스페인의 빌바오, 미국 시카고의 밀레니엄파크와 뉴욕의 배터리파크, 영국의 게이츠헤드, 일본 동경의 마루노우치 등 차고 넘치는 사례를 참고삼아 기금제와 같은 시스템을 활용하여 현재의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와 같은 낡은 옷을 벗고 좀 더 확장된 공공미술의 가치와 담론 그리고 가능성을 열어가야 할 때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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