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민족 화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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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세종논평] No. 2020-11 (6.12)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하는 것입니다.<편집자>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0년 6월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평양에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6·15 남북공동선언이라는 역사적인 문건에 서명했다. 이 역사적인 합의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통일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
2)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 간의 공통성을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간다.
3) 이산가족상봉과 비전향 장기수 문제 해결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간다.
4) 경제협력과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한다.
5) 이른 시일 안에 당국 간 대화를 개최한다.
바로 이 같은 남북 정상 합의에 의해 이후 남북 당국 간 회담이 매우 빈번하게 개최되었고, 이산가족상봉 규모도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비해 100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또한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던 개성지역에 남한의 기업가와 북한의 근로자가 함께 일하는 상생협력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 같은 6·15 공동선언의 정신은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서명한 ‘10·4 남북정상선언’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다. 10·4 선언에는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및 핵문제 해결을 위한 상호협력 등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했던 안보 분야에서의 협력과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등 냉전적 사고를 넘어서는 과감한 합의 내용도 포함되었다.
그런데 이 같은 6·15선언과 10·4선언, 그 중에서도 6·15 선언의 통일 문제와 관련된 조항은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 세력 간 심각한 갈등을 가져왔다. 우리 사회의 보수 전문가들 다수는 통일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기로 합의한 것에 대해 김대중 정부가 북한의 통일전선정책에 말려든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 간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한 부분에 대해서도 김대중 정부가 북한의 연방제 안을 수용했다고 비난했다. 그 결과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 6·15 공동선언의 정신은 계승되지 않았고 이 합의는 곧 휴지화(休紙化)되었다.
6·15 선언에서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자는 조항은 북한이 남한을 ‘미제의 괴뢰’로 보던 냉전시대의 대결적 시각에서 탈피함으로써 합의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리고 통일과정의 중간단계(‘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대한 언급도 통일 문제에 대해 급진적이 아니라 점진적, 현실적으로 접근하자는 김대중 대통령의 주장에 김정일 위원장이 동의함으로써 6·15 선언에 들어가게 되었다.
6․15 선언 채택 전만 해도 북한은 남한 정부를 타도와 전복의 대상으로 간주하면서 ‘선 통일, 후 교류협력’의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통일 문제에 장기적, 점진적으로 접근하기로 합의하면서 북한은 ‘선 교류협력, 후 통일’의 정책으로 전환했다.
북한은 6·15 선언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개념에 대해 2000년 10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중앙정부’ 대신 ‘민족통일기구’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지역자치정부’ 대신 ‘북과 남의 정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북한의 설명처럼 남북한의 정부가 정치․군사․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갖고 민족통일기구를 수립한다면 그 기구는 연방정부가 아니라 경제공동체 또는 사회문화공동체 기구와 같은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정부의 남북연합 안은 공동체 기구가 아니라 정부 간 협의기구(남북정상회의, 남북각료회의, 남북평의회 등)의 창설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은 상호 모순적인 것이 아니라 보완적인 것이라고 파악해야 할 것이다.
6·15 선언의 정신과 10·4 선언의 내용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에 의해 다시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되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군사적 긴장완화 및 남북협력과 관련해 이전보다 더욱 구체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는 다시 냉각되었고, 최근에는 북한이 일부 탈북민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에 강하게 반발함으로써 남북한 간의 모든 통신연락선(通信連絡線)까지 단절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지난 6월 8일 개최된 북한의 대남사업 부서들의 사업총화 회의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對敵事業)’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남북관계의 냉전시대의 적대관계로의 회귀는 남북한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남북한이 다시 적대관계로 돌아간다면 양측은 끊임없는 군비경쟁에 매달리게 되고 그로 인해 남한 국민과 북한 인민의 복지는 희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밝힌 것처럼 북한이 남한 정부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가능한 신속하게 양측이 만나서 풀어야 한다. 물론 남과 북의 당국자들이 만나서 입장 차이를 좁히기 어려운 부분도 많겠지만 일단은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에서부터 협력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남북이 앞으로도 영원히 계승해야 할 6·15 선언의 가장 중요한 민족화해의 정신이다.
끊어진 남북한 간의 모든 통신연락선은 다시 신속하게 연결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판문점이나 평양, 서울 등에서 남북한 정상과 당국자들, 그리고 민간인들도 수시로 만나야 한다. 남북한은 공멸을 가져올 군비증강과 체제경쟁에 계속 매달릴 것이 아니라 보건의료와 방역, 등 가능하고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분야에서부터 협력을 시작하고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핵과 미사일, 한미연합군사훈련 등 모든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도 남과 북의 정상과 특사들이 다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접점을 찾아나가며 주변국들과도 긴밀하게 소통·협력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이해 남북이 앞으로 함께 나아가야 할 민족화해의 방향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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