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망하는 확실한 법칙-혼군(#9 C) : 아미구용(蛾眉苟容)에 놀아난 성한(成漢)의 이수-이세 부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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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져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둘째로 상당 기간(5년) 군주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로써 셋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돌연사 한 군주로써 끝으로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
(10) 이웅의 사망과 조카 이반 계승(AD334)
전조의 유요가 석륵에게 패사하고 이어 멸망(AD329)하는 동안 강북은 서서히 석륵에게 장악되는 동안 강남의 동진은 왕돈의 토벌에도 불구하고 지역 토호들의 불안이 지속되었다. 특히 남창지역의 곽묵이 반란을 일으켰고(AD330) 석륵은 그 틈을 타고 강남지역을 공격했다. 석륵의 강성한 힘이 강북지역을 통일하고 뻗어나가자 양난적은 대성의 이웅에게 항복하고 말았다.(AD331) 따라서 AD331년 경 중국은 강북의 석륵의 후조, 강남 동진, 그리고 성도를 중심으로 촉 지역 이웅의 대성 등 삼국분열 형태로 자리매김했다.
AD334년 대성의 주군 이웅의 머리에 큰 종기가 났다. 평소에도 몸에 있는 많은 칼 상처로 고생을 겪었던 이웅이었다. 온 몸으로 종기가 번지면서 옛 상처들이 썩고 진 무르면서 심한 냄새가 났다. 여러 어린 아들들은 아버지 이웅을 기피했다. 다만 태자인 조카 이반만이 곁에서 밤낮으로 고름을 빨고 상처를 치료했다. 이웅이 사촌동생 대장군 이수를 불러 유언으로 정치를 보살피라고 유서를 남기고 61세로 죽었다.(AD334년 4월 25일) 태자 이반이 황위를 계승했다.
(11) 이웅 아들 이월-이기의 반란(AD334)
이웅의 친 아들 이월이 임지에서 급히 아버지 장례를 위해 성도에 도착했다. 이월은 새 황제 이반이 이웅의 아들이 아니었으므로 불만을 품은 채 다른 동생 이기와 함께 반란을 모의했다. 이를 알아 챈 이반의 친동생 이오는 형님 이반에게 서둘러 이월과 이기를 임지로 쫓아내라고 독촉했다. 이반은 아직 장례가 마치지 않은 상태라서 망설였고 또 마음 깊숙이 사촌동생 이월과 이기를 의심하지 않았다. 오리혀 동생 이오에게 지방으로 나가 근무하도록 명령했다.
이월은 이웅의 빈궁(殯宮)에서 곡을 하는 이반을 시해했다.(AD334년 10월 1일) 이반의 형 이도 처형했으며 태후(이웅의 처)의 명을 고쳐서 죽은 이반을 폐위시켜버렸다. 쿠테타에 성공한 이월은 자신보다 더 똑똑하고 훌륭한 동생 이기를 황제로 올리고 자신은 상국이라는 최고직위를 차지했다.(AD334년 10월24일)
(12) 이시의 쿠테타 음모 실패(AD334)
이웅이 크게 신뢰했던 사촌 대장군 이수와 이기의 사촌형 정동대장군 이시는 이월의 쿠테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이웅의 유언을 거스린 것도 잘못이지만 황제가 될 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시는 이수와 함께 이기와 이월을 타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수가 군사발동을 지체하면서 머뭇거렸다. 참다못한 이시는 황제 이기에게 이수를 모함했다. 그렇지만 황제는 이오를 토벌하기 위해 이수의 힘이 필요했으므로 이수를 없애라는 이시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황제의 명을 받고 이오를 토벌하러 나선 이수는 미리 이오에게 사람을 보내 토벌사실을 알려주면서 미리 알아서 대응하라고 귀띔했다. 이오는 동진으로 도망갔다.
동진에서는 이오를 파군(사천성 중경)태수로 임명했다.
(13) 나연의 이기 축출시도(AD335)
태자 이반이 이월의 쿠테타로 죽자 이반의 장인 나연은 한왕 이수의 재상 상관담과 더불어 이기를 몰아내고 이반의 아들을 세우를 모의를 꾸몄다. 그러나 이기 암살 계획이 발각되고 나연과 상관담과 이반의 모후 나씨가 처형되었다.(AD335)
이기는 하늘의 뜻을 얻어 천하를 차지한 것이라 여기고 교만하고 방자해지기 시작했다. 측근 몇 명에게 모든 정치를 맡기고 형벌을 전단하게 내버려 두었다. 특히 이웅에게 이기를 태자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전포를 특별히 총애했는데 전포는 무능한데다 탐욕스러워 정치를 크게 그르쳤다. 자치통감의 사마광은 대성의 국운이 기우러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기와 전포의 폭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14) 폭군 이기와 이수의 쿠테타(AD338년 4월)
이기는 점차 난폭해져 갔다. 백성들의 재물을 강탈하고 무고한 사람을 죽였으며 대신들의 목숨도 하루를 보장하기 어려울 정도로 포학해져갔다. 특히 평판이 높고 공훈이 많은 이수와 그 가족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당연히 이수도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조회가 있을 때마다 병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다.
그 때 공장이라는 사람은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이특에게 죽었다. 그러니 공장은 이특의 손자인 이기에게 특별한 원한을 품고 있었다. 이수는 지극한 예의로 공장을 벽소, 즉 초빙했으나 공장은 응하지 않았다. 이수는 직접 공장을 찾아가서 도와 줄 것을 청했다. 마침내 공장이 이렇게 말했다.
“ 동진을 섬긴다고 하면서 군사를 일으키면
주변 모두가 다투어 선봉이 되겠다고 할 것입니다.“
이수가 그렇다고 생각하고 장사 나함과 해사명과 함께 이기 토벌의 계획을 세웠다. 이기가 그 소식을 듣고 염탐꾼 허부를 보내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이수의 동생 이유를 독살시켜 버렸다. 아마 이수 쪽 염탐꾼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수가 드디어 행동에 옮겼다. ‘이기가 이수를 잡으려고 한다.’는 거짓 편지를 매부 임조가 쓰게 한 뒤 이 편지를 공개했다. 이 편지를 읽은 이수의 군사들이 격분하여 이기의 성도로 달려가 공격했다. 성도의 성문 안에서는 이수의 세자 이세가 내응하면서 성문을 열어주었다. 순식간에 성도는 이수가 장악하게 되었다.
이수는 임태후의 조서를 만들어 즉각 이기를 폐위하여 공도공으로 강등시킨 다음 유폐시켜 버렸다. 나항과 해사면과 이혁 등의 신하들은 진서대장군, 익주목 및 성도왕이라고 칭하면서 동진에게 귀부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매부이자 임태후의 오빠인 임조는 이수에게 황위에 오르라고 권했다. 이수는 점을 쳐 보았다. 점쟁이는 이렇게 말했다.
“ 몇 년간은 황제자리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임조가 말했다.
“ 하루라도 족할 것이거늘
몇 년이라면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해사명은 이렇게 말했다.
“ 몇 년간 천자 노릇하는 것과
백 년 동안 제후 하는 것을 비교한다면 어떻겠소?“
이수가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말했다.
“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闻道夕死可矣)”
드디어 이수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AD338년 4월) 나라 이름을 대성에서 한으로 바꾸고 공장을 태사로 모시면서 상을 크게 내렸으나 공장은 하나도 받지 않고 돌려보냈다. 공도공 이기는 목매어 자살했다.(AD338년 5월)
(15) 임안의 모반과 이웅 자녀 주살(AD338)
이수가 황제가 된 직후 8월 성도에 100여 일 장맛비가 내리면서 역질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벼슬에 나서지 않았던 공장이 봉서(비밀문서)를 이수에게 올렸다.
“ 지금 비가 저렇게 내리는 것을 보니 분명히
하늘이 황제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전에 맹세하셨던 것을 다시 지키시고
공훈을 넓게 내려서 원한을 푸시며
동진 조정을 섬기신다면
반드시 하늘이 노함을 풀 것입니다.“
이수는 공장의 권고를 두려워했으나 결국 묵살해버렸다. 민심이 흉흉해지자 임태후의 동생이자 복야인 임안이 모반을 꾀하다가 들켜 주살되었다.(AD338년 9월) 이수는 임태후 형제들이 쿠테타를 계획하는 것은 모두 이웅의 아들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이웅의 아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16) 석호가 이수에 연대 제의 (AD340) - 공장의 반대
이웅이 죽기 일년 전인 AD333년 후조의 석륵은 병사했다. 뒤를 이은 석륵의 아들 석홍을 석륵의 양자 애꾸눈 석호가 쿠테타로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다. 석호는 동진을 차지하기 위해 이수에게 연대할 것을 제의했다. 동진을 함락시킨 뒤 양분하여 나누어 가자는 것이었다. 이수는 기쁜 마음으로 수용했고 왕하와 왕광을 수락하는 사신으로 보냈다. 마당이라는 사람을 6군 도독을 삼아 7만 군사를 파병했다. 공장은 결연히 반대했다. 해사명도 극구 말렸다.
“ 우리 군데는 작고 약하며
회계와 오나라는 정말로 먼 곳입니다.“
이수는 신하들에게 동진 토벌의 득실을 논하게 했다. 공장이 나섰다.
“ 흉노(후조)와 동진 중에서 어느 나라와 교류하는 것이 낫습니까?
흉노는 승냥이와 같아서 동진이 멸망하게 되면
곧바로 얼굴을 이리로 돌릴 것 아닙니까.
옛날 춘추시대 진 헌공의 우국과 괵국의 고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수는 결국 후조와 연대하려던 생각을 바꾸었다. 그러나 공장은 그 생각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여 거짓으로 귀가 먹었고 사지를 쓰지 못한다고 하면서 사직하여 성도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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