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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사, 새로운 여성운동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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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07월02일 22시4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6시17분

작성자

  • 정현주
  • (사) 역사ㆍ여성ㆍ미래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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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성사, 새로운 여성운동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여성사 바로 알기’ 컬럼을 시작하며-
필자가 대학을 다닌 70년대와 직장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80년대는 돌아보건대 70년대는 국가사회적 측면에서, 80년대는 여성운동의 측면에서 말 그대로 격동의 시대였다. 대학 4년을 다니면서 격렬한 데모로 인해 매해 한 학기는 휴교로 놀았고, 설레는 메이데이도 1학년 때 오빠랑 간 것이 유일했다. 우리 동창은 메이퀸도 뽑지 못했다. 이후 아예 메이퀸제도가 없어졌다. 이념서클에 가입한 데모주동자는 아니었어도 주변에 많은 이들이 참여했고, 심정적으로 동의했다.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했다고 기억한다.
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임시교사를 하고 있던 중 국가차원의 한국여성개발원이 164명의 규모로 출범한 것은 개인적으로 일생일대 행운이었다. 공채공고가 났고, 대학시절 배우지 못했으나 필수과목이었던 여성학 책을 빌려 밤새워 공부하여 합격하였다. 이후 필자의 삶은 한국여성개발원과 뗄 수 없다. 생계는 물론 직장탁아 혜택, 그리고 이러 저러한 사회적 인연이 여기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렇게 필자는 7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운동의 소용돌이를 거쳐 80년대 여성운동과 여성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던 시기를 함께 할 수 있었다.
80년대 이후 여성운동의 새로운 물결과 여성정책의 제도화 진전
80년대는 새로운 여성운동이 꽃핀 시기였다. 우리나라 여성운동이 개화기부터 시작되었고, 일제강점기에도 독립운동, 여성교육운동, 농촌계몽운동 등 다양한 여성운동이 전개되었으며, 해방 후에도 많은 여성단체들이 국가건설과 문자계몽운동, 생활개선, 여성지위향상을 목표로 활동했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 서구의 여성학 이론이 소개되면서 여성문제를 가부장제 사회 구조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아 주로 여성근로자, 여성농민과 빈민, 매맞는 여성 등 기층여성의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새로운 차원의 여성운동이 시작되었다. 대학에서 여성학 강의가 확대되었고 동시에 여성연구소들이 출범하였다. 또한 소위 진보적 여성단체가 조직되었고, 여성학회도 결성되었다.
이 시기 출범한 한국여성개발원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이 여성정책 수립을 위한 조사연구, 양성평등교육, 시범사업, 여성정보자료실 운영 등의 사업을 펼쳤다. 80년대와 이후 90년대를 통해 여성문제 해결을 위한 많은 법률이 제정되었고, 제도가 실시되었다. 이 시기를 통해 성격이 다른 여성단체간의 연대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정치와 공직분야 여성진출 확대를 위한 여성할당제 성취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여성운동은 더 이상 정책을 주도해나가지 못하고 있다. 남녀평등 정책이 완성되어 더 이상 운동의 필요성이 없어진 걸까? 여성단체들은 연대해서 쟁취할 공통의 주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성문제의 제도적 해결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여전히 남아
지난 30년간 한국의 여성정책은 한국의 근대화 산업화의 압축 성장만큼이나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 보아도 성공적으로 제도적 정착을 이루어 왔다. 그로인해 여성들은 이전보다 행복해졌는가, 그래서 여성과 함께 사는 남성도 행복한가? 여성운동과 여성정책의 목표는 같다. 여성차별이 없는 사회, 그래서 남녀가 평등한 사회, 결국은 남녀의 행복이 실현되는 사회이다.
과연 그렇게 되었는가? 여성 억압의 핵심고리인 가부장제 사회구조에 대해 비록 많은 부분 개선이 있었으나, 평등한 미래 사회를 전망하기에는 부족하다. 현대 여성의 일상생활은 역사 이래 가장 살만한 시기이다. 그러나 여성의 취업과 직장생활, 출산과 자녀문제에 대해 여전히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가 종합적으로 표출된 것이 저출산 현상이다. 20세기는 여성들의 공적 영역 진출이 이전 어느 시대보다 성공적인 시기였다. 그 대가가 저출산이다. 여성들이 자식을 낳아 자신의 생활을 희생하려 하지 않으니 출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의 여성정책이 여성에게 실질적으로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 능력과 재능을 발휘하려는 워킹맘에게 이중, 삼중고만 안겨줄 뿐이다. 저출산문제와 더불어 여전히 낮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여성의 낮은 정치적 대표성 등은 그간의 여성운동과 여성정책의 한계를 말해준다.
역사속 여성의 경험 찾기
그렇다면 여성사가 여성운동의 대안일 수 있을까? 역사 속에서 여성정책의 새로운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서구의 여성운동은 여성의 역사적 역할, 경험 되찾기에서 여성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운동에서 여성사는 크게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이제 늦었지만, 5천년 역사 속 여성의 역할을 찾아내어 의미를 부여하고, 역사를 재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선사시대 유물과 유적지에서 역사시대와는 다른 평등한 관계의 여성의 흔적을 이해하고, 고대국가 등장이후 여성사학자 거다 러너가 얘기하는 ‘주변화의 긴 역사’로 추락하게 된 ‘여성의 침묵’의 원인을 역사적으로 규명하고 잃어버린 여성의 삶의 궤적을 추적 복원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여성운동에서 흔히 사용했던 일종의 의식화집단(consciousness raising group)운동과 같다. 일정한 규모의 여성들이 모여 여성사 의식화집단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룹활동을 통해 역사속 여성의 주체적 역할을 인식하기 위한 여성사 이해하기, 혹은 여성사 알기 공부를 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에 등장하는 남성 ‘거물’을 보면서 성장했다. 이제 여성 ‘거물’이 필요하다. 여기서 ‘거물’은 위대한 인물 혹은 집단이 아니다. 인류역사 발전에 역할을 한 모든 이들의 경험을 소중히 할 때 드러나는 인물이다. 흔히 우리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여성이 한 일이란 무엇인가?” 라고 질문한다. 이 대답에 여성은 없고 등장한 인물은 남성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를 들어 “독립운동에 여성들은 어떤 역할을 했으며, 여성들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했고, 어떤 경험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역사 속 여성들에 대해 전혀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다. 즉, 여성의 주체적인 역사적 경험이 드러날 수 있다. 이렇게 여성사는 기존의 반쪽짜리 역사에 나머지 반쪽을 채워 넣은 일인 동시에 전체 역사를 새로 쓰는 작업이며 미래 남녀평등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보다 더 큰 역사를 볼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남녀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분리보다는 상호소통과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
20세기가 획득한 가장 값비싼 남녀평등의 이데올로기를 21세기에 와서 여성운동이 주춤하고, 여성정책이 실효성이 없다고 해서 버릴 수는 없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가꾸어야 할 남녀평등의 미래 사회에 대한 비전을 갖고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이를 남성과 여성이 함께 나누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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