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그 참을 수 없는 유혹의 신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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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신화 중에 이카로스(Icaros)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아버지 다이달로스(Daedalos)와 함께 크레타 섬을 탈출한다.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을 향해 날았고 이내 그의 날개는 녹아 내렸다. 이카로스의 깃털은 밀랍으로 만들어져 태양에 녹아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바다 속으로 빠지고 만다. 이것이 이카로스의 운명이다. 그는 그의 운명을 거부하고 신들에게 도전했기 때문에 대가를 치른 것인가? 아니면 그는 그의 파멸을 알면서도 담대하게 태양을 향해 날아간 것인가?
지식의 통섭을 주창하는 에드워드 닐슨은 “이카로스와 같은 무모한 대담함이 인간의 고귀함을 구원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위대한 천체물리학자인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Surrahmanyan Chandrasekhar)는 그의 스승이었던 아서 에딩턴 경(Sir Arther Eddington)의 정신을 기리며 “태양이 우리 날개의 밀랍을 녹이기 전에 우리가 얼마나 높이 날 수 있는지 알아보자” 고 말했다. 이 말을 되씹으면 불가능과 절대적인 영역에 대한 도전이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말인 듯싶다.
하지만 이 같은 도전은 자연과학에서나 가능한 말이 아닌가. 사회생활에서 이런 도전은 죽음과 파멸이 있을 뿐이다. 영화 <인간 중독>은 참을 수 없는 유혹. 그 은밀한 사랑의 욕망에 관한 영화이다. 아니 욕정에 관한 영화이다. 어찌 보면 진부한 소재일 수 있다. 어디 불륜을 다룬 영화가 비단 이 영화뿐이던가. 1895년 영화의 탄생 이후 불륜이라는 소재는 영화의 단골 메뉴였다. 1983년 개봉된 영화 121편 중 50편이 불륜 소재 영화였다는 통계가 있다. 이 통계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만큼 불륜영화는 양산되고 있다.
불륜을 다룬 많은 영화에서 인간의 본성에 관한 촌철살인의 통찰이 있는가? 전 세계에서 제작되는 수많은 불륜영화 가운데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 이성 간의 모순적 행태에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제시하는 영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불륜 소재의 영화가 관심을 끌기 충분한 이유는 육체적 매력이 넘치는 스타 배우들의 등장과 그들의 육감적 관능이 우리의 시각적 쾌락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고혹 미와 선정성과 탐욕적 관능미를 넘어서서 인간 존재의 아집과 망상의 허무함에 대해 명쾌한 해석을 가하는 영화 작품을 찾기는 쉽지 않다.
송승헌 주연의 <인간중독> 역시 그러하다. 1969년. 월남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전쟁의 공간을 배경으로 파월 한국군 교육대장 김진평(송승헌 분)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경우진 대위가 등장한다. 경우진 대위의 부인 종가흔(임지연 분)은 대만계 화교출신. 엘리트 장교로서의 능력과 지휘력을 발휘하는 교육대장 김진평과 그를 장군으로 승진시키려는 야망을 지닌 부인 이숙진(조여정 분). 이들 영위관급 장교들의 관사에서 벌어지는 상관 김진평과 부하 경우진의 아내 사이에 벌어지는 위험한 사랑과 사랑의 파국과 파멸. 김진평은 어느 날 운명처럼 종가흔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불륜은 그를 마침내 죽음으로 내몬다.
남녀의 관계에서 보면 이 영화는 팜므 파탈의 요소를 지닌 종가흔이 엘리트 장교 김진평을파멸시키는 내용이다. 아니 김진평이 종가흔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는 내용의 영화이다. 영화에서 종종 여성은 위험하다. 특히 느와르 영화에서 그러하다. 성적 매력과 악마적 요소를 동시에 지닌 팜므 파탈이기에 그것은 매력적 유혹의 악마이며 죽음이다. 이런 죽음의 요소를 지닌 대상에게 다가서면 파멸인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흡인력에 사로잡히는 존재가 인간이다.
마치 이카로스의 전설처럼 죽음인 줄 알면서도 육체적 쾌락의 끝을 탐하기 위해 김진평은 종가흔에게 한없이 끝없이 달려간다. 그런데 김진평이 이카로스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향한 대상이 태양의 신이 아니라 어둠의 악마였기 때문이다. 태양의 유혹은 강렬하지만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태양은 이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어둠의 쾌락은 악마이기에 그 유혹은 훨씬 다가서기 쉽다. 그러나 유혹의 종말은 죽음이다. 이 공식을 깨는 영화는 없다. 이 법칙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는 없다. 할리우드 영화든 한국 영화든 똑 같다. 사회적 질서는 매우 견고하다. 사회적 법과 개인의 욕망 사이의 갈등이 불륜이다.
계몽의 시대에는 이성이 주인이었다. 그러나 낭만의 시대에는 감성이 인간의 지배자였다. 기술의 시대는 기계의 영혼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 시대는 이성과 과학의 치열한 싸움 끝에 융합과 통섭의 정신이 하나의 시대적 명제로 떠오르고 있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존 로크는 철저한 자유주의자였지만 임마누엘 칸트처럼 인간의 욕망을 따르기보다는 도덕적 정언 명령을 추구했다. 그는 “오로지 이성만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유인에게만 햇빛이 비치는 날이 도래할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이성은 사회적 질서와 법을 창조하였지만 우리는 그 울타리를 언제나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영화는 현실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매력은 꿈을 쫒는 것이다. 그 꿈은 이카로스의 무모한 도전과도 같은 것이다.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 지닐 수 없는 것에 대한 탐욕,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 영원한 것에 대한 반항, 만질 수없는 것에 대한 사랑 등 현실에서 이루 수 없는 사랑과 꿈과 욕망과 쾌락에 대한 몽환의 스크린이 영화이다. 그것이 불륜영화가 식상함에도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유이다.
불륜영화의 호황일야 말로 인간 욕망의 구체적 증거이며, 뻔 한 내용임을 알면서도 참을 수 없는 호기심 때문에 다시 영화관을 찾는 관음증적 심리학이 영화에서 유효한 이유이다. 인간에게 이카로스의 도전과 꿈이 있는 한 불륜영화의 제작은 영원할 것이다. 이카로스와 태양의 신 사이의 싸움이 정말 볼 만하게 그려지는 영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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