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진화법☞을 회고한다 (2)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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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야당에 발목 잡혀, 자신들이 만든 법 ‘비난’한 새누리당
19대 국회, 그러니까 박근혜 대통령 집권 시 새누리당은 소수 야당의 벽에 부딪쳤고, 그때마다 선진화법을 비난했다. 자신들이 만든 법을 비난하고 나선 꼴이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주요한 공약으로 내세웠다. 선진화법을 일방적으로 개정하기 위해선 180석이 필요하니까 당시 새누리당은 180석을 한다고 보았던 모양이다. 하기야 그 때 민주당은 호남 의원들에 이어서 비문계 의원들이 대거 탈당할 거라는 관측마저 나왔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총선 결과 20대 국회에선 새누리당은 180석은커녕 과반(過半)에도 턱없이 부족하고, 민주당에 1석 져서 원내 2당이 되었다.
게다가 원내 3당이 된 국민의당도 기본적으로 새누리당에 적대적 내지는 비판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새누리당은 이제 선진화법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20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기 며칠 전 헌법재판소는 새누리당이 선진화법이 위헌이라면서 제기한 권한쟁의소송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만일 그 때 헌재가 새누리당을 지지해서 선진화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으면 새누리당은 정말 큰 일 날 뻔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여야합의가 없이는 꼼짝도 못하게 되고, 선진화법에 의해 패스트트랙 절차를 이용하기에는 의석이 부족한 민주당에서 선진화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게 됐다. 하지만 신속처리 최장 180일을 330일로 연장시킨 당사자는 민주당이기 때문에 그것도 역시 ‘내로남불’인 셈이다.
예산안 통과 시점 12월2일로 못 박은 건 문제, 3주는 연장해야
그렇다고 해서 선진화법이 여당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예산안 통과 시점을 못박아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조항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국감 끝나고 불과 한 달 만에 국회가 예산을 확정해야 하는데, 의원들은 자기 지역구 쪽지예산 넣는 데만 한 달이 부족한 형편이라서 상임위 차원에서 예산을 들여다보고 삭감 요구할 수 있는 시일이 하루 이틀 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니까 정부 예산에 쪽지예산이 더해져서 황급하게 통과되는 것이다. 나는 예산심의 기한은 지금보다 3주일은 늦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12월 24일까지만 예산이 통과되면 집행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당시 선진화법의 패스트트랙은 여야 합의를 생략하는 것이라서 실제로 쓰일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실제로 공직선거법과 공수처법은 심각한 여야충돌을 초래했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절차가 처음 사용된 경우는 정당명부제 시행을 위한 선거법 개정이 아니고 이른바 ‘사회적 참사법’으로 불린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었다.
2016년 12월 9일,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했다. 내가 속한 국민의당도 당론으로 탄핵에 찬성했다. 찬성한 정도가 아니라 당시 강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안철수 의원은 거리에서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문재인 대통령 보다 더 열심이었다. (안철수는 자신이 모은 서명용지 한 트럭분을 헌재에 전달했는데, 헌재가 그걸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패스트 트랙 첫 적용은 환노위 ‘사회적 참사법’…민주당, 신속처리 기한 180일로 회귀(?)
그런 상황이던 12월 20일 쯤으로 기억되는데, 홍영표 환노위 위원장이 의논할 일이 있다면서 잠시 만나자고 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사건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박주민 의원이 발의했는데, 그걸 환노위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했으면 좋겠으니 도와 달라고 했다. 당시 한국당은 이런 법안에 협의를 해 줄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홍영표 위원장이 부탁하니 모른 체 할 수는 없었고, 그런 사안에 대해 진상조사를 하는 데야 물론 찬성이었다. 그러나 과연 그 시점에서 패스트트랙까지 하면서 그 법을 추진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리고 패스트트랙은 최장 11개월 걸리는데, 탄핵 후 대통령 선거 후에 해도 늦지 않는데 무리할 필요가 있는가? 등 내 의견을 피력했다. 홍영표 의원은 세월호와 가습기 피해자들에 대해 그래도 국회가 무얼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여야 합의로는 아무것도 안되니까 패스트트랙으로 일단 입법절차를 시작이나 해 놓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부탁하니 협력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내가 찬성하니까 같은 국민의당 소속 김삼화 의원도 찬성해서 12월 26일에 환노위는 정원 16명 중 10명 찬성(상임위 정원 60% 찬성)으로 사회적참사법안을 국회선진화법 제정 후 최초로 패스트트랙 절차 입법으로 지정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임이자 하태경 등 한국당 의원 6명은 일방처리에 반대하고 퇴장해버렸다.
세상은 원래 돌고 도는 것
당시는 탄핵정국이라서 이 건은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1년 세월이 흘렀다. 2017년 국감이 끝난 후인 11월 어느 날 국회 본회의가 끝나고 나오는데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나한테 무어라고 말을 걸었는데, 사회적참사법이 본회의에 가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그 때 나는 '벌써 1년이 지났나요?'라고 반문했다. 그 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현안문제가 많았는지, 한국당도 사회적참사법에 반대하지 않았고 법안은 본회의를 무난하게 통과했다.
이런 과정을 되돌아보면, 선진화법에서 패스트트랙 최장기 330일은 너무 길고 원래의 180일이 법 취지에 맞는다고 생각된다. 이제 민주당이 180석 선을 넘었으니 민주당은 패스트트랙을 180일로 단축하는 개정안을 단독 통과시킬 수 있게 됐다. 그러니까 민주당은 원래 새누리당안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통합당은 원래의 180일로 복귀하는데 기를 쓰고 반대할 것이다. 180일로 줄이면 국회는 사실상 민주당 단독국회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세상은 원래 돌고 도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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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선진화법이란?
‘국회선진화법’은 그러한 명칭의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2012년 5월 25일 공포되어 예산관련 조항 등 일부 조항을 빼고 시행된 ‘국회법 개정 법률’ (법률 제 11453호)을 말한다. 그 내용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 제한을 비롯해 국회폭력 금지, 날치기 금지, 무제한토론제도 도입, 국회의원 겸직 금지, 여야 간 대립이 첨예한 법률 통과 시 정족수의 60%이상 동의 필요(패스트 트랙)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 제한과 ‘패스트트랙’ 또는 ‘신속처리안건 지정’이라고 불리는 조항으로 볼 수 있다.
법률개정안 제출 때 명기돼 있는 개정이유는 “국회에서 쟁점안건의 심의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건이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심의되며, 소수 의견이 개진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심의되도록 하고, 예산안 등이 법정 기한 내에 처리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한편, 의장석 또는 위원장석 점거 등을 금지함으로써 국회 내 질서유지를 강화하는 등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국회를 구현하려는 것임.”이다. 국회를 물리적 충돌 없이 선진적으로 운영하자는 취지가 담겨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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