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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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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4월26일 17시05분

작성자

  • 이경태
  • 前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前 OECD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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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대 총선에서 보수는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답을 주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1919년 상해에서 발족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1948년 5월 10일에 치러진 우리민족 역사상 최초의 보통선거를 통해서 구성된 입법, 사법, 행정의 국가체제를 갖추고 동년 8월 15일에 출범하였습니다.  

 

건국을 전후하여 통일을 이룩하지 못하였고 친일청산(親日淸算)이 미흡하였습니다만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공산주의자들의 야욕으로부터 남한을 지켜내어서 민족번영의 토대를 구축하였습니다.

역대 보수(保守)정권은 공산주의자들의 6.25 남침을 물리쳤고 한미동맹을 이끌어 내어서 집요한 북한의 적화야욕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였습니다. 토지개혁과 의무교육을 실시하여 국민들의 물적, 정신적 삶의 기반을 쌓은 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내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부터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웅비(雄飛)하는 위업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보수와 진보(進步)가 힘을 합쳐서 쟁취하였습니다. 엄혹한 군사독재시기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정치적 자유를 위해서 투쟁한 민주투사들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에 앞서서 민주화를 먼저 생각하는 대승적 자세를 보여 주었고, 그들의 희생위에서 대한민국은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자유를 누리는 자랑스러운 조국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수는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어 나가는데 실패하였습니다. 친북이니 종북이니의 색깔론이 입에 넣어주는 반사이익을 향유하면서 국민들의 표를 구걸할 뿐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 보수의 비전과 꿈을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번 총선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정권심판에만 매달렸습니다. 물론 현 정권은 심판받아야 마땅합니다. 복지(福祉)와 분배(分配)를 성장의 견인차로 착각하는 경제정책, 자유민주주의의 대의(大義)를 내팽개친 대북정책, 국가의 이익보다 정권의 이익을 앞세우는 외교정책 등이 계속되면 우리의 앞 세대가 피땀 흘려 세운 대한민국의 명운이 위태로워지지 않는다고 감히 얘기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정권심판에만 매달리지 않았고, 보수와 미래통합당이 자기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를 물었고, 보수가 그리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를 궁금해 했습니다. 보수와 미래통합당은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번 국회의원선거에서의 커다란 패배는 그 당연한 결과입니다. 보수는 겸허한 자세로 패배의 의미를 천착(穿鑿)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변화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래야만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아야 할 때입니다. 선거패배의 이런 저런 이유들에 집착해서 변화의 큰 그림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코로나19’가 없었더라면, 공천을 잘했더라면, 막말을 안했더라면 등등의 구실들이 달콤한 목소리로 유혹을 합니다.

 “보수가 근본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어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기다리면 현 정권이  제 풀에 무너질 것이니까 때를 기다리기만 하세요.” 

이런 꼬임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유혹의 목소리는 끈질깁니다. 힘들고 귀찮은 개혁이니, 변화니 하는 고통의 터널을 들어가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러나 이번에는 보수가 정말 달라져야 합니다.   

 

 “역사(歷史)투쟁에서 기필코 이겨야한다”

 

 먼저 역사투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지금 보수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오도하는 집권세력의 치밀한 공작을 무기력하게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주눅 들어 하고 있습니다. 보수에게 씌워진 적폐의 낙인은 선명하며 ,그 효과는 이미 많은 국민들의 의식세계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만 짚어 보겠습니다.

 

첫째, 보수와 친일(親日)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동질적이라는 착시현상을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출발점은 이승만정부가 친일파 척결은커녕 중용(重用)하여 해방이후 친일파가 한국사회의 주류세력이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이승만대통령은 독립투사였고 그의 정책은 반일(反日)이었습니다. 초대내각 명단에는 친일파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김구(金九) 선생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국민들은 김구 정권이 들어서지 못한 사실을 애석해 하면서 이승만 정권을 친일정권으로 매도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두 가지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보수가 인정하고 반성해야 될 부분이 있습니다. 일제(日帝)때 일본의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고 식민정부의 관리를 지내다가 해방이후에도 계속 정부에 남아서 고위관리를 지낸 사람들이 여럿입니다. 또한 일본의 육군사관학교를 나오고 일본군대의 장교복을 입다가 해방 후 국군창설의 주역이 된 사람들도 여럿입니다. 그중에는 박정희 대통령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친일청산이 미흡했다는 점을 반성하면서 그들 중에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고 국민들을 가난의 덫에서 해방시킨 공적이 허물을 덮고도 남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는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가지고 친일낙인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자들에게 정정당당히 맞서야 합니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역사문제를 놓고 현 집권세력은 자기들과 의견이 다른 보수적 국민들을 친일로 몰면서 토착왜구(土着倭寇)라고까지 낙인찍고 있습니다. 무엇이 국익을 위한 외교인지를 따져야 할 사안인데 난데없이 친일파가 등장하니 논의의 핵심은 선반위로 올라가 버리고 맙니다. 해방된 지 어언 75년이 흘렀고, 친일파들은 모두 저세상으로 갔고, 그들의 손자들이 주류세대로 등장했는데 말입니다. 

 

또 독립운동을 입에 달고 사는 몇몇 진보정치인들은 자신이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설령 부친이나 조부가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공이 세습되는 것도 아닌데 마치 자기들만 독립을 위해서 희생한 것처럼 국민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선열들은 결코 자신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일반국민들보다도 우월하다고 생각하거나 그들을 비난, 비하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 운동권들이 민주화투쟁을 할 때 산업화세력은 일신의 영달(榮達)을 위해서 민주화를 외면했다는 주장입니다. 많은 보수인사들은 운동권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 주위에는 민주화투쟁에 동참하지 아니한 경력을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기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산업화세력은 자신과 가족과 국가를 위해서 각자의 맡은바 일을 묵묵히 수행하였습니다.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개척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자기책임의식은 보수의 핵심가치의 하나입니다. 남을 탓하고 사회를 원망하고 제도를 비판하기에 앞서서 자조의 노력을 선행시키는 것입니다. 

 

산업화세력이 흘린 땀은 민주화세력이 흘린 피에 못지않게 고귀합니다. 많은 산업화세력은 민주화운동에 동참하였습니다. 길거리에서 경찰과 맞서고 투표장에서 민주화지지표를 찍었습니다. 두 세력은 대한민국의 역사발전의 수레를 굴리는 두 바퀴입니다. 서로 돕고 인정하며 상대의 가치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운동권세력은 산업화세력에게 독재, 착취, 친일의 굴레를 씌워 역사에서 몰아내려고 획책하고 있습니다. 

 

셋째, 반(反)공산당 행동을 보수정권의 국가폭력으로 격하시키는 움직입니다. 대표적으로 제주 4.3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남로당 무장게릴라가 적화통일(赤化統一)을 목적으로 군인과 경찰을 살육하면서 촉발된 동 사건은 토벌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남로당 무장게릴라와 그 부역자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적이고 무고하게 희생된 양민들은 명예회복과 보상의 대상입니다. 이 둘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무장게릴라에 맞서서 싸우고 희생당한 군경의 명예는 희생된 양민의 명예와 동일하게 숭고합니다. 이들이 국가폭력의 행사자로 신분이 전환되고 그 유가족들이 역사의 죄인처럼 위축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지난 4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고,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와 우리를 분열 시켰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억울하게 학살된 양민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이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고 남북통일을 위한 적극적인 행위자이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제주 4.3사건의 역사적 진실은 원점에서 다시 규명되어야만 합니다. 보수가 자유민주주의를 믿는다면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2차 세계대전을 미국이 원자탄을 투하하여 수십만 명의 일본양민을 학살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미국을 국가폭력의 주범으로 비난하면 일본군국주의의 만행은 어디에 가서 호소합니까? 대한민국에서는 공산주의와의 투쟁과정에서 제주도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양민이 희생되었습니다. 6.25전쟁이 가장 대표적이고 여수순천 반란사건도 있습니다. 앞으로 6.25전쟁기념관이 양민희생자추모기념관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확언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경제에 대한 보수의 시각도 바뀌어야 

 

역사투쟁은 정치투쟁의 시작이며 끝입니다. 역사투쟁에서 패배하는 순간 정치적 정당성은 소멸되고 국민들의 지지를 구하는 것은 염치없는 구걸행위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번 선거에서 몇몇 미래통합당후보들의 막말이 표를 갉아먹은 것으로 보입니다. 광주 5.18, 세월호 침몰, 박근혜 탄핵 등을 놓고 보수의 막말이 계속되는 것은 아직도 그 역사적 의미에 대한 입장정리가 되지 않아서입니다. 속마음이 겉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막말’이라는 지탄을 받는 것입니다. 보수는 대한민국의 역사발전이라는 대승적 견지에서 실체적 진실 못지않게 역사적 의미부여가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역사투쟁에 이어서 경제에 대한 보수의 시각도 바뀌어야 합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성공의 그늘에 숨은 소외와 배제의 모순(矛盾)에 대해서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가 더욱 짙어 지듯이 대한민국의 영광(榮光) 뒤에는 고통 받는 많은 국민들이 있습니다. 다수의 청년실업자,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앞날의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 노후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직장을 잃는 중년가장들, 빈곤 노인층이 그들입니다. 복지예산의 가파른 증가에도 불구하고 치매 등의 만성질환과 갑작스러운 사고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국민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보수는 고통 받는 이웃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통합과 배려를 진보의 포퓰리즘으로 비하해서는 안 됩니다. 보수 역시 소외된 국민들을 보듬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해법에 있어서 보수는 진보와 차별화되어야 합니다. 보수의 가치인 효율(效率)은 복지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가장 필요한 국민에게 최대의 복지혜택이 전달되도록 해서 국민세금이 한 푼이라도 누수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또한 인기 영합적 복지로 재정위기를 자초하는 무책임을 버리고 지속가능한 복지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최선의 복지는 모든 국민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고, 좋은 일자리는 기업에서 만들어 지기 때문에 정부는 규제를 풀어서 기업이 창의와 혁신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보수의 가치에 충실해야 합니다.

 

 아울러 진보가 내세우는 평등(平等)을 수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라는 보수의 가치를 지켜야 합니다. 같은 출발선상에서 골인지점까지 공정한 경쟁이 담보되도록 하되 빨리 달리는 사람과 늦게 달리는 사람의 차이는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보수가 내세우는 평등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재벌 역시 중소기업과 창업자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개혁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경제민주화이며 보수는 이를 새로운 보수의 가치로 받아들이고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한국은 차별이 심한 나라입니다. 지역, 학벌, 집안, 빈부, 지위의 고하를 구분하고 심지어는 직업도 구분해서 귀천(貴賤)을 따집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은 새로운 신분제도로 고착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갑이 을에게 가하는 모욕과 모멸은 국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아니라 반감을 조장합니다. 보수는 차별을 타파하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가진 자의 오만과 무관심을 버리고 건전한 개혁보수가 되어서 사회민주화를 이루어 내어야 합니다. 

 

“북한과의 대화는 환영하되 ‘대화를 구걸’해서는 안 돼”

 

지금 대한민국의 안보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북한의 비핵화의지와 실천은 모호한데 세계에서 유례없는 독재와 세습왕조에 대해서 호의와 찬양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가고 있습니다. 평화라는 미명하에 군사훈련이 하나하나 없어지고 있습니다. 훈련 안하는 군대는 더 이상 조국수호의 간성이 아니고 돈 먹는 하마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 준 한미동맹 역시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트럼프대통령의 일방적인 한미훈련취소에 대해서 항의는커녕 오히려 환영하고 있습니다. 주한미군 철수를 한다고 해도 역시 두 손을 들고 환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입니다.

 

보수는 북한(北韓)과의 대화를 환영하되 전쟁이 두려워서 대화를 구걸해서는 안 됩니다. 대화의 판이 깨어 질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는 대화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보수는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되 자유, 민주, 인권, 기회평등, 차별철폐의 가치를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의 대화와 협력은 목적이 실종되고 오직 ‘대화와 협력’ 자체가 목적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보수는 이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국력은 인구 5천만명 이상 되는 국가 중에서 이미 G7이 될 정도로 커졌습니다. 이러한 자랑스러운 성취를 바탕으로 효율, 경제민주화, 사회민주화의 새로운 보수 가치를 정립하고, 실천에 옮겨서 제2의 민족중흥을 이룩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보수는 다시 일어서서 국민통합을 이루어내고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G7 국가로 제 2의 중흥을 이루어 나가는데 밑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한국몽(韓國夢입)니다. 5천만 국민이 분열과 대립을 내려놓고 한국몽이라는 위대한 민족사적 꿈을 함께 이루어 나가는데 앞장서는 보수가 되어야 합니다.

 

보수정당 미래통합당, 환골탈태(換骨奪胎)해  ‘변화의 진정성’ 믿음 줘야

 

마지막으로 보수를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미래통합당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합니다. 구태를 반복하면 다음 선거에서는 보수층의 지지조차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젊은 지도자를 기르고, 정책을 시대정신에 맞게 바꾸고, 국회에서 국민에게 다가가는 비판과 대안제시를 해야 합니다. 

 21대 국회에서 미래통합당이 100석 남짓한 의석을 가지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을 제안합니다. 국회의원의 특권을 깡그리 내려놓는 법안을 제출하십시오. 오직 행동만이 변화의 진정성을 믿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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