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총선 압승에도 현안은 여전히 한가득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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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총선’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핑크빛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벚꽃 엔딩’이 따로 없다. 한 쪽은 호화롭게 다른 한 쪽은 참담하게.
보통 대선과 대선 사이에 벌어지는 전국 단위 선거는 집권세력에 대한 평가로 표심을 가른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가 블랙홀로 작용했다.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코로나 총선’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그 와중에 민주당은 승기를 확실히 잡았다.
다만 ‘코로나 총선’이라고 하여 유권자들이 오로지 감염병 극복만을 생각하고 집권당을 지지했다거나, 또한 집권당이 압승했다고 해서 무수한 현안들이 시나브로 말끔하게 해소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사안은 유권자들의 바람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 사안은 현 정부와 집권당이 총선 승리에 도취하기보다 난제 해결에 그 어느 때보다 매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두 사안 모두 정치권의 각성을 요청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수습 내세운 민주당, 비판에만 열 올린 통합당
우선 유권자들의 대응을 한 번 돌아보자. 지난 1월 20일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오면서 정부와 방역당국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3주 동안 1일 확진자수 증가가 30명 이하로 주춤했고,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2월 13일 “머지않아 코로나 19가 종식될 것”이라며 낙관론을 폈다. 이에 야당인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의 공세는 거세졌고 국민들은 불안에 휩싸였다.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코로나19 탓에 민주당에 매우 불리한 선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섣부른 낙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되레 약이 됐다. 정부는 곧바로 몸을 낮춰 방역에 혼신을 기울였고, 민주당은 3월 들어 아예 선거대책본부를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로 재편해 감염병 극복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한국의 방역전략을 두고 세계 곳곳에서 호평이 이어지면서 코로나19는 민주당에 전화위복의 재료로 작용했다.
극적인 반전이 시작됐던 것이다. 정부의 방역정책에 시시콜콜 비판의 날을 세운 통합당의 대응은 국민들의 눈엔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예컨대 마스크 공급을 둘러싼 비판이 상징적이다. 시중에 마스크 품귀현상이 벌어지자 “정부가 그것도 해결 못하느냐”고 야유를 이어가더니, 1인당 주 2매씩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정부의 조치에 대해서는 “사회주의국가처럼 마스크 배급이 다 뭐냐”며 질타했다.
유권자들은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 특정 정당의 선전선동에 매몰되기보다 스스로의 판단과 가치를 중시하는 쪽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의 유권자들을 정치성향에 따라 각각 보수 30%, 중도 40%, 진보 30%로 나눌 수 있다지만 중도층 40%는 경우에 따라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 이른바 무당파층 스윙보터(swing voter)의 존재다. 이들의 생각과 바람을 파고들어야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다만 이들을 붙잡자면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력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통합당이 좌절을 맛본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선거운동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지난달 29일 통합당이 영입한 김종인 총괄선대본부장은 취임 일성으로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내걸었다. 스스로 50년대 선거구호라고 소개하면서 현 정부에 꼭 어울리는 비판이라고 말했다. 과연 낡은 선거구호로 스윙보터들의 마음을 살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은 지금의 선거결과로 충분히 확인됐다. 그 외에도 통합당의 헛발질은 적지 않았다.
통합당이 당명에서는 미래를 앞세우고 있지만 내거는 구호는 50년대의 낡은 외침이거나, 밑도 끝도 없는 정부 심판론만 앞세우니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기는 어려웠을 터다.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를 진영 대결로만 해석하는 모양이나 요즘 유권자들은 더 이상 정치공세나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야 맞다. 유권자들은 코로나19라는 문명사적 대전환과 관련해 설득력 있는 대응을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2020년 총선에 이르기까지 전국 단위 선거에서 네 차례 거푸 민주당 쪽으로 스윙보터가 움직이고 있다는 점은 유의해볼 대목이다.
양당이 독식하려고 선거제도 바꿨나
이렇듯 큰 흐름에서 보면 유권자들은 지난 4년 동안 민주당이 추구해온 방향, 정책 등에 대해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것이 민주당을 우선적으로 적극 지지하겠다는 뜻인지, 통합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나마 민주당에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다는 뜻의 소극적인 지지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광화문과 서초동, 촛불과 태극기로 대별되는 갈등구조 하에서 나타난 유권자들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여야 정치권의 진솔한 자기분석이 요청되는 대목이다. 특히 지난해 거의 우격다짐으로 만들어낸 선거법 개정의 결과를 보면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사표를 방지하고 소수정당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하자며 마련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군소정당의 몰락, 완전한 거대 양당의 부상, 여기에 더하여 꼼수 정치의 극한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당초 선거법 제도 개편을 주도했던 민주당과 정의당 등이 위성정당의 탄생을 예견하지 못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도 그 방향으로 몰고 갔다면 유권자들을 희롱한 것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이번 사태는 선거법 개정에 처음부터 반대했기에 그에 대한 반발로 먼저 위성정당을 만들었던 통합당이나, 뒤질세라 슬그머니 따라 나선 민주당도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다.
민주당은 심지어 통합당의 위성정당 설립과 관련해 의원 빌려주기 행태에 대해 고발장을 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자신들도 은근슬쩍 위성정당을 만들고 어쩔 수 없는 대응이라고 변명했다. 염치도 없고 원칙도 뭐도 없는 그야말로 의석수 놀음에 여념이 없는 정당의 모습들이다. 유권자는 새로워지기를 원하고 있는데 정당은 구태를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상 초유의 50cm 가까운 투표용지는 웃음거리일 뿐이다. 그런데도 참패의 울분만을 기억하거나 압승만을 자랑으로 내세운다면 한국 정치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새로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우선적으로 선거법 개정을 다시 해야 맞다. 충분한 보완을 통해 당초 목표로 삼았던 소수정당의 존재의의를 중시하고 사표를 방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잔치는 끝났고 다시 두드러지는 현안들
어떻든 이제 선거잔치는 끝났다. 통합당은 당장 참패의 후폭풍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테지만 적어도 유권자의 입장에서 패인을 곱씹으며 새로운 당의 전략을 마련하고 정비하는데 힘을 모아야 다음을 노려볼 수 있다. 문제는 압승한 민주당이다. 행여 과반 이상의 의석수가 곧 힘의 정치를 펼쳐도 좋다는 국민의 뜻으로 착각하거나, 압승에 대한 논공행상을 먼저 벌리거나 불필요한 당권다툼으로 사분오열해서도 안 된다. 그 모두가 유권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태다.
선거전에 돌입하기 전부터 진행되고 있던 문제들은 한가득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난해 정부지출을 앞세워 2% 성장률을 겨우 지켜냈지만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마이너스 성장률이 벌써부터 거론된다. IMF만 해도 -1.2%를 예고하고 있다. 1인당 GDP는 지난해 이미 4년 전 수준으로 뒷걸음친 바 있는데 올해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수출 부진, 여기에 원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3만 달러를 밑돌 수도 있다.
당장 코로나19 뒷수습부터 만전을 기해야 한다. 관광․항공․호텔․요식업․스포츠․공연산업 등 사람에 의존하는 재래식 대면 위주의 산업은 줄도산이 우려된다. 적극적인 재정․금융 정책이 필요하다. 완화적인 대출정책은 물론 정부 부채 증가를 두려워하기보다 실업수당, 고용유지 지원금 폭도 대폭 늘려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재정건전성 운운하고 있다가는 더 큰 낭패를 치를 수도 있다.
감염병 위기에 따른 지원방식으로는 선별지원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하지만 신속한 지원을 감안하다면 행정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차원에서 보편지원을 우선하되 지원체계 정비와 더불어 선별지원이 안착될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원이 단발성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 현안은 지원시기를 놓치면 개인이든 기업이든 회복의 기회도 그만큼 뿌리째 사라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당연한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으나 취약계층일수록 그 룰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위기가 닥칠수록 취약계층에 대한 각별한 배려가 필요하다.
코로나19로 국제관계의 본질도 요동치고 있다. 전통적인 서구 선진민주주의 국가들이 감염병에 취약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고, 리더십 위축이 거론되고 있던 미국은 이번 코로나 사태로 위상 저하가 더욱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경을 열고 서로 교통하고 연대하는 데 힘을 써온 EU는 서로 국경을 폐쇄하고 감염병과의 전쟁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중국은 감염병 극복을 앞세우며 권위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경향이다. 최근 한국의 확진자 동선체크 등과 관련해 프랑스의 일부 비판자들이 개인의 인권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만큼 감염병 관리와 국가권력의 정보통제 문제에 대해 인권존중 차원의 원칙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 중국식 권위주의는 당연히 배제해야 하겠으나 감염병 대응이라는 문제를 충분히 고려한 적절한 대처방식이 절실하다.
코로나19 이후 문명사적 대전환에 대비할 때
한국은 코로나19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대응하고 있어 각국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다. 언제 어떤 계기적 변화가 몰려올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코로나19 변종이 계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낙관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우리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상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대면 시대’에 걸맞은 코로나19 이후의 청사진도 요청된다. 청사진의 기준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부터 분명하게 논의해야 한다. 자유, 인권, 국민주권 등 민주주의의 고전적 가치를 우선하면서 새 시대를 향한 대응을 모색하는 데 민주당을 비롯해 정치권 전체가 머리를 모아야 한다. 국제관계, 즉 외교안보문제도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때다.
한․미 동맹관계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주한미군 주둔비 인상을 둘러쌓고 번지는 미국의 과도한 요구에 대한 지혜로운 대처도 필요하다. 권위주의로 치달아가는 중국에 대한 경계도 절실하다.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 또한 언제까지나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앞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남북관계 개선은 이들 주변국들의 지원과 협력이 매우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최근 코로나19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가는 일본에 대한 전향적인 대처를 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감염병 공동대응과 협력은 인도적인 배려이자 이웃나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가 아닌가. 이는 2018년 10월 대법원 징용자 배상판결 이후 갈등관계가 고조되고 있는 한․일 양국관계를 일거에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감염병 대처 선진국으로 평가되는 한국이 문명사적 대전환의 시기에 구태를 벗고 새로운 외교관계를 위해 선제적으로 손을 내민다면 그 역시 의미가 작지 않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국격은 GDP나 군사력의 크기가 아니라 미래를 적확하게 읽어내고 대응하는 능력, 공동체 내부와 이웃나라까지도 배려할 수 있는 능력으로 평가될 것이다. 사회공동체를 지향하는 국가의 모습으로 한국이 각인될 수 있도록 정치권부터 우선 새로워지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곧 문명사적 대전환의 시작이요, 코로나19 이후 펼쳐질 대전환에 대응하는 최소한의 준비가 될 터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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