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正義)는 어디에 있는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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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한 때 우리 사회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번역 책이었다. 이 책이 한국에서 인기가 치솟자 저자 Michael Sandel이 직접 한국에 와서 강연을 하기도 했었다. 정작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유독 한국에서 책이 많이 팔렸던 것은 우리사회가 정의에 대해 목말라 있었던 것이었나 보다. 그래서 촛불을 들고 횃불도 들고 ‘무엇이 정의인가를 찾아 헤맸다.
드디어 정의를 찾았다고 국민들은 환호했다. 문재인 정부 탄생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가 촛불혁명으로 만들어지게 됐다고
말들하고 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기 어려운 세태로 변하고 있다.
대한민국 법무부 홈페이지에는 법무부를 ‘Ministry of Justice’로 표시하고 있다. 자신들이 정의를 수호하고 구현하는 행정부처임을 천명하고 있다. 입법된 법정신을 수호하고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서 정의를 이룬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정의를 내세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작 정의 구현을 주 임무로 한다는 이 행정부서에서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누구보다도 이 행정부서의 수장이라는 법무장관들이 국민들이 보기에는 연이어 정의를 묻어버리고 있다. 법무장관들이 자기들 사익을 위해 그리고 자기 패거리 집단의 이익 방어를 위해서 불의를 정의로 바꾸고 있다는 탄식이 도처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들 눈에는 정의는, 국민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
정의로운 말로, 바른말로 세상을 재단하던 조국 전 법무장관이 자기 집안 일로 거짓이 들통 나자 자리를 떠나더니 뒤이은 추미애 장관도 국민들이 보면 뻔한 거짓말을 눈 하나 꿈적하지 않고 내뱉으며 오히려 큰 소리를 치고 있다. 그리고 자기들을 비난하면 검찰개혁을 막기 위한 음흉한 흉계라고 되받는다. 조국 전장관이나 추미애 현장관은 정책은 얘기하지 않고 가족애기를 꺼내며 검찰개혁을 막기 위한 정치공세가 도를 넘고 있다고 도리어 역정을 낸다. 가족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이용한 불법행위 여부를 따지는 것임에도 툭하면 자신에 대한 비난을 검언유착(檢言癒着)이라고 딴 소리를 하고 있다.
정의가 무엇인지 철학적인 통찰에는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평범한 국민들은 상식과 양식의 눈으로 보면 무엇이 정의롭고 옳은 일인지, 무엇이 불의(不義)이고 옳지 않은 일인지 다 분별은 할 줄 안다.
촛불정권은 정의를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먼저 공정해야 그 바탕위에 정의가 세워질 것이다. 그런데 이 정권의 실세라는 두 장관들은 부모에 따라 자녀들이 남과 다른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기 자식들을 위해서는 문서를 위조하는가 하면 군복무도 특별대접을 받게 하는 작태를 보여주었다고 세상이 연이어 떠들썩하다. 모두가 용이 될 필요 없고 개천에서 가재 붕어 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뒤로는 자기 자식들은 모든 부정과 편법을 동원해 용이 되게 하고 용처럼 살아가는 길을 만들어주는 행태를 보여주었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이것을 보는 국민들은 누구는 부모덕에 대학가기가 수월하고 누구는 부모덕에 군대생활을 내 집에서의 생활처럼 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에 허탈해 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한국인을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할 때 ‘Status Oriented People’(신분 지향적 사회)로 본다는 말이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좋은 일의 성취보다 자리에, 직위에 더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꽃밭에 맨드라미꽃을 심어왔다. 닭 벼슬 같은 맨드라미꽃을 보며 집안에 벼슬로 출세한 자손이 있길 기원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이룩하는 것보다 어떤 자리이든 벼슬에 올라가는 것을 염원했나 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다. 제대로 공직에 오르기 위한 전제 조건을 말한 것이다.
현대적 의미로 보더라도 공인이 되려면 먼저 자신이 올바로 서야하고 집안이 부정이나 불법에 연루돼서는 안 될 것이다. 정의를 지켜야할 법무부장관은 더욱더 흠결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렇지 못한 사람들은 혹세무민하며 자리나 탐하는 정상모리배(政商謀利輩)에 지나지 않는다.
현직과 전직 두 법무부장관은 똑같이 검찰개혁을 화두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검찰개혁의 실상이 무엇인지 많은 국민들이 이제 감(感)을 잡게 됐다고 한다.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들통이 난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 것은
개가 주인을 무는 격이라는 말이 나왔다. ‘아하, 이것 이었구나!’ 국민들은 이들이 내세우는 검찰개혁은 검찰을 자신들의 충견(忠犬)으로 만들려는 속셈으로 읽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공수처를 신설하면 윤석열 총장이 첫 수사대상이 될 거라고 떠들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 것이다.
추미애 장관이 단행한 검찰인사가 또 검찰개혁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확실한 단서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이번 인사는 말 안 듣는 윤석열 총장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것으로 국민들은 이해하고 있다. 소위 ‘윤석열 수족’을 잘라 정권에 불편한 수사는 아예 건들지 못하게 한다는 숨은 뜻으로 읽혀지고 있다.
청와대관련 권력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울산시장 선거부정의혹, 대국민 사기극으로 보여 지는 윤미향 사건, 권력개입의혹의 펀드사기 사건 등 자신들의 치부와 관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들은 수사를 하고 있는지 말았는지 국민들은 알 길이 없었다.
추미애장관이 단행한 검찰인사로 이제는 이런 사건들도 유야무야(有耶無耶)되는 것 아닌가
점쳐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의를 수호해야할 법무장관들의 행태를 보며 많은 국민들이 이분들도 말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권력에 편승해 자리를 탐하는 그런 부류였구나 하며 탄식하고 있다.
현 법무장관은 한때 한국의 ‘잔 다르크’라는 의미에서 ‘추 다르크’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검찰인사로 검찰개혁의 속셈을 달성했으면 이제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도 생각해봄직 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추 다르크’가 ‘추한 다르크’로 변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의를 수호해야할 법무부 수장이 남 보기 부끄러운 일도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자꾸 우기면 이런 장관을 보는 국민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해야 할 지 얼굴 들기도 창피한 국민이 될 지경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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