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은행 연쇄 파탄 이후, 금융 당국이 명심할 몇 가지 교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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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서부 캘리포니아 소재 Silicon Valley Bank(SVB)의 갑작스러운 ‘지급 불능’ 사태 및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인수 사태로 촉발된 미국 지방은행 연쇄 파탄의 파장이 유럽 대륙으로 번져 스위스 대형 은행 Credit Suisse(CS)도 경쟁 은행인 UBS에 인수됐다. 이에 미국 정부, 연준(FRB) 등 금융 감독 당국은 물론 대형은행들까지 나서서 시장 동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긴급 공조 대응하고 있다. 한편, 이번 사태의 진앙지인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사태가 글로벌 위기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통화스왑(currency swap)’을 체결하는 등 기민하게 대처했다.
이런 다각적인 노력으로 사태는 일단 진정되는 양상이나 사태 발생 후 수 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부 은행의 유동성 리스크는 잠복된 채로 있고 글로벌 금융시장에는 불안 심리가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 동안 각국이 경쟁적으로 벌여온 금융 긴축과 이번 은행 파탄 사태가 겹쳐 경기 둔화 및 은행 부실채권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경우에는 시장 혼란이 재연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제반 사정을 감안하면, 당분간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을 예의 주시해야 할 것으 물론이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미 은행 시스템에 등장할 다음 위협 요인으로 ‘상업용 부동산 부실화’ 가능성을 꼽고 있어, 이 점을 각별히 유념해야 할 일이다. 특히, 그렇지 않아도 이미 곤경에 처해 있는 우리나라 부동산 분야 실상을 감안하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런 시점에, 다소 이른 감은 있으나, 사태의 전말을 분석한 견해들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어, 우리 금융 당국은 국내 경제 및 시장에 미칠 파장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긴히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美 재무부, 연준, FDIC의 신속한 공조 대응 불구, 餘震은 계속 중
지난 10일, 미국 첨단기술의 산실 실리콘 밸리에서 기술 스타트업 기업들을 중점적으로 지원해 온 SVB가 ‘뱅크 런(Bank Run)’ 사태에 직면해 파탄한 데 이어 12일에는 Signature Bank가 자진 청산했고, 16일에는 First Republic Bank가 역시 뱅크 런 사태로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 옐런(Janet Yellen) 재무장관이 서둘러 예금 전액 보호를 확약했고, 이례적으로 JP Morgan & Chase 등 11개 대형은행들이 나서서 자금 예치 방식으로 First Republic Bank에 300억달러의 자금을 지원했다.
한편, 미 연준을 주축으로 ECB, 일본, 캐나다, 영국, 스위스 등 6개국 중앙은행들이 20일 부로 유효한 ‘통화스왑’ 계약을 체결하고, 만일의 경우에 자국 기업, 가계 등에 늘어날 달러화 자금 수요 증가에 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각국 중앙은행들은 상호 연계하면서 달러화 시장에 대한 공개시장조작(操作)을 현행 1주일 단위에서 앞으로는 1일 단위로 바꾸어 시행하기로 했다. 위기에 대응하는 글로벌 협조 측면에서 2008년 리먼(Lehman) 사태 당시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각국 정부, 중앙은행 및 금융계가 긴밀하게 연계하며 매우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으나, 일련의 과정에서 치르는 ‘구제 비용(rescue cost)’은 이미 상당한 규모에 이르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의 직접 지원 규모가 이미 2,000억달러에 달하고 있고, 美 FDIC 예금 보호 한도 초과 예금을 포함한 지급 보장 금액도 1,400억달러에 이른다. 연준이 은행들에 지원한 자금 규모는 이미 1,530억달러에 달해,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당시의 지원 규모인 1,120억달러 수준을 훨씬 상회한다.
일단 시장 패닉은 모면한 것으로 보이나 불안 요인은 여전히 내연하고 있다. 미국 대형은행들의 구제 여력에 한계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고, 스위스 CS를 인수한 UBS가 기대한 만큼 효율적으로 경영할 수 있을지 회의적 시각도 있다. JP Morgan 페롤리(Feroli) 이코노미스트는 “지금까지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으나 잔이 반 밖에 차지 않았다는 시각에서는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 이라고 평했다.
한편, 옐런 미 재무장관은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서 ‘은행들이 높은 압력에 처하면 융자 태도가 소극적으로 될 수밖에 없고, 시중에 자금 조달은 어려워지고 비용도 상승할 것이고, 이런 상황은 경제에 심각한 하방(下方)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증언했다. Goldman Sachs는 은행 부문 긴장 고조로 미 경제가 향후 12개월 내에 침체(recession)에 빠질 가능성이 사태 발생 이전의 25%에서 지금은 35%로 상승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중소은행들의 유동성 불안이 조속히 불식되지 못하면 결국 실물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 “이번 은행 연쇄 파탄은 ‘초(超)금융 완화’에 대해 치러야 할 대가”
SVB가 지급 불능에 빠진 지난 10일 이후 미국 중소은행들에 예금 인출은 꾸준히 가속되고 있다. 연준이 지난 24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9일~15일 1 주일 동안 예금 유출액은 1,200억달러에 달해 사상 최대 규모로 알려진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은행 예금 유출 규모보다도 훨씬 큰 예금 유출 기록이고, 총 예금 잔액 대비 유출 예금 비율도 1985년 있었던 저축조합(S&L) 사태(-10.1%) 및 2007년 부동산 버블 붕괴 사태(-3.1%)에 이어 높은 유출 비율(-2.2%)을 기록하고 있다. (NRI)
미국의 기업 및 부유층 예금주들은 중소은행들의 신용이 불안해지자 보다 안전한 대형은행이나 다른 유형의 고수익 투자신탁 상품 MMF(Money Market Fund) 등으로 옮기고 있다. 같은 기간 대형은행들 예금 잔액은 전주 대비 666억달러(0.6%) 증가했고 MMF 잔액은 22일 기준으로 직전 2주일 동안 2300억달러 이상(약 5%)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중소은행들을 중심으로 유동성 불안은 여전히 고조되는 상황이고, 해당 은행들은 부족 자금의 보전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옐런 재무장관은 23일에도 재차 은행 예금 보호를 위해 필요할 경우, 더 이상의 조치도 취할 용의가 있다며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진력하고 있으나, 중소은행들의 예금 이탈 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연준이 SVB 사태 직후 제공한 긴급융자한도(BTFP) 이용액은 22일 현재 536억달러로 지난 15일 시점 대비 4.5배나 늘었다. 통상 연준 대출 한도도 리먼 사태 당시를 넘어선 페이스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지방은행의 주요 자금원이자 ‘제2의 최종대출자’로 불리는 연방주택대출은행(FHLB)의 융자 잔액이 최근 1조1,000억달러를 상회, 이미 리먼 사태 수준을 넘어섰다.
이런 가운데, 세계적 자산관리사 BlackRock의 핑크(Larry Fink) CEO는 최근 고객들에 보낸 메시지에서 이번에 SVB를 비롯한 중소은행들의 연쇄 파탄은 오랜 동안 지속해 온 금융 완화에 대해 치러야 할 대가(代價)이고 앞으로도 이런 신용 불안 도미노 현상은 지속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지금까지 금융 당국은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로 대응해 오고 있어 불안 확산을 저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현 사태의 향방은 예단을 불허한다며, 1980년대 S&L 사태는 10년 간 지속됐고 그 동안에 1000여개 은행들이 도산한 바 있다고 상기시켰다.
핑크 CEO는, Covid-19 사태 이후 장기간 지속돼 온 초(超)저금리 상황에서 일부 투자자들은 높은 수익률을 찾아 유동성이 떨어지는 금융 상품에 편중해 왔고, 특히 레버리지를 이용한 투자자들은 심각한 ‘유동성 미스매치(mismatch)’ 리스크에 직면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이런 지적은 비상장 주식, 비은행 융자 형태의 개인 신용(Private Credit), 부동산 관련 대안(代案) 투자 등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미 · 유럽의 은행발 글로벌 금융 불안은 이미 6년 전에 그린스펀(Greenspan) 전 연준 의장이 경종을 울렸던 ‘채권 시장 버블’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동안 지속된 금융 완화로 채권 가격이 상승하자, 연준이 적극 매입했던 미 국채 및 주택대출담보증권(MBS) 등 고정 물 자산 시장으로 은행 등 민간 부문의 자본이 대거 몰리면서 채권 시장에는 ‘버블’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이 금리 상승으로 급반전하자 채권 가격은 급락했고, 은행의 미실현 손실이 급증해서 시장 신뢰가 떨어져 일거에 예금 인출 사태로 몰렸다. 해당 은행들은 할 수 없이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매각하게 됐고, 채권 매각 손실은 눈덩이처럼 늘어나 신인도는 더욱 추락하고 급기야 은행 파탄의 원인이 된 것이다.
■ “SVB 파탄은 지극히 고전적 ‘뱅크 런’ 사태, 경영 리스크의 표출”
저명한 은행 전문지 ‘The Banker’ 맥나이트(Joy Macknight) 에디터는 ‘SVB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몰고 온 연쇄 파탄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을 ① SVB의 기술 스타트업 기업들에 편중된 ‘니치(niche)’ 고객 기반, ② Covid-19 기간 중에 대거 풀린 자금이 예금으로 유입되어 투자 붐 조성, ③ 최근 미 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 전환에 따라 과거 10여년 간 풍부했던 자금이 급격히 고갈, 등으로 요약한다.
이에 더해, 많은 전문가들이 SVB의 거버넌스 문제와 함께 ALM(자산/부채 종합관리)을 포함한 효율적인 리스크 관리 시스템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SVB는 연준이 금리 정책을 ‘인상’ 방향으로 급전환 함에 따라 벤처 캐피털 시장에 변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지난 1월까지도 리스크 관리 책임자(CRO)를 임명하지 않고 공석으로 두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은행들은 상시 합당한 리스크 노출 범위 측정 및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고 강조한다.
그는, SVB 영업 활동을 감독할 당국도 일정한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2008년 금융 위기 직후 미 의회는 은행들의 위험 노출을 제한하고, 보다 엄격한 자본 확충을 의무화하는 ‘Dodd-Frank Act’를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2018년 당시 트럼프 정권은 이 법의 적용 대상인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의 범위를 종전의 자산 규모 500억달러 이상에서 2,500억달러로 높여 완화하고, 자산 규모 1000억달러~2500억달러 은행들에 대해서는 건전성 평가(stress test) 시행 빈도를 연준이 재량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자산 규모 1,000억달러 미만인 대부분의 지방은행들은 아예 대상에서 제외했다. 한편, 금융 및 경제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요구되는 ‘Tier I 자본(납입자본금+이익유보금)’ 유지 한도도 하향 조정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SVB는 자산 규모가 2018년 말 570억달러에서 2021년 2,115억달러로 무려 3배나 급증하는 동안에도 연준의 집중 감독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주목할 점은, SVB 파탄 1년여 전에 이 은행이 고용했던 BlackRock 산하 컨설팅사가 SVB의 보유 채권 리스크 관리 평가 항목 11개 모두 유사 은행들의 평균에 미달하고, 그 중 10개 항목이 기준에 ‘상당히’ 미달한다고 경고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SVB는 보유 채권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와 별도로, 이번 SVB 파탄 사태는 기술 스타트업 업계에도 금융 서비스 접근과 관련해서 모종의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SVB는 지난 40여년 간 ‘혁신 경제’ 생태계에 핵심적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금융 지원이 필요한 스타트업 기업들에게는 통상적인 은행들은 이런 기업들을 지원할 기구로는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 대세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The Financial Times)는 CS 사태를 전하는 기사 모두에 “은행 경영이란 대량의, 복잡하고, 정교한 신뢰의 균형(Banking is a massive, complicated and delicate confidence trick)”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잘 작동하나 사람들이 신뢰를 잃는 순간 실제로 엄청난 붕락 현상을 가져온다고 경고한다.
왜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에 은행 파탄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인가? 시장에는 지금 이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08년 리먼 사태는 서브프라임 주택론을 기초 자산으로 한 구조화 상품 가격이 폭락하자 은행 손실이 늘어나 경영이 붕괴된 것이었다. 이처럼 당시에는 위기의 근원이 명확했고 시장이 불안을 갖게 된 대상은 이들 서브프라임 대출을 보유한 은행들에 국한됐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번에는 특정 상품이 진원지가 된 것이 아니라, 각국 중앙은행들이 急피치로 금리를 인상한 결과, 은행들이 보유한 채권 가격이 하락한 것이 발단이다. 여기에 파탄 은행들의 공통되는 특징으로 건전성 리스크 관리의 실패가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 “연준, 물가 안정이냐? 금융 안정이냐? 고심 중, 경착륙 어려움도”
미 연준은 지난 1년여에 걸쳐 유례가 없이 높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정책금리를 4.75%나 인상하면서 예금 유출 및 채권 운용 손실 확대 등, 금융 시스템에 부작용을 낳았고, 결국 일부 은행들이 파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결과에 대해 연준 파월 의장은 “(파탄한 은행들이) 유동성 및 금리 변동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이지 은행 시스템의 취약성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예금 유출 가능성이 큰 중소은행들에 대한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어, 연준은 인플레이션 억제와 금융 안정 간 균형을 찾기 위해 진력하는 중이다.
따라서, 미 연준이 현재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인플레이션 억제에 집중해온 끝에, 아제 금융 시스템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고, 자칫 경기 숨통을 끊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높아진 것이다. 실제로 최근 경기 지표들은 점차 경제의 경(硬)착륙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을 반영한다. 상무부가 발표한 2월 소매 실적도 2개월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기업 경황감을 반영하는 ISM 제조업 경기지수도 4개월 연속 호/불황 판단의 기준인 50선을 하회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은행 연쇄 파탄 사태를 계기로 은행들이 융자 태도를 보다 신중한 방향으로 바꾸면 개인 소비 및 기업 투자는 더욱 위축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실제로 금융 순환도 둔화되고 있어 금융 긴축 효과도 증폭되고 있다. 한 전문기관 예측 결과는 이번 은행 부문 충격으로 금년 후반 미국 GDP 성장률이 0.5%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은행 구제의 어려움을 스위스 USB가 정부 중재로 CS를 구제 합병하는 딜이 성사된 막후 사정을 들어 소개하고 있다. 지난 주 CS가 예금 인출 사태에 직면, 스위스 정부가 긴급히 540억달러를 투입했으나 시장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고, 이대로 다음 영업일을 맞을 수 없어, 주말 이틀 동안에 정부 중재로 USB가 마지못해 인수했던 것이다. USB는 일부 자산에 대한 정부 보증을 얻으면서 추정 가격의 7%에 불과한 가격으로 라이벌 CS를 인수했으나, 앞으로 치러야 할 잠재적 손실은 산적해 있는 형편이다. UBS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에 빈사 상태에 빠졌던 적이 있어 또 유사한 위험을 부담할 의지가 낮았다.
UBS는 2022년 말 기준으로 이번에 인수한 CS 자산을 합쳐 총자산이 1.7조달러 규모로 늘어나지만 은행의 자본 증강 요구 규모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는 ‘리스크 가중 자산(Risk-Weighted Assets)’은 6,000억달러 전후로 78%나 증가했다. 여기에, 앞으로 부실자산을 압축 정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 이런 파탄 은행 처리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美 연준은 지금 그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온 기록적인 인플레이션 억제를 우선할 것이냐? 아니면,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금융 불안의 진정을 중시할 것이냐, 하는 어느 것도 놓칠 수 없고 일견 상충하는 두 가지 과제를 두고 지극한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경기 둔화를 각오하고 인플레이션 억제를 지속할 것인지 결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 “은행 규제 강화 천명; 트럼프 정권이 완화한 규제 再강화가 초점”
이번 SVB발 은행 연쇄 파탄 사태를 계기로 미 연준 등 감독 기구 및 연방 의회는 은행 업무에 대한 규제 강화를 선언하고 나서고 있어 향후 행보에 지대한 관심이 쏠린다. 연준 은행감독 담당 바(Michael Barr) 부의장은 28일 열린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서 연준의 규제 및 감독 실패를 온전히 설명하고 철저하게 개선할 것을 약속했다. 바 부의장은 “SVB 파탄은 은행 경영진이 금리 및 유동성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연준은 사전에 리스크 관리 철저를 촉구했음에도 은행은 방만한 경영으로 실패했다고 진단하고, 이런 경영 실패는 교과서적 사례” 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일찌감치 금융 감독 기구들에 은행 경영진이 과도한 리스크를 부담해서 파탄된 경우에는 손실 보전을 위해 지급된 보수를 회수하는 등 경영 책임을 엄정하게 추구할 것을 지시했다.
바 부의장은 “보다 엄격한 관리 기준을 적용했다면 SVB가 파탄에 이르게 한 리스크를 적절하게 관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이번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살려 신중하고 철저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아울러, 은행 규제 및 감독 강화의 개략적인 방향성을 제시했다; ① 문제점이 지적된 은행에 대한 경고를 강화하는 수단 확보, ② 자산 1,000억달러 이상 중소은행들에 대한 자본 및 유동성 규제 강화, ③ 규모가 큰 은행들이 파탄한 경우에 손실 흡수 능력을 강화하는 자본 규제, ④ 복수의 전제를 둔 ‘건전성 심사(stress test)’ 강화 등이다. 주로 2018년 트럼프 정권 시절에 자산 규모 1,000억~2500억달러 중소은행들에 대해 대폭 완화했던 자기자본 및 유동성에 대한 건전성 심사 빈도를 강화하거나, 현금화가 쉬운 자산을 일정 비율 유지하게 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처럼 지금 미국 은행계에는 트럼프 정권 시절에 중견 이하 은행들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을 다시 수정할 것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은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Dodd-Frank Act(금융규제개혁법)’을 제정하고 은행들에 자기자본 및 유동성 관리에 관해서 엄격한 기준이 부과되고 있었으나, 트럼프 정권 시절인 2018년에 중소은행 단체들이 로비를 벌여, 엄격한 규제가 적용되는 은행 자산 규모를 2,500억달러 이상으로 인상(규제 완화)했던 것이다. SVB도 당시의 규제 완화 조치에 따라 건전성 심사 의무가 완화됐고, 유동성 자산 유지 의무도 제외됐던 것이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연준의 은행 감독 업무 수행이 은행들의 급성장 및 취약성에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도 지적됐다. 공화당 스코트(Tim Scott) 상원의원은 “FRB는 1년여 전부터 SVB의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낮잠을 잤다”고 비난했다. 연준은 5월 1일 은행 규제 및 감독 제도 개선 방안을 공표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FDIC 보험 대상 외 예금이 많은 것도 SVB 등 은행들을 유동성 위기로 몰고 간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총 예금 중 보험 대상 외 예금 비중이 이번 파탄 사태를 불러온 Signature Bank(90%), SVB(86%), First Republic(68%) 등이 월등히 높은 반면, 최대 은행인 JP Morgan & Chase(43%)은 훨씬 낮은 수준인 사실이 이런 요인이 유동성 위기를 불러왔다는 점을 반증한다.
■ 美 지방은행들을 위협할 다음 차례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화’
WSJ, Financial Times, Bloomberg 등, 세계 주요 경제 전문 미디어들은 일찌감치, 가까스로 진정 국면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SVB발 은행 연쇄 파탄 충격에 이어서 미 은행 시스템에 위협이 될 다음 차례는 ‘상업용 부동산(CRE; Commercial Real Estate)’ 관련 대출 부실화 가능성이라는 경고성 전망을 내놓고 있다. 최근 각국이 전례 없이 급격한 페이스로 금리를 인상하자 경기가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은행 쇼크로 은행들의 융자 태도마저 움츠러들면 이미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CRE 관련 대출 자산의 건전성에 타격을 줄 수 있고, 그러면, CRE 대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국 중소은행들에게는 제2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WSJ은 최근 2023년 중 만기가 돌아오는 기록적인 규모의 상업용 모기지 대출이 SVB 파탄 사태로 이미 타격을 입은 소규모 지방은행들의 건전성을 시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JP Morgan 집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 CRE 대출 시장은 5.6조달러 규모이고, 이 가운데 70% 이상을 중소 지방은행들이 차지하고 있다. 가장 우려가 커지는 부문은 상업용 사무실 빌딩 관련 대출이라고 알려진다. 이들 부동산 가치는 Covid-19 사태를 겪으며 이미 공실이 증가했고 가치도 하락하고 있다. 여기에 금리 급등으로 타격을 받는 입주자들의 수요가 더욱 줄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연준도 최근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연준이 은행들 앞으로 자금을 융자할 경우, 은행들이 보유한 채권(債券)을 액면 금액대로 인정하기로 하는 등, 더 이상 ‘뱅크 런’ 사태를 막기 위해 유연한 방침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은행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부동산 대출을 매각하면 손실이 늘고, 보유 대출 자산을 再분류하게 되면 더욱 해당 은행들의 재무 상황은 큰 곤경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인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도 이와 유사한 지적을 하고 있다. 동 지는 미국 은행들의 파탄 사태를 가져온 가장 큰 요인인 예금 인출 사태 및 채권 리스크 관리 부실에 이어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또 하나의 잠재적 리스크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1년여 동안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차입 비용이 증가하자 부동산 가격은 하락했고, 이제 더 이상 대출이 위축되면 이미 재앙적인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최근 들어 공실(空室)율이 급증하고 있는 미국 서부 및 남부 지역 도시들의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Houston, Dallas, Chicago, LA, San Francisco 등 도시들의 공실율은 무려 20~30%에 달하는 실정이다. 최근 연준 파월 의장도 CRE 대출의 심각성에 대한 질문에 “그런 사정은 알고 있었으나 이처럼 심각한 상황인지는 미쳐 생각치 못했다” 고 언급한 바가 있다.
블룸버그 통신도 최근 SVB 파탄 사태가 경기 침체를 재촉하는 경우에는 조만간 더 많은 부동산 관련 디폴트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동 통신은 연준 통계를 인용해서 Covid-19 사태를 거치면서 2021년 중반부터 미국 은행들의 부동산 관련 대출(리스 포함)이 16% 증가, 대출 잔액이 총 5.31조달러에 달했다고 전했다. 이런 과정에서 누구도 연준이 금리를 이처럼 급격하게 인상할 줄은 몰랐고, 지금은 차환(refinance) 금리가 7% 이상에 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널리 인용되는 CRE 가격 지표인 NCREF 지수가 지난 사분기에 3.5% 하락했고, 이는 2009년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현 CRE 시장 상황이 80, 90년대 S&L 사태와 같은 위기를 불러올지 확실하게 예상하긴 이르나, 과거 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건강한 은행 시스템 없이 건강한 경제를 가질 수 없다는 것’ 이라고 경고했다.
■ “규제 강화로 경기 둔화 시, 은행들은 자승자박의 곤경 맞을 수도”
이번 미국 은행 연쇄 파탄 사태에 대해 연준, FDIC 등 금융 당국의 전광석화와 같이 민첩한 대응 페이스에는 전세계가 놀라는 모습이다. 스위스 정부의 대응도 마찬가지다. 옐런 재무장관이 일찌감치 해당 은행들의 보험 대상 외 예금을 포함한 전액 지급을 보장하겠다고 천명한 것은 일단 시장 동요를 잠재우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스위스 정부가 UBS에 대규모 자금 지원을 제공하면서 경쟁 은행인 Credit Suisse를 구제 합병하도록 중재하는 담대한 의사결정도 신속함의 극치였다.
그러나, 이런 성공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독 당국이 규제 강화에 나서고 이에 따라 은행들의 규제 비용이 증가하는 한편, 은행들이 안정 및 신뢰 회복을 중시해서 융자 태도를 신중 모드로 전환하는 경우에는 이것이 기업 및 가계의 자금 조달을 제약해서 경제가 둔화되고, CRE 관련 대출을 포함한 은행 자산의 건전성을 해치고 마는 이른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가 생길 여지가 다분하다. 만일, 실제로 이런 사이클로 들어가면 은행들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얽어 매는 진퇴양난 지경에 이르게 되고 결국 제2의 은행 불안이 재현될 우려가 큰 것이다. 은행들의 융자 업무가 위축되면, 융자를 원하는 잠재 고객들은 규제 대상 외인 펀드 등 이른바 ‘그림자 은행(shadow banking)’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은 충분히 예상된다. 이는 또 다른 차원의 리스크를 높이는 것이어서 우려를 키우고 있다.
WSJ이 지적하는 것처럼, 정부 당국, 심지어 동업자인 대형은행들까지 나서서 어려움에 처한 몇 개 중소은행들이 겪고 잇는 당장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더 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못된다는 사실에 각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실 어려움에 처한 은행을 떠나 옮겨온 예금을 원래 은행에 다시 옮겨 놓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두 은행이면 몰라도 많은 은행들이 같은 어려움에 처하면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데는 곧 한계가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WSJ은 지금 정부 당국이 가장 우선할 일은, 비록 이것이 끝은 아니라고 해도, 은행 파탄 연쇄의 구조적 병폐를 총력을 기울여 중단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비록 이번 미국의 은행 위기가 광범한 지역 및 국가들로 전염되어 총체적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대세라고 해도, 각국의 금융 정세에 따라 일정 정도의 신용 경색 우려는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각국 금융 당국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국의 은행 시스템에 미칠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충격을 솔직하게 상정해서 시스템 상 취약 부분을 점검하고 리스크 수준을 면밀히 판단해 보는 것이 이 시점에서 대단히 시의적절할 것이다.
■ 은행 시스템 상 취약점에 대비한 대응 시나리오 마련을 서둘러야
최근 한 금융 시장 전문가(Nikkei 다카이(高井) 편집위원)는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은행 파탄 사태는 지극히 고전적인 ‘뱅크 런’ 사례이고 이들 사태의 파장이 글로벌 범위로 확산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지금은 2008년 금융 위기 당시와 달리 각국이 규제를 강화해서 시스템적 리스크가 월등히 낮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향후 주목해야 할 리스크 요인은 첫째; 일국의 정부 당국의 ‘정치적 자산’ 부족 및 대응 정책 실패로 위기가 증폭될 가능성, 둘째; ‘그림자 은행’ 등 은행 시스템 외 요인들이 예기치 않은 충격을 가져올 가능성 등을 들고 있다.
이런 전제 하에, 앞서 소개한 미국 은행들에 닥칠 다음 위협으로 CRE 부문 부실화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는 점은 우리 금융 감독 당국에 중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만큼 우리 금융 시스템에 내재한 취약 요인도 부동산 관련 사안들임을 각별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저축은행 및 지방은행들이 개인대출을 포함해서 부동산 PF 자산을 적지 않게 보유하고 있는 현실은 지극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개인 차주들의 부동산 관련 대출은 신용 리스크가 취약하나마 현실적으로 상환 불능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아 위험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은행의 기본적인 자산/부채 관리 관점에서는 전형적인 ‘미스매치(mismatch)’를 지니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점검한 ‘2023년 3월 금융안정 상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경영 건전성은 대체로 ‘양호’하다면서도 부동산 PF 부실 가능성을 금융 안정을 해칠 수 있는 한 요인으로 꼽았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강원도 레고 랜드 사례에서 보았듯이 금융 시스템 외부로부터 오는 충격이나 무책임한 정책 실패가 엄청난 타격을 불러올 가능성을 충분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아직은 종전 수준 이상의 리스크가 눈에 띄게 현재화될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해도, 서둘러 업권별, 지역별 금융 기업들의 예금 등 부채 구조 및 자산 운용 실태를 개별적으로, 그리고 상시적으로 감시할 시스템을 속히 구축할 것이 필요한 시점으로 본다.
특히, 첨예한 리스크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는 부동산 관련 대출 자산의 리스크 분산과 함께 대손충당금 적립 확대 등을 통한 우발 상황에 대비할 안전판 구축, 일시적으로 증가한 이익금의 내부 유보 확대 및 자본 확충 등, 불시에 닥쳐올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대비한 안전망 강화에 온 역량을 쏟아야 할 시기임에 틀림없다. 아울러, 개별 금융기업의 리스크 관리 및 운영에 대한 내부 감사 시스템에 공통으로 적용될 수 있을 기본적인 자산/부채 관리(ALM) 모델을 제시하는 한편, 정기적인 건전성 시험(stress test) 빈도를 늘리도록 강제하는 것도 효율적일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가상화폐 시장에 철퇴를 내려야 할 시기가 됐다는 점이다. 이는 첨단기술을 적용해서 금융의 건전한 발전 가능성을 모험적으로 시험하는 핀테크 스타트업 기업들과도 전혀 다른 방향이다. 실은, 이들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이미 우리 금융 시스템의 가장 취약한 부분과 직간접으로 연계되어 금융시장을 왜곡하거나 정상 경제 활동에 장애 요인으로 등장해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이들 가상화폐란 우리 금융 산업 발전에 하등 기여하는 바가 없는 단순 도박장화하고 있고, 온갖 불법, 부당, 불투명 거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만시지탄이나 우리 정부는 차제에 우리 경제 사회 전반에 백해(百害)는 있으나 일익(一益)도 없는 고질적 존재인 이 가상화폐 영역을 이제라도 단호하게 도려내는 담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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