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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이 보여 주는 지도자‧충신‧간신의 귀감들 <85> 사봉관과 투쟁한 이조은과 무평일 (AD708)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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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25년03월14일 16시30분
- 최종수정 2024년09월15일 17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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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당시 사봉관은 모두 양성(중서성 상서성)을 거치지 않고 임명되어 时斜封官皆不由两省而授
양성에서는 그들을 잡아 가둘 수가 없었고 两省莫敢执奏,
즉시로 관사 상사에게 보고할 뿐이었다.
即宣示所司。
[(*) 사봉관이란 봉투를 비스듬히 봉했다고 해서 생긴 말. 주로 외척, 권신, 총신 등 황제와 가까운 사람에게 시험없이 내려 준 관직] |
이부원외랑 이조은은 전후 천 사백명을 가두었는데 吏部员外郎李朝隐前后执破一千四百馀人
곳곳에서 원망과 비방이 넘쳐났지만 怨谤纷然,
이조은은 하나도 개의치 않았다. 朝隐一无所顾。主
겨울 10월 을유일 冬,十月,己酉,
수문관직학사 직거사인 무평일도 修文馆直学士、直居舍人 武平一
표문을 올려서 외척 권신 총신을 억제하도록 해 달라고 청원했다. 上表请抑损外戚权宠
위씨(중종 부인)를 배척하자는 말은 감히 못하고 不敢斥言韦氏,
다만 그 가문을 억제하자고 요청했다. 但请抑损己家。
황제는 더욱 (사봉관)제도를 강화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上优制不许。
무평일 이름은 견인데 자를 가지고 행세했다. 平一名甄,以字行,
무재덕의 아들이다. 载德之子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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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25년03월14일 16시30분
- 최종수정 2024년09월15일 17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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