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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 논란의 세 가지 교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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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11월22일 13시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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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동석
  • 인천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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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 1인당 2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내년 3월 대통령 선거 직전에 지급하겠다는 이재명 후보의 계획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10월 29일 국회에서 추가적 재난지원금의 필요성을 언급한 후 20일 만에 철회한 것이다. 대선 이전에 지급하려면 예산심의 절차, 야당의 반대, 정부의 입장 등 여러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재난지원금에 대한 고집은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신속한 지원의 대의를 훼손할 수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하였다. 매 시각 거칠고 격한 공방이 오가는 대선판에서 이러한 철회가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치평론가들이 분석하겠지만, 그 정책적 의미를 분석하는 것은 경제학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20일 만에 끝난 재난지원금 논란이 갖는 재정정책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과연 무엇이 여당 대통령 후보의 의지를 변화시켰는가? 그것은 당연히 정치적 득실의 계산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정치평론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왜 있었는지 정치적 배경을 주목하겠지만,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논란이 정책적으로 어떤 교훈을 주는지 생각할 것이다. 

 

그간 어떠한 거리낌도 없이 확장재정을 강력 지지하며 기본소득을 자신의 정책브랜드로 앞세웠던 이재명 후보의 정치적 계산은 왜 변화한 것인가? 우리는 이 의문의 분석을 통해 세 가지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로부터 정책적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첫째, 국가재정법 제90조가 갖는 나름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조항은 예산집행 과정에서 나타난 잉여금의 처분 용도를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 지방교부세 정산과 국채상환을 우선하고 남는 잔액을 추가경정예산으로 사용하거나 다음 연도 예산에 이입하여야 한다. 연말까지 발생할 약 19조원의 초과세수에 대해 국가재정법 제90조를 원칙대로 적용하고 나면 남는 잔액이 많지 않다.

 만약 지방교부세 정산과 국채상환을 하지 않는다면 그 잉여금을 재원으로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 그러나 1월에 회계연도가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다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

 

이러한 난관 때문에 여당은 재난지원금 재원 10조원을 내년도 예산에 반영하기 위해 올해 11∼12월에 걷힐 세금을 내년도 세입으로 계상하는 ‘납부유예’ 방안을 생각하였다. 납세자가 ‘심한 손실을 입은 경우’ 국세청이 납부유예를 인정할 수 있다는 국세징수법 제13조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납부유예 10조원은 지나치게 규모가 크고 또 기획재정부가 작성한 내년도 세입예산안에 이미 납세유예가 4조 5,000억원 반영되어 있다.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한지 불과 3개월 만에 세수 예산안을 수정할 명분은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측은 추가경정예산과 납부유예 중 어느 것이 상대적으로 더 명분이 있는지 고민했을 것이다. 국가재정법 제90조의 지방교부세 정산과 국채상환은 강제규정이 아니고 ‘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이기에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1월에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할 수 있다. 그러나 대선의 열기가 한창 끓어오른 1월에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정치중립적 대선 관리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당은 납부유예를 선택하는 것이 그나마 명분이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납부유예를 통해 내년도 세입예산을 10조원 증액시키고 세출예산에 재난지원금 지급을 반영한 2022년도 예산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면 내년초의 재난지원금 지급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납부유예를 위해 이재명 후보측은 기획재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기획재정부의 약점을 공격하기 위해 과도한 초과세수를 초래한 세수예측의 실패에 대해 국정조사를 운운하며 강력하게 비난하였다. 또한 기획재정부의 예산기능을 분리하는 정부조직 개편이 필요하다고 으름장도 놓았다. 

 

그런데 11월 18일 이재명 후보는 갑자기 재난지원금 지급을 철회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어쩌면 세입예산을 무리하게 증가시켜야 한다는 예산심의의 문제와 그에 따른 야당의 반대에서 비롯되는 부담들을 문재인 정부에 떠넘긴다는 고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세출예산과 달리 세입예산에 대해서는 국회의 예산심의 권한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헌법 제57조에서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영국이 1706년에 채택한 의회의 규칙으로서, 제헌헌법 제정 당시 유진오 박사가 영국의 재정운용이 프랑스보다 더 우월했던 이유가 이 조항에 있었음을 발견하고 미국과 일본에도 없는 제도를 우리나라에 정착시켰던 것이다. 

 

이 조항에 대해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많은 불만들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 규정이 예산의 정치적 운용을 견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헌법 제57조의 국회 예산심의 권한의 제한은 세출예산에 대해서만 적용될 뿐 세입예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여당이 납부유예를 통해 세입예산을 증액시키려 했던 것은 국회의 세입예산 심의에 아무런 제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헌법 제57조가 세입예산에도 적용되어 국회의 세입예산 증액에 대해 기획재정부의 동의가 필요했더라면 기획재정부는 매우 난처한 입장에 빠졌을 것이다. 3개월 만에 세입예산 변경을 동의해야 할 합리적 이유를 공무원들이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당 대표가 ‘공무원 재직 중 범죄는 중범죄’라고 엄포까지 놓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셋째, 우리 국민들이 손실을 입은 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기본소득이라는 권리보다 더 선호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재명 후보는 지금껏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지급의 기본소득이 모든 국민의 당연한 권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보다 특정 계층의 손실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로서, 어쩌면 우리 국민들이 기본소득이라는 ‘보편적 지급’보다 선별적 지원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였기 때문에 이재명 후보의 정치적 계산이 변했을지 모른다. 

 

예산은 한정된 재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기에 권리를 추구하는 과정도 이념을 추구하는 수단도 아니며 오직 능률과 실질을 추구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한정된 재원을 모든 국민들에게 나누어주는 재난지원금보다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더 큰 효과를 가진다. 누구나 처할 수 있는 위험을 구제하는 일, 즉 모두에 대한 ‘보편적 보장’은 모두에 대한 ‘보편적 지급’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재난지원금 논란에서 확인한 이 세 가지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정책적 교훈을 주고 있다. 

첫째, 국가재정법 규정이 정치적인 재정운용을 제한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그 적용은 보다 더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

둘째, 세출예산에 대한 헌법상의 제한과 마찬가지로 세입예산에 대한 국회 심의권한도 상당한 제한을 받아야 한다. 

셋째, 예산은 총량이라는 제약 하에서 최대의 효과를 찾아내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정치권에서 보다 더 명확하게 자리잡아야 한다. 

 

이 세 가지 교훈은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재정운용을 반드시 견제해야 한다는 것으로 압축 표현된다. 근대적인 재정민주주의는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원리를 통해 발전하였지만, 이제는 ‘정치이익을 위한 재정운용은 없다’는 원리를 우리의 신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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