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격차와 갈등, 새로운 사회제도의 필요성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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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이 발간하는 ‘월간 SW중심사회10월호’(2021.10.12.)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 이명호 (사)미래학회 부회장
격화되는 디지털 격차와 갈등
디지털 격차와 갈등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한 정보 습득과 활용의 격차라는 디지털 격차는 사회 활동 기회와 경제적 이득의 격차로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 장비 구비와 활용 능력의 차이는 소득과 경쟁력, 경제력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던 초기에 디지털은 전문가들의 영역에 머물렀다. 하지만 인터넷이 대중적인 정보매체로 자리 잡고 스마트폰이 일반화되어 일상생활에서까지 디지털이 활용되면서, 현재 디지털은 기술적 편리함만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대립, 사회적 갈등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가 야기한 사회적 거리두기, 비대면에 대한 강제는 디지털 활용과 디지털 전환을 가속시켰다. 디지털 활용은 선택의 수준을 넘어 필수의 영역으로 전환되었다. 기존에는 아날로그가 기본, 디지털이 옵션이었는데, 이제는 디지털이 기본, 아날로그가 옵션이 되었다. 건물과 상점에 들어갈 때 QR코드 체크인은 기본 절차가 되었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미처 준비하고 역량을 갖추기도 전에 강제된 디지털 격차의 일면을 보여준다.
디지털을 사용한 새로운 사업 방식의 등장은 관련 업종의 생계가 걸린 경제적 갈등, 신산업과 기존 산업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유경제 모델과 혁신은 기술적 진보와 규제 개혁의 문제에서 신산업과 기존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일자리, 생존권 대립으로 확대되었다. 플랫폼 노동으로 열악해지는 노동 조건, 거대 플랫폼의 독점적 경제 지배력, 인공지능과 자동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술 발전이 일자리,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보편적 기본소득과 소득 기반의 전 국민 고용보험(또는 소득보험)이라는 새로운 사회보장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이 사회 전반에 걸쳐 이전과 다른 질서를 수립하고 사회를 재편하려 하고 있다. 이에 따른 사회적 대립과 갈등 또한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에 의해 야기되는 사회적 갈등의 특징은 어떻게 바뀌고 있고, 사회구성원과 이해관계자들의 대립을 어떻게 발전적인 동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디지털의 긍정적 동력과 이해관계의 충돌이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 속에서 어떻게 증폭 또는 굴절되는지를 살펴보면서, 디지털 갈등을 사회혁신의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초기 정보사회의 디지털 사회갈등: 의견 표출의 대립
인터넷의 등장은 종이 매체(신문, 잡지)와 전파 매체(라디오, TV)의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사회적 갈등을 표출시켰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던 정보화 초기의 디지털 갈등은 주로 디지털이 야기한 갈등이라기보다는 사람들과 집단 및 세대 간의 디지털 미디어 및 정보 활용 능력의 격차와 불평등이 주를 이루었다. 정보 격차 자체가 갈등의 요인이 된 것은 아니었고, 기존의 사회 갈등, 주로 의견 차이와 여론을 더 표면화시키고 확대시키는 능력의 차이가 문제를 발생시켰다.
초기에는 정보 접근과 활용 능력이 뛰어난 젊은 층이 인터넷이라는 공론의 장에서 여론을 주도하고 사회 전체의 여론에 영향을 미쳐 여론을 과대 대표하는 문제가 이슈화되었다. 2002년 대통령선거는 인터넷 여론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힘을 보여준 선거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한국 정치사회의 각 집단과 진영에서는 ‘아고라(다음의 토론방에서 시작되어 정치적 논쟁이 심화되자 15년 만에 서비스 종료)’와 ‘댓글’이라는 인터넷 여론장을 장악하려는 갈등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모바일과 SNS를 통해 개개인의 의견이 바로 모두에게 공개되고 확산될 수 있게 됨으로써, 여론의 신속한 형성이라는 긍정적인 측면과 동시에, 정제되지 않은 표현, 불확실한 정보에 바탕을 둔 주장이 소모적인 논쟁과 사회적 갈등을 확대시키고 있다. 다양한 의견을 접하면서 의사 판단의 질, 상호 간의 이해가 높아지기는커녕, 집단의 영향을 받아 특정 의견만을 신뢰하는 확증편향, 에코 챔버(Echo Chamber)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개인이 선호하는 정보를 더 노출시키는 포털 등의 큐레이션 기능 또한 확증편향을 강화시키고 있다.
물론 사회진영과 집단, 세대가 서로 다른 정서의 의견을 공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사회적인 긴장을 유발하면서 사회가 정체되지 않도록 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견의 대립은 ‘가짜 뉴스(Fake News)’라고 상대방을 공격하듯이 사실의 혼돈까지 가져온다는 측면에서 우려되는 상황이다.
물론 이와 같은 집단적 대립은 정치 집단이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대중을 동원하고, 대중도 쉽게 정치적 의견을 표출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언론이 사실에 기반한 균형적인 시각에서 정보를 다루지 않고, 진영논리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디지털 갈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물론 그 밑바닥에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기득권 구조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디어 측면에서의 디지털은, 기존부터 존재하던 사회 내 다양한 집단의 의견 대립과 갈등을 빠르게 표면화하고 확산시키는 새로운 미디어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가공, 변조, 조작할 수 있다는 디지털 미디어의 특성은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 내고 확산시키고 있다.
개인을 둘러싼 디지털 갈등의 심화: 프라이버시와 자산의 침해
디지털 갈등의 두 번째 이슈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개인 침해 문제이다. 개인정보 유출, 프라이버시 침해에서부터 해킹, 자금 탈취, 가짜 능욕 영상(Deep Fake), 개인 감시 등 개인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디지털 갈등과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디지털화된 개인의 자산(금융을 비롯하여 SNS 계정까지)에 대한 해킹은 더 심각하다. 누구나 전 세계 해커들이 노리는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지역과 국가라는 울타리조차 사라져 버린 디지털 세상 속에서 누구나 표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산이 코드로 기록되어 보관되는 세상에서 사이버 보안(Cyber Security)은 가장 중요한 사회안전의 영역이 되고 있다.
종이와 전파의 시대에는 유명인과 공인을 제외한 개인은 미디어 밖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생활공간 속의 개인에 대한 평판이나 소문은 그 물리적 생활공간을 벗어나기 어려웠으나, 이제 개인은 디지털 공간 속에 존재하고 있다. 개인의 모든 일상정보가 디지털화되어 순식간에 전파되고, 익명 속에 숨은 개인이 내뱉는 독설(악성 댓글)은 비수가 되어 또 다른 개인을 위협하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개인의 한 단면이 대중에 노출되어 평가되고, 맥락과 생활 속의 살아 있는 인간은 사라지고 코드화된 이미지가 한 개인을 규정한다.
심지어 누구나 쉽게 사실 같은 영상(사진, 동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 정교한 가짜 영상을 만들어 개인을 능욕하거나, 사실관계를 혼동시킬 수 있는 가짜 뉴스를 양산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점점 더 넘쳐나는 디지털 정보 속에서 사실과 가짜를 확인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다. 사실과 진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주장만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무기력해질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점점 더 사실과 진실의 파악을 디지털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이를테면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 이미지를 식별해 주고 있는 것이다. 구글, 디봇(Diffbot) 등은 인터넷상의 모든 정보의 사실관계를 정리해 주는 인공지능에 의한 지식 백과사전(Knowledge Graphs)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위키피디아와 같은 백과사전을 인공지능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검색보다 이러한 지식 그래프 서비스에 더 의존하게 될 때, 사실의 혼란(의도적인 사실의 왜곡 행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화된 세상, 개인과 공동체의 새로운 관계 정립 필요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점점 더 조밀해지는 디지털 공간 속에서 개인의 인권(프라이버시)과 공동체(사회, 국가)의 이익이 충돌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코드화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그대로 노출되는 상황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개인정보 활용’이 지닌 긴장관계의 균형점을 잡기 위한 사회적인 합의가 요구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한 개인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전 세계에 얼마나 빠르게 번져 나가고 사회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개개인의 위생에 대한자기결정권은 존중받기 어려워졌다. 사회 전체의 안전을 위해서는 ‘마스크 착용’, ‘격리’, ‘봉쇄’ 등의 조치로 개인의 권리를 제약할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인 물리적 조치에 대한 논란은 적었으나 새롭게 도입된 확진자의 이동 경로 및 접촉자 추적은 새로운 이슈를 제기했다.
한국은 SARS(급성호흡기증후군), 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겪으면서 초기에 전염병 확산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조치는 개별 감염자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고 확진자의 이동을 추적하는 방침을 정했다. 이것은 개인생활 수준까지 디지털화된 세상에서만 가능하고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코로나19 방역 상황에서 정부가 개발한 역학조사지원 시스템은 개인의 휴대전화 위치정보, 교통카드, 신용카드 사용, 해외여행 이력 등 28개 기관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취합하여 10분 이내에 확진자의 동선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종식되면 개인에 대한 정보가 삭제될 것이라고 하지만, 이미 우리는 개인의 행적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세상에 살고 있다.
유럽 국가에서 팬데믹 상황에서도 개인정보 추적 시스템의 도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개인과 국가 권력의 근본적인 긴장관계를 설명해 준다. 이는 디지털 기술이 독립된 개체로서의 개인의 인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전 시대에는 정부가 개인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인력과 자원이 필요했다. 표적 인물(정부나 정권에 의해 감시 대상이 된 인사)을 감시하기 위해서 불법적 또는 법의 테두리에서 추적과 도청 등이 이뤄졌다. 그리고 정권에 반대하는 인사들에 대한 보복적 조치라는 공포를 통하여 대중을 통제하고 억압했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의 행적이 디지털화된 데이터로 저장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개인의 행적이 투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개인정보를 어떻게 사회에 유익하게 사용하고, 악용하는 것을 막을 것인가가 중요한 지점이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유익한 개인의 프라이버시 제약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이다. 또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부당한 정권에 의해 악용되거나 자의적인 개인(해커, 네티즌 수사대에 의한 폭로, 디지털 교도소와 같은 사적 제재 등)에 의해 전 세계에 공개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이다. 연결된 개인이 제공하는 정보의 조합으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 네티즌 수사대는 집단지능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 경도된 인식에 기반한 개인의 타인에 대한 주장 및 행위는 개인의 인격 및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범죄가 될수 있다. 인터넷상에서 자의적인 린치를 가하는 ‘디지털 교도소’는 디지털 시대의 ‘마녀사냥’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개인이 던진 한마디와 정보는 사회에 걷잡을 수 없는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개인에 대한 더 높은 존중과 함께 인권보장과 시민의식이 요구된다.
자의적 또는 악의적인 개인에 대한 제재 행위는 정부의 법적인 조치로 가능하지만, 정부가 불법이나 자의적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제약하는 경우는 대응이 쉽지 않다. 인공지능 안면인식 기술의 도입을 둘러싼 논쟁은 이 지점에 있다. 중국 정부는 광범위하게 안면인식 기술을 도입하여 치안 유지에 활용하고 있다. 이는 국가와 사회의 안위라는 명분으로 정권 유지를 위해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디지털 기업의 임직원들은 정부 기관에 안면인식 기술을 판매하는 것에 대하여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디지털의 발단은 우리에게 더 발전된 민주의식과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즉 더 투명한 정부, 권력에 대한 시민의 감시를 요구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민주주의가 같이 가지 않을 경우 기술은 사회와 개인을 통제, 억압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에는 개인과 공동체는 물론 이들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개념, 가치관, 질서, 제도의 수립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디지털 갈등, 집단적 경제 갈등으로 전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시작된 디지털 기술은 정보의 중개에서 상거래의 중개라는 전자상거래 시대를 열었다. 1994년에 설립된 작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Amazon)은 애플(Apple)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시장가치가 높은 기업이 되었다. 아마존의 기업가치는 미국의 다른 유통업체 전체를 합친 기업가치보다 높다. 아마존이 진출한 사업에서 기존 경쟁자가 몰락하는 현상을 두고 ‘아마존화되다(Amazonized)’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듯이, 아마존은 1886년에 설립된 세계 최대 서점 체인인 반스앤노블스(Barnes&Noble), 장난감 체인점 토이저러스(Toysrus)를 파산에 이르게 하고, 많은 오프라인 유통점이 규모를 축소하는 등 경영난에 빠지게 했다. 코로나19는 온라인 쇼핑, 배달 서비스의 급증을 가져왔다. 일부 음식점은 빠르게 배달 서비스로 전환했지만, 많은 음식점은 매출의 급감으로 폐업 위기에 몰리고 있다.
산업 내 경쟁 또는 산업 간 경쟁은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산업과 시장을 혁신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빈번한 일이었다. 산업혁명 초기에 러다이트(Luddite) 운동과 같이 수공업 종사자들이 동력 기계를 대량생산하는 공장의 기계를 파괴하며 일자리 상실(실업)에 대항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방직업에서 시작된 산업화는 새로운 분야의 산업화로 확산되면서 일자리와 생산이 증가하고 대중의 소비 수준을 향상시키는 성과를 가져왔다. 문제는 오랜 시장의 관행과 질서가 존재하는 분야는 새로운 시장 진입자가 등장할 때 사업자 간의 경쟁뿐만이 아니라, 그 사업에 속한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생계의 위협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규제와 산업 갈등: 핀테크와 타다의 사례
현재 많은 산업 분야는 법에 의해 정비되고 시장이 활성화 및 정착된 경우가 많아, 이러한 질서는 새로운 시장 진입자에게 규제로 작용하게 된다. 금융업, 교통업, 숙박업 등에서 인허가 제도는 자격 요건을 두어 시장이 혼탁해지는 것을 막지만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선진국들은 시장이 먼저 형성되고 법 제도가 정비되면서 시장을 보호, 안정화하는 경로를 따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후발산업 국가에서는 없던(미약한) 시장을 형성하고 활성화 시키기 위해 법 제도를 먼저 정비하기 때문에, 그 법 제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기존 사업자를 보호하고 새로운 방식(비즈니스 모델)이나 기술을 가진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어렵게 만드는 규제로 작동하게 된다.
일례로 우리나라에서 핀테크(Fintech)라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금융업은 법 제도가 개정되고, 허가를 받기 전까지는 촘촘한 시장 규제에 막혀 시장 진입이 어려웠다. 하지만 기존 금융업의 적극적인 디지털 기술활용 추세 속에서 디지털 기술 기업의 금융업 진출(토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이라는 경쟁 구도를 만들어 금융업을 선진화시키고자 하는 금융 당국의 적극적인 규제개혁이 성과를 냈다. 신기술 발달, 디지털 환경 변화 등을 고려하여 기존의 낡은 포지티브적 규제(열거한 사항만을 허가하는 규제)를 포괄적 네거티브적 규제(금지한다고 열거한 것 이외에는 가능하도록 하는 규제) 방식으로 전환한 데 따른 성과라 할 수 있다.
‘우버’와 ‘타다’ 논란은 한국 택시 업계의 특수성 속에서 갈등이 증폭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버는 자가용 운행자와 이동이 필요한 사람(승객)의 카풀 중개를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혁신에 성공한 사례(위치 서비스와 실시간 매칭)이다. 공유경제(Sharing Economy)또는 온디멘드(On-demand) 서비스는 스마트폰이라는 모바일 환경이 구축되면서 등장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에어비앤비와 우버는 기존의 산업계에 흩어져 있던 개인들을 묶어서 새로운 공급자가 되도록 했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다. 그러나 우버는 한국 시장에 진출할 수 없었다. 한국은 ‘나라시 택시(자가용을 이용한 불법 택시 영업)’라는 사회 현상을 겪으면서 택시 공급(영업 면허)을 확대하여 공급과잉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우버가 혁신적인 서비스라고 하더라도 추가 공급을 허용하기는 어려웠다.
저임금 운수 노동자와 개인택시라는 영세 자영업자가 공존하는 시장에서 택시 업계는 내부적으로 혁신을 일으키거나 이를 수용할 여력이 없다. 이런 한국적 상황에서 우버보다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택시 호출 서비스인 카카오 택시가 택시의 시간대 및 지역별 수요와 공급 불균형 해소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서비스였다.
타다 금지는 ‘규제’에 의한 혁신의 좌절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단정하기는 어렵다. 택시 총량의 감소가 필요한 상황에서 공급을 늘리는 방식은 시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접근 방식이었다. 현재 택시업계에 필요한 혁신은 자영업, 소규모 택시업체의 자발적 규모화(가맹 택시화 또는 기술 기업들이 택시 면허를 인수하는 방식 등)를 이루고 혁신적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여 고객 경험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이다. 국토부는 택시 총량제 안에서 모빌리티 혁신을 유도하고 있지만, 앞으로 자율주행 택시 및 셔틀버스 등의 등장으로 필요한 차량의 대수가 급속히 감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 장기적으로 회사 택시 제도로 전환하고, 인공지능 기술 등을 활용하여 택시 운행의 효율을 높이면서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를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가 열릴 경우 많은 운송 및 물류 분야에서의 갈등이 예상된다. 네덜란드 등에서는 이미 항만 물류 업무를 자율주행 기술로 처리하고있다. 화물 트럭도 자율주행 자동차로 바뀐다. 따라서 많은 운수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운송물류업은 구조조정에 대비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디지털화, 자동화에 따른 갈등을 증폭시켜
디지털이 가져온 산업의 변화는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산업의 변화는 일자리 변화로 이어지고, 일자리 변화가 급작스럽게(해고 및 집단 감원) 일어나는 경우 많은 노동자가 실업자로 전락하는 사회 문제가 발생한다. 디지털화에 따른 일자리 변화는 다방면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아웃소싱, 노동력 유연화(비정규직화, 계약직화, 파트타임화, 플랫폼 노동, 클라우드 워킹, 긱 노동 등)는 디지털 기술에 의한 기업(협력업체 포함) 관리의 원격화, 노동 시간과 장소의 유연화에 따른 것이다. 노동이 유연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기술적 흐름이다. 문제는 노동의 유연화가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로 인하여 갈등이 증폭된다는 데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종사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으로 구분되는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을 비롯하여 경제적 집단 간의 비대칭적 교섭력 차이로 인한 것이다. 노동자들도 소속된 집단에 따라 비대칭적 교섭력을 갖게 됨으로써 업무는 비슷한데 처우와 보상(임금 등)에 있어서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은 규모는 줄어들지만 강한 교섭력으로 과잉보호를 받고,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은 약한 교섭력으로 차별적 대우를 받는 구조가 정착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화에 의한 노동의 유연화는 비정규직, 계약직, 플랫폼 노동자의 상태를 더 열악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노동의 유연화로 비정규직, 계약직, 플랫폼 노동이 증가함에 따라, 노동력의 상대적 공급과잉이 일어나면서 처우가 더 열악해지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혁신 역량을 저하시키는 원인으로도 작용한다. 대기업 정규직 종사자들이 나와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을 창업하면서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경제로 전환하는 것이 선진국 모델이다. 한국은 이들이 과잉보호의 울타리 안에서 자기들만의 파이를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러한 구조는 한국 노동시장의 디지털화, 자동화까지도 차별적으로 작용하도록 이끈다. 이는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함에 따라 갈등과 저항을 불러오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보안요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 고속도로 톨게이트 비정규직을 한국도로공사 자회사 직원으로 전환하는 문제 등은 바로 이러한 부당한 차별적 대우와 자동화라는 복합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타다’ 논란도 저임금 운수 노동자와 디지털 신기술 간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차별적 노동시장으로 인하여 열악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은 디지털화, 자동화에 대한 수용을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나마 일부 공기업의 비정규직은 정부와 공기업을 대상으로 한 싸움에서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지만,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과잉 공급된 노동시장의 열악한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갈등에 대한 선제적 대응 필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로 인하여 디지털화, 자동화에 대한 갈등이 증폭되는 현상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첫째로 일차적으로는 소비자 후생, 이익의 관점에서 변화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떠한 우여곡절과 갈등을 겪더라도 결국 소비자 후생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기술과 사업은 발전하게 되어 있다. 이 방향의 흐름을 바꾸기보다는, 먼저 방향을 예고하고, 시간을 조절하며, 충격을 줄이고,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사회 전체적으로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는 기존 기업과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진입하는 진입자 간의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 기업의 신기술 도입과 활용을 촉진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는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산업의 시장 진입을 제한적, 부분적으로 허용하여 사업 진행을 지켜보면서 기존 제도를 개편하는 정책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시장이 법 제도에 의해 조성되거나 정착된 경우, 제도가 경직적으로(규제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규제 샌드박스(Sandbox), 지역적 규제 완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신규 진입자를 통하여 산업 내 경쟁을 유지하고 산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넷째는 사업장 내에서의 직무 전환 교육을 통하여 일자리 변화에 대응하고 경쟁력 있는 노동력을 유지하는 방안이다. 산업 구조조정으로 이미 직업을 상실한 경우 재교육은 재취업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에서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기존 인력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여 업무를 향상시키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기업의 업무 및 노동 재편 계획을 세우고, 단계적으로 직원들이 업무 전환을 수용하고 신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평생교육, 직무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정규 교육을 마칠 때까지는 학습능력이 뛰어나다가 직업 세계로 진입하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독일 지멘스가 인더스트리 4.0이라는 자동화, 스마트 공장을 추진할 때, 전체 고용 수는 유지하면서 현장 노동자를 대폭 다른 전문분야 노동자로 전환한 사례를 따를 필요가 있다.
처음 컴퓨터가 등장했을 때 수많은 수작업 계산원들은 해고 위기에 놓였으나, 컴퓨터를 배워서 계속 일할 수 있었다는 내용의 영화 <히든 피겨스>는 신기술 등장에 직원, 노동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물론 기업에서도 적극적으로 전직 훈련을 지원해야 한다. 노동조합도 장기적인 변화를 인정하고 새로운 능력을 습득하지 못한 노동자들을 구조 조정하는 데 협조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에 의한 의료, 교육, 법률 시장의 변화 필요성
앞서 설명한 디지털 갈등 사례를 보면 이미 디지털 갈등이 다 드러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주류 직업 집단에서의 디지털 전환은 본격화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규제 업종은 금융, 의료, 교육, 법률 업종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은 규제 산업이지만, 직업의 자격이 법률로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핀테크 등의 기술기업이 등장하면서 빠르게 디지털 전환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법률에 의해 직업의 자격이 정해져 있는 업종에서의 디지털 전환은 상당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당장 ‘원격의료’로 상징되는 의료의 디지털 전환은 10년 넘게 의료계, 의사 집단의 반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일부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었지만, 여전히 제도화의 벽에 막혀 있다. 최근 정부의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의료계가 반발하면서 원격의료도 반대하는 입장을 내놓은 것은 혁신의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현재 많은 헬스케어 디바이스가 등장하고, 인터넷에 의한 전문 지식의 대중화, 지식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의료, 법률 등의 분야는 여전히 지식이 특정 집단 전문가의 소유로 되어 있고 디지털 의료 및 법률 서비스는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의사와 변호사에 의한 의료 및 법률 서비스 제공 이외에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서비스는 엄격한 규제의 대상이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디지털 의료 및 법률 서비스가 개발되어도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보니 오히려 사교육 시장에서 더 활발히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사람의 일을 대체하거나 보조하면서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혁신을 이끌고 있는데, 법으로 직업 자격이 정해진 분야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가진 신규 진입자의 등장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이렇게 진입 장벽이 높은 의료, 교육, 법률 시장은 외국에 개방되지도 않고 강력한 기득권과 이익집단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결국 많은 젊은 인재들이 좁은 시장에 들어가기 위하여 치열한 경쟁에 몰두하고 있으며 이는 사회적 차원에서 인재 손실로 이어진다.
이들 업종이 외부에 더욱 개방되고 디지털 기술을 가진 신규 진입자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경쟁 속에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시민과 소비자의 이익 관점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신규 진입이 법 제도적으로 허용돼야 한다. 이런 분야에서의 디지털 갈등은 혁신적 관점에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과한 기득권 보호를 내려놓고 진입 장벽을 낮춘다면 인재의 쏠림 현상도 완화될 것이고, 사회 전 분야에서 인재들이 활약하면서 국가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
디지털 갈등은 피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신기술과 기존 기술의 경쟁, 신산업과 기존 산업의 경쟁, 기득권과 신규 진입자의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러나 왜곡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서는 디지털 혁신이 전 분야에서 일어나지 않고 취약한 노동계층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회의 기득권 집단인 의료, 교육, 법률 업종이 디지털 기술을 가진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을 허용함으로써 나타날 디지털 갈등은, 사회혁신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 갈등을 디지털 혁신의 계기로 삼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의 뉴딜, 소득보험 도입의 필요성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안전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자영업자를 비롯해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생계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거리의 상점이 문을 닫고, 휴업을 하거나, 영업 시간을 줄이면서 근근이 버티고 있다. 코로나19가 끝나도 이전과 같은 일상이 회복될 것인지는 모르는 상황이다. 코로나 19가 촉진시킨 것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디지털 전환이다.
디지털 및 IT 기업들에게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오히려 매출 증대, 사업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으로 하는 여러 활동들이 증가했으며, 온라인 쇼핑과 음식 배달 서비스가 늘어났다. 이에 더해 화상회의, 온라인 교육, 원격 근무, 온라인 공연, 메타버스까지 새로운 생활 및 소비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코로나19와 디지털 전환이 누군가에게는 생계의 위협을 가하는 고통이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신세계가 되고 있다.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풀린 돈이 디지털 전환으로 기회를 잡은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다. 일자리와 소득 양극화에서 나아가 자산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뉴노멀로 정착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일자리와 복지 정책, 새로운 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0년 7월에 정부는 한국판 뉴딜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발표했고, 최근에는 휴먼 뉴딜을 더해서 한국판 뉴딜 2.0을 발표했다. 디지털과 그린 뉴딜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과 함께, 안전망 강화를 위한 휴먼 뉴딜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사람에 대한 투자와 불평등 및 격차 해소를 내걸고 있다. 전 국민 대상 고용안전망 구축을 위해 고용보험 대상을 예술인, 특수 형태근로 종사자 등으로 단계적인 확대를 하고, 산재보험과 관련해서도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지원 직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하게는 이전 제도의 확대이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뉴딜은 1930년대 초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처음 실시한 정책이다. 1929년 주식시장 폭락 이후 4%였던 실업률이 1933년 25%로 증가했던 대공황 타개책이 뉴딜이었다. 공업 생산량이 30%로 줄고, 목재업, 광업, 농업은 생산이 줄었는데 물가는 하락하여 더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에 자산가와 화이트칼라, 서비스업 노동자의 고통은 상대적으로 덜했다. 통화가치는 증가하여 돈을 가진 사람들은 더 부유해지고, 빚을 진 사람들은 돈을 갚기가 더 힘들어졌다. 그래서 루스벨트는 뉴딜의 시작을 은행과 금융 개혁으로 시작했다.
뉴딜은 달러 금본위제를 중단함으로 통화 발행을 쉽게 하여 통화가치의 하락을 이뤄냈다. 그리고 정부 재정을 확대하여 공공 투자를 늘렸다. 뉴딜 정책의 상징이 후버댐이나 고속도로 사업 등인 것도 이 때문이다. 현 정부도 디지털 시대의 고속도로이자 디지털 시대의 댐인 데이터댐이라는 디지털 인프라 투자를 뉴딜로 연결하고 있다. 이러한 댐과 고속도로가, 늘어난 실업자를 위한 일자리를 창출해 실업을 완화하는 효과는 있었으나, 이는 뉴딜의 핵심은 아니다.
부(富)의 양극화, 너무 커진 자본의 힘이 대공황을 초래했기 때문에 뉴딜은 부의 균형으로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노동의 힘을 강화하고 안정화하기 위해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을 도입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자본가와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권리,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보장해 주었다. 아울러 실업보험과 노령연금을 도입하여 노동자들의 생계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었다. 기업가들이 카르텔과 독점을 형성하며 부를 축적하고, 이에 맞서 노동자들이 폭력적인 파업을 벌이던 대립이 완화되었다. 이를 통해 노동과 자본의 균형, 노사가 양보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어 냈다. 산업 현장이 안정화되면서 기업은 혁신에 매진하고, 노동자들도 혁신의 과실을 나누는 관계가 되었다. 결국 미국은 이를 통해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뉴딜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어떤 뉴딜이 필요한가? 코로나19는 디지털 전환이 미래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기후변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서라도 디지털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과정의 고통은 골고루 분산되어 있지 않다.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한 노동의 배제, 실업의 증가에 대한 우려도 크다. 디지털 전환에 의해 경쟁력을 잃은 기업과 산업도 늘어날 것이다. 이에 대한 저항도 클 것이다. 이러한 불안감과 우려 속에서 기본소득이라는 주장이 등장해 호응을 얻고 있다. 기존 일자리와 사회보장 제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고용보험 대상을 확대한다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점진적으로 정부가 주는 생활지원금(기본소득) 금액을 높여간다는 기본소득제도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디지털 전환 시대의 특징에 맞는 사회보장 제도, 고용 및 실업보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 디지털 경제의 특징은 공장과 사무실의 중요성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일할 수 있고, 기업들은 다양한 형태의 고용을 원하고 있다.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은 프리랜서로 여러 기업과 계약을 맺고 업무를 처리(노동)해 주고 있다. 기존의 특수 고용직 노동자만이 아니라 긱 노동, 플랫폼 노동으로 불리는, 사업주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모호한 신분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유튜버가 직업인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고용과 피고용,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관계는 앞으로 점점 더 희석될 것이다. 때로는 피고용자나 계약을 맺은 사업 파트너가 되고, 때로는 고용자가 되어 프로젝트 계약을 수행하기도 할 것이다. 또한 고용과 피고용은 수시로 바뀌는 관계가 되고, 1인 기업, 자영업자가 늘어날 것이다. 고용이 늘어나는 사회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대신 다양한 방식의 경제활동으로 소득을 얻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경제활동을 촉진해야 디지털 경제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보장의 영역 밖에 있다. 고용이 되어야만 사회보장 가입 대상이 되는 제도는 유효하지 않다. 디지털 시대에 공장 노동 시절 만들어진 노동법과 실업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산업경제로의 후퇴를 강요하는 꼴이다. 다양한 방식의 경제활동으로 소득을 얻지만, 일이 줄어들어 소득이 감소하는 것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경제활동을 기준으로, 소득이 발생하면 누구나 소득보험에 가입되어, 어려울 때 경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시대의 사회보장제도로 디지털 뉴딜을 완성해야 한다.
소득보험으로 맞이하는 새로운 디지털 시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대비하며, 관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사회보장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우려로 전 국민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코로나19로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전 국민 고용보험의 절박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사회보장제도는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새로운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할 때이다.
산업화 시대, 제조업 대량 고용의 시대에는 ‘고용’의 측면에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노동자 단결권과 고용보험이라는 사회보장제도가 필요했다. 하지만 현재 ‘고용’의 측면에서 마련된 제도가 오히려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놓인 직장의 불안전성을 높이고, 고소득자를 과잉보호하는 구조로 작용하고 있다. ‘고용’이 아닌 ‘소득’의 측면에서 사회보장제도를 재구축해야 한다. 경제 활동과 혁신을 촉진하고, 관리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고용보험에서 소득보험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소득보험 가입 조건은 ‘고용’이 아닌 경제활동에 따른 ‘소득’(원칙적으로 자본소득은 제외하고 근로 소득과 사업소득에 한정)의 발생이다. 모든 소득이 발생하는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자는 소득보험에 가입한다(이로써 정년 제한이 사라진다). 이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모순적인(고용이 아닌데 고용보험에 가입하는) 혼란도 피할 수 있다.
둘째, 보험료는 ‘소득’에 비례하여 납부하기 때문에 기업(사용자)의 분담금이 사라진다. 분담금에 해당하는 금액과 자영업자 가입에 따른 보험료 부족분은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올려 일부를 사회보장세로 전환하는 방안이 있다. 기업체로서는 ‘고용’에 따른 의무적 ‘비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고용을 더 늘릴 가능성이 크다.
셋째, 소득보험의 혜택 대상은 소득이 줄어들거나 없어진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퇴사, 재교육, 창업 준비, 소득이 급격하게 줄어든 자영업자도 포함된다. 일정 기간 보험료를 납부한 조건과 납입 보험료(기여금)의 액수에 비례하여 ‘소득’의 일부를 보전받게 된다. 물론 도덕적 해이에 대한 대책 마련 역시 필요하다.
넷째는 보험관리의 간편화와 통합이다. 1년에 ‘고용’된 자의 반이 직장을 옮긴다. 자격 상실과 취득이라는 이중의 자격변동 행정업무 비용이 기업과 보험공단 모두에서 발생한다. 소득보험료 징수 및 관리 업무를 국세청에서 대행하면 더 정확하고 행정비용도 줄일 수 있다. 모든 사회보장제도를 개인계좌 방식으로 통합하여 운영하는 방안이 제안될 수 있다. 기업에도 관리비용이 줄어드는 혜택이 있다.
다섯째, 소득보험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양극화)를 해소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 과잉보호되고 있는 고소득 직장인의 소득보험 기여금은 저소득 불안정 직업 종사자들의 생활 안정과 재교육 및 자기계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소득감소와 실업에 대한 두려움으로 창업에 나서지 못하는 정규직들이 혁신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망이 될 수 있다.
여섯째, 소득보험은 ‘소득’이라는 측면에서 사회보장 시스템을 재편하고, 궁극적으로 기본소득이 가능한 사회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노동시간 감소, 일자리 나누기, 증세와 사회보장 지출 확대에 의한 소득 재분배 등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 소득보험제도가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하고, 디지털이라는 노동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혁신을 촉진하며, 사회통합과 함께 사회보장 관리체계를 효율화할 수 있는 방안은 전 국민 소득보험이다. 소득보험으로의 전환이 K-뉴딜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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