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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체제에 거는 기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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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5월31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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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일
  •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단국대 석좌교수, 前 국회의원,前 중앙일보 정치부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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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5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이 우여곡절 끝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를 출범시켰다. 총선 후 달포 가량 당 지도체제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졌으나 ‘그래도 답은 김종인’이라는 데 대다수의 의견이 모아진 결과다.  

 

 5월 30일부터 21대 국회의원이 된 당선자들과 원외의 당협위원장 또는 조직위원장들 다수가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분명하다. 현재 당내엔 당을 근본적으로 개조할 역량을 지닌 중심인물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소위 ‘자강론’은 그럴듯한 말이지만 실제로는 자강(自强, 自彊)을 이끌 인물이 당내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돌고 돌아 다시 ‘김종인’. 총선 직후 심재철 당시 당 대표권한대행이 내놓았던 카드를 그대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래통합당의 인물난(難)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타이틀 그대로 ‘비상대책 전문가’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역임했고, 2016년 20대 총선 때엔 안철수 세력과 호남 세력의 이탈로 큰 위기에 빠진 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이 두 선거에서 김종인의 역할은 빛이 났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승리에도 크게 기여한 인물이 김종인이다. 이런 그가 미래통합당을 맡았기에 국민의 관심은 일단 커진 듯하다. “김종인이라면 뭔가 하지 않을까”라는 국민의 기대 심리도 작동하는 것 같다.

 

 통상적 ‘정당 문법’과는 다른 인선(人選)에 호평 - 산뜻한 출발

 

 김종인 위원장이 국민과 당내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그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성공 여부는 그가 내놓을 성과물과 직결되어 있는 만큼 판단을 하는 데엔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원과 사무총장 인선에서 통상적인 ‘정당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 중진이나 명망가 중심의 인사를 하지 않은 것이다.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은 김 위원장과 당연직인 주호영 원내대표, 이종배 정책위의장을 포함해 모두 9명이다. 남은 여섯 자리에 서울에서 낙선한 30대 후보 2명을 포함한 30대 3명이 발탁됐고, 여성 2명(경기지역 낙선자 1명 포함)이 들어갔다(남은 한 자리에는 충청 출신 재선 의원을 임명). 

 사무총장엔 재선 의원을 지냈으나 서울 강북지역에서 낙선한 김선동 전 의원을 앉혔다. 김 위원장의 이런 포석은 대변화의 신호가 아닐까 싶다. 총선 성적이 매우 저조한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의 민심을 회복하는 일에도 주력하겠다는 메시지도 던진 것이다. 인사(人事)를 통한 지향성과 방향성에 수긍이 가고, 언론에서도 호평을 하는 만큼 출발은 산뜻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당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느냐, 당을 ‘이기는 정당’으로 바꿀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김 위원장은 원외 당협위원장·조직위원장들 앞에서 “경제민주화보다 더 새로운 걸 내놓아도 놀라지 말라”고 했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 중도란 말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수층이 거부감을 가진 ‘경제민주화’란 개념을 내세워 2012년 총선·대선 때 새누리당에 승리를 안겨준 김 위원장이 그 개념보다 더 파격적인 것을 내놓을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그는 디지털 시대의 빠른 변화나 젊은 세대의 감각을 고려하고 사회적 약자를 염두에 두는 정책들을 제시하면서 ‘당의 탈(脫)이념화’를 촉진하는 실용주의를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보수 이념의 경직성에 갇혀 있고, 대안 없이 반대만 하는듯한 당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구상들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에게 보수성향이 강한 지지자들은 불만을 나타냈고, 2022년 대선 출마의 꿈을 가꾸고 있는 무소속 홍준표 의원도 “좌파의 2중대가 되려는 거냐”라고 포문을 열었다. 김 위원장은 개의치 않고 본인의 비전과 정책을 뚝심 있게 밀고 갈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내놓을 카드들이 무엇인지 지켜봐야겠지만 국민이 그것들을 반길 경우 보수층 일각의 불만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보수층에서도 ‘김종인 식 실용주의’에 대한 지지가 높아질 수도 있다. 

 

 당의 탈(脫)이념화, 실용주의 관철하려면 졸속 피하고 소통해야

 

 김 위원장이 그리는 미래통합당의 미래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국민이 느끼는 현실의 문제를 여당보다 먼저 인식하고 해법도 선제적으로 내는 정당!’ 

당이 이처럼 바뀔 경우 ‘이기는 정당’의 면모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당원들과 지지자들도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고, 당의 외연도 확장될 것이다. 김 위원장의 이런 목표가 달성되느냐 마느냐는 그가 내놓을 정책 조합(policy mix)의 적절성과 유효성에 달려 있다. 

 

 김 위원장의 정책이나 비전·구상이 먹히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비현실적이거나, 매력이 없는 정책이 나올 경우다. 이 때엔 김 위원장의 입지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 평소 불만을 지닌 강성 우파가 십자포화를 날릴 것이고, 그의 사퇴론도 제기될지 모른다. 때문에 경계해야 할 것은 졸속이다. 정책이나 구상을 내놓기에 앞서 그 실효성과 파급력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해야 한다. 카드를 적시에 제시하는 전략적 사고 역시 중요하다.

 

 김 위원장의 키워드는 ‘변화’다. 당을 바꾸기 위해서라면 당의 중진이나 전통 지지층이 충격을 받을만한 조치도 서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충격과 파격의 조합으로 당 안팎의 허를 찌를 가능성이 크다. 그런 그의 정치적 상상력은 풍부하다고 생각한다. 경험도 많고 경륜도 높고, 사고도 깊기 때문이다. 노회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인 만큼 그가 바둑 9단처럼 여러 가지 수(手)를 내놓을 게 틀림없다.

 

 문제는 당(黨)의 의원, 위원장,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이를 이해하고 함께 해주느냐다. 김 위원장은 묘수를 냈지만 당내에서 엉뚱한 이야기가 나온다면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일을 엉성하게 해서 동티를 내느니 ‘무책이 상책’이란 말처럼 가만히 있는 게 차라리 낫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이런 실수를 피하려면 소통을 잘 해야 하고 집단지성도 모아야 한다. 

 

 김 위원장이 서둘러야 할 일은 목표의식을 당원들과 정확히 공유하는 일이다. 그가 지향하는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변화해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선 모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당원들과 지지층이 잘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도록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김 위원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가 의원, 위원장 등과 활발하게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한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당원들의 아이디어가 상향식으로 분출되도록 하는 체계, 그걸 함께 검토하고 논의하는 문화와 환경도 만들어야 한다.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까지 이어져 온 당 대표 중심주의, 대표와 측근 위주의 의사결정 구조를 이번에 싹 뜯어고쳐야 한다. 김 위원장이 발탁한 젊은 비대위원, 여성 비대위원들도 제 몫을 할 수 있으려면 이런 고질병부터 고쳐야 하는 것이다.      

 

 ‘영남 마인드’ 버리고 막말엔 무관용 원칙 적용해야

 

 미래통합당엔 이번에 애석하게 낙선한 좋은 자원들이 꽤 많다. 수도권에서 본인은 최선을 다해 뛰었으나 당내 일부 인사들의 꼴불견과 막말이 일으킨 역풍 때문에 고배를 마신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것도 김 위원장의 몫이다. 이들이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지역에서 더 열심히 활동할 수 있도록, 그래서 당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김 위원장이 인사 등 여러 조치를 통해 배려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당의 21대 국회 의석이  103석으로 쪼그라들었으니 ‘원내 중심 정당’만을 지향한다면 전국적으로 지지세를 확장해 나가기 어렵다. 2년 뒤의 선거를 생각한다면 ‘원외정당’의 역량을 강화하는 게 필수다. 

 

 그러기 위해선 ‘영남 마인드’를 던져 버려야 한다. 국회의원과 당원 숫자에서 영남 출신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당의 수도권 생존 능력을 키우고, 호남에 다가가려면 영남 중심의 사고는 반드시 바꿔야 한다. 수도권을 소홀히 하고, 호남을 배제하는 현재의 모습으론 2년 뒤 대선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음을 영남 당원들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공분을 사는 언행을 하는 이들과는 단절하는 단호함도 필요하다. 막말 등으로 큰 물의를 빚는 이들에겐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해서 썩은 살을 도려내는 것처럼 솎아내야 한다. 이는 당 이미지 쇄신과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김종인 체제의 잣대는 보수, 진보의 이념적 기준이 아닌 상식과 합리임을 국민이 실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6개월 뒤엔 중간평가 받는다 - 잘하면 대권주자 될 수도

 

김 위원장은 과연 당의 차기 대선주자를 발굴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당이 정권교체의 자신감을 갖도록 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물음이지만 지금은 그도 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로선 가장 적절한 답이 ‘김 위원장과 당이 하기 나름’이 아닐까 싶다.

 

 김 위원장이 비대위 체제를 성공적으로 이끈다면, 그래서 당에 대한 국민 지지가 살아나고, 당의 문제 해결 능력이 좋아져서 대안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대선 주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2년 뒤의 대선 전망은 한결 밝아질 것이다. 때문에 김 위원장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도와주는 것이 우선이다. 대선 주자가 누구인지를 따지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김 위원장이 국민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리더십을 발휘해서 당을 완전히 탈바꿈시킨다면 그가 고령(79)임에도 대권 후보가 될 수도 있다. 언론은 그를 ‘킹 메이커’로 보고 있지만 그런 관측이 틀릴 수도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 ‘야권에선 김 위원장이 가장 낫지 않느냐’는 여론이 조성되고, 야권의 대선 후보군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온다면 그가 미래통합당(2년 뒤의 당 이름은 달라질 가능성이 큼)의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나이도 77세인만큼 상황에 따라선 “나이가 무슨 문제냐”는 여론이 조성될 수도 있다. 물론 김 위원장이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당을 이끌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그의 행보를 대권과 관련지어서 볼 필요는 없다.   

 

 김 위원장 임기는 내년 4월 7일 재·보선(일부 국회의원, 부산시장 등)까지다. 그가 당을 확실하게 개혁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기간을 주자는 뜻에서 그렇게 정했다. 그가 지도력을 보여주고 당에 대한 국민 지지가 올라간다면 그는 임기를 무사히 마칠 뿐 아니라 더 큰 책임(대선 후보)을 맡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엔 임기가 흔들릴 수도 있다. 임기가 남았는데도 ‘안 되겠다. 내려 와라’라고 시비를 거는 이들이 나올 수 있고, 그들이 세를 얻을 수도 있다. 

 

 국민과 당원들에겐 김 위원장에 대한 ‘심리적 임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6개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6개월 정도 지켜보고 난 뒤의 여론이 ‘당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쪽으로 기울 경우 ‘선수 교체론’ 대두될 수 있다. 자강론도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6개월쯤 지나면 김 위원장에 대한 중간평가가 반드시 이뤄지게 될 것이므로 김 위원장에겐 시간적 여유가 없는 편이다. 

 

 김 위원장이 일을 시작하기 직전의 미래통합당 지지율은 18%(5월 26~28일 한국 갤럽 조사)다. 민주당 지지율은 47%다. 6개월 뒤의 두 당 지지율 그래프는 어떤 모습일까? 미래통합당 지지율이 답보상태를 면치 못한다면 김 위원장은 과거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처럼 사퇴론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통합당이 상승세를 타서 민주당과의 격차를 크게 좁힌다면 김 위원장에 대한 국민과 당원의 신뢰는 올라갈 것이다. 그가 개인기와 당의 팀워크를 조화롭게 살리는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그래서 당의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운다면 6개월 뒤의 국민 여론은 상당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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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5월31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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