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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의 사이버보안 이야기 <34> 유발하라리(NEXUS)에게서 배우다 : AI 시대, 민주주의와 사이버 윤리의 도전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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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25년03월24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25년03월24일 11시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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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민주주의와 사이버 윤리의 도전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전 앞에서 인류 사회는 근본적인 물음을 마주하고 있다. 바로 기술의 힘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때, 우리의 민주주의와 사회 질서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최근 내한한 세계적 석학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서울에서 가진 대담 「이재명N하라리: AI시대를 말하다」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깊은 성찰의 장이었다. 이 대담에서 유발하라리는 AI의 능력과 위험에 대해 여러 차례 경고하며, 우리가 대비해야 할 윤리적·사회적 과제를 강조했다. 그의 통찰을 바탕으로, AI 시대에 왜 사이버 보안과 디지털 윤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지 살펴보고자 한다.
인공지능, 도구를 넘어 주체가 되다
유발하라리는 AI를 “이전에 인류가 만들어온 어떤 도구와도 다른 존재”라고 지적한다. 과거의 칼이나 자동차, 심지어 원자폭탄까지도 결국 인간이 쓰는 도구(tool)였지만, 최첨단 AI는 스스로 의사결정하고 창조적 행동을 할 수 있는 주체(agent)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 예로 “AI 무기는 독립적으로 누구를 폭격할지 결정할 수 있고, AI 시스템은 스스로 완전히 새로운 무기를 개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즉, AI는 이제 인간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도 자율적으로 움직이며, 때로는 인간마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유발하라리는 “과거의 도구를 통제하듯 AI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AI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오해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러한 경고는 AI의 결정권과 행동력이 가져올 파장을 시사한다. 단순 반복 작업을 넘어, AI는 금융 거래부터 군사 행동까지 인간 대신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는 편리함과 효율을 제공하는 동시에, 통제가 어려운 위험도 내포한다. 특히 AI가 인간을 속이는 능력, 즉 기만(deception)의 가능성은 큰 우려를 낳는다. 최근 등장한 생성형 AI 기술은 겉보기엔 인간과 구별하기 힘든 글, 음성, 영상 등을 만들어낸다. 유발하라리는 “이제 역사상 처음으로 수십억의 가짜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며, 온라인 상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상대가 사람인지 AI인지 알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9년에는 AI로 복제한 경영자의 음성을 이용해 회사 직원을 속이고 거액의 송금을 유도한 사기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처럼 AI는 인간을 흉내내 원하는 정보를 빼내거나 잘못된 행동을 유도하는 등 사회공학적 해킹을 자동화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이버 보안의 개념도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해커나 범죄자 개인뿐만 아니라, 그들이 조종하거나 심지어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AI와도 대결해야 한다. AI가 악용되어 금융 시스템을 교란하거나, 중요 인프라를 마비시키는 시나리오는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니다. 따라서 기업과 기관은 기존 보안 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AI 탐지 및 차단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AI가 생성한 위조 음성이나 영상을 판별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의심스러운 트래픽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등의 노력이 요구된다. 동시에, 디지털 윤리 차원의 논의도 필수적이다. AI에게 어떤 결정 권한을 부여할 것인지, 인간을 속이는 용도로 AI를 사용하는 것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 기술의 능력 범위가 커진 만큼, 그 사용을 이끄는 윤리적 가이드라인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
알고리즘 사회에서 드러나는 민주주의의 위기
AI의 부상은 단지 기술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건강과도 직결된다. 유발하라리는 AI 시대에 “신뢰(trust)”의 토대가 무너질 위험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누가 진짜 인간이고 누가 가짜 인간인지 알 수 없게 된다면 신뢰가 붕괴되고, 최소한 자유 사회(free society)는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하며 현실에 대한 공통된 믿음을 형성하는 과정에 기반한다. 그러나 AI가 만들어낸 가짜 뉴스, 딥페이크(Deepfake) 영상, 그리고 무수한 봇 계정들이 정보 생태계를 잠식하면,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려져 버린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는 사회에서는 이성적 토론이 어려워지고, 음모론과 극단주의가 활개칠 수 있다. 유발하라리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값비싼 진실보다 값싼 매력이 넘치는 허구”가 득세하는 시대라고 표현했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이 참인지 여부보다 사용자 참여도(engagement)를 우선시하면서, 정치인마저 책임 있는 현실보다 자극적인 선동에 끌리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디지털 신뢰, 출처: 자체제작(Imagen3)>
이재명 대표 역시 우려를 표했다. 그는 “알고리즘이 사람을 한쪽으로 몰아서 한쪽 생각만 하게 만드는 게 문제”라며, 현재 “이런 문제가 윤리적·규범적으로 통제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온라인에서 접하는 정보 흐름이 특정 방향으로 편향될 때 이를 바로잡을 장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다양한 견해의 공존과 균형은 중요하지만, 알고리즘이 개인맞춤형 정보만을 공급하면 사회적 분열이 심화될 수 있다. 실제로 선거 국면에서 봇을 활용한 여론 조작이나 유권자 마이크로 타게팅(맞춤형 정치광고)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폭로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mbridge Analytica) 스캔들은 방대한 페이스북 데이터로 유권자들을 미세하게 분류하고 맞춤 메시지로 심리를 조종하려 한 사례였다. AI는 이러한 정치적 조작을 더욱 은밀하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는 도구로 평가받는다.
AI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하면 '얼굴 바꾸기(Face Swapping)'와 '표정 조작(Facial Manipulation)'을 통해 영상 속 인물의 얼굴과 표정을 교묘히 바꿀 수 있다. 오늘날 무료 프로그램만으로도 누구나 이러한 합성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우리가 온라인에서 접하는 이미지나 영상이 진본인지 조작본인지 식별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딥페이크 기술은 악의적인 목적으로 이용될 경우 선거 개입, 여론 조작, 명예 훼손 등에 악용될 소지가 크며, 이는 사회 혼란과 민주주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디지털 신뢰를 회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축이 있다. 첫째, 기술적 대응이다. 정부와 기업은 가짜 계정 탐지, 딥페이크 식별, 허위정보 유통 차단을 위한 사이버 보안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요 플랫폼들은 AI를 활용해 의심스러운 콘텐츠를 조기에 탐지하고 경고를 부여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다. 둘째, 제도적·윤리적 대응이다. 허위정보를 의도적으로 확산시키는 행위에 대한 강력한 법적 제재와 함께, 플랫폼의 알고리즘 투명성을 요구하는 규제가 필요하다. 유발하라리는 “AI가 사람인 척하도록 내버려두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온라인 상의 발언이 인공지능의 생성물인지 명시하도록 하는 법규 도입을 제안한다. 이는 최소한 온라인 공간에서 “나는 로봇이 아닙니다”를 AI에게도 요구하자는 뜻이다. 또한 언론과 시민사회도 팩트체크와 미디어 교육을 통해 국민들의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언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유발하라리가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AI가 부르는 불평등의 심화와 사회 불안정
AI 시대의 또 다른 큰 위험은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그로 인한 사회 불안정이다.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일부 대기업과 강대국에 집중되면서, 부와 권력이 소수에게 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실제로 유발하라리는 글로벌 AI 업계 리더들을 만날 때마다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경쟁자가 AI 패권을 잡고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이는 곧 AI 기술의 선도자만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기술적 빈부격차가 벌어질 것이라는 공포다. 19세기 산업혁명 때도 기술을 선점한 기업과 국가들이 부를 독식하며 사회 계층 간 격차가 커졌는데, AI 시대에는 그 격차가 더욱 극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AI로 인한 부의 독점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국가의 적극적 투자를 제안했다. 그는 국가가 AI 산업에 자본을 투자해 지분을 확보하고, 향후 수익을 국민과 공유하는 전략을 언급하며 “AI 산업을 공공부문에서 투자해 수익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유발하라리는 직접적인 경제 해법 제시는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역사적 비유를 통해 정부 개입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그는 19세기 산업혁명기에 아동 노동 착취가 만연했던 사례를 들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교육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경제에도 더 이득이었기에 정부가 개입해 아동 노동을 금지했다”고 설명했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쫓는 기업들은 저항했지만,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지속가능하지 않은 관행이었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AI 시대에도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유발하라리의 견해다. 그는 “원칙적으로 정부가 반드시 개입해야 한다”며, AI로 촉발될 노동 시장의 격변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화와 AI로 대체되는 일자리가 늘어나면, 사회는 대대적인 직업 재편을 겪게 된다. 유발하라리는 “일자리 시장이 굉장히 불안정하고 유동적으로 바뀔 것”이며 “AI가 점점 똑똑해지며 인간을 대체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계속 재훈련을 받고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두 가지 질문으로 “재훈련에 필요한 비용을 누가 댈 것인가”, “그 기간 동안 생활비를 누가 지원할 것인가”를 제시하며, 단순 금전 지원뿐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비해 정신건강 지원까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요컨대 AI로 인한 대량 실업과 재교육의 시대를 대비해 정부가 교육 시스템을 확충하고, 사회 안전망과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이것은 기술 윤리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AI가 인간을 대체한다면, 남는 인간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라”는 원칙은 기술 발전과 사회적 책임의 균형을 묻는 윤리적 과제이기도 하다.
불평등과 사회 불안정을 막기 위해서는 기업의 책임도 빠질 수 없다. AI를 개발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기술 혁신으로 얻은 이익을 사회와 어떻게 공유할지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AI를 통해 생산성이 향상되었다면, 그 성과를 근로자 재교육 프로그램이나 일자리 창출 기금 등에 투자하는 식의 선순환 구조를 모색할 수 있다. 또한 AI 시스템 설계 단계부터 편향(bias)이나 차별이 스며들지 않도록 윤리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AI가 특정 계층에게만 혜택을 주고 다른 집단을 소외시키는 일은 없는지, 알고리즘의 결정 과정에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할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기술적 진보는 곧 사회적 퇴보로 이어질 수 있다. 극단적인 불평등은 결국 사회의 안정판을 흔들어 모두에게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협력과 AI 규제: 새로운 핵심 과제
AI의 영향력이 전 지구적이라는 점에서, 국제적 협력과 규제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유발하라리는 AI를 둘러싼 현재의 상황을 “신뢰의 역설(paradox of trust)”로 묘사했다. 국가 간에 서로를 믿지 못해 각자 AI 무기와 기술 개발 경쟁에 뛰어들지만, 정작 누구도 AI 자체를 통제할 수 있는 신뢰 기반의 협력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AI 개발을 주도하는 리더들이 서로를 점점 불신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AI 기술 자체에 큰 신뢰를 부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각국 지도자들이 “상대가 AI 패권을 먼저 잡을까 두려워” 경쟁에 몰두하는 상황에서, AI 안전을 위한 공동 규범을 만드는 일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실제로 군사적 목적의 AI 개발 경쟁은 치열하다. AI 무기 체계 개발을 두고 국제 사회가 통제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제한 없는 군비 경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AI의 위험을 줄이려면 국경을 초월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한 국가가 자국 내에서만 엄격한 규제를 적용해도, 다른 나라들이 느슨하게 굴면 금세 균형이 깨진다. 인터넷으로 세계가 연결된 시대에 AI는 어느 한 곳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연쇄적인 글로벌 파급효과를 낳는다. 따라서 마치 기후변화나 핵무기 확산을 다루듯, AI에도 국제 규범과 조약이 필요하다. 가령 각국이 AI 무기의 개발과 사용에 관한 레드라인을 설정하고, AI 시스템의 투명성과 인권 존중 원칙에 합의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미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 G7 등의 다자 회의에서 AI 윤리에 관한 협의가 시작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세계 최초의 포괄적 AI 규제법인 AI법(AI Act) 제정을 추진하며, 고위험 AI의 사용을 제한하고 감시 AI의 남용을 금지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디지털 시대의 국제 규칙을 세우려는 중요한 시도로 평가된다.
<글로벌 협력과 AI 규제, 출처: 자체제작(Imagen3)>
유발하라리는 무엇보다도 신뢰 회복이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그는 “AI를 인류의 통제 아래 두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하며, 현재 “불행하게도 주요 세계 지도자들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갈수록 국제법을 무시하고 상호 불신을 부추기는 행태는 AI 시대에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각국 지도자들은 단기적인 자국 우선주의를 넘어, 인류 공동의 안전망 구축이라는 큰 그림을 볼 필요가 있다. AI 기술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부작용을 억제하려면, 글로벌 차원의 소통과 양보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 가지 희망적인 조짐은 과학자들과 기술 업계의 자율적인 연대다. 2023년 초 수천 명의 전문가들이 초거대 AI 개발을 6개월간 멈추자고 요구한 공개서한이 그 예다. 비록 실제 개발 중단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이는 AI 위험에 대한 공동 인식을 전세계에 환기했다. 앞으로 이러한 대화를 공식 외교 채널로 끌어올려, 국제 협약과 공동 대응 체계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물론 글로벌 협력이 시간을 요하는 사이에도, 각 국은 국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윤리적 AI 가이드라인 제정, 개인정보 보호 강화, AI 영향 평가 제도 도입 등은 한 나라 안에서도 추진 가능하다. 또한 교육과 연구 교류를 통해 AI 윤리에 관한 국제적 표준을 조금씩 맞춰나갈 수 있다. 궁극적으로 AI 문제는 인류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임을 인식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지혜를 모을 때 비로소 해법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사이버 보안과 디지털 윤리: 왜 더욱 중요한가?
앞서 살펴본 AI 시대의 여러 위험 요소는 모두 사이버 보안과 디지털 윤리의 중요성으로 귀결된다. 첫째, AI의 기만과 공격에 대비하는 사이버 보안은 곧 국가 안보와 개인 안전의 핵심이 되고 있다. 예전에는 방화벽이나 백신 프로그램으로 해킹을 막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AI가 개입한 지능형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 AI가 자동으로 취약점을 찾아내 공격하거나, 인간 대신 교묘한 사회공학적 수법을 펼칠 수 있기 때문에, 보안체계 역시 AI를 활용한 방어로 고도화되어야 한다. 예컨대 금융권이나 국가 기간망에서는 이상징후를 실시간 탐지하는 AI 보안관제가 필수가 되고 있고, 각국 정부도 AI 기반 사이버전 공격에 대비한 방어 전략을 세우고 있다. 나아가 국제 협력을 통해 사이버 공격에 대한 공동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정보 공유를 원활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 국가의 인프라가 뚫리면 연쇄적으로 다른 국가에도 피해가 미칠 수 있는 만큼, 사이버 방패를 함께 구축해야 한다.
둘째, 디지털 윤리는 AI 개발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새로운 나침반이 요구되는 분야다. AI 시스템에 책임감을 불어넣는 일이 시급하다. 자율주행차의 판단 기준, 의료 AI의 의사결정 프로세스, 추천 알고리즘의 콘텐츠 선별 원칙 등 수많은 영역에서 윤리적 판단이 개입된다. 이때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가치가 충분히 고려되도록 가이드라인을 세우지 않으면, 기술은 길을 잃고 만다. 다행히도 세계 곳곳에서 AI 윤리 원칙을 수립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OECD의 AI 권고안이나, UNESCO의 AI 윤리 권고는 인권, 투명성, 공정성, 차별 금지 등의 가치를 AI 시스템에 내재화할 것을 권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원칙을 현실의 개발·운영 과정에 구체적으로 녹여내는 일이다. 개발자들은 모델을 훈련시킬 데이터 선정에서부터 알고리즘의 목표 함수 설정에 이르기까지 윤리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기업 경영진은 AI 제품 출시 전에 윤리 영향 평가를 실시하고, 문제 소지가 발견되면 수정·보완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도 AI를 맹신하거나 악용하지 않도록 윤리 교육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디지털 윤리의 한 축으로서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보호도 빼놓을 수 없다. AI 시대에는 개인 데이터가 곧 원유처럼 귀중한 자원이 되고, 이를 많이 보유한 쪽이 유리해진다. 그러나 무분별한 데이터 수집은 사생활 침해와 감시에 대한 공포를 낳는다. 이미 일부 권위주의 국가들은 AI를 활용한 전방위적 감시 체제를 구축하고 있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 국가들은 오히려 투명하고 책임 있는 데이터 이용을 통해 AI를 신뢰받게 운용해야 할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을 강화하고, AI가 민감한 데이터를 처리할 때는 익명화·암호화 등의 기술을 의무화하며, 감독 기구를 통해 남용을 막는 장치가 요구된다.
결국 사이버 보안과 디지털 윤리는 AI 시대 사회 안전망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다. 기술적 안전망(사이버 보안)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시스템을 지켜준다면, 도덕적 안전망(디지털 윤리)은 기술의 방향 자체를 인간에게 이롭게 조율해준다. 이 두 가지가 튼튼할 때 비로소 우리는 AI와 공존하며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 보안과 디지털 윤리, 출처: 자체제작(Imagen3)>
맺음말: 안전한 디지털 미래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
유발하라리가 던진 경고들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숙제를 안겨준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앞으로의 디지털 미래를 안전하고 공정하게 만들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시민: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를 키워야 한다. AI가 만들어낸 정보와 사실을 구별하는 비판적 사고가 필수다. 의심스러운 뉴스나 영상은 한 번 더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무턱대고 공유하지 않는 디지털 시민의식이 요구된다. 또한 시민들은 정부와 기업에 투명하고 책임 있는 AI 운영을 요구하며, 윤리적 기술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2. 정부: 선제적인 정책과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 AI 윤리 기준을 법제화하고, 알고리즘의 투명성·공정성 평가 제도를 도입하며, AI 악용 시 처벌 근거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교육 투자와 직업훈련 지원을 통해 AI로 인한 산업 전환기에 국민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돕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여 기술 격차로 인한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 국제 무대에서는 AI 거버넌스 논의를 주도하고,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여 글로벌 차원의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3. 개발자와 기업: 책임감 있는 혁신을 실천해야 한다. AI 윤리 설계를 제품과 서비스 개발의 출발점에 두고, 잠재적 위험을 사전에 평가하며, 문제가 발견되면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정하는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이용자들에게 AI 시스템의 한계와 사용 방법을 제대로 고지하며, 피드백을 수렴해 꾸준히 개선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안전장치(safety net) 없는 AI는 결국 모두에게 해가 되어 돌아온다는 인식을 가지고, 사람을 위한 AI를 지향해야 한다.
유발하라리는 AI를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혁”으로 꼽으며,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인류의 미래가 달렸다고 말한다. AI 시대의 도래는 우리에게 두 갈래 길을 제시한다. 하나는 기술이 신뢰와 공동체를 무너뜨려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불평등과 분쟁을 키우는 암울한 미래이다. 다른 하나는 기술을 잘 규제하고 활용하여 인류 전체의 번영에 기여하는 밝은 미래다. 후자의 길을 택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얼마나 현명하게 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이버 공간의 보안을 강화하고, 디지털 윤리의 나침반을 세우며, 국제 협력의 손을 잡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기술이 인간을 해킹하는 시대에, 우리 인간은 연대와 지혜로 기술을 다스려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디지털 미래로 나아가는 길임을, 유발하라리의 메시지는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ifsPOST>
- 기사입력 2025년03월24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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