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빠리 구석구석 돌아보기 (24)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오늘은 저희가 계획한 딱 한 달간의 빠리 체류의 마지막 주로 들어서는 날. 피로도 중첩되어 있고 초반에 좀 서둘렀더니 갈 곳도 다 가버린 것 같아 몇 분들의 말씀대로 이제는 천천히 쉬어가는 날을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래서 좀 재미없는 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더욱이 저만 좋아하는 나무 보러 가는 날로 정했으니까요. 빠리의 서쪽 끝 부분에 불론뉴 숲이 있다면 거의 비슷한 면적으로 빠리 동쪽에는 뱅센느 숲 (Bois de Vincennes)이 있습니다. 그 숲 가장 아래쪽에 이름도 거창한 빠리수목원 (Arboretum de Paris)이 있네요. 거기를 가려면 이곳에서 RER B를 타고 Chatelet les Halles 역에서 다시 RER A 선을 타고 Joinville le Pont이란 교외선 역에 가야 합니다. 이러면 약 40분 정도 걸려 수목원 바로 근처에 도착하게 됩니다.
빠리 북역은 땅 밑으로만 해서 RER 선 3개, 메트로 선 3개 등이 교차하는 복잡한 역인데, 아마도 빠리를 들러본 분들도 실제 지상의 기차가 출발하는 북역에 나가보신 분은 적을 것 같습니다. 앞에서 든 땅 밑 교통에만 집중하느라고 말이죠. 그래서 실제 이 역의 이름이 등장하게 된 기차 출발역으로서의 북역을 지상에서 한번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북역은 빠리 북쪽 도시들인 릴, 깔레, 보배 등지의 도시로 가는 기차들과 벨기에의 브뤼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열차도 탈 수 있고 유로터널이 뚫린 이후로는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으로도 갈 수 있는 역이기에 지상의 역도 역시 매우 번잡한 상황이었습니다. 기차도 타지 않는 저도 슬쩍 한 컷 했네요.
다음은 북역에서 다시 RER B선을 타고 Chatelet les Halles 역으로 돌아와서 다시 RER A를 타자마자 다음 역인 Gare de Lyon 역에서 내렸습니다. 오직 북역에 내린 이유와 같은 목적으로 말이죠. 이 역은 기억에는 전혀 남아 있지 않지만 제가 처음 프랑스에 온 1985년 6월말에 딱 한 번 탔던 것 같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여름 어학 과정을 하는 Grenoble로 가는 열차를 이곳에서 탄 것이죠. 묘하게 이 역만 기차가 가는 대표 행선지 이름을 붙여 놓았네요. 서울에 '대구역'이라는 이름의 역이 있다고 상상하신다면 이상하게 생각되지요. 그러나 처음으로 기차가 프랑스의 3위 도시인 리용으로 떠나게 되었을 때 프랑스 사람들은 흥분하여 이 이름을 붙여 놓고 지금도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뭏든 이 역에서는 프랑스의 남쪽 주요 도시들인 마르세이유, 리용, 그르노블, 니스 등으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고, 그에 이어서 스위스의 제네바, 쮜리히, 로잔느 등으로 가는 열차들도 탈 수 있어서 역시 북역 못지않게 붐비는 역입니다. 여기서도 사진 슬쩍 찍었지요.
다시 Gare de Lyon에서 열차를 타고 마침내 수목원 입구 Joinville le Pont 역에 내렸습니다. 별로 멀지 않아 보이지만 지나가는 분에게 물어 쉽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사진도 찰칵, 나무 만나는 생각만 하면 입이 벌어지는 이것도 병일 수 있겠지요. 여하튼 오늘은 이곳도 최고 기온이 38도까지 오르는 폭염이 다시 찾아왔는데 말이죠. 그래도 저는 물만난 사람처럼 또다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였네요. 저의 호위병 노릇을 한 저의 아내가 그런 사진을 참으로 많이 찍어 주었습니다. 저야 이 더위에도 (습도가 30% 정도라 그늘만 들어서면 그래도 견딜 만 하기는 합니다만) 나무들 만나는 즐거움에 이러고 있지만, 저 사진 찍어주는 일 외에는 더위만 먹는 괴로운 행로를 함께 해준 아내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빠리 수목원은 뱅센느 숲의 가장 교외 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발길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가족 단위로 큰 카메라를 메고 나무를 관찰하러 오는 분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소풍 삼아 나와서 어른들은 나무 아래서 낮잠도 자고 아이들은 거의 발가벗고 비행기 날리기 놀이도 하고 그러네요. 그 속에 그야말로 지칠 대로 지친 한 사람 사진도 담습니다.
나무들을 보러 갔으니 그다지 재미는 없겠지만 여러분들도 알만한 몇 가지 나무들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입구 바로 옆 화장실 근처에 심어 놓은 배롱나무 (나무 백일홍)가 저희를 반겨 주었습니다. 다음에는 시원하게 벋은 이태리포플러도 한 그루. 그 다음에는 미국에서는 더 크게 자랄 자이언트 세콰이어가 이곳에서도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사진 세 개를 싣는데 알아봐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그 다음으로 주엽나무인데 이 녀석은 꼭 아카시아 잎 같은 복엽을 달고 있으면서 빙빙 꼬면서 아래로 달고 있는 꼬투리의 길이가 족히 30cm 가까이 되는 열매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모습도 신기하지만, 밑둥치부터 줄기 전체에 무시무시한 가시들을 위협적으로 내밀고 있는 모습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점심 샌드위치를 먹을 그늘을 잘 제공해 준 이곳에서는 매우 귀한 우리나라 느티나무도 담습니다. (사진을 꼴라쥬로 올리니 순서가 제 멋대로 되어 버려서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여러분들 공부하시라고 사진 아래에 설명 글을 달지 않습니다.)
그래도 빠리 수목원에 와서 꼭 보고 싶은 나무가 있었습니다. 이 수목원 소개 화면에서 볼만한 나무 1번으로 언급된 구상나무를 말이지요. (이제 한라산 꼭대기에서만 자생하는 귀한 전나무 종류이지요.) 그래서 죽어라고 찾았는데 제 키밖에 안되는 나무에 구상나무 이름표를 붙여 놓았습니다. 실망실망.... 다른 나무들도 이웃의 여러 나무에 이름표가 붙어 있는 경우도 있었기에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요. 죄 없는 아내까지 열을 올리며 함께. 나무 잎이 약간 푸르고 흰 기운이 돈다는 것도 참고로 하면서 근처 전나무 종류는 다 보았는데, 사진 올리는 이름표 없는 나무가 구상나무이기를 바라면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아쉬움을 안고요. 이 더위에 왔는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