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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국경조정(CBAM)의 확산, 수출경쟁력 차원 대응 전략 재정비해야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11월12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4년11월11일 11시11분

작성자

  • 김성우
  • 대통령직속 탄소중립녹생성장위원회 위원,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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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협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파편화된 국가별 대응 정책들이 다양하게 도입되고 있다. 제품에 탄소세를 부과하기도 하고, 탄소를 감축한 실적을 기업끼리 거래하게 만드는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기도 하는 등 각 국가별 사정에 맞게 탄소에 가격을 부과해 감축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탄소 규제가 강한 국가와 약한 국가간 탄소 가격이 달라 국가별 제품의 생산비용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즉, 환경을 위해 탄소 규제를 강하게 시행하는 국가의 제품 생산비용이 높아져 글로벌 경쟁력이 감소하게 되는 불공평한 탄소 가격 차이는 국가간 상품 교역시 특히 문제가 된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가 대표적이다. EU CBAM은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기, 수소 등 6가지 수입품에 대해 생산국의 탄소가격과 EU의 탄소가격의 차이를 수입 시 부과하는 제도로, 2023년 10월부터 2년간 시범사업을 거쳐 2026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시범사업 기간 중 EU 수출 기업들은 대상품목의 제품별 탄소배출량에 대한 분기별 보고의무를 지게 되며, 시범사업 기간이 종료된 이후에는 배출량에 상응하는 CBAM인증서 구매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EU집행위원회는 보고항목, 보고절차, 배출량 산정식 등을 규정한 이행규정(Implementing Regulation)도 마련하여 2023년 8월부터 시행 중이다. 미국도 2023년 6월부터 탄소국경조정 도입과 관련된 법안 5개를 발의하였다. 그 중 ‘PROVE IT ACT(Providing Reliable, Objective, Verifiable Emissions Intensity and Transparency Act)’는 2023년 7월 발의된 후 올해 1월 18일 법안심사회의를 통과하여 입법절차를 진행 중이다. PROVE IT ACT는 미국 에너지부에게 주요국을 대상으로 22개 지정품목(철강, 시멘트, 수소, 핵심광물, 천연가스, 태양광 등)의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집약도를 조사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이다. 더욱이, 지난 4월 16일에는 백악관 기후통상 TF 발족을 발표한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탄소 배출이 많은 상품의 수출(carbon dumping)을 방지하는 기후통상정책을 마련하고, 제품별 탄소배출량 등의 데이터 확보가 TF의 미션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는 산업경쟁력 및 자국산업육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므로 초당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후문이다.

 

영국 정부도 2027년부터 Border Carbon Adjustment(BCA)를 시행한다고 발표하며, 올해 BCA 대상품목을 확정하고 이행 규정 등을 추가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철(iron), 철강(steel), 알루미늄, 비료, 수소, 세라믹, 유리, 시멘트 등과 같은 탄소 집약적 제품이 대상품목에 포함될 예정이다. 영국 정부는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무역 파트너와 BCA의 영향을 받는 기업 및 조직 등과 협력해 무역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하고 필요한 규정 준수 단계도 간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철강협회(UK Steel)는 EU CBAM이 시행된 후 영국 BCA 가 시행되기까지의 1년 동안, 중국 등에서 생산되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철강 제품이 영국 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호주 및 캐나다 등도 탄소국경조정과 유사한 효과가 있는 형태의 제도를 고려하고 있다. 

 

이제 막 시행을 시작한 EU CBAM도 순탄치 만은 않다. 원래 규정대로 올해 1월까지 해당 수입품의 탄소배출량을 보고한 실적이 저조했다. 독일은 대상 회사 중 10%만, 스웨덴은 11%만 기한내 보고해, 초기 이행의 어려움을 나타냈다. 지금은 전환기간이라서 대부분의 회사가 의무보고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는 해석이 나온다. 결국 EU는 기한을 1개월 연장했다. 초기 이행의 어려움은 EU 보다 한국 같은 non EU 국가 기업이 더 심하게 겪고 있고, 중소기업의 경우가 더 심각하다. 작년 10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중소기업 300곳 중 78.3%는 ‘EU 탄소국경세’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또한, 2022년 기준으로 EU향 수출 실적이 있거나 진출 계획이 있는 기업 142개 중 54.9%도 ‘특별한 대응 계획이 없다’고 답했고, ‘원청 및 협력사 대응계획 모니터링’ 24.6%가 그 뒤를 이었다. 주로 철강제품을 수출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현지 고객사로부터 너무 임박해서 자료를 제출해 달라는 요구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제품 생산을 위한 기계 가동 시간 및 소요 전력 등을 집계하기도 어렵고, 엑셀시트로 3~4만 줄에 달하는 정보를 어떻게 보고할지도 막막하다는 호소다. 이는 EU에서 제시한 탄소배출량 계산 방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EU CBAM의 첫 탄소배출량 보고 대상은 국내 기업 1,700여 곳인데 대부분 중소중견 기업이다. 다만,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에 10년간 참여한 경험이 있는 대기업은 1년 전부터 대응팀을 갖추어 대비한 결과, 오히려 기한보다 일찍 보고서를 제출해, 중소기업과는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 

 

우리 기업은 CBAM 의무를 준수해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하고, 탄소배출량 산정시 불리한 기준이 적용되지 않도록 데이터 측정 및 관리체계를 구축하면서, 제품을 궁극적으로 저탄소 제품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내 회사뿐만 아니라 공급망에 대한 고려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CBAM에 대응하는 기업을 돕는 지원에서 더 나아가, 국내에서 시행 중인 배출권거래제를 정비하여 최대한 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제품의 탄소감축을 유인할 수 있는 지원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CBAM 제도를 정교화하거나 설계하는 국가의 제도를 모니터링해 기업들에게 상세 동향을 알려 주고, 기후클럽 등 관련된 국제협력에 적극 참여해 우리의 입장을 국제 기준화해야 한다. 

 

필자는 지난 1월 프랑스 Montaigne Institut가 주최한 EU-Asia Policy Workshop에 참석해 탄소국경조정 및 탄소가격 제도로 인한 기업에의 영향에 대해 논의했고, 지난 3월에는 영국 Chatham House가 주최한 Border Carbon Adjustment Workshop에 참석해 영국, EU, 브라질 등 다양한 국가 전문가들과 함께 탄소국경조정 확산시 개도국의 애로사항에 대해 토론했다. 이 논의 과정에서 탄소국경조정과 탄소가격 제도의 국가별 확산이 현살화 되고 있음을 절감했다. 공통된 국제사회의 기후목표를 향한 장기적 ‘국제협력’ 보다 국가별 탄소정책을 통한 단기적 ‘국제압력’이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고 있다고 느겼고, 어차피 이런 확산 흐름을 막을 수 없다면, 경쟁국 보다 유리할 방법을 찾아 먼저 이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수출액은 6,839억 달러이다. EU 수출액은 약 10%로 681억달러인데 그 중 CBAM 대상 품목의 수출액은 51억달러로 대 EU 총 수출액의 7.5%를 차지했다. 특히, CBAM 대상 품목의 대 EU 수출액 중 철강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89.3%(45억달러)로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며, 알루미늄(10.6%, 5.4억달러)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다른 대상 품목인 비료·시멘트·수소의 대 EU 수출은 544만달러로 대 EU 총 수출액의 0.1%에 불과하다. EU는 현재 CBAM 대상인 시멘트, 전기, 철 및 철강 제품, 알루미늄, 수소 등 6대 품목 외에 유기 화학물, 플라스틱 등을 포함시키는 것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해당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고, 다른 국가의 CBAM도입 및 검토가 이어져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철강 제품은 EU의 주요 철강 교역 상대국의 제품보다 탄소 배출 집약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한국 탄소배출권거래제의 운영으로 인증서 구입 비용이 일부 경감될 수 있겠으나 배출량 산정, 보고서 작성 및 제출 등은 기업들에게 여전히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또한, EU의 10대 철강 수입국 중 영국, 캐나다 이외에 탄소 가격제를 도입한 국가가 없거나 탄소 가격이 한국보다 낮아 단기적으로 한국의 감면 수준은 경쟁국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말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산업통계지표에 따르면, 한국의 제조업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의 28%로, 미국(10.3%)은 물론이고 세계적 제조업 국가인 독일(20.4%) 보다 월등히 높다. 더 심각한 것은 탄소 집약 산업 비중의 경우 독일 5.8% 및 미국 3.7%인 반면, 한국은 8.4%로 산업 탈탄소를 가속화하지 않으면 탄소무역장벽에 의한 피해를 더 많이 보게 된다. 한국은 좋은 물건을 싸게 만들어 전세계에 팔아 왔기 때문에 GDP에 기여하는 산업부문 비중이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데, 이는 우리가 수출하는 제품이 중간재일 경우 다른 국가에서 완성되는 제품의 배출량에도 기여함으로서 우리 나라의 산업 탈탄소 정도가 다른 국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EU와 미국 등 선진국 정부나 기업이 아시아를 포함해 우리의 산업 탈탄소를 점점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우리도 산업 탈탄소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비용이 드는 환경규제가 아니라 판매를 위한 제품경쟁력의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향 전환이 우리 물건을 지속가능하게 판매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후대응를 성공으로 이끄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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