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동의 문화시평 <32>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건립 30주년의 과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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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0일부터 세계 최고의 역사와 권위를 가진 미술축제이며 문화올림픽인 제 60회 베니스비엔날레가 개막되었다. 이번 전시의 총감독을 맡은 상파울로 미술관장인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는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로 전시의 주제를 정했다. 이는 근자의 국제 비엔날레들의 트랜드라 할 수 있는 식민,토착민,이주, 페미니즘, 퀴어 등 비서구적, 비주류 아웃사이더들의 영역과 상통하는 맥락의 주제이다. 그가 정한 주제는 특별히 남미나 아프리카 등 서구의 주류문화인 북반구의 문화에 대응하는 남반구 중심의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미술을 집중 조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올해는 한국관 건립 30주년이 되는 해로서 본전시와 한국관 전시를 비롯하여 4개의 병행전시 등 10여 개의 한국 관련 전시가 참가하여 작가들과 미술 관련 인사들이 대거 현지에 참여하는 관심을 높였다. 본 전시에 이쾌대, 장우성, 김윤신, 이강생 등 4인의 작가가 초대되고, 일본관이나 싱가포르관의 전시 감독을 한국 큐레이터들이 맡는 등 나름 한국미술계의 신장한 역량을 보이기도 했다. 정부나 문화예술위원회, 광주비엔날레 등 공공영역에서도 이를 계기로 K-ART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펼쳤고, 민간 재단이나 화랑 등에서도 유영국,이성자,이승택,신성희,이배 등 많은 작가들의 전시가 펼쳐졌다. 필자의 경우도 3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다국적 작가그룹인 ‘나인드래곤헤즈’의 <노마딕 파티>라는 전시의 커미셔너로 참여한 바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재원과 노력을 투입한 데 비해 한국 미술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국내 언론들은 매년 관행처럼 큰 성과를 거두었다는 의례적 보도를 했지만, 기실 한국의 작가들이나 국가관에 대한 관심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국가관에 수여하는 황금사자상의 영예는 호주 원주민 출신의 작가 아치 무어(54)가 대표한 호주관에게 돌아갔고, 본전시 참여 작가를 대상으로 수여하는 황금사자상은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작가로 구성된 ‘마타호 컬렉티브’가 받았다. 평생공로상에는 터기의 페미니스트 작가 닐 얄터(Nil Yalter)와 브라질 이주 이탈리아 여류작가인 안나 마리아 마이올리노(Anna Maria Maiolino)가 수상하였다.
수상자들이 대부분 남반구 작가들임을 생각할 때, 총감독의 기획 의도나 주제, 지역성 등을 고려한 결과가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 물론 수상 여부가 작품의 수준이나 전시 성과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작가들은 여전히 글자 그대로 이방인이었다는 느낌이었다. 본전시에 초대된 한국을 비롯한 소수의 동양 작가들은 호기심 차원의 구색갖추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원로조각가 김윤신은 아르헨티나에 오래 거주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 이강승은 LA 거주 작가로 감독의 네트워크에 포착된 작가들이기에 기회가 주어진 것 같다.
총감독이 기획한 본전시 이외에 비엔날레의 주 관심사는 국가마다 새로운 예술적 담론을 통해 경쟁하는 국가관 전시일 것이다. 한국관의 경우, 해외에서 활동하며 퐁피두센터의 개인전과 2019년 베니스의 본전시 참여로 국제적 인지도를 얻고 있는 구정아를 대표 작가로 내세워 < 오도라마 시티즈(ODORAMA CITIES)>라는 부제로 전시를 펼쳤다. 의도에 비해 매우 주관적이며 관념적 수준에 머물고 말아 관객과의 원활한 소통과 특별한 주목을 받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전시 공간인 두 개의 방은 모두 미니멀하게 조성되었는데, 한 방에는 바닥에 그려진 무한대의 기호와 뫼비우스 띠의 구조를 가진 크지 않은 조형물이 바닥에 놓이고, 다른 한 방에는 역시 뫼비우스 띠 모양의 조형물과 좌대 위에 설치된 그가 만든 애니메이션 캐릭터 형상의 검은색 디퓨져 조각작품만으로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정제된 공간에 들어서면 부유하는 모종의 향기/냄새가 관객을 맞는다. 작가는 이전에도 빛,소리,향,온도 등 비시각적 요소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여 온 바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냄새로 한국 도시들의 초상을 구현하고자 남북한 방문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이나 탈북자에게 설문조사를 하여 그들이 기억하는 도시의 냄새들을 17개의 향기/냄새로 조향하여 사용했다. 떠나온 고향의 유년 시절의 냄새를 향수하며 촉발된 이번 작품은 향기/냄새가 경계를 초월한 확산을 상징하며 한국적인 향기/냄새와 명상적인 공간을 설정하고자 한 의도와 함께, ‘유기적으로 부유하며 가벼움이나 타자성에 근접한 무언가로 묘사할 수 있는, 결코 정착하지 않는 유기체인 작가 자신의 존재’를 구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의도는 지극히 관념적인 것으로 공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화랑이나 미술재단에서 민간 차원으로 추진한 전시들은 새로운 담론보다는 개인 작가들을 프로모션하는 전시라는 한계를 가진 것으로 언급하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기념하는 몰타기사단 수도원의 전시 《모든 섬은 산이다》전과 광주비엔날레 홍보를 위해 개최된 두 개의 공공적 성격의 전시는 좀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홍보전략이나 이슈적 담론이 제기되지 못한 채, 지극히 자축적 기념행사로 끝난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특히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기획한 한국관 30주년 전은 그간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의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여주는 것에 그칠 뿐, 해외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한국현대미술의 특성을 강조하는 별도의 담론장을 펼쳐 보이는 등 특별한 이슈메이킹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5.18과 주먹밥을 강조한 광주비엔날레 홍보관인 ‘마당’의 경우, 전시장 주변 거리를 홍보용 플래카드 행진이라는 광주스런 생뚱함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우리의 전시들은 비엔날레 기간 중 수다한 행사와 전시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그저 한쪽 구석에서 벌어지는 작은 목소리에 불과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전시나 행사를 볼 때, 한국미술의 글로벌화를 위한 정책과 전시시스템의 변혁을 위한 획기적 전략이 절실함을 느끼게 한다. 비엔날레가 거대한 문화적 비즈니스임을 고려하더라도 어차피 세계적인 축제 무대에 참여하는 만큼 단순한 참가는 이제 큰 의미가 없다. 비엔날레와 같은 제도는 새로운 미술의 언어와 그 수준을 경쟁하는 대표적 플랫폼이면서 보이지 않는 정치와 자본의 각축장임을 고려할 때, 한국미술이 새로운 문화적 가치와 매력을 발산할 수 있도록 국제적 담론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이를 뛰어넘는 대안적 담론까지를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비서구적 담론들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도 어쩌면 기회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구가 만들어 놓은 오리엔탈리즘의 틀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이번 국가관 커미셔너와 작가 선정은 이러한 관행적 사고의 결정판이다. 이는 한국관은 물론 광주비엔날레 등과 같은 국제 행사에서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데, 한국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재외인사를 커미셔너나 감독으로 선정하고, 작가도 국제무대에서 지명도를 가진 인물로 선정했다. 세계화 시대에 자국의 인사들만을 전시기획자로 선정해야 한다는 것은 국수주의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나, 무엇보다 한국 미술과 국제적 흐름을 잘 아는 기획자를 감독으로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며 국제적 지명도가 없는 작가라도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작가를 엄선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충분히 전문가들이 많이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재외인사들의 지명도를 이용하려는 사대주의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
이번 한국관의 감독으로 과거 부산비엔날레의 감독을 맡았던 야콥 파브리시우스 덴마크 아트 허브 코펜하겐 관장과 이설희 덴마크 쿤스트할 오르후스 큐레이터가 선정되었었다. 이들은 국제미술계의 한 유력한 큐레이터와 친연 관계를 가지며 오랫동안 해외 활동 하고 있는 구정아 작가를 선정했다. 감독이나 작가 이들 모두는 한국 미술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는 인사들이란 공통점을 가진다. 이번 감독과 작가 선정은 한국이 자신의 시각을 방기한 채 타인의 시각을 빌어 한국관의 정체성을 보여주려 했던 전략적 착오와 패착으로 보인다. 광주비엔날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90년대 전성기를 누리던 과거 광주비엔날레 감독을 역임했던 인지도 높은 재외인사가 감독으로 재선임되어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국제무대에 보이지 않는 카르텔을 가진 인사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자칫 그들에게 우리의 무대를 내주는 오류를 드러낼 개연성이 충분하다. 이미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으니 자력으로 충분히 우리의 이야기를 할 때도 되었는데,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는 형국이다.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한국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과거에 대한 폭넓은 반성과 혁신을 위한 공론의 장을 만들어 심각하고 진지하게 우리 미술의 글로벌화 전략을 숙의해야 할 것 같다. 숱한 시행착오의 경험을 모아 분석하고, 그간의 연구 성과를 활용하여 새로운 담론을 구체화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자. 담론을 만드는 일에 내부의 역량을 집대성하고 이를 글로벌 무대에 공론화하기 위해 한국을 잘 이해하는 해외 전문가들과의 신뢰 있는 네트워크를 재정비하자. 비엔날레급 전시를 기획함에 있어, 한국적 미술 담론을 우선하는 전시 콘텐츠에 초점을 맞추고, 한국관 전시를 위해서는 커미셔너가 우선이 아니라 한국성을 대표할 수 있는 작가가 우선 선정되도록 운영제도 자체를 조정할 필요도 있다. 감독을 선정하는 위원회가 역대 감독을 역임했던 인사들의 기득권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작가를 먼저 선정한 후 그를 효율적으로 프로모션할 수 있는 기획자를 결합, 참여시키는 방식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를 여러모로 연구하고 전시의 밀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자.
베니스 비엔날레 개최 시마다 반복적으로 특별전을 만들기 위해 국내 유관 단체들이 현지의 공간을 임대하며 수십억의 예산을 쓰곤 하는데, 예산의 효율성이 절실하다. 필요하다면, 기업 협찬 등을 통해 한국관 이외에 현지의 별도의 전용 공간을 마련하여 상시 집중적으로 한국미술을 프로모션하는 방안도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가장 큰 과제는 30년 전, 마지막 남은 국가관을 건립하듯 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감독에 한국의 기획자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의 치밀한 정치적 전략을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어쨌거나 올해 한국관 개관 30주년은 매우 중요한 상징성을 가진다. 더 늦기 전에 정부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과감히 기존의 관행을 탈피하여 글로벌 환경에 맞는 새로운 프레임을 마련해야 한다. 미술계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여 좀 더 치밀하고 혁신적인 한국 미술 글로벌화 정책 마련을 통해 우리의 문화적 역량을 획기적으로 격상시키도록 해야 한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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