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정치 양극화 … 원로들이 나서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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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등 K문화가 세계를 석권하는 일은 우리를 살맛나게 하지만, 정치 양극화로 인한 나라의 소모적인 정쟁은 우리를 침울하게 만든다.
근래 들어 정치권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는 ‘나몰라라’하고 연일 자신의 불법과 비리는 숨긴 채 상대방의 잘못과 문제만 물고 늘어지고 있다. 이들이 벌이는 당동벌이(黨同伐異) 형태의 소동과 소음은 짜증스럽다 못해 절망감마저 느끼게 한다. 선거 국면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통과의례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선거와 상관없이 1년 365일 내내 정치 공방을 일삼는다. 많은 국민은 자신의 지지 정당을 좋아 하기보다 상대 정당을 미워하기 때문에 투표한다는 조사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정당정치는 긍정보다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큰 것 같아 걱정스럽다. 더구나, 국민 누구나 지니고 있는 휴대전화(스마트폰) 때문에 이런 정치적 갈등과 대립은 손쉽게 전 국민에게 시시각각 전파되고 확산되어 국민적 불쾌지수는 높아만 간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오늘날의 정치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궤도를 이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며 민생을 돌봐야 하는 본연의 역할을 포기한 채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재생산 증폭해낸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로 극도로 양극화돼 있는 것이다.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83%는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국민 10명 중 6명이 ‘정치 성향이 다르면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답해 보수-진보 간의 갈등이 심각함을 드러냈다. 17~18세기 피 튀기는 싸움을 벌였던 조선시대의 당쟁(黨爭)정치가 오늘날 재현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오늘날 한국이 처한 안팎의 현실은 매우 어렵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저출산 고령화의 위기를 겪고 있다. 출산율 감소는 노동인구의 감소와 경제성장 둔화로 이어지고, 고령인구의 증가는 사회복지비용을 크게 늘리고 있다. 또 미중 무역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문제,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 등은 외부의존도가 높은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특히, 북한이 최근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를 돕기 위해 군대를 파병한 일은 조만간 우리 안보를 위험에 빠트릴 것이라는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안팎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은 정치적 합의와 사회적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나라의 중심을 잡고 어려움을 다 함께 헤쳐나가야 할 때, 정치권은 국민과 국가는 안중에도 없이 정쟁에만 빠져들어 국민을 속 타게 만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 정파에 치우지지 않으면서 국민에게 두루 존경받는 우리 사회의 원로들에게 역할을 주문하고 싶다. 이들은 현실정치의 이해관계를 초월해 자유로운 입장에 있어 비교적 객관적 입장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 방향이나 방법을 일러줄 수 있다.
언론이나 여론에서 지지해준다면, 원로들은 정치지도자들이 대립을 조장하는 언행을 자제하고 협력을 강조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또 극단적 이념이나 목표를 강조하기보다는 공통의 목표를 설정하고, 국민 통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정치적 리더십을 장려해 양극화를 줄일 수 있다. 나아가 원로들은 정치적 대립이 심할 때 중립적 중재자로 나서 갈등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오랜 경험과 권위를 바탕으로 정치인들 간의 대화를 촉진하고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조선왕조가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데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정치지도자들이 너무 심하게 분열돼 있던 것도 주요 원인이었다.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싸움,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대립, 공화파와 왕정파의 이념적 갈등 등이 국가 통합을 저해하고 개혁과 개방을 통한 국가발전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한 마디로 중심을 향한 ‘구심력’보다 바깥으로 내달리는‘원심력’이 더 커 결국 파국을 맞고 말았다. 이 교훈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자기 입장과 신념을 고집해 ‘원심력’만 키우다 보면 어느새 우리 사회는 갈가리 찢겨나가 파편화된 사회, 지리멸렬한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그 결과가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옴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기준으로 조정과 중재를 통해 ‘구심력’을 확보하려는 지혜와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정치색이 엷으면서도 여야와 보수 진보를 모두 아우르며 국가 전체와 미래를 내다보며 조언하고 조정 중재할 수 있는 원로들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학계 언론계 문화종교계 정관계 등에는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원로들이 다수 있다. 시민사회단체와 언론이 원로들이 나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고 분위기를 잡아준다면,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흐름이 만들어져 국민의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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