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동의 문화시평 <43>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미술계에 시사하는 것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지난 10월 10일 저녁 낭보가 날아들었다. 소설가 한강이 한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이다. 그 소식은 지지고 볶고 있는 정치권과 풀리지 않는 경제문제 등으로 답답한 사회현실 속에 마치 하나의 단비처럼 그렇게 불현듯 찾아온 것이다. 매년 수상자 발표 시기가 오면 유명한 원로 시인의 집 앞에 밤새워 진을 치던 기자들의 모습 같은 건 없어진 지 오래다. 언론들은 앞다투어 수상 소식을 퍼 날랐고 전문가들은 대중예술에 이어 순수 예술 분야에서 K-아트의 물꼬가 터졌다고 평가했다. 국민들은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에 환호했고, 갑자기 출판계와 서점가가 분주해졌다. 독자들은 책을 구하려고 ‘서점 오픈런’을 하는가 하면, 저자 서명이 있는 초판본이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수십만 원에 팔렸다 한다. 최근 그녀의 책은 11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한다.
이 반가운 소식을 접하며, 갑자기 필자는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난 시절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 근무할 때, 한국 문학번역 사업을 담당하던 우리 방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명한 한국의 고전과 현대문학을 영, 불, 독어 등 외국어로 번역하여 해외에서 출판하는 사업이었다. 2005년 한국문학번역원이 출범하면서 이후에는 업무가 그곳으로 이관되었지만, 당시 그 일을 담당하던 입사 동기 J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번역가의 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물론 이 수상의 쾌거는 한국 문학계의 저력과 한강의 예술성이 핵심적 요소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던 그들의 수고가 밑 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강, 그녀의 문학적 성과는 국내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검증된 것이었지만, 그녀는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맨부커상의 국제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공식적인 국제무대에 입성했다. 이 상은 영국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맨부커상과 국적과 관계없이 영어로 썼거나 번역돼 영국에서 출간된 작품의 작가에게 상을 수여하는 국제상으로 이원화되어 있는데 개별작품이 아닌 작품세계 전체를 대상으로 수상자를 선정한다. 한강뿐만 아니라 많은 노벨문학상급 작가들이 이 상을 수상했다.
상의 성격으로 볼 때,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은 그녀의 <채식주의자>,<소년이 온다>를 번역했던 데버러 스미스(Deborah Smith) 일 것이다. 한강 역시 자신의 수상 요인은 오로지 번역에 있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바탕으로 시어와 같이 함축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그녀의 작품을 영어권 독자들이 온전히 그 감성을 느낄 수 있도록 번역해 낸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온전한 번역을 위해 한강과 수도 없이 의견교환을 해가며 문장을 다듬었다 한다. 번역가인 데버러는 ‘틸티드 액시스 프레스(Tilted Axis Press)’라는 아시아의 문학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를 설립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필자는 노벨상 수상의 열기가 한참 뜨거운 그 주간에 아직 관람하지 못했던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을 찾았다. 지난 9월 7일 개막일로부터 한참 지난 시점이어서 한산한 전시장을 여유롭게 둘러보았다. 전시의 제목은 《판소리, 모두의 울림(Pansori, a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으로 ‘판소리’라는 한국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다. 전시는 “인류 공동체에 울려 퍼지는 연대와 성찰의 ‘화음’”을 추구하려는 기획 의도를 가졌다. 공교롭게도 전시의 소제목 작명부터 개막공연 내용의 집필까지 일련의 과정에 소설가 한강이 참여했다 한다. 전시의 3개 섹션의 소제목 ‘부딪침 소리’, ‘겹침 소리’, ‘처음 소리’를 작명하면서 예술감독의 전시 기획 의도가 우리말로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했다.비엔날레는 본 전시장 이외에 양림동을 비롯해 도심의 이곳저곳에 31개의 파빌리온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올해로 30주년을 맞아 가장 큰 규모로 펼쳐졌다. 시간이 여의찮아 본전시만 관람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컸다.
이번 전시의 총감독인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1965-)는 국제적 명성을 가진 프랑스의 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이며 미학자이다. 1990년대 말부터 동료인 제롬 상스와 함께 파리의 전시 공간인 ‘팔레 드 도쿄 (Palais de Toky)’를 운영했고, 2000년대 초반부터 중요한 국제 비엔날레의 감독을 역임한 베테랑이다. 그는 『관계의 미학』이란 저서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간적 상호작용과 사회적 관계를 매개로 하는 예술"인 관계적 예술을 주장했다. 또한 ‘포스트프로덕션’이란 개념을 통해 문화와 예술이 세상을 다시 프로그램하는 방법을 실천해 온 인물이다. 전통적인 예술이 독립적인 작품을 창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관계적 예술은 예술 경험 자체를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소통을 통해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 전시는 그의 명성에 부합되게 5개의 소주제를 개념적으로도 잘 구현하였다. 예년처럼 전시장이 복잡하게 와글대거나, 정치.사회적 개념들이 날것으로 횡행하진 않았다. 그에게 판소리는 다양한 시대와 역사의 소리를 한 자리에 펼쳐 관객들과 소통하는 장(場)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이해하는 소리는 서구적 개념의 소리였다. 전통 판소리가 가진 해학이나 풍자 같은 것 없이 무겁거나 비판적인 것 또는 과학적인 것들이었다. 어찌 그 깊이와 맛을 알고 구현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의 역사나 정서와 밀착되지 않는 다소 겉도는 언어들을 보면서 30년이 된 광주비엔날레가 여전히 온전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5번에 걸친 숱한 시도를 거치고 있지만 아직 당당하게 자신의 소리를 발하지 못하고 해외 인사들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광주비엔날레는 현재 국제적 지명도를 가지고 있다. 세계 5대 비엔날레임을 자처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광주만의 정체성으로 세계 미술계를 견인하는 역할을 하기엔 아직 부족한 건 사실이다. 당당한 내부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필자는 이번 비엔날레 조직 초기에 이 지면을 통해 그런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30살이나 된 성년 비엔날레가 “언제까지 해외 인사들에게 의존해 행사를 치러야 할 것인가?” 였다. 필자는 국내 기획자들의 역량이 결코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사유를 국제무대에 접맥시켜 중심 담론으로 끌어내는 전략이 부족할 뿐이다. 외국의 감독들에게 그 효율적 접맥을 기대하고 계속 의뢰했지만, 그들은 우리의 플랫폼을 자기 주장을 펼치는 장으로 인식할 뿐, 한국의 콘텐츠를 국제무대에 접목할 생각이나 방법엔 관심 없었다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비엔날레의 지명도를 높이는 데는 기여한 효과는 있었다. 어쩌다 접맥의 의도를 가졌더라도 자기들이 이해하고 해석한 오독의 콘텐츠를 접맥시켰을 뿐이다. 광주뿐만 아니라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조차도 이러한 허망한 일들을 계속해 왔다. 외국 감독을 초빙하면 글로벌화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
소설가 한강의 수상 배경을 생각하며 국내의 비엔날레급 전시들이 가질 전략을 떠올려 본다. 이제 국제무대에 당당히 우리의 예술 언어를 접맥시킬 전략을 치밀하게 구축해야 한다. 우리의 힘으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이를 제대로 번역하여 글로벌 미술 생태계의 주류에 접맥시키는 것이다. 글로벌 환경을 잘 이해하고 있는 내부의 인사들이 주도적으로 한국미술의 콘텐츠를 생산하되, 한국을 아는 국제무대의 유력한 비평가나 기획자 혹은 기획사와 협업을 하거나 또는 제대로 된 홍보 대행 전문 주체를 찾아 주류에 접맥하게 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주도적 담론은 무조건 일방적으로 무엇이든 우리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 문화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국제적 보편성을 가지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강의 수상은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시각으로 다루되 적확한 번역을 통해 세계 보편의 주제로 국제예술계의 주류에 접맥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을 포함한 모든 예술 장르의 글로벌화를 위해 글로컬 주제와 적확한 번역 그리고 주류적 문화생태계와의 접목과 소통을 위한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ifsPOS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