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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 가치와 도덕의 시대는 갔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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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11월11일 17시22분
  • 최종수정 2024년11월12일 05시29분

작성자

  • 이경태
  • 前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前 OECD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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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의 초박빙 예상을 비웃는 듯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압승하였다. 그를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들에게 앞으로의 4년은 고통과 절망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들 앞에 놓인 미국은 매우 낯설고 불쾌할 것이다. 트럼프는 한마디로 '개차반'이다. 그 낱말풀이를 네이버에서 확인해 보고 최강대국 국가원수에게 해서는 안될 모욕임을 알았지만 더 적절한 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학생때 문제아동이었고 거짓말, 막말을 예사로 해 대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바람피운 여자에게 입막음용으로 거액을 갖다 바친 죄목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박해라고 우긴다. 2020년 선거패배에 승복하는 대신에 무장폭력시위를 사주했다는 죄목은 지금도 재판중이다(취임 이후에 중지되겠지만). 두 번의 탄핵소추를 당했으나 공화당의원들이 견고한 방탄막을 쳐 준 덕택에 살아남았다. 

 

국정운영방식은 상식과 통념과는 반대이다. 첫 번째 재임때 트위트(지금의 X)에 중요정책을 여과 없이 올리는 바람에 참모들은 뒤치다꺼리하느라고 동분서주했다. 참모들의 조언과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여론의 향배를 살피는 전통적 의사결정은 내동댕이쳐졌다. 이번에는 그에게 토를 달지 않는 충성파, 예스맨만을 등요하겠단다. 이 역시 규범적 상식에는 맞지 않는다.  

 

이런 개차반을 이번에 또 대통령으로 뽑아준 미국유권자들은 도대체 무슨 연유일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미국이 처한 상황이 트럼프형 리더십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유권자의 절반은 그렇게 믿는다는 것이다.미국은 지금 민주주의 후퇴, 국가분열, 인플레, 이민, 낙태, 그리고 패권의 흔들림이라는 도전에 시달리고 있다. 해리스는 민주주의 회복, 국가통합, 재분배, 이민개방, 낙태허용, 동맹중시와 온건한 대중(對中)제재를 내 걸었고 트럼프는 성장, 불법이민자 즉시 추방, 낙태의 엄격한 제한, 중동전과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한 개입축소, 60%의 대중(對中)​관세를 공약하였다. 

 

해리스의 공약들은 개인의 선택권존중과 다양성신장이라는 진보적 가치의 실현을 강조한다. 트럼프공약들은 전통회귀적이다. 좋게 말하면 정통성 회복이고 나쁘게 보면 수구적, 퇴영적이다. 유색인종이 판을 치고 불법이민자, 마약중독자, 노숙자들의 범죄가 창궐하고 남녀 성 구별이 없어지는 난장판 사회로 몰락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고 결연한 자세로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와 국민통합, 국제협력은 전통적으로 보수가치이면서도 진보가치이었다. 즉 보수와 진보가 합의한 보편적 가치였다. 트럼프이전까지 공화당과 민주당은 다투고 경쟁하면서도 이 합의 위에서 국가 대사에서는 초당파적 협력을 유지하여 미국을 민주주의의 모범국가로 발전시키고 유일한 패권국가로 등장시켰다. 

 

그러나 2017년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부터 민주주의는 훼손되고 국제협력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 원칙이 위협당하고 진영에 치우친 당파싸움이 일상화되었다. 트럼프가 분열된 사회를 만들었는지, 아니면 분열된 사회의 민심을 트럼프가 교묘히 이용한 것인지는 논란거리인데 내가 보기에는 후자인 것 같다. 

미국은 경제적 양극화와 그 파생현상인 노숙자의 범람으로 체면을 구기고 있다. 초강대국이 빈곤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난이 일면서 적극적 복지확대를 지지하는 진보와 성장을 강조하는 보수간의 정치적 양극화로 전선이 형성되었다. 민주당은 점점 더 좌클릭하고 공화당은 반사작용 때문인지 더 우클릭하면서 두 진영 간의 갈등은 깊어져 왔다.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패배한 직후에 지지자들이 총기를 들고 의사당에 난입한 폭거는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흔들었다. 배후 조종의 혐의를 받는 트럼프를 이번 대선에서 지지한 유권자들은 민주주의 가치를 더 이상 공유하지 않는 자들이다. 이제 공화당은 민주주의, 퉁합, 국제협력의 가치를 민주당과 공유하지 않는다. 더불어 추구하는 가치가 없어졌으니 보수와 진보는 대화와 타협 대신 적대와 일방적 독주로 물어뜯고 싸우지 않겠는가?

 

트럼프는 성정이 민주주의적 지도자라기 보다는 전제군주에 더 가깝다. 지도자의 책무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을 바로 잡아서 위대한 국가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국민이 무한한 자유를 누리면서 무질서, 무규범, 무책임의 혼돈사회로 전락하는 비정상을 바로 잡아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재건하려고 한다. 그 지난한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권위주의적 통치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대화와 소통으로 타협하고 합의하는 비효율적 민주주의는 미국사회의 병리를 치료하기는 커녕 악화시킨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트럼프를 당선시킨 유권자들은 스트롱맨의 강력한 리더십이 반대세력을 누르고 쾌도난마의 문제해결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트럼프는 민주주의적 제도와 절차를 희생시켜도 무방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강력한 리더십은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우선주의의 관철에 전념할 것이다. 미국의 이익이 최우선이고 동맹국의 이익은 부차적인 것이 될 것이고 필요하면 동맹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국, 러시아, 북한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 

 

트럼프지지자들은 미국이 패권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하고 트럼프가 그 일의 적임자라고 인정해서 표를 던졌을 것이다. 친기업적 정책으로 경제적 우위를 늘려나가고 군비를 증강하면서  제재 강화로 중국을 따돌리는 광경을 상상하였을 것이다. 

시진핑, 푸틴, 김정은 등은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에 대처하는 효과적인 방책을 찾아 내기 위해서 고심을 거듭할 것이다. 그 예측의 지난함은 김정은과의 2019년 하노이정상회담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김정은의 기대를 단칼에 무너뜨리는 굴욕을 안긴 그 장면말이다.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되지 않겠는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도 군사개입은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주고 있다가 막상 일이 벌어지면 뒤통수를 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은 수읽기를 훨씬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시진핑은 재갈공명이 현신하기를 고대할 지도 모른다.

 

아무튼 민주주의의 본산에 등장한 제왕적 대통령이 앞으로 4년간 미국의 황금시대를 재현하고 전쟁 없는 국제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 아니면 국내적, 국제적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킬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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