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산포럼을 통해 본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전략 내러티브의 이해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 제11차 샹산포럼 개최
지난 9월 12~14일 베이징에서는 제11차 샹산(香山) 포럼이 개최되었다. 2006년 시작한 샹산포럼은 매년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샹그릴라 안보대화를 벤치마킹해서 만든 다자안보대화로서 샹그릴라 대화의 중국판 행사라 할 수 있다. 금년 포럼은 “평화를 구축하고 미래를 공유하다(Promoting Peace for a Shared Future)”라는 제하에 열렸다. 올해는 100여 개 국가와 국제기구 대표단 및 각계 학자 등 약 1,800명이 참석한 대규모 회의로 개최되었다. 미국은 참석자 직급을 작년보다 높여 마이클 체이스 국방부 중국·대만·몽골 담당 부차관보를 파견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대독한 축하 메시지를 통해 세계가 100년 만의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세계 인민이 안전과 안정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글로벌 안보구상을 실천하고 지속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국제 분쟁의 근본 원인을 없애며 글로벌 안보 거버넌스를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포럼이 평등, 개방, 포용, 상호 교류의 정신을 유지하며, 공감대를 모으고 상호 신뢰를 심화시켜 전 세계적인 안전 도전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인류 운명 공동체를 구축하는데 새로운 더 큰 기여를 할 것을 희망했다.
사흘에 걸쳐 진행된 이번 샹산포럼의 전체 구성은, 우선 4개 Plenary Session의 주제를 보면, 아태지역의 번영과 안정을 위한 안보협력, 다극체제와 국제질서의 진화, 글로벌 사우스와 세계의 평화적 발전, 그리고 국제제도와 글로벌 안보 거버넌스 등 네 주제로 구성됐다.
첫째 날 회의는 고위급 전문가 간담회(High-end Interview) 형태로 글로벌 안보구상, 글로벌 사우스, 국제 규범, 아태지역 안보, 미중관계, 유럽안보 등을 다뤘고, 특별세션에서 국제분쟁을 보는 청년장교 학자들의 시각, 인공지능 안보(AI Security)를 다루었다. 둘째 날에는 개막식과 전체회의 2개 세션이 열렸고, 오후에 열린 동시진행 분과회의는 아세안과 아태지역 안보아키텍쳐, 동북아 안보, 유럽안보, 중동 평화구상, 미중관계, 신흥기술, 국제 군비통제, 군사분쟁과 인도적 위기 등을 다뤘다. 이날 밤, 만찬 이후 늦은 밤까지 소규모 심층 전문가 회의가 Parallel Session으로 열렸다. 주제는 해양안보, 우주안보와 평화적 이용, AI의 군사분야 응용과 위험관리, 테러리즘 예방, 현대전쟁의 내러티브와 소통, 아프리카 평화와 중-아프리카 안보협력 등이다. 셋째 날에는 전체회의 2개가 개최되어 글로벌 사우스와 글로벌 거버넌스 문제를 다루었다.
| 다극화된 세계질서와 글로벌 사우스
이런 방대한 어젠다를 종합해보자면, 중국은 현재의 국제질서가 본격적인 다극체제 질서로 이행했고 중국이 변화를 주도할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실상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질서는 더 이상 미국이나 서구가 주도하기 어려운 다극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금년 3월 4일 시작되어 3월 11일 끝난 2024년 중국 양회(兩會) 정부 업무 보고에서 시진핑 지도부는 중국의 달라진 대외정책 변화를 강조하며 기존 미국 중심의 단극 국제질서가 아닌 새로운 다극화된 국제질서 구축을 내놓으며 달라진 중국의 대외정책 변화를 보여주었다. 특히 정부 업무 보고에서 2023년도 중국 특색 대국 외교를 전면적으로 추진하여 글로벌 협력 파트너십에 크게 공헌하였고 국제 및 역내 이슈를 원만하게 해결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하였다. 이어 중국은 보다 평등하고 질서 있는(平等有序) 다극화 국제질서 구축을 위해 러시아뿐만 아니라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함께 미국과 서구 주도의 기존 국제질서 변화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 밝혔다.
다극적 국제질서 하에서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에 속한 다수의 국가들과 손잡고 그동안 미국과 서구가 독점해온 글로벌 거버넌스를 개혁하려고 한다. 그리고 글로벌 사우스와 중국을 연결하는 내러티브로 등장한 것이 바로 시진핑 주석이 제시한 글로벌 발전구상(GDI)과 글로벌 안보구상(GSI)이다.
시진핑 주석은 코로나19 기간이던 지난 2021년 9월 유엔 총회 화상 연설에서 글로벌 발전구상을, 2022년 4월 보아오(博鰲) 포럼 화상 기조연설에서 글로벌 안보구상을 제안했다. 그리고 2023년 3월 문명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문명 간의 공존을 골자로 하는 글로벌 문명구상(GCI)을 제안했다. 이로써 발전 → 안보 → 문명으로 확장되는 중국의 3대 이니셔티브가 완성됐다.
글로벌 발전구상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경제회복을 촉진하고, 공동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달성하고 글로벌 개발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한 밝은 미래를 지향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글로벌 안보구상은 시진핑 주석이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제시된 안보개념으로 당시 시진핑은 주권 존중과 영토 보전, 내정불간섭, 각국의 합리적 안보 우려 존중, 냉전 사고 및 일방주의 반대, 집단정치와 진영 간 대결 반대, 안보 불가분 원칙 견지 등을 그 내용으로 제시하였다. 이후 중국은 이 구상을 좀 더 구체화, 체계화하여 친강(秦剛) 외교부장이 2023년 2월 21일 ‘글로벌 안보 구상: 안보 딜레마를 타개하기 위한 중국 방안’ 제하로 중국공공외교협회가 개최한 란팅(藍廳) 포럼에서 글로벌안보구상개념문건(全球安全倡议概念文件)을 발표함으로써 중국의 국제안보에 대한 구상을 공식 수립·제시하였다. 글로벌 문명구상은 서구가 주도하는 문명을 비판하고 중국 주도의 문명관을 피력했다. 세계 문명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문명의 평등·상호 배움·대화·포용을 견지하며, 문명 교류를 통해 문명의 장벽을 초월하고, 문명의 상호 배움으로 문명의 충돌을 초월하며, 문명의 포용으로 문명의 우월을 초월할 것을 우리가 더불어 제창해야 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러한 구상들 중에서 핵심은 발전구상과 안보구상이다. 글로벌 사우스에 속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가난하고, 크고 작은 내외의 분쟁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안보결핍(security deficit) 국가들이다. 이런 나라들에게 안보와 발전은 절박한 문제다. 곧 먹고 사는 문제와 죽고 사는 문제다. 그런데 중국같이 큰 나라가 자원을 퍼부어가면서 이 절박한 문제 해결을 도와주겠다는데, 이를 거부할 나라가 얼마나 되겠는가. 포럼에 참석한 콩고 국방장관은 ‘no security, no development’, 즉 안보 없이는 발전이 없고, 발전이 없으면 안보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처럼 안보와 발전이 절박한 나라들에게 미국이나 서구가 민주주의와 인권, 규칙기반의 국제질서 같은 가치를 아무리 떠들어봐야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과 서구가 왜 중국과의 내러티브 전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된다.
미국과 서구도 요즘 들어 글로벌 사우스의 중요성을 깨닫고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러티브로는 글로벌 사우스의 공감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시진핑 주석이 GSI와 GDI 개념을 처음 내놓았을 때만해도 온갖 좋은 내용만 다 집어넣은 이 개념들이 너무 추상적이고 피상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데 샹산포럼에 와서 보니 중국의 내러티브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잘 먹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질서는 글로벌 웨스트에 속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채널 6개가 제공되는 동시통역은 중국어, 아랍어, 영어, 불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순으로 돼 있다. 이는 요즘 중국이 어느 지역, 어느 고객들을 더 중요시하는지 시사한다.
글로벌 발전구상과 안보구상은 그 내용으로만 본다면 매우 이상적이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내용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발전구상은 일대일로 전략과 결부되어 개발자금 수원국들의 ‘부채 함정’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글로벌 안보구상의 경우 중국이 각국의 주권과 영토 완전성 존중, UN 헌장의 취지와 원칙 준수를 주장하면서도 남중국해에서의 일방적 영해권 주장, 필리핀과의 영해권 분쟁 관련 국제상설재판소의 판결 부정,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주권 침해에 대해 침묵하는 등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 한국에 대한 시사점
최근 글로벌 차원의 지정학적 상황은 매우 혼란스럽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이고, 여기에 더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홍해 민간 상선에 대한 후티반군의 공격, 대만해협-남중국해의 긴장 가능성, 한반도의 위기감 고조 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중·북·러 협력은 동북아를 냉전시대로 되돌리고 있다. 최근 국제정세는 파편화된 세계질서 하에서 새로운 진영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글로벌 곳곳에서 다양한 갈등과 충돌로 인한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증대하는 추세다. 세계는 미국과 서구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웨스트(Global West), 중·러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이스트(Global East), 그리고 인도, 브라질 및 중간지대의 나머지 다양한 비서구 발전도상 국가들을 포함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로 삼분되는 양상이다. 현재 국제질서의 핵심은 글로벌 웨스트와 글로벌 이스트 사이의 경쟁, 특히 미중관계에 있다. 미중관계는 정치와 경제, 이념과 체제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당분간 적대적 경쟁관계가 지속될 전망이며, 글로벌 사우스를 상대로 경쟁적 ‘세 결집’(coalition building)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정세하에서 중국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연대를 통해 세계질서의 다극화를 추진하는 한편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 글로벌 사우스와 전통적인 안보문제 뿐만 아니라 비전통적 안보문제에 대한 논의와 협력을 강화해 나가고자 한다. 문제는 내수 부진과 미국의 압박으로 수출길이 막힌 중국이 과연 상기한 3대 구상을 지속할 여력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한국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안보와 발전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모범적 사례에 속한다. 한국전쟁 이후 세계 최빈국에서 OECD 회원국으로, 새마을운동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일군 경험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적대적 분단상황 관리를 통해 국방과 안보의 노하우를 체득한 독특한 경우다. 그 덕에 한국의 방산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필요로 하는 안보와 발전의 비책을 무기로 삼아 접근하는 전략을 펴야 한다. 중국처럼 일대일로나 인프라 개발에 대규모 자금을 공여하는 방식 대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스스로 안보와 발전의 경로를 발견하게끔 도와주는 지식공유 전략이 우리가 가진 강점이다. 이러한 강점을 앞세워 글로벌 사우스와의 접촉면을 확대하는 것이 향후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과제이다. 한국에게는 우리가 거쳐온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감응적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ifsPOST>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