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왜곡 처벌법에 대한 우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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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왜곡 처벌법’이 지난 9일 국회에서 진통 끝에 통과되었다. 그 과정은 아름답지 못했다. 본회의 상정에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8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야당의 거부권을 제거한 ‘공수처법’ 개정안을 무리해서 처리한 데 이어 ‘경제 3법’ 중 하나인 상법 개정안과 함께 ‘5.18 왜곡 처벌법’도 법사위 전체 회의에 부친 지 30여 분 만에 야당 없이 단독 처리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180석을 가진 여당이 입법 폭주를 강행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히틀러가 40%대 지지로 집권한 후 수권법을 앞세워 독주했던 불행한 역사의 기억이 연상되어 두렵다.
제정된 법은 5.18에 대해 부인, 비방, 왜곡, 날조,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현재의 법으로도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은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불과 얼마 전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관련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무엇이 그렇게 자신이 없어 이렇게 또 법을 만들려 하는지 궁금하다.
국가가 역사적 사실을 정의하고 규정하고, 이를 부정하면 형사 처벌하는 나라가 21세기에 있을 수 있다는 현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법안을 제출한 측에서는 나치에 대한 찬양이나 유대인학살을 부인하면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하는 독일 형법 제130조를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답안처럼 제시한다. 독일의 입법사례는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천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600만 명에 달하는 무저항 상태의 유대인들을 학살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잔혹한 전쟁범죄를 겨냥하고 있기에 누가 보아도 세계적으로 쉽게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문제를 역사적 진실 추구가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접근하게 되면 왜곡이나 허위사실을 처벌해야 할 중요한 역사는 5.18만이 아니라 6.25, 4.19, 천안함, 세월호도 포함될 수 있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는 <역사>란 고정되어있는 실체가 아니고 시대정신의 변화에 따라 다른 해석과 평가를 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E.H. 카에 대비되는 실증주의 역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가 주창했던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과 독립성은 정치로부터의 독립, 종교로부터의 독립, 이념으로부터의 독립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통과된 ‘5.18 왜곡 처벌법’은 역사를 화석화시키고, 국가가 역사적 사실에 관한 판단을 독점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지난번 한목소리로 소리 높여 국정교과서에 반대했던 그 많은 사람의 주장들을 되돌아보면서 바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우리가 더욱더 깊게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어느 신문에서 본 글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5·18 왜곡은 열린 교육과 신뢰성 있는 매체를 통한 진실한 정보 제공, 역사학자들의 객관적 자료 발굴과 이에 대한 홍보로 해결해야 한다. 이를 억압하고 형사처벌하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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