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31) 메타세콰이어와 낙우송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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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나무들이 늘어선 길들이 멋진 정취를 자아내곤 합니다. 키도 크고 늘씬한 모습의 메타세콰이어들입니다. 11월 들어 제가 들른 공원마다 그런 정취를 느끼곤 했습니다.
지난 11월13일 부산시민공원의 메타세콰이어 산책길의 정취
사실 이 나무가 늘어서 있는 곳은 최근 부쩍 '낭만파'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되고 있습니다. 메타세콰이어길은 가을에 연인과 함께 걷고 싶은 곳으로 떠오르고 있지요. 이 나무를 키도 크고 이름도 비슷해서 미국의 거대수목 세콰이어와 혼동하시는 분이 많은데 세콰이어는 북미가 고향이지만 이 나무는 이름은 서구적이지만 중국이 고향이고 잎 모양도 열매 모양도 매우 다릅니다. 중국 양자강 상류에서 이 나무를 발견한 서구학자들이 자국으로 옮겨가서 이 나무와 닯은 세콰이어의 이름과 비슷하게 붙인 셈입니다. 두 나무의 가장 큰 차이는 세콰이어는 상록수인데, 요즘 그렇듯이 메타세콰이어는 잎을 떨구는 낙엽수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사람을 끌어모으는 대표적인 예는 봄의 벚꽃, 가을의 단풍이겠지요. 그렇지만 화려함의 극치인 위의 두 나무들은 낭만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낭만을 논하기에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너무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요.
메타세콰이어는 혼자 서 있어도 제가 참 좋아하는 수형을 가졌습니다. 이른바 콘 즉 원뿔 모양을 하고 있는데 키도 커서 참 우아한 자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우아한 나무들이 죽 늘어서 있는 길, 특히 가을에 잎 색깔이 황갈색으로 바뀌어 있는 곳이면 참으로 낭만을 논하기에 적합한 곳이지요.
그래서 전국에 수많은 메타세콰이어길이 조성되어 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원들에도 죽 늘어선 메타세콰이어숲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다녀본 일산 호수공원, 양재 시민의 숲, 서울숲, 세종 호수공원, 부산 시민공원 어디나 말이죠. 심지어는 이 나무들을 큰 도로변의 가로수로 심어서 도시 전체에 시원한 청량감을 불러온 경우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나무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은 분들도 은연중에 그 나무들이 시민들에게 선물하는 청량감을 누리고 있는 셈이지요. 필자는 늘어선 이 나무들이 이른 봄 옅은 연두색으로 잎을 내면서 주는 청량감도 대단히 좋아합니다. 골프장에 가서도 이 나무들 사진을 찍느라 동반자들과 캐디에게 가끔 불편을 주기도 할 정도로 말입니다.
메타세콰이어와 한 집안인 낙우송은 참으로 메타세콰이어와 혼동하기 쉬운 나무입니다. 필자는 낙우송을 먼저 알았기 때문에 한동안 메타세콰이어를 낙우송의 일종으로 즉, 낙우송인 줄 알았습니다. 두 나무 모두 소속이 낙우송과이니 그렇게 혼동을 일으키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필자가 산업연구원 원장으로 근무할 때 매우 친하게 지냈던 농촌경제연구원 최원장님은 메타세콰이어를 안 사람들이 이 나무를 보고도 메타세콰이어로 알까봐 걱정하곤 했습니다.
떨어질 낙(落) 깃털 우(羽) 소나무 송(松). 이 이름을 필자는 참으로 좋아합니다. 그 이름 석 자로 이 나무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을 잘 그려내고 있으니까요. 소나무 같은 이미지를 주는 침 모양의 잎을 가졌는데, 자세히 보면 그 잎이 마치 새 깃털 모양의 부드러운 모습이고, 더 잘 관찰해 보면 가을에 잎을 떨군다는 그 모든 특징들을 잘 잡아내주고 있으니까요. 좀더 기술적 용어를 쓴다면, 낙엽침엽수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들이 더 자주 접하는 메타세콰이어에 이 이름을 붙이지 않은 것이 오히려 아쉽기만 합니다.
낙우송은 메타세콰이어와 달리 열을 지어 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낙우송이 메타세콰이어보다는 다소 볼륨이 더 있어 호리호리한 이미지의 메타세콰이어가 줄지은 모습에 더 어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두 나무는 같은 과에 소속되어 있으니 잎 모양도 비슷하지만 열매 모양도 비슷합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여러 조각이 붙어 있는 동글동글한 축구공 같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 열매들이 익으면 그 조각들 사이가 벌어져서 그 속에서 종자가 바깥으로 날아가 버리고 남은 모양이 마치 작은 솔방울을 닮았습니다.
약간 어려운 기준인 나무의 볼륨 즉, 전체적인 수형의 호리호리함의 차이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 두 나무를 구분하는 방법에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필자가 2014년 11월17일 위에서 언급한 최원장님과 함께 홍릉수목원을 방문했을 때 숲해설사는 낙우송 등걸 아래의 골이 더 깊이 파여진다고 했습니다. 이 기준은 두 비슷한 나무들이 홍릉수목원 같이 같은 공간에 가까이 함께 있을 때 적용 가능한 기준일 뿐, 각각의 나무들을 만나면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나무들이 따로 있어도 적용할 수 있는 기준으로는, 가지에 잎이 달릴 때 메타세콰이어는 두 잎이 가지를 사이에 두고 딱 마주나고 낙우송은 다소 어긋난다고 하는 기준입니다. 양재시민의 숲에서 찍은 사진들은 그런 대로 이 기준이 적용 가능한 경우입니다. 필자가 이들 두 나무를 볼 때마다 이 기준의 적용을 시도하는데 대체로 매우 어렵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좀 더 늘씬한 메타세콰이어들은 줄지어 심어지는 경향이 있고, 낙우송은 개체들이 흩어져 따로 식재되는 경향이 있다는 더 쉬운 기준을 적용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법 크게 자란 나무들의 경우라면 적용할 수 있는 참으로 멋진 열쇠가 있습니나. 낙우송은 물가를 좋아하는데 대체로 물가의 흙이 진흙인 관계로 그 속에서 공기를 만나지 못하여 답답해져서인지 갑자기 뿌리 일부를 주변에 불쑥 내미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물혹이라고도 합니다. 때로는 이 물혹이 좋은 볼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필자가 만난 가장 인상적인 물혹의 모습은 부여 근처 청남대의 낙우송들이 만든 작품들입니다. 최근에는 TV로 LPGA 골프 경기를 관전하다가 한 선수가 옆으로 빗나간 볼을 페어웨이로 쳐내려고 다가간 낙우송의 물혹들이 필자의 눈길을 끌기도 하였습니다. 메타세콰이어는 그런 물혹을 내밀지 않으니 가까운 친척이라도 성격은 매우 다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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