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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독트린 관점에서 본 북한의 핵 무력 법령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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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10월10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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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9월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 무력 법제화를 선언했다. 『조선민주주의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핵 교리를 법령의 형식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주요 내용으로 핵 무력의 사명, 핵 지휘통제, 핵무기 사용조건 등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법령에는 핵 무력의 작전적 사명, 핵 선제 사용, 자동 핵 타격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를 두고 북한의 핵 교리가 매우 자의적이고 공격적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핵보유국 가운데서도 가장 공세적이고 급진적인 핵 독트린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실제 북한 핵 능력의 발전과 교리의 진화는 여러 측면에서 경계해야 할 부분이 많다. 다만, 북한 핵 위협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발언이나 문구에 매몰된 접근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된다. 북한은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핵 보복 능력과 작전적 능력을 갖춘 실질적 핵무장국이다. 또한 물리적 능력의 향상과 아울러 핵전력 운용에서도 나름의 고민과 학습을 진행해 온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평양의 핵 교리를 북한만의 특수한 산물이 아닌 냉전 시대부터 형성되어 온 핵 억제의 보편적 논리와 개념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하고 그 바탕 위에서 우리의 과제를 모색하고자 한다.


억제 태세: 확증 보복과 비대칭 확전의 동시 추구

 

법령 제1조는 핵 무력이 전쟁 억제를 기본으로 하되, 억제 실패 시 결정적 승리를 위한 작전적 사명을 수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억제 이론에서 말하는 ‘확증 보복(assured retaliation)’과 ‘비대칭 확전(asymmetric escalation)’이라는 두 가지 임무를 동시에 지향한다는 것이다. ICBM 개발을 통해 미 본토에 대한 보복 능력에 주력해 온 북한은 수년 전부터는 전술핵을 실제 전장에 사용하는 ‘핵전쟁 수행 능력(nuclear war-fighting capability)’을 키워왔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등장하고 있는 미사일 회피 능력과 타격 정확도가 한층 향상된 신형 전술 유도 무기들(KN-23, 24, 25 등)이 그 일환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 태세가 대미 확증 보복(전쟁 억제)에 그치지 않고 전술핵의 실전 사용을 불사하는 비대칭 확전(작전적 사명)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해 왔는데, 금번 법령을 통해 이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북한이 핵 무력의 작전적 사명을 강조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미 본토에 대한 응징 보복에만 의존할 경우 억제의 신뢰성 면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반도, 일본 등에 대한 핵 타격을 통해 미 증원군 전개를 거부하고 전술적 수준에서 핵전쟁 수행 능력을 과시하는 ‘거부적 억제’ 전략에도 관심을 경주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핵 지휘통제: 독단적 지휘통제 하 조건부 위임

 

법령 제3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와 관련된 모든 결정권을 갖는다고 하면서도 지휘통제 체계가 위험에 처하는 경우 결정된 방안에 따라 핵 타격이 자동 단행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핵 지휘통제(NC2: Nuclear Command & Control)의 유형으로 볼 때 ‘독단적 지휘통제(Assertive NC2)’를 기본으로 하되 조건부 위임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에게 집중된 핵 지휘통제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쉽게 이해되나, 자동 핵 타격 조항은 일견 기괴하게 느껴진다. 수십, 수백만 명의 인명을 앗아갈 수 있는 핵 사용 결정이 고도의 숙고와 결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 조건에서 자동 작동된다는 것이 섬뜩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동 핵 타격은 참수 작전이나 무장해제 선제공격을 두려워하는 북한의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억제 논리에 충실한 선택으로 이해될 수 있다. 고도의 중앙집권적 지휘통제를 고집할 경우 한미의 참수 작전 유인을 높이고 그만큼 북한의 핵 억제력이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냉전기의 주요 핵 국가들도 이와 유사한 장치를 고안해 낸 바 있었다. 1980년대 초반 소련이 고안해 낸 ‘죽은 손(dead hand)’이라는 시스템이 대표적 사례다. 레이건 행정부가 모스크바를 정밀타격할 수 있는 퍼싱-2 미사일을 서유럽에 배치하는 등 공세적 태세로 나오자, 유사시 별도 명령 없이 핵 보복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만들었던 것이다. 지도부가 제거될 경우에도 소련의 핵 보복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미국의 선제 핵 공격 유인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경우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군사 지휘관에게 핵 사용 결정 권한을 사전에 위임한 바 있다. 전략공군사령관, 북미항공우주사령관, 그리고 모든 지역사령관에게 워싱턴과의 교신이 불가능할 경우 독자적 판단에 따라 핵 사용을 허가하는 서한을 보냈던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도 런던과 파리 지도부 무력화 시 잠수함을 통한 SLBM 응징을 강조했는데, 이 역시 선제공격과 핵 억제 신뢰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 조치였다.

 

핵 선제공격: 핵무기 사용조건

 

핵 무력 법령 제6조는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 즉, (1) 북한에 대한 핵무기 또는 대량살육무기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2) 국가지도부 등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및 비핵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3) 국가의 중요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4)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가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경우 (5) 기타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 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해 핵무기로 대응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이다. 비핵공격에 대해서도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천명하고 있고, 공격 임박 판단만으로도 핵 사용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공세적, 자의적 핵 사용”, “가장 공세적이고 급진적인 핵 독트린”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소 단편적이고 표피적인 해석이다. 북한의 핵 교리가 갖는 함의와 위험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다른 핵보유국의 핵 독트린과 비교하는 핵전략의 전반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먼저 비핵공격에 대해 핵무기를 선제 사용할 수 있다는 교리는 특정 조건에 처한 핵보유국이라면 항상 채택해 온 보편적인 교리다. 여기서 특정 조건이란 압도적 재래식 전력을 보유한 적대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파키스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파키스탄은 1998년 핵실험 이후 재래식 분쟁에서도 핵 선제 사용을 불사한다는 이른바 ‘비대칭 확전 태세’를 채택하고 있다. 재래식 전력만으로는 인도에 대적할 수 없기 때문에 선제 핵 사용 위협을 통해 재래식 분쟁의 억제와 상황 악화 방지를 도모하려는 것이다. 또한 인도가 2004년 기존의 방어적 독트린에서 탈피하여 신속하고 결정적인 재래식 공격을 표방하는 새로운 군사전략 ‘Cold Start’를 수립하자, 파키스탄은 ‘전범위 억지(full-spectrum deterrence)’를 채택했다. 소형 핵탄두를 다양한 투발 수단을 통해 전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으로 북한 핵 무력 법령 제1조가 밝히고 있는 핵무기의 “작전적 사명”과 유사한 맥락이다.

 

핵 선제 사용(nuclear first use) 정책은 냉전 시대 나토의 독트린이기도 했다. ‘대량보복전략’, ‘유연반응전략’ 등 미 행정부별로 핵 사용의 방식과 표적 선정에 있어서는 변화가 있었지만, 유럽 전역에서 재래식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한다는 면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소련의 위협에 나토가 재래식 전력 증강으로 대응하는 것은 정치적, 재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러시아도 냉전 종식 이후 선제 핵 사용 교리로 전환했다. 1982년에 채택한 ‘선제 핵 불사용’ 원칙을 1993년에 뒤집은 것인데, 소련 해체와 공산 진영의 붕괴로 재래식 균형이 불리하게 역전됐기 때문이었다. 2020년 6월 러시아는 『핵 억제에 대한 러시아 국가정책의 기본원칙』을 공개했는데, 이를 통해 재래식 분쟁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동 문건은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네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데, ‘러시아 정부 또는 군사시설에 대한 공격’, ‘러시아의 존립을 위협하는 재래식 공격’ 등 북한의 핵 무력 법령이 밝힌 조건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격 임박 판단 시의 핵 사용

 

핵 및 비핵 공격 임박 시에 핵을 사용하겠다는 교리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핵을 보유하고 있는 적대 국가들이 상호 간에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선제공격의 가능성이다. 선제공격을 당해 자신의 핵전력이 일거에 제거된다면, 핵 보복을 하지도 못한 채 순식간에 패배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제공격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냉전 시대에 고안된 장치가 ‘경고 즉시 발사(LOW: Launch On Warning)’ 태세다. 적국으로부터 공격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다는 것이 조기 경보 레이더를 통해 탐지되면, 실제 영토에 떨어지거나 확인되기 전에 핵 대응이 시작되는 방식을 말한다.

 

그러나 징후에 기초한 이러한 핵 발사 태세는 레이더의 오작동 등으로 우발적 핵전쟁을 촉발하는 심각한 위험성을 갖고 있다. 실제로 냉전 시기 이러한 ‘허위 경보(false alarm)’로 아슬아슬했던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우발적 핵전쟁의 위험성이냐, 선제 핵 피격의 두려움이냐를 놓고 선택해야 하는 ‘use them or lose them’ 딜레마를 겪었던 것이다. 북한의 경우에는 미국의 핵 공격을 흡수하고 난 후의 보복이라는 것은 더욱 생각하기 어렵다. 따라서 공격 임박 판단 시에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은 핵전략 일반에 내재된 딜레마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 핵 교리의 성격과 한미의 이중 과제

 

금번 핵 무력 법령은 북한 핵 교리의 진화적 결과물이다.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됨에 따라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북한 나름의 학습과 고민이 있어 왔고, 이것이 이번에 법제화를 통해 종합적으로 제시된 것이다. 핵 무력 법령으로 확인된 북한의 핵 교리는 냉전 시대 정립된 억제 개념을 차용하여 자신에게 최적화된 억제 모델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핵 무력의 작전적 사명, 핵 선제 사용, 자동 타격 등 위협적 표현이 눈에 띄지만, 이는 재래식 전력의 열세, 참수 공격에 대한 두려움이 반영된 억제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억제는 정확한 의사전달을 전제로 작동한다. 능력과 의도가 있어도 이를 적대국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억제가 작동하지 않거나 반대로 과잉 공포와 대응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북한이 자신의 핵 교리를 법제화하여 공개 천명한 것도 자신의 핵 보유 지위를 공고히 하는 가운데 핵 억제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핵이 사용된다고 공언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와 위기 고조를 막으면서 핵 억제력을 확실히 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북한의 핵 교리가 억제를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핵 사용 문턱의 하향화와 위기 불안정 가능성 때문이다. 핵 무력의 작전적 사명이 강조된다는 것은 위기 단계별 북한의 핵 사용 옵션이 다양화되고 핵 사용 임계점이 낮아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핵 자동 타격에서 나타나듯이 핵 지휘통제도 철저한 독단형을 고집하지 못하고 위임의 압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그만큼 오판과 사고로 인한 우발적 핵전쟁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위험이 있다. 여기에 북한의 핵전쟁 수행 능력 강화에 맞서 한미 역시 공세적 대응으로 맞설 경우 위기 안정성이 더욱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남북 모두 상대의 공격 징후가 보일 때 선제타격을 한다고 하면 상호 공포의 연쇄효과가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장억제의 실효성 제고와 우리 군의 첨단 재래식 억제 역량 강화는 한미가 당연히 해 나가야 할 정책 방향이다. 다만, 이때 북한 핵 교리에 내재된 특성과 위험성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억제력 강화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릴 경우 역설적으로 핵전쟁의 가능성을 높이는 우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군의 3축 전략 중 위기 불안정을 심화시킬 수 있는 킬체인(Kill-Chain)이나, 작전적·경제적 한계가 분명한 미사일 방어(KAMD)보다는 보복 위협에 충실한 대량응징보복(KMPR)에 역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또한 위기 시 미 전략자산의 전개나 억제 메시지 발신의 경우에도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확장억제 노력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심지어 재래식 무력 충돌이 이미 발생한 경우에도 ‘전쟁 중 억제(intra-war deterrence)’와 ‘확전 통제(escalation control)’의 관점에서 핵전쟁을 끝까지 막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미의 억제 태세는 북한이 핵 사용을 꿈꾸지 못하게끔 충분히 강력해야 하지만, 동시에 의도하지 않은 핵전쟁의 비극을 촉발할 정도로 불필요한 공포와 오해를 불러일으켜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북한 핵 위협의 성격에서 나오는 딜레마적 상황이다. 억제의 실패 못지않게 위기 안정성의 실패를 경계해야 하는 것, 바로 이 이중적 과제가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인 것이다.<끝>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2-10월호 제46호](2022.10.4.)에 실린 것으로 연구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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