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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30년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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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8월28일 17시10분

작성자

  • 정영록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경제발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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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24일로 한·중 수교 30주년이 되었다. 사실, 좀 착잡하다. 주변 여건이 녹녹치 않기 때문이다.  또 우리의 가장 중요한 협력대상국인 미국과 중국이 서로 상당한 수준의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교 당시 인당 소득 기백 달러에 불과했던 중국이 지금은 12,500달러에  달했다. GDP 규모 17.7조 달러로 미국의 근 80%에 육박하고 있다.

경제대국 뿐아니라, 부자나라가 되었다. 한·중 양국인이 서로를 쳐다보는 눈도 많이 달라졌다. 정부 간의 관계에서도 THAAD배치를 전후한 외교압박, 그리고 최근의 3불1한(三不一限)논쟁 등등. 우리도 인구 5천만 명 이상의 인당 소득 3만 달러 국가로 세계 7번째 국가이다. 수교 당시에 비해 국력이 크게 신장되었다. 그만큼 한중관계에서도 훨씬 당당해지고,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한·중 수교의 의미   

 

  1992년 한·중 수교 당시는 구소련 해체라는 전 세계가 격동을 한번 거친 직후였다. 이후에는 미국이 주도적으로 세계질서를 만들어 가는 시대였다. 우리나라도 사회주의권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북방정책을 시작하였다. 지난 한 세대간 의 한·중 관계는 각자가 국민국가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부국강병(富國强兵) 가운데 부국(富國)에 방점이 주어졌던 시기였다. 특히, 양국이 인당 소득 1만 달러 달성에 매진하던 시기로 상호이익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시기였다. 

 

특히, 우리나라는 통상국가로서 그동안의 OEM위주의 대외수출경제체제를 탈피할 필요가 있었다. 그 측면에서 우리경제는 중국에서 거의 처음으로 본격적인 해외투자 실험을 거치게 되었다. 조선족 등의 도움으로 현지제조를 통해 수출선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수출선을 개척할 수도 있었다. 물론 중국내수시장도 개척하게 되었다.

 

  당시는 막 사회주의권이 몰락하였고, 미국의 주도권이 워낙 우세하였던 때였다. 미국은 과거 후진국들의 발전경로를 지나치게 맹신, ‘중국이 커봐야 얼마나 크겠어’라는 판단이 있었다. 미국 주도권을 확실하게 믿었던 것은 아닐까? 특히, 후진국은 경제가 발전 된다면 자연히 민주화 욕구가 분출, 사회전체도 민주화 될 것이라는 다소 안이한 판단을 한 것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한·중관계의 변곡점은 역시 2001년 중국의 WTO가입 이었다. 전 세계에서 유수의 기업들이 차이나 러시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당시로서는 큰 액수인 연간 5백억 달러이상 규모의 투자가 중국으로 유입되었다. 2010년까지 10년간 누적 기준으로 7천억 달러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이후 중국은 세계교역 시장에서 수출을 중심으로 2013년부터 무역 최대국가가 된다. 

 

사실, 한·중은 이 과정에서 미국 주도의 세계 공급사슬 구축 기조에 적극 편승하였다. 특히, 시장기능 활용, 규모의 경제에 의한 최소비용, 인센티브 부여에 의한 창의성 제고, 비교우위에 기반한 개방 등 소위 경제효율성 4요소를 적극 받아들였다. 자연히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도 중간재를 중심으로 중국에 대대적으로 수출했고, 중국에 투자한 기업들은 전 세계 시장으로 수출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도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공급사슬의 한 개의 중심축으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체제가 한 세대 이상에 걸쳐 구축되었고, 고착화 되었다. 결국 경중안미(經中安美)라는 정·경 분리(?)가 어느 정도 가능 하였던 것이다.

 

Paradigm Shift와 신국제질서 태동 움직임

 

  2013년의 다보스포럼 개최를 전후해서 뜬금없이 제4차 산업혁명이란 화두가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를 디지털 대전환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미래변화에 대한 예측서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흥미롭게도 그 해는 전 세계적으로 인류의 인당 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선 바로 다음해였다. 동시에 전세계 수출입 양방향의 무역량이 전체 경제규모의 절반을 차지하는 해였다. 도시화율도 50%를 넘어섰다. 

 

  사실 인당 소득 1만 달러 달성은 많은 개발국가들이 지향하던 꿈의 숫자였다. 가장 최근인 2021년에 인당 소득이 1만 달러를 넘는 국가는 제일 마지막인 멕시코를 포함 68개 국가였다. 전 세계 200여개 국가전체로 보아서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었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인당 소득 1만 달러가 넘었다는 것은 전 세계의 총수요를 맞추어 줄 정도의 총공급력을 갖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해 본다. 즉,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었을 수도 있겠다 하는 추론인 것이다. 그만큼 수급만 잘 맞춘다면 세계는 이미 살만큼 살게 되었다는 것을 아닐까? 

 

여기서부터 지키는, 즉 부가 축적된 만큼, 지켜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다시 강병(强兵)이 화두로 떠오른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그 이면에는 강대국들이 보유하고 있는 상당한 규모의 군수산업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욕구도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태에서는 더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디지털”이라는 군수와 관련된 새로운 산업의 쌀을 발견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강병이 화두가 된 것은 아닐까?

 

  한편 정치적으로는 거의 전세계가 공화정으로 옮아갔다. 물론 아직도, 중국을 포함, 미국마저도 직접선거가 아닌 간접선거를 통해서 최고지도자를 뽑는 형태가 남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이 공화정을 채택하고 있다. 푸틴의 꼼수 장기집권이나, 시진핑의 우상화 조짐도 간단치 않은 화두다. 하지만, 이는 과도기적인 현상이 아닐까? 

 

어쨌든, 세계는 부국강병을 추구하던 지난 300년의 국민국가 시대를 마감하는 과도기가 아닌가 한다. 그 핵심이 다보스포럼이 제기한 제4차 산업혁명이다. 이는 결국 인류적대전환(paradigm shift)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자연히 미국과 중국관계도 재구축 될 것이다. 두 나라 다 모색단계에 있을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리쇼어링(re-shoring)을 추구하고, 반도체 동맹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자기모순에 빠질 소지가 있다. 앞에서 거론한 미국경제의 전매특허인 경제효율성 4요소를 부정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류가 신권, 군주제, 공화정으로 옮아온 명분은 더 많은 사람에게 자유와 인간다운생활을 제공하는 행복이었다. 특히, 정치권력도 수단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미국만이 옳다는 주장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지나치게 군수산업을 유지하려는 목소리를 수용하는 것은 세계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국민국가시대에 강병의 목적이 국가를 지키는 것이지 살상무기를 사용, 딴 나라를 침범하자는 것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적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결국 대대적인 구조조정, 군수산업의 민수전환 등등이 불가피할 것이다. 


한·중 미래 30년의 향방 

 

  각계에서 대중(對中)정책을 위해서 다각적인 생각들을 쏟아내고 있다 1).​  그러나 뾰족한 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일단, 정부가 현안 당면문제를 슬기롭게 풀어 나갈 필요가 있다. 현안은 중국이 제시하고 있다는 3불1한의 문제이다. 동시에 CHIP4, IPEF 동참 등에 대한 우리의 입장정립일 것이다. 

 

  우선, 중국에 대해서도 입장을 떳떳이 밝히고 설명해야 한다. 어정쩡하게 비겁한 태도를 보일 일이 아니다. THAAD배치는 남북한 대치상황이고, 북한이 실질적 핵보유국인 만큼, 우리도 핵을 갖든지, THAAD체제라도 갖추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설득해야한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를 반문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이 지나치게 우리를 압박한다면 공동전선으로 중국을 압박할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겨야한다. 즉, 북한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획기적으로 전환, 오히려,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서 한국을 중심으로 북한, 미국, 일본과 연합하는 “한국판 QUAD”도 결성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또한 CHIP4나 IPEF 참여는 대외경제통상국가로서 불가피한 선택이고, 협의 과정에서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배타적이 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대해서도 단지, 중국이 너무 커 가는 것에 대응하는 도구로만 활용되는 데는 분명한 반대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문제는 민간과 진출기업의 대응이다. 민간은 공공외교 등을 통해서 유대를 지속해야 한다. 진출기업들은 현지에 나가 있는 우리 공관과 KOTRA 등 공공기관과 적극 협력해야 한다. 현실적일지는 모르지만, 전통산업과 첨단산업영역을 분리 협력을 추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결국, 비민감 산업에서는 민간이 물 흐르는 대로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 지방을 훨씬 더 중시하는 다원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대중(對中)정책이다. 어떤 이는 냉철한 국가이성을, 어떤 이는 국가혁신을 주문하고 있다. 너무 관념적이다. 중국은 훨씬 현실적이다. 뭔가 손에 잡히는 공동의 과제를 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이 미래 과제를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아시아가 주도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한·중이 적극 협력해야 한다. 단순한 부국강병에 추수(追隨)했던 국가발전 이념을 재조정해야 한다. 그 대안은 부유하고 행복한 국가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이 정도의 발전이라면 물질적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 하는 논의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앞으로 어떤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협의와 합의다. 단순히 가치를 동맹의 축으로 내거는 것은 취약할 수 있다. 자유, 민주, 인권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하지만, 극히 주관적 요소도 있기 때문이다. 미·중·러 등 실질적 주도국의 세계관에 대한 인식전환을 우리가 촉구해야 한다. 한·중 지식인 및 지도자가 이를 협력과제로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탈국민국가로 연결되고, 어쩌면 지구촌(global village)의 개념이 자리 잡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상상도 해본다. 그 핵심에 21세기형 대학의 창조적인 운영이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필자가 아시아연합대학 출범을 주창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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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자도 “한.중 수교 30주년과 우리의 고뇌” (서울경제신문, 2022년 7월 25일자), “한중 미래 30년‘경협다변화’가 정도” (문화일보; www.munhwa.com/news/view.html?no=2022082301033111000001)를 기고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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