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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환평형기금의 예산전용, 바람직한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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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9월12일 17시10분

작성자

  • 강태수
  •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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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립 이후 70년간 쌓인 국가채무가 약 600조원이었는데, 지난 정권에서 무려 400조원이 추가로 늘었다.”

“국가채무 증가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가 떠안게 될 것이다”

 

지난 4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주재 발언이다. 정부가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재정준칙이란 국가채무나 재정적자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게 관리하는 규칙이다. 추가경정예산 수립은 윤석열 정부에서는 금기어다. 국채를 더 발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거다.

 

문제는 올해 세수 결손 예상액이 43조원을 상회한다는 점이다. 이를 추경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메꿔야 한다. 정부가 국채 발행을 피하면서 세수 부족을 채우는 방법은 세 가지다. ①올해 편성한 예산을 안 쓰거나<예산 불용(不用)>②작년에 쓰고 남은 돈을 사용하거나(세계잉여금) ③공공자금관리기금(이하 공자기금) 재원을 당겨쓰는 것이다. 

 

'공자기금‘은 전체 기금을 통합 관리한다. 일종의 ’저수지‘ 역할이다. 여유가 있는 기금으로부터 재원을 빌리고 재원이 부족한 기금에는 돈을 빌려준다. 

 

지난 9월 3일 기재부는 외국환평형기금 20조원을 공자기금에 조기상환하고, 이를 일반회계로 전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원화 외평기금→공자기금→일반회계 전용」 채널을 가동하는 거다. 세수 부족액 가운데 20조원을 외평기금 원화자금으로 땜질하는 아이디어다. 

 

외평기금은 어차피 공자기금에서 끌어온 돈이다. 끌어온 돈 갚겠다니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공공자금관리기금에 낼 이자를 아낄 수 있다. 외평기금은 국고채 10년 만기 금리 수준으로 공자기금 돈을 빌려 쓴다. 대략 2.7% 정도다. 

 

더구나 ‘달러’ 외환보유액을 허무는 게 아니다. ‘원화’ 외평기금을 쓰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으로 카운트되는 ‘외화’ 외평기금은 종전과 변화가 없다. 따라서 외환부문 방어벽이 훼손되지 않는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묘수(妙手)라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그런데 시장 반응이 좀 떨떠름하다. 세수 부족을 꼼수로 메우려다 외환 방어벽이 흔들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평기금을 다른 목적으로 쓰면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정부가 의도치 않은 반응(unintended consequences)에 직면할 리스크가 크다. 

 

①앞으로는 설혹 정부가 외평기금 원화 보충 목적으로 외평채를 발행해도 시장이 당국 의도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껄끄러운 국채 발행을 대신하는 눈 가리기 잔기술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우려가 커지는 거다. 재정준칙 법제화 의지가 의심받을 수 있다. 

 

②향후 미국에 상설통화스와프를 요구할 때 논리상 수세에 몰릴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외환보유 방어벽을 헐어 세수 부족을 메우는 마당에 미 측에 통화스와프를 요청한다? 미국 중앙은행 설득에 어려움이 클 것으로 보인다.

 

③앞으로 달러 매입이 시급한 때 일반예산 전용 중인 자금을 신속히 외평기금으로 환원시킬 수 있을까. 「일반회계→공자기금→원화 외평기금 복귀」 채널이 위기 상황에서 빠르게 작동할지 의문이다. 1997년 11월 외환위기 때 공개된 외환보유액은 244억 달러였다. 하지만 즉시 사용 가용한 금액은 달랑 11억 달러뿐이었다. 외환보유액의 69%를 국내은행 해외지점에 분산 예치 중이었기 때문이다. 해외지점 달러를 국내로 반입하는 데는 상당 기일이 소요된다. 정작 촌각을 다투는 위기 시 쓰지도 못했다. 흑자 도산 리스크다.

 

‘원화’ 외평기금의 목적은 세수 부족을 메꾸는 게 아니다. 이번 정부 조치는 필요하면 언제든 외평기금을 빼서 쓸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보낼 수 있다. 정부는 외평기금 전용 조치가 초래하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대해 설명력과 대응력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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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9월12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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