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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 돈키호테처럼 저질러라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1월12일 19시22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9시40분

작성자

  • 박명성
  • 신시컴퍼니 대표,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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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 돈키호테처럼 저질러라
문화는 언제나 중요했다. 지금까지 문화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정부는 없었다. 그러나 문화융성을 국정기조에 넣은 것은 이번 정부가 처음이다. 역대 정부에서는 한가롭게 무슨 문화 타령이냐는 분위기가 있어왔고 그래서 문화정책은 국정 순위에서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이런 흐름에 비추어보면 국정기조에 문화융성을 넣은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 할 만하다. 1년 전 필자가 속한 문화융성위원회가 만들어진 것도 이 같은 국정기조를 실행하기 위한 장치라 하겠다.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두 법의 취지는 모든 국민이 문화예술을 향유하도록 하자는 국정기조와 맥을 같이 한다. 지역문화진흥법이 가치 있는 것은 국가단위의 정책에서 자칫 소외될 수 있는 지방을 배려한 것이다. 현재 서울과 지방은 문화 격차가 클 뿐 아니라 지방이 서울에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단위의 정책만 있으면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지역문화진흥법은 각 지방의 설화, 민담 등을 발굴해 육성함으로써 지방의 문화도 나름의 자생력을 가지고 지역민들이 그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한 나라의 문화를 큰 시각에서 보고 정책을 수립, 시행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고 문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이 현장에서 조속히 힘을 발휘하려면 세부적인 면에서도 빠르고 과감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유연하고 속도감 있는 문화정책을 펼쳐야 문화현장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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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강국이라고 일컬어지는 영국의 경우, 초등학교 때는 연극놀이활동을 하고 중고등학교에는 연극이 정규 교과목으로 편성되어 있다.(연극은 감독, 스태프, 배우 등 누구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공연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기본이 될 수밖에 없다. 연극 과목이 학교 폭력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음은 이이 검증되었다.) 어릴 때부터 문화의 세례를 받은 청년들이 문화콘텐츠 관련 창업을 하면 대출과 세제혜택은 물론이고 보조금까지 지급한다. 우리나라의 대학로 같은 영국의 웨스트엔드에도 각종 세제혜택 등 정책의 지원이 끊이지 않는다. 이 같은 문화융성 정책을 20년 동안 시행하고 있는 나라가 영국이다. 해리포터,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캣츠, 빌리 엘리어트, 고스트 등 세계를 감동시킨 콘텐츠가 영국에서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의지만 있다면 지금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이 있다. 예를 들어 전시장, 공연장 등 문화시설을 유치하는 건물주에게는 과감한 세제혜택을 준다면 문화 인프라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또 문화콘텐츠와 관련된 창업을 하는 청년들에게 대출 및 세제혜택을 준다면 겁 없는 젊은이들의 생기가 문화계에 공급될 것이다. 그들이 끼를 발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이는 문화인들에게만, 건물주에게만 좋은 정책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문화를 향유하는 국민’이라는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영화는 한밤중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가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연극은 어떤가. 미리 계획을 세우고 대학로 등 공연장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지역 곳곳에 공연장이 있다면, 전시장이 있다면 훨씬 더 쉽고 간편하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  
 
문화의 기본은 놀이다. 돈에 쪼들리고 생계를 걱정하는 청년들이 마음껏 놀 수 있을 리 없다. 경험도 없는 ‘아이들’에게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경험은 사라지지 않고 문화계에 흡수된다. 성공한다면 선배들과는 다른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할 것이고 그것을 향유하는 즐거움은 국민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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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문화콘텐츠가 해외에 수출되어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외화도 벌어들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른바 한류가 문화정책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 국민들이 문화를 마음껏 향유할 때 따라오는 부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의 정서에 맞고 우리 국민들을 감동시켰을 때 다른 나라 국민들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척박한 문화 환경에서 정서가 다른 외국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보편적인 콘텐츠가 나올 수 없고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국민들의 삶과 무슨 연관이 있겠는가. 
 
지금 문화현장에는 생기가 필요하다. 문화인들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밀착형 정책이 필요하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는 세밀한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추상적인 담론보다는 과감하게 저지르는 정책, 햄릿이 아니라 돈키호테 같은 실행력이 필요하다. 문화현장이 생기와 활력으로 가득 찰 때 국민들의 삶에도 문화의 향기가 스며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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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1월12일 19시22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9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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