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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시대의 규제개혁 <3> 10가지 제언 ⑨ 경험 학습(Learning by Doing)의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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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12월25일 17시35분
  • 최종수정 2018년01월05일 10시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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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해보지 않은 미래 사회를 설정하고 제도를 만들어나가는 일은 쉽지가 않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불확실성이 높은 미래를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운 데다, 일단 제도를 시행해보지 않으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그 효과를 축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실험과 (시범)사업 초기 단계에서 불의의 사고와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신기술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적용된 사업의 경우에 특히 그런 사고의 발생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시기에는 경험 학습(Learning by Doing)의 전향적 자세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사회적 코스트를 어느 정도까지 감내하느냐와 언론을 비롯한 사회여론이 얼마만큼 인내심을 갖고 그 과정을 지켜봐 줄 것인가도 중요한 일이다.

 

2016년 5월 미국에서 자율주행자동차의 도로 시험 중에 사망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규제 당국과 언론의 움직임을 보면 여러 가지 교훈과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우선 규제 당국은 테슬라의 자율주행자동차 사망사고가 났지만 이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 미국은 위험관리를 기술규제의 원칙을 삼고 있으며, 그렇게 때문에 안전문제가 명확해지기 전에는 섣불리 규제시스템을 작동시키거나 구축하지 않는 나라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네거티브 시스템 하에서의 자연스러운 장점이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언론에서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워싱턴포스트와 같은 유력 언론지에서는 사설을 통해 “자율주행자동차가 시장에 나와 스스로 증명하기 전에 대중과 언론이 이번 사고로 기술 자체를 거부한다면 어떤 혜택도 보지 못할 것”이라며, 앞장서서 신기술 개발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여론을 다잡아 나갔다. 완전한 자율주행자동차가 시장에 나오기 전에 소비자, 정부, 시장이 미리 싹을 자르면 안 된다는 확고한 믿음 하에, 자율주행자동차의 잠재적 혜택과 이를 이루는 과정에서 치루는 비용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큰가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나선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사태에 직면했다면 규제 당국과 언론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우리나라는 안전 관련 규제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매우 취약한 사회다. 우리나라에서는 위험예방이 우선적인 기술규제 원칙으로 폭넓게 공감대를 얻고 있기 때문에 작은 사고, 심지어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서 문제가 생겨도 바로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곤 한다. 포지티브 시스템 하에서의 어찌할 도리가 없는 비애라 할 수밖에 없다. 

 

정보통신기술(ICT)과 빅데이터, 클라우드 펀딩, 모바일 결제 등과 같은 새로운 혁신 기술과 금융이 만나 이루어지는 핀테크(Fintech) 분야에서도 이러한 상황에 맞닥뜨려 있다. 자금의 중개와 유통이라는 금융 고유의 기능을 고려하면 금융시스템의 공익성과 안정성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금융 산업의 측면에서 보면 보다 경쟁력 있는 금융기관 육성이 절실한 과제로 대두된다. 이 두 측면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최근 IT융합 금융이 시장에서 수요가 증가하고 금융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또 하나의 수단으로 등장하면서 금융 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등 경제 대국들이 잇따라 신개념의 IT금융 상품을 선보이고 있고, 국내 금융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고민의 폭이 더욱 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우리나라의 기존 제도 하에서는 규제로 인해 IT금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이 큰 장애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규제 문제만으로 접근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다. IT금융의 구현이 규제 이슈와 관련되기는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정책의 선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규제전담기구가 먼저 나서기보다는 오히려 정책 당국이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과제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제도를 도입한 다른 나라 경우를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중국, 영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 호주 등을 비롯해 IT금융의 활용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많은 국가들은 안정성 강화 등 핀테크의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고 관리감독체계를 강화하는 노력을 경주하는 한편, 일단 제도를 도입해서 실행하며 시행착오를 극복하려는 전향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정책 당국의 경험 학습(Learning by Doing) 자세인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사업이 등장할 때마다 정부가 서둘러 개입하거나 규제하려 들기보다는 일정 기간 규제의 적용을 유예하는 이른바 규제 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를 통해 시장에서 시범 사업이 진행되도록 하거나 적절한 테스트 베드를 제공하는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사회적 코스트를 어느 정도까지 감내하느냐와 언론을 비롯한 사회 여론이 얼마만큼 인내심을 갖고 그 과정을 지켜봐 줄 것인가이다. 관련 기술 및 금융기법의 개발, 시장의 수요, 경쟁국들의 선행 사례 못지않게 사회적 수용성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규제전담기구가 앞장서기보다 정책 당국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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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12월25일 17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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