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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규제개혁 <3> 10가지 제언 ⑧ 도전적인 융합 촉진을 위해 ‘실패 성과’를 체계적으로 축적해 나가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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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12월18일 17시31분
  • 최종수정 2017년12월18일 16시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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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의 결실은 ‘금 나와라 뚝딱!’ 하는 방식으로 얻어질 수 없다. 오히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다음 비로소 그 성과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기술 및 산업 융합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벽돌쌓기식 기술축적에 의해 구현되기보다 새로운 결합을 시도하면서 와해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 개발되기 때문에 실패를 거듭하는 것은 거쳐야 하는 당연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많은 시도와 실패는 그 자체가 성공의 한 과정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도전적인 융합 촉진을 위해서는 ‘실패성과’를 체계적으로 축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까지 '성실실패'로 규정되는 과정들을 좀 더 적극적인 개념으로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실패' 그 자체를 '성과'로 관리하는 방안을 강구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우리 사회가 제도적으로 확보하느냐이다. 선진국에서는 사업 실패를 무형의 경험자산인 기업가정신으로 여기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자칫 실패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일쑤로, 좀처럼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성공을 재촉하고 실패에 인색한 문화의 한 단면이다.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한국적 풍토에선 벤처도 융합도 그 성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큰 성공은 아니라도 실패하지 않을 연구에 집중하는 이른바 ‘실패회피’ 현상이 두드러지기 마련으로, 이미 정부의 R&D 투자 성과가 그러하다. 정부가 지원하는 R&D 투자 성과가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례가 태반인 것도 과정보다 결과만을 중시해 단지 눈에 보이는 이른바 '성공을 보증하는 연구'에만 급급했던 탓이 크다. 

 

더구나 융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대에는 아이디어 경쟁에 의해 시장 승부가 갈리곤 하는데, 아이디어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다음 비로소 그 성과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끊임없는 시도와 거듭되는 실패는 그것 자체로 의미 있는 작업인 셈이다. 그야말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자 성공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바라보아야 마땅한 일이다. 

 

실패를 켜켜이 쌓아가는 인내를 거쳐야만 성과와 직결될 수 있다면, 이 과정에서 시도된 다양한 도전들도 분명 하나의 성과물로 간주되고 체계적으로 관리되어야 바람직하다. 실패를 포용하는 개념을 넘어 더 적극적으로 과감한 실험 도전과 실패를 권장하는 사회문화에서만이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단지 사회적으로 ‘실패비용’을 어떻게 방어할까가 아니라 ― 또는 어떠한 방식으로 실패자들로 하여금 징벌적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 어떻게 하면 실패비용을 줄여줄 수 있을까를 궁리해야 마땅한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껏 '성실실패'나 '명예실패'로 규정되던 과정들을 새롭게 조명하여 ‘실패' 그 자체를 하나의 '성과'로 관리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제는 성공 성과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과정에 대해서는 '성실실패'냐 그렇지 못한 것이냐를 판단하려고만 했던 소극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시도했던 모든 과정을 '실패 성과'로 간주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적극적인 인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실패 성과를 기록하는 아주 느슨한 형태의 양식이 필요하다. 이른바 '실패 성과보고서'인 셈이다. 이를 통해서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시도된 수많은 도전들이 기록되고 정리된다면 그것 자체로서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실패 성과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들이 특허만큼이나 소중한 자산으로 관리된다면 도전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유용하게 참고하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고위험 고수익형(High-Risk, High-Return)의 기술혁신 과제일수록 성실실패(honorable failure)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실패 성과를 축적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실패를 무릅쓰고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는 도전정신은 실패를 손실이 아니라 투자라고 여기는 관점에서 접근해 보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실패수익률(Return on Failure : ROF)의 개념이 도입된다. 이는 실패를 거듭한 후에 거둔 성공을 바탕으로 얻은 수익률로서, 투자수익률(Return on Investment)과 같은 개념이다. 학문적 성취나 실용적 성과 측면에서 ROF를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성실실패 R&D를 용인하는 제도적 환경 마련이 긴요하다. 

 

문제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연구를 어느 정도의 성과로 평가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객관적 기준과 절차를 만드는 일이다. 연구 및 실험 일지를 충실하게 작성했거나, 실패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물과 원인분석 결과 등을 자세하게 기록했다면 그 자체를 하나의 성과로 인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연구개발 과정이 충실하고 성실하였는가(integrity)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실패 경험과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방향의 연구를 추진하는데 도움이 되는가(potential for future research)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미완의 R&D를 ‘실패한 결과’로 종결하지 않고, 실패를 통해 발전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관련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실패 성과를 용인하고자 하는 R&D가 도전성을 지향하는지, 혁신도약형인지 여부의 판단은 유보하고, 실패 결과물의 유용성만으로 인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실패할 가능성도 높지만 시도할 만한 프로젝트인가(research and development value)의 여부나 연구자나 개발자가 그런 시도를 할 만큼 적격 연구진인가(competence)의 문제는 실패 결과물의 유용성 여부에 따라 귀납적으로 판단하자는 의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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