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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기자의 유쾌한 명상체험기 ‘쉐우민 이야기’ 여섯 번째 이야기 불심은 이렇게 자란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7월29일 19시17분

작성자

  • 김용관
  • 동양대학교 교수(철학박사), 전 KBS 해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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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승들

  제법 위용을 갖춘 20대 비구가 동승을 손짓해 부른다. 마치 큰형이 막냇동생을 부르듯. 그리고 뭔가를 건네준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니 한국산 땅콩사탕 봉지다. 사탕이 여남은 개 남아 있다. 동승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그리고 비구는 가던 길을 간다. 쉐우민 센터 일상 속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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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얀마에는 동승들이 참 많다. 센터 뿐 아니라 탁발의 행렬에서, 거리에서도 쉽게 눈에 띤다. 그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디에나 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풍경이 미얀마가 불교국가라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쬐끔 과장해서 얘기할 수 있다. 

  동승들의 나이는 초등학교 5-6학년, 많아도 중학생 나이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집에서 응석부리고, 고집피우고, 방과 후 학원 마와리(기자들이 취재차 경찰서를 도는 활동)나 할 나이겠지. 하지만 미얀마의 애기스님들은 의젓하고 의연하다. 이 해 쉐우민 센터에는 20명 정도의 동승이 있었는데, 가장 어린 스님이 11살이었다.

  동승들의 하루 일과 역시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시작된다. 내가 머무는 2층 숙소 1층이 동승들의 숙소였는데, 기상 시간 동승들을 깨우려고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제법 요란했다. 동승들은 하루 종일 배우고 일하고 공부한다. 

경행대를 지날 때 들여다보이는 법당에는 동승들이 무릎을 꿇고 열을 지어 앉아서 법문을 듣는 풍경이 많았다. 꿇은 무릎 뒤로 드러나는 작은 맨발들이 왠지 찡했다. 매일 아침 6시 반이면 시작되는 탁발의식에 동승들은 빠짐없이 참석한다. 어깨에는 커다란 바루를 매고, 한 시간 남짓 맨발로 탁발을 돈다. 한 낮에는 심부름을 하거나 어딘가 바삐 가는 동승들도 자주 만난다. 이따금 시간 여유가 생길 땐 숙소 복도에서 천 조각 등을 뭉쳐서 축구를 한다. 이 스님들도 어린아이임에 틀림없다.

  동승들의 공부는 배운 내용의 암송이다. 숙소 옆 오피스 2층이 이들의 공부장소였는데, 마치 물 찬 논에 개구리 우는 풍경과 같다. 소리 내어 외는 소리가 자글자글 시끄러울 법한데, 소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런 풍경은 저녁시간에서 취침 때까지 매일 서너 시간 계속된다. 

  어느 날 저녁 외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물으니 단체로 춤추러 갔단다. 미얀마 사람들은 중국 서민들의 요양거(길거리에서 모여 추는 단체 춤)처럼 단체춤을 즐긴다고 룸메이트는 설명해 준다. 저녁 늦게 까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이지만 힘든 기색을 하는 동승은 없다. 오후불식의 계율은 동승들에게도 예외 없지만 표정이 늘 평온하다.

  테라바다 전통에서 경전의 전래는 기록보다는 암송에 의존해 왔다고 한다. 웬만한 스님들은 주요 니까야(경전)와 아비달마(논서)의 내용을 술술 암송한다. 어린 시절부터 익힌 내공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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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승려는 존경받는 직업(?)이다. 양곤 대학 불교과나 테라바다 불교 대학은 양곤 법대나 상대보다 들어가기 힘들다고 한다. 승려들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국가고시는 패스가 매우 어렵다. 이 고시에 합격해야 사찰을 설립하고 운영할 자격이 주어진다. 경, 율, 론 삼장을 모두 암송하고 해석해 고시에 합격하면 ‘삼장법사’라는 칭호가 주어지는데, 미얀마에도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그 수가 적다. 동승들의 웃음 띤 얼굴과 니까야 외는 목소리가 지금도 눈과 귀에 선하다.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면 이들 가운데서도 사야도가 나오고 삼장법사가 나올 것이다.

 

 

  사탕과 불심 

  탁발 행렬을 따라가 보면 어린아이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할머니나 어머니를 따라 나온 아이, 부모를 대신해 밥그릇을 들고 나온 남매, 자기들끼리 탁발행렬을 구경나온 조무래기들. 탁발이 시작되는 센터 입구에 매일 아침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5 살짜리 쯤 되는 꼬마가 있다. 보는 사람의 신심이 절로 나는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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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무엇이 이른 아침마다 이 꼬마를 이곳으로 불러오는 것일까? 꼬마가 부처를 알까? 언제부턴가 꼬마는 할머니나 어머니를 따라 이곳에 왔을 게다. 그렇지만 매일 아침 꼬마를 부르는 파토스. 잠이 덜 깨 눈을 부비며 일어나 이곳에 무릎을 꿇게 하는 힘,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캔디의 힘이었다.

  탁발 대열의 위계는 가시적이고 일목요연하다. 물리적으로는 신장순이고 심리적으로는 법랍순일 게다. 탁발 대열의 뒤로 갈수록 더 어리고 키 작은 동승들이다. 행렬의 맨 끝쯤에는 초등학교 5-6학년 정도 나이의 동승들이 따라간다. 꼬마를 불러내는 건 바로 이 동승들이다. 어느 날 아침 탁발행렬의 끝을 따라가다 목격했다. 꼬마의 조아린 머리맡에 조용하게, 마치 성탄 이브 굴뚝을 통해 들어온 산타클로스가, 트리에 걸린 양말 속에 선물을 집어넣어주듯 은밀하게, 

사탕 몇 개가 놓이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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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이나 비스킷, 젤리, 초코파이... 이것들은 신도들이 불전에 올리고 그런 다음 대개는 동승들의 차지가 된다. 탁발행렬의 동승들은 그것들을 아껴 두었다가 길바닥에 꿇어 앉아있는, 자신들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에게 살그머니 떨궈준다.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한다. 그것이 중생의 특징이다. 무엇엔가 의지해야만 산다. 심지어 귀신도 중생인 한 그들도 그렇다. 산신은 산에 의지하고 목신은 나무에 의지해 존재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그렇게 오가는 정을 확인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동승이 쥐어주고 가는 사탕 몇 개가 잠꾸러기 꼬마를 불러내고, 그것이 신앙의 씨앗이 된다. 꼬마는 자라서 기억할 것이다. 그 때 그 사탕의 달콤함과 더불어 따뜻함을.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나눔과 보시와 자비의 의미를.  이것이 불교국가 미얀마의 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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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7월29일 19시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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