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 이야기 <58> 너무나 당연한 것에 대한 고마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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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6월25일 09시26분
  • 최종수정 2023년06월25일 14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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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는 고마운 존재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나는 내 농막에서 이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진실을 얘기하면 '농막'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처지다. 친구들은 내가 "농막에서 지낸다." 하면 최소 몇백평의 땅에 그럴듯한 집도 있고, 나아가 어떤 때는 맑은 개울 물도 옆에 흐르는 그런 땅을 상상하는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을 말하자면 20여평의 땅에 컨테이너 하나가 덜렁있는 아주 허접한 곳이다. 정부의 농막기준 6평에 맞춘 중고 콘테이너 하우스가 바로 내 농막이다. 

 

그런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6평의 공간이 아니라 20평 땅에 대한 얘기다. 이땅은 겉으로만 보면 멀쩡한 땅이지만 사실 정부가 하천정비사업을 하고 남은 땅을 불하받은 땅이다. 그래서인지 땅의 경사도도 심하고, 하천공사를 하면서 나온 돌과 폐자재를 은근 슬쩍 묻어 놓아서, 파면 돌이나 시멘트 불럭이  많이 나온다. 땅도 평평하지 않고 경사도가 심해 끝부분으로 가면 바로 옆 하천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갖게된다. 그러나 다행히도 ‘경계 끝부분에 나무들이 있어서 떨어지지는 않겠지.’라고 스스로를 위안할 정도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개천 흙을 파서 성토한 땅이어서인지 토질은 매우 비옥하다. 심으면 잘 자란다. 보리수 나무는 흐드러지게 열매가 열렸고 <사진>, 포도나무도 제법 잘 자라며, 자두는 너무하다고 할 정도로 많이 열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리수 열매를 제외하고는 새와 벌레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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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환경이라고 주장하면서, 사실은 게을러서 이지만, 물 주는 것과 풀 뽑는 것 이외에는 별로 하는 일이 없어서인지 사람이 먹을 때까지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자두는 엄청 열리지만 절반은 저절로 떨어지고 나머지는 벌레들의 몫이다. 지금까지 단 한 개도 수확하지 못했다. 다만 나에게 주는 기쁨이라면 봄날에 흐드러지게 피는 하얀 자두꽃의 아름다움이다. 이(李)왕가의 상징을 우리는 흔히 배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오얏나무인 이 자두꽃이다. ​ 

 

그리고 포도도 조금 이상하다. 분명히 신용있는 종묘회사에서 구입한 좋은 품종의 포도인데 열매가 달리기는 그렁저렁 달리지만 왠지 시고 떫은 맛이 난다. 농민들에게 왜그러느냐고 물어보니 비료를 전혀 안하면 그런다고 한다. 그래서 올해는 음식물 쓰레기에 EM액과 산(山)의 부엽토를 섞어 만든 액비를 주었다. ​ 

 

그러나 나에게 있어 포도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검은 포도 송이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습’과 포도의 넓은 잎이 선물하는 ‘그늘의 평화로움’이다. 르누와르의 그림을 보면 포도나무 아래 앉아있는 젊은 여인의 누드화가 있다. 그 그림에서도 포도 잎사이를 삐집고 들어오는 햇빛의 밝음과 포도잎의 그늘이 여인의 몸매에 그대로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역시 인상파의 대가다운 그림이다. 어느 짧은 순간 햇빛의 장난스러움을 어쩌면 저렇게 아름답게 표현 할 수 있을까? ​

 ​

오늘 내가 이글을 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에 대한 고마움’이다. 경영학에서 흔히 인용되는 사람 중에 ‘마슬로’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인간의 욕구는 5단계가 있고, 하위 단계의 욕구가 만족되면 다음 단계로 사람의 욕구가 변화한다는 주장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의 본능을 정확하게 꿰뚫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제1단계 생리적 욕구단계’에서는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단계다. 배가 고플 때 먹을 음식, 추울 때 입을 옷, 내가 머무를 수 있는 집 등에 대한 욕구다. 내가 너무 가난하여 먹고 입을 것이 없을 때의 욕구라고 생각하면 충분하다.

 

‘제2단계 안전의 욕구단계’에서는 위험으로부터 안전해 지고 싶은 욕구다. 내가 길을 오갈 때 또는 여행을 할 때 편안한 마음으로 어떤 위험이나 위협을 느끼지 않게 자신을 보호하고 불안을 회피하려는 욕구다. 우리에게는 너무 멀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전쟁이나 내전 또는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상황에서는 너무나 절실한 욕구일 것이다.

 

우리가 뉴욕이나 시카고를 방문하면 낮에는 그렇게 번잡했던 도시가 저녁 7시가 넘으면 쥐죽은 듯이 고요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선진국이라고 하여 꼭 이 두 번째 단계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다. 그러나 최근 일본도 늦은 밤에 여자가 혼자 다니는 것을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짐작컨대 우리나라는 이 두 번째 단계, 안전면에서는 아마 세계에서 최고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 단계는 애정과 소속, 욕구(love/belonging)의 단계’다. 두 번째 단계까지 만족되면 사람은 슬슬 이런 마음이 드는가 보다. 즉 “사랑하고 싶다.” 또는 역으로 “사람 받고 싶다.”는 욕구다. 물론 1,2단계가 만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도 이런 욕구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불안한 상태에서 마음 조리며 하는 사랑이다. 마슬로가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과 애정은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사랑하고 싶고, 사람 받고 싶은 것을 뜻한다. 또한 집에만 처박혀있지 않고 밖에 돌아다니면서 이런 저런 모임에 가입하고 싶은 것도 이 세 번째 단계의 욕구다.

 

‘네 번째 단계는 존중과 욕구 충족의 단계’다. 내가 먹을 것도 있고, 또 치안도 안정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또 행복한 가정도 있다. 주위에서 평판도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단계에서 멈추고 마냥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꼭 그렇지는 않다. 슬슬 마음 속에 다른 욕구가 떠오른다. 내가 이렇게 군중 속에서 묻혀 평범하게 살아야만 되나? 내가 특별히 잘 났다고는 못해도 그래도 제법 잘 났는데... 왠지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남으로부터 존경도 받고 싶다. 그래서 회장도 하고 싶고, 위원장도 하고 싶다. 국회의원도 되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면 남을 위해 열심히 봉사도 하며 성취욕도 느끼고, 남으로부터 존경과 존중도 받고 싶다. 

 

이것은 매우 당연한 욕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기서부터 사람들의 호불호가 가려지기 시작한다. 이 단계에서는 모든 것에“남에 대한 비교의식”이 붙기 시작한다. 남을 이기고 싶은 경쟁심도 이것과 관계가 있다. 만약 그 사람이 그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그를 추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 그러하면 그 모습이 조금 추하게 보일수도 있다. 회장 자리를 얻기 위해 수많은 돈을 쓴다거나, 상대방을 음해하는 발언 등이 바로 이런 욕구에서 나온다. 그래서 정도가 약할 때는 기분이 안좋은 정도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우리는 그 모습을 ‘역겹다. 추하다.’ 라고 표현한다. 우리 주위에서 이런 모습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성현들 말씀의 대부분이 이런 경우에 대한 충고의 말씀들이다.

“과욕을 부리지 말라. 있을 때는 전심전력을 다하고, 떠날 때는 말 없이 떠나라.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떠나고 나서 아름다운 이름이 남는 법이다.” 등등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욕망을 누르는 것이 인간으로서는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대부분의 이름 있는 정치인들이 늙어서 까지 자리를 움켜쥐고 있을려는 ‘노추’를 보이고, 온갖 음해와 거짓들이 난무하는 것도 바로 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서 나오는 것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적절하지 못한 사람들이 적절하지 못한 자리를 움켜쥐려는 데서 생기는 듯하다.

 

다음 5단계, 가장 마지막 단계는 '자아 실현의 욕구(self-actualization)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4단계에서 설명한 『남이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단계』를 넘어, 『내가 나에게 있어 중요한 단계』가 된다. 내가 4단계 즉 회장도 해보고, 위원장도 해보고, 국회의원도 해 봤지만 그것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특히 매우 어렵게 4단계 과정을 거친 사람이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4단계의 욕구 충족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남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더욱 발전시키고 자신의 잠재력을 더욱 발휘해 보려고 노력하는 단계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남은 나의 생각으로부터 멀어지고, 내 스스로를 『더욱 더 나은 나, 더 발전된 나』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단계다. 우리 주위에서도 나이들어 새로운 언어를 공부한다거나, 새로운 공부를 위해 디지털대학 등에 등록하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4단계를 거쳤다고 해서 꼭 이런 5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것을 자기만을 위해 움켜쥐고 있거나, 또는 4단계에서 누렸던 특권을 계속 아쉬워하는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나라의 부자와 우리나라 일부 부자들이 조금 다른듯하고, 다른 나라의 정치인들과 우리나라의 일부 정치인들이 이 점에서 조금 차이가 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전체 분위기는 점점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듯하여 기분이 좋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5단계의 모습이라면 너무 바빠서, 아니면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까지 발휘되지 않았던 자기의 능력을 『더 나은 사회 또는 더 밝은 사회』를 만드는데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정주 선생의 ‘국화 옆에서’를 마슬로와 이론과 겹쳐 보았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제1단계]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제2단계]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제3단계]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제4단계]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제 4단계가 마무리 되는 과정)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제5단계]

 

혹시 서정주 선생님을 잘못 오해하고, 결례를 범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학생들에게 마슬로를 가르칠 때 마다 이 ‘국화 옆에서’가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 현실은 모순도 많고, 화날 일도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는 6.25 같은 전쟁 중도 아니고, 보릿고개가 있던 60년대, 70년대도 아니다. 오히려 먹을 것이 넘쳐나서 먹지 않을려는 다이어트가 유행인 시대다. 불과 얼마전 까지 영화에서나 봤던 벤츠, 람보르기니, 포르쉐 등도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분명히 현대의 우리는 단군 성조 이래 최대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래도 불만이 그득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들의 불만은 ‘눕고 싶은 욕구’에 해당되는 것 같다. 

 

이제 우리도 “너무나 당연하여 익숙해져 버린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조금은 느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내 농막이 좁다고 하여 또는 돌이 많다고 하여 불평하지 않고, 나만의 쉴 공간이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껴야 할 것 같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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