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홍대의 빵빵한 하루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05월07일 21시14분
  • 최종수정 2016년05월07일 22시08분

작성자

  • 손수빈
  • 경희대학교 hospitality 경영학부 2학년, IFS POST 청년기자

메타정보

  • 49

본문

 

 모눈종이 같았던 4월도 갔다. 봄이 시작됨과 동시에 사람들은 한 해의 계획을 빼곡히도 채워나간다. 5월에는 선과 선의 뒤엉킴이 아닌 한 칸이라도 내실을 다져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 다짐은 내 발걸음을 홍대의 작은 빵가게로 이끌 것이다. 복잡할 것 없이 그 작은 가게에 나 홀로 서 있노라면 어느새 그윽한 빵 향기는 차곡차곡 기쁜 한 칸으로 머무른다. 작은 빵 안에서 느끼는 소박한 행복을 따라가 보자.

 

 첫 번째 칸을 채우다. ‘폴앤폴리나’


 ‘폴앤폴리나’와의 첫 만남은 모임 동기들과 홍대에서 놀기 전, 동기 언니의 이끌림에 의해서였다. 정말 작은 가게. 눈에 띄지 않는 무난한 색상의 인테리어였지만 사람들은 똬리를 틀며 자신의 빵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 빵 맛을 기억하며 다시 한 번 그 자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이어서 였을까? 위치를 찾지 못하고 같은 곳을 뱅뱅 돌기만 했다. 그리고 세 번째 돌던 때에 드디어 찾을 수 있었다. 화려한 중심가들의 길을 따라서만 갔던 곳이 화근이었다.

 

 ‘폴앤폴리나’는 그때 모습 그대로 상가의 이어지는 회색빛을 고수하고 있었다. 문을 열자 따뜻한 단내가 훅, 끼친다. 방금 나온 크랜베리 스콘 덕이었다. 갓 나온 빵들은 작은 바구니에 시식용으로 담기고, 뻥 뚫린 주방의 모습을 보며 그 다음 빵은 무엇일지 예상해보는 손님들의 대화 속에 궁금증을 자아낸다. 

 

 나 홀로 홍대 빵 투어를 외쳤지만 허전한 배와 허전한 마음이 기울 때에 ‘폴앤폴리나’의 빵은 든든함이 되어 주었다. 내가 선택한 빵은 총 3가지로, 버터 프레첼, 크랜베리 스콘, 하얀 치아바타이었다. 

 

dd787a8bb239fc1a76e3fd19babc548e_1462623 

 

 버터 프레첼 : ‘갓 나온 빵이 맛있다.’는 말의 공식을 깨는 빵이 폴앤폴리나의 버터 프레첼이다. 버터 프레첼을 시켰을 때, 직원이 바로 하는 말은 아직 뜨거우니 식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의아했으나, 한 입 깨물자마자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버터 프레첼 안에는 고체 상태 그대로의 차가운 버터가 네모 반듯하게 끼워져 있다. 그리고 그 겉은 바삭하니, 입 천장이 까칠할 정도이지만 이내 부드러운 빵 속이 버터와 어우러져 혀에 기분 좋게 녹는다. 겉에 뿌려진 소금과 차가운 버터의 상쾌함은 포인트이다. 

 

 크랜베리 스콘 : 따뜻한 차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따끈따끈 갓 구워진 스콘이 답이다. 그 겉은 반질반질한 시럽 덕에 약간 끈적한 단 맛을 내지만 속은 달지 않고 부드러운 속의 깊은 맛이 있다. 

 

 하얀 치아바타 : 말캉말캉해서 아기 엉덩이를 톡톡 건드리는 듯 귀여운 식감이다. 쫄깃하면서도 콕콕 박힌 올리브는 일품이다.

 

 씹을수록 구수한 냄새와 맛이 풍겨오고, 맛이 자극적이지 않아 밥을 먹듯 편하게 속을 채운다. 그 빵 맛을 보니, 아까 전 길을 헤맸던 것이 떠올랐다. 화려한 곳, 중심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만 달려가다 보니 정작 내가 가고자 한 곳을 놓친 것이다.

 

 폴앤폴리나의 빵은 그런 나에게 작은 것의 미학, 작은 것에서 느끼는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담담하고도 솔직하게 말을 거는 폴앤폴리나로 내 인생의 첫 칸을 채웠다.

 

두 번째 칸, 우연한 달콤, ‘피오니’


 홍대의 빵집, 홍대의 케이크는 모두 하나의 단어로 통할 정도이니, 그 인기의 지점은 ‘피오니’이다. 가게를 찾으려는 노력도 하기 전, 앞서 ‘폴앤폴리나’의 빵을 촬영하고 벤치에서 일어서는 순간, ‘피오니’를 마주치게 되었다. 

 

 정말 우연하게 찾아온 달콤한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같은 상가 안에 있던 피오니는 케이크 전문과 카페로 나뉘어 층도 분리되어 있었다. 내가 자리 잡은 곳은 봄 햇살이 비추는 테라스의 카페였다. 시원한 색감의 케이크들이 케이스 안에 들어왔지만 오늘 하루 돌아다닐 빵집들은 아직 많이 기다리고 있기에 ‘딸기 생크림 케이크’ 한 조각의 기쁨만 누려 보았다.
 

dd787a8bb239fc1a76e3fd19babc548e_1462623
 

 딸기 생크림 케이크 : 흰 크림과 노란 빵의 아름다운 조화 속에 새빨간 딸기가 층층히 콕콕 박혀 있다. 부드럽고 달지 않지만 충분히 우유의 고소하고도 달큰한 향을 간직한 생크림이 첫 맛을 돋운다. 그 후에는 신선하고 상큼, 달콤한 딸기가 부드러운 스폰지 케이크 빵에 잘 어우러진다. 

 

 매사에 자신의 일은 스스로의 손으로 해결되어야 하지만 운 좋게도 우연히 일의 해결이 쉬워질 때가 있다. 싱긋 미소 짓게 하는 선물 같은 공간이 내겐 ‘피오니’였다. 어쩌면 봄의 가장 보편화된 과일, 딸기 그리고 어느 카페를 가도 있을 법한 조합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 얼마나 솔직한 이름인가? 하지만 가장 진솔하고도 기본 안에서 충실한 맛을 조화시키는 것은 균형 잡힌 기초의 중요함임을 일깨워 주었다. 이 배움을 간직하고자 나의 두 번째 칸도 채웠다.

 

세 번째 칸, 쁘띠쁘띠 프랑스, ‘퍼블리크’


 우연함 속에 기쁨을 느꼈던 ‘피오니’를 뒤로 하고 더욱 박차를 가하며 그 다음 장소인 ‘퍼블리크’로 갔다. 하지만 운이 좋다 자만한 탓일까? ‘퍼블리크’의 위치를 찾기란 어려웠다. 골목 골목 찾아다닌 끝에 찾은 ‘퍼블리크’는 정말 골목 속의 다정하게 붙은 음식점들 사이에 있었다. 

 

 ‘퍼블리크’는 프랑스 빵집으로 유명하지만 프랑스 느낌을 내고자 거북한 장식들은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단순해 보였다. 빵집 외관에 붙은 프랑스는 ‘프랑스 빵 공장’ 이라 붙인 작은 간판뿐이었으니. 하지만 그 맛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내가 택한 빵은 프랑스의 정통 디저트인 에끌레어와 타르트였다.

 

dd787a8bb239fc1a76e3fd19babc548e_1462623
 

 

 현미 에끌레어 : 그 이름에 이끌려 선택했다. 보통 에끌레어의 슈 안에 들어가는 크림은 산뜻한 과일이나 초콜렛이 대표적인데, 현미로 크림을 만들었다니? 기대 속에서 느낀 맛은 구수함이었다. 현미 특유의 구수한 맛이 바닐라 빈의 콕콕 박힌 맛과 어우러져 고소한 두유, 누룽지를 먹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달지 않고 구수한 맛을 에끌레어에서 느낄 수 있음이 신선하다.

 

 솔티 캐러맬 에끌레어 : 차가우면서도 짠 맛이 확 와 닿는 캐러맬 크림은 너츠의 바삭한 맛과 함께 진득한 결합을 보인다. 소금의 적정한 비율로 단 맛은 상승되었으며 밀도 높은 맛은 절묘한 균형을 유지한다.

 

 레몬 타르트 : 샛노란 빛깔의 레몬 커드는 색깔에서부터 산뜻하고 새콤한 맛이 느껴진다. 단단한 타르트 지는 쿠키처럼 입 안에서 바스라지고 레몬 커드의 상큼함에 귀가 땡길 때, 머랭의 부드러움이 그 맛을 잡아준다.

 

 나의 세 번째 칸, ‘퍼블리크’, 프랑스에 가본 적은 없지만 만약 프랑스에 간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라에 가본 적은 없지만 그 곳을 떠올리면 예상되는 분위기와 느낌들이 있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생각만큼 그 색채가 강렬하지는 않은 경우가 대개이다. 오히려 무난하게 일상에 젖어든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그 공간을 채우는 경우가 많다. 바로 ‘퍼블리크’가 내게 그러한 느낌이었다.

 

 ‘우리 가게가 프랑스 빵, 디저트를 판매한다!’ 라는 강력한 디자인과 색은 아니었으나, 빵이 진열된 소박한 시장과도 같은 모습과 조용하게 투명한 유리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풍경들은 그 자체로 한국 안의, 내 안의 ‘쁘띠’, 어쩌면 ‘쁘띠 쁘띠’ 프랑스였다.

 

 

마지막 칸, 하루 홍대 빵 투어의 마지막 인사, ‘쿄 베이커리’


 처음 일본을 여행했을 때 적잖이 충격이었던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편의점에서 파는 빵을 먹었을 때, 그 맛에 완전히 빠져서 였다. 일본의 빵 기술, 문화는 이미 유명하면서도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일본의 빵이 한국에서도 통하는 이유는 한국인들의 입맛과 생활식은 이미 서구화되어 더 이상 쌀만이 주식을 차지하지 않게 되었고, 투박하고도 거친, 달큰한 맛을 냈던 과거 우리식의 일명 ‘동네 빵집’은 부드러운 식감, 독특한 발상의 전환의 기술을 가진 일본의 빵에 비해 그 맛의 격차가 컸기 때문이다.

 

 요리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고 한국의 동네 빵집도 더 이상 과거의 투박함은 아니지만 일본만의 개성 넘치는 빵들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그 안에서도 최근 SNS를 뜨겁게 달구는 빵집이 있으니, 그 이름은 ‘쿄 베이커리’이다. 작은 테라스를 앞에 두고 간판에는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가 ‘쿄 베이커리’ 이름을 비춘다.

 

 ‘쿄 베이커리’ 내부의 모습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찍지는 못했지만 다양하고 쿄 베이커리만의 독특한 개성이 살아있는 빵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고민 끝에 내가 선택한 빵은 ‘깜장 고무신’과 ‘명란 바게트’이다.

 

dd787a8bb239fc1a76e3fd19babc548e_1462623
 

 깜장 고무신 : 검은 치아바타는 ‘슬리퍼’ 모양을 형상화하는데 이를 우리나라식으로 이름지어 ‘깜장 고무신’이라 지었다 한다. 구성은 치아바타, 에쉬레 버터, 팥 소. 이 세 가지이다. 에쉬레 버터는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할 101가지’에 선정되기도 하였는데 프랑스 루아르 계곡의 농장에서만 생산되는 명품 버터이다. 

 이 맛은 그 향이 우유 맛이 가득하며 진한 풍미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적당히 자연스러운 단 맛을 내는 팥소와 겉은 딱딱하지만 안은 촉촉한 치아바타는 씹을수록 담백한 맛을 낸다. 끝 맛은 우유의 고소한 내음이 남으며 마무리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명란 바게트 : 카레 반죽의 바게트와 명란젓 소스, 김가루. 약간 간간한 맛이 도는 독특한 맛이다. 한 편으로는 씹는 재미를 더하기 위해 실제 카레의 속 재료인 당근, 감자 등을 작게 썰어 올리면 더 좋을 것 같다 생각하며, 카레 밥 대용식으로 먹기에 좋다.

 

 빵 한 덩어리를 사기 위해 문을 열기 무섭게 사람들이 줄을 서고 갓 구운 빵이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동나고, 유럽식, 뉴욕식, 일본식 등 다양한 스타일의 빵들이 뽐내는, 그야말로 빵집 춘추전국시대이다.

 

 우리나라에 있어 빵의 역사는 과거에 단맛을 충족시키는 디저트로만 분류되었었지만 빵을 주식으로 먹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만큼, 트렌드로 뜨고 있는 빵집들 또한 ‘밥처럼 편한 빵’을 내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밀가루의 글루텐에서 나오는 쫄깃한 식감은 쫄깃한 찰기의 식감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적합하다.

 

 이에 더 나아가 찹쌀을 넣은 응용 빵들, 쌀 빵의 인기도 입맛에 주력한 인기 빵 상품이 되었다. 또한 익숙한 발효의 냄새는 빵의 구수함을 통해 정감을 주니, 우리와 빵 문화는 뗄 수 없이 깊숙이 자리해왔다. 

 

 그래서일까 빼곡한 선들의 겹침 속에서 정신없을 때 찾아가고 싶은 곳은 빵집이다. 빵 반죽이 발효되고 구워지는 단순한 공간 같지만, 빵은 단순하지 않다. 그 안엔 단맛만 있지 않다. 밀가루와 재료들이 빚어내는 절묘한 구수함, 버터와 설탕이 자아내는 향취를 느끼려면 몰두해서 먹어야 한다. 시간을 두고 입 안에서 신중하게 씹어야 한다.

 

 이 야단스럽지 않고 그윽한 맛, 경쟁 속에서 각자의 칸을 채우느라 정신없는 경쟁시대에 느리지만 지극하게도 채울 수 있는 아름다운 나의 모습을 빵 속에서 느껴보면 어떨까? 

49
  • 기사입력 2016년05월07일 21시14분
  • 최종수정 2016년05월07일 22시08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