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무의 행복한 지혜 산책 -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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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라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려면 안보와 경제가 중요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양대 핵심 주제이다. 인간개발연구원 2052회 경영자연구회(2021년 11월 4일)에서 강사로 나선 육군 대장 출신 김운용 장군(한국위기관리연구소 이사장)은 변화와 혁신의 시대에 “안보태세 유지를 위한 리더의 선택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다. 강연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 본다.
“존경하는 CEO 여러분,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의 안보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김 대장은 결말을 먼저 얘기하면서 주제의 포문을 열었다.
“군의 부족한 부분들이 뉴스로 보도되어 실망시켜 드린 적이 있지만 우리 군은 ‘고도화, 정밀화, 과학화’의 개혁을 꾸준히 추진하여 군사력이 수준급에 이르렀습니다.”
김 대장은 38년 9개월의 군 현역 생활과 예비역 2년 6개월 기간을 비교하기도 했다.
“제복을 입은 시절과 예비역 시절이 똑같이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습니다.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옆에 있는 사람, 특히 아내에게 가장 잘하는 것입니다.”
그는 소위 정치군인이 아니라 야전 사령관 출신이다. “저는 육군 소위 시절부터 4성 장군까지 경계부대장만 했습니다. 전 계급의 지휘관을 역임했습니다.” 야전에서 40년을 보낸 참 군인의 늠름하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국가 안보를 둘러싼 다양한 환경이 어렵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이 문제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의 군사력을 능가하기에는 30년 이상이 걸린다는 평가다.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모든 조직은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슨 일이든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현장소장이 최고책임자에게 바로 보고하여 현장에서 즉시 조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의사결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오천 년 역사상 위기가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천 번이 넘는 외침이 있었고, 중국과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을 위기도 몇 번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은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그때부터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세종대왕이 만드신 한글로 적지 못하고 한국말 대신 일본말을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은 월남전 패망 이후 국방개혁을 끊임없이 추진해서 최고의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5년 전부터 국방개혁을 시작했고 10년 전에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큰 변화 중의 하나가 사회적 환경변화다. 지금 군에 입대할 젊은이들이 부족하다.
병력은 과거 62만 명에서 점점 줄어들어 내년에는 50만 명까지 감소한다.
“줄어든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어떻게 고도화, 정밀화, 과학화로 갈 것인가? 이것이 국방개혁의 핵심입니다.”
“현대전과 미래전은 ‘작전 병력의 수’가 아니라 ‘작전 지속 지원’을 어떻게 잘해 줄 수 있느냐가 승리의 관건입니다. 미국의 상비사단은 12개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까요? 바로 예비군의 지원입니다. 24시간 이내에 즉각 소집될 수 있는 예비인력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서 위기를 가장 잘 극복한 두 분의 영웅이 있다.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이순신 장군과 박정희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여러 가지 공과가 있겠지만 군을 위해 엄청난 개혁과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에 초점을 맞추었다. 장군은 불굴의 책임감과 리더십으로 역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공동체를 구원했다. 이순신 리더십은 21세기에도 필요한 리더십이다.
충무공 이순신은 철저한 책임감으로 현장제일주의를 실천했다. 김 대장은 이순신 장군을 롤 모델로 삼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다. 사병들의 급식이 부실하여 문제가 된 것을 후배들에게도 질타했다고 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저는 전방 경계 초소를 가면 반드시 소총 중대의 취사장을 점검했습니다. 냉장고부터 열어보고 취사병의 위생 상태를 체크했습니다. 조직을 세우고 팀원을 성장시키는 리더십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23전 23승 전승을 했다. 전투 역사상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장수는 이순신 장군밖에 없다. 한국인은 왜 이순신을 그토록 사랑할까? 23승 전승의 신화는 어려운 상황에서 결코 포기하거나 피하지 않고 책임을 다한 성실함, 올곧음, 백성을 사랑하고 부하를 아끼는 지도자였기에 가능했다.
이순신 리더십의 원천은 첫째 자기 확신, 둘째 만전지계(萬全之計)로 설명할 수 있다. 자기 확신은 이길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고, 만전지계는 치밀한 계획과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장군은 관행과 타협하지 않았다. 1597년 정유재란 직전에는 왜군을 공격하라는 선조의 명령이 ‘일본군의 간계’로 오판하여 내려졌다는 이유로 거부함으로써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된 후 두 번째 백의종군을 했다.
이순신을 대체한 원균은 전투장에서 훈련을 등한시하고 다른 행동을 했다. 원균은 칠전량 전투에서 대패하여 300여 척의 배를 잃고 겨우 12척만 남겼다. 이순신 장군은 현실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은 채 “전하,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고 하면서 당당하게 적군과 싸웠다.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3일에 일어났다. 전쟁이 일어나기 14개월 전에 육군이던 이순신은 전라좌수영 수군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때부터 이순신은 계획을 세워 ‘판옥선’을 만들었다. ‘왜선’은 뾰족하다. 빨리 가야 하기 때문이다. 판옥선은 밑바닥이 평편하다. 배를 돌리기가 용이하다. 흔들리는 배에서 사격하면서 명중시키는 훈련을 했다. 훈련장을 만들어 참모들과 토의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 적의 동향을 파악하는 배인 ‘탐망선’을 띄우기도 했다.
명량 울돌목에서 13척으로 적선 133척을 어떻게 격파했을까?
선승구전(先勝求戰), 유리한 형세를 미리 구축하여 승리를 이끌었다. 전쟁에서 요행이란 없는 법이다. 이순신 장군은 책을 많이 읽는 공부하는 리더였다. 환산해 보니까 1년 동안 읽은 책이 약 100권 정도나 된다. 엄청난 연구를 통해 판옥선 개발, 학익진 전술, 흔들리는 배에서 화포로 사격하는 기술 등을 개발해 냈다. 바로 독서의 힘이었다.
현재 우리의 안보는 어떤 상황인가?
핵과 미사일 분야는 북한이 우위에 있고 위협적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미동맹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재래식 전력은 북한은 더 이상 우리의 위협이 될 수 없다. 장비의 현대화, 작전 지속 지원 능력, 정신력 등을 다 포함하면 현재 한반도에서 북한의 위협은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 한국군의 군사력은 세계 6위, 북한은 28위로 평가받고 있다. 초기에 기습을 당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기습은 우리가 대응을 잘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우리의 정보 능력도 상당히 향상되었고, 미국의 정보 능력이 뒷받침될 수 있는 까닭이다.
김운용 대장은 “리더는 선택하고 결단하는 사람입니다. 리더십은 리더가 모든 역경을 물리치고 배를 항구에 안전하게 정착시키는 것입니다”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야전사령관 출신 대장님의 강의를 듣고 나니 그래도 안보가 좀 안심이 되네요.“
강의가 끝난 후 참석자들이 한 이야기다.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호남이 없었다면 곧바로 나라도 없어졌을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말이 계속해서 맴돈다. ‘이순신 리더십’은 오늘날에도 살아 움직이면서 우리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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