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을 보도하는 언론의 호들갑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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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를 덮친 ‘국민연금 파워’>(조선일보) <조양호 밀어낸 국민연금, 떨고 있는 294개 기업들>(동아일보). 지난달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된 이후 쏟아진 주요 일간지의 기사 제목들이다. 제목만 보면 국민연금이 대단한 위력을 행사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것처럼 여겨진다.
연임안은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다. 이사 (재)선임을 위한 ‘주주 2/3(66.66%) 이상 찬성’이라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결과다. 대한항공 이사회가 해외자본의 경영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이전에 바꿔놓은 기준이 자충수가 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조 회장을 퇴진시킴으로써 첫 재벌총수 퇴출이라는 상징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이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호들갑스럽다. 크게 3가지 이유다.
우선 국민연금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보도다. 국민연금 자문기구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25일부터 격론을 벌여 주총 전날인 26일에야 반대표를 던지기로 합의했다. 위원들끼리도 의견이 갈렸다. 보건복지부나 국민연금이 기관 차원에서 내린 계획적 결정이 아니었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2대 주주지만 보유 지분은 11.70%에 그친다. 국민연금의 반대가 필요조건이었을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나머지 지분을 소유한 소액주주들과 해외연기금의 반대 결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결과다. <소액주주 혁명>(서울신문) <재벌총수, 주주 손에 퇴출당하다>(한겨레) 등이 그나마 핵심에 가까웠으나, 혁명이라 칭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오너 리스크’ 끌어내린 스튜어드십 코드>(국민일보)같은 경우도 본질을 짚었다고 보기 힘들다. 의결권 행사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아니다. 주식을 구매하고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에서 나아가 경영진과 수시로 소통과 의견조정을 하는 수준의 적극적 행위를 스튜어드십 코드라 부른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이번 행위는 대한항공 주총에서 표를 던진 것에 불과하다. 어떤 ‘혁명적 장치’를 도입해 재벌 총수를 경영에서 쫓아냈다는 것은 비약이다. 주주권 행사는 원래 했어야 하는 정당한 권리다. 단지 국민연금이 상장사 294개에 대해 5%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한국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법적 근거가 없다.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의 단계별 도입을 의결해 2020년까지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는 한국거래소 산하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기관 자체의 자율 지침을 국민연금 등이 차용하고 있을 뿐이다.
다음은 가장 논쟁적인 내용이다. 많은 언론사들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연금 사회주의’라 이름 붙였다. 물론 정치권 발(發) 뉴스를 받아쓴 것이겠지만, “호칭은 착시를 일으킨다”는 효과를 알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연금 사회주의’라는 낙인을 찍어버리면 의결권 행사 자체가 사회주의적 조직 행위로 인식된다. <“연금사회주의가 현실로”···충격 휩싸인 재계>(한국경제)에서 보듯이 ‘충격’이라는 주관적 표현은 차치하더라도 그 원인을 ‘연금 사회주의’라는 명칭으로 돌리면 ‘사회주의의 자본주의 침탈’이라는 공식이 성립돼 버린다. 물론 그 원인 역시 스튜어드십 코드의 단순 행사가 아니지만 더 이상 논리적인 해명은 불가하다.
언론이 이번 경우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민연금이 처음 조양호 회장 연임에 반대한 시기는 이명박 정부이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국민연금은 한진의 조양호 이사 선임안에 과도한 겸직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도 국민연금은 조 회장과 그의 아들 조원태의 사내이사 선임안에 같은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2016년 대한항공 주총, 2017년 한진칼 주총에서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그럼 2011~2017년 결정들 모두 ‘연금 사회주의’라는 정책 기조에 따른 것인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2015년경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하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밀었다.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4년이 지나서 논리를 뒤집어버렸다. 현실화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막상 도입되니까 당황한 것이다. 언론사의 철학과 가치가 정권과 상황에 따라 바뀌어버렸다. 참고로 TV조선의 3대주주가 대한항공이다.
마지막으로, 조 회장이 경영권을 박탈당했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다(조 회장 생전 기준). 일부 언론은 주총이 열리기 전부터 스튜어드십 코드의 행사가 민간 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경영권은 법적 권리가 아니다. 노동3권에 대응해 경영자 측에서 배타적 권리로 내세우는 용어일 뿐, 헌법상 명시적 근거는 없다. 반면 주주권은 상법 및 증권거래법에 의해 보장된다.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는 지극히 ‘연금 자본주의적’인 법적 행위다.
이 문제는 추후 논의를 거치더라도, 결과적으로 조 회장이 대한항공 경영에 참여하는 데 무리는 없었다. 그는 최근까지 지주회사인 한진칼을 포함해 총 7개사의 등기이사과 다른 2개사의 비등기이사를 맡고 있었다. 그중 한 회사의 등기이사에서 물러났을 뿐이다. 게다가 한진칼은 대한항공 지분의 29.96%를 가지고 있다. 모회사인 지주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조 회장이 자회사 사내이사 겸직에서 탈락했다고 달라질 건 없다. 해서 <총수 경영권 첫 박탈...국민연금의 위력>(한국일보) 같은 경우 절반의 사실만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스튜어드십은 시장 규제를 위해 정부가 새롭게 개발한 장치가 아니다. 주주로서 행사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인 의결권 행사에 ‘경영진과의 소통’을 추가하는 것뿐이다. 더욱이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투자로 운영되는 연기금인 만큼 국민을 대리하여 적극적 의결권 행사와 더불어 기업의 명백한 비위에 대해 견제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다만 소모적 논쟁을 피하고 권리 행사의 신뢰성을 갖추기 위한 국민연금의 독립기관화 과제가 남아있다. 언론이 각자 다른 이유로 스튜어드십을 까내리고 띄우는 데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가려진 가장 핵심적인 문제다. 국민연금은 정부 산하가 아닌 독립기관으로서 기업의 투명성 재고, 주주 중심의 회사 경영의 실현을 위한 ‘스튜어드’가 돼야 한다. 이를 통한 기업 가치 개선이 정부의 이익이 아닌 5천만 국민의 이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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