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월드컵 신화, 이제 잊을 때 됐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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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에 목마른 축구팬, 죄책감에 빠진 선수들
독일 전을 앞두고 신문을 봤다. 스포츠면에 있는 사설은 모두 독일 전 승리 가능성과 16강에 올라갈 수 있는 경우의 수에 관한 내용이었다. 축구가 아무리 결과가 중요한 스포츠라 한들, 선수들을 향한 격려와 응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설은 승리의 1% 가능성을 강조했고 ‘넘을 수 없는 벽’을 넘자고 압박했다. 언제부터 우리는 16강에 집착했을까.
승점을 챙기지 못한 선수들은 죄인이 되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당당히 어깨를 펼 수 없었고 눈물을 흘리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 특히, 2002 월드컵 신화는 그들의 성과를 재단하는 잣대가 되었으며 평가기준으로 사용됐다. 4강 신화를 잊지 못한 축구팬들은 선수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줘도 만족할 수 없었다. 부진한 실적은 과거의 영광과 끊임없이 비교되며 선수들을 향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피파랭킹 1위를 이기고도 비난받은 선수들
1%의 가능성은 현실이 됐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피파랭킹 1위 독일을 이겼다. 독일 전 승리는 16강 경우의 수 첫 단계를 충족했으며 멕시코가 스웨덴을 이긴다면 조 2위로 16강에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이 환호했고, 골 넣은 선수들 이름 앞에 ‘빛’을 붙여 ‘빛영권’, ‘빛흥민’이라는 응원문구를 만들었다. 처음으로 경기를 이기니, 비로소 ‘박수와 격려’가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6강에 진출하지 못했다. 멕시코는 스웨덴을 이기지 못했고 우리는 조 3위로 월드컵을 마감했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은 충분한 환호를 받아 마땅했지만, 축구팬들의 실망이 역력했다. 피파랭킹 1위,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나라를 이기고도 환영받는 귀국길에 오르지 못했다.
선수들이 받은 것은 계란이었다. 귀국 환영식에서 몇몇 선수들은 계란 세례를 받았고 축구팬들이 느낀 분노와 실망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 8년 만에 무실점 경기를 기록했지만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대표팀은 여전히 질타의 대상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파란을 일으켰지만, 그에 걸 맞는 대우를 받는 것은 매우 어려워보였다.
4강 증후군, 월드컵 때마다 선수들 발목 잡는다.
4강 증후군. 4강 신화의 재현을 기다리는 축구팬들이 보이는 증상이다. 2002년의 영광은 선수들을 압박하며 그들의 실적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조별리그에서 승리를 거둬도, 원정에서 처음 16강에 올라가도, 쉽게 박수를 받을 수 없었다. 이전에 만든 4강 신화는 월드컵 때마다 선수들의 발목을 잡으며 그들의 성적을 과소평가했고 격려보다는 비난을 양산했다. 우리는 언제까지 2002 월드컵 신화에 목매여 있을 것인가.
이제는 과거를 잊어야 한다. 2002년의 영광을, 4강 신화의 기적을 내려놓아야 한다. 축구팬들이 가지고 있는 월드컵에 대한 환상은 선수들을 점점 옥죄이고 있고 팬들의 기대치는 높아졌다. 압박을 이기지 못한 선수들은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한다. 나라를 대표하고,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뛰는 ‘국가대표’이지만, 그들을 믿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편, 16강에 대한 강한 집착은 오히려 선수들을 향한 응원을 가로막고 있다. 승리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감은 선수의 가치를 간과하고 조별 리그 경기를 16강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다. 선수들은 각자의 목표와 가치, 4년 동안의 노력을 가지고 월드컵에 임했지만, 선수와 팬들이 바라보는 월드컵은 너무나도 다르다.
선수들을 진정으로 응원하고 격려해주기 위해서는 4강 증후군을 이겨내야 한다. 언제까지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있을 것인가. 이제 새로운 4년을 내다보고 있다. 과거의 뻔한 레퍼토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팬들의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2002년과 현재, 혹은 미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을 향한 신뢰와 믿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선수들은 우리들의 희망을 대변하는 ‘국가대표’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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