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외고 유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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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와 교가를 부르는 학교가 있다. 부산국제외국어고등학교(이하 ‘국제외고’)의 이야기다.
지난달 국제외고는 관할 교육청에 일반고 전환 신청서를 제출했다. 재정적으로 학교 운영이 힘들고, 국민 여론 역시 외고 폐지에 우호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학생 및 학부모들은 물론 교사들과도 협의가 되지 않은 채 제출된 일반고 전환 신청서는 당장 수많은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교사들로부터 기습적으로 일반고 전환 신청 및 교명변경을 ‘통보’ 받았으며, 교사들 역시 통보 당일 날 해당 사실을 학교로부터 전달 받았다. 학교 측은 격렬한 반대에 뒤늦게 공청회를 열었지만 기존에 통보한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모교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학생들은 학교 곳곳에 대자보를 게시했을 뿐만 아니라, 비가 오는 와중에도 교육청 앞에서 교가를 불렀다. 학부모들 역시 피켓을 들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필자 역시 수도권 공립외고를 졸업한 입장으로서 이런 소식을 접할 때면 갑갑한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외고를 입시경쟁의 주범으로 낙인찍고 무조건적인 폐지 대상으로만 모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논의는 잠시 미뤄둔다 하더라도, 모교가 없어지는 와중에 재학생들의 의견이 완전히 무시되는 모습은 결코 ‘교육’적이라 할 수 없다. 보도에 의하면 국제외고는 교육청에 항의방문을 하는 등 학생들의 움직임이 격해지자 퇴학 처분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경고 문자까지 발송했다고 한다.
심지어 학교는 지난 2017년 입학설명회에서 일반고로의 전환이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만약 일반고 전환 계획을 알았더라면 현재 학교를 다니고 있는 신입생 상당수는 애초에 다른 학교에 진학했을 것이다. 형법 제347조 사기죄 구성요건이 성립될 여지도 다분하다. 순수하게 영리만을 추구하는 기업도 당해 연도 경영 사정이 어려우면 회사 사정을 알리고 공채를 연기한다. 진정 국제외고가 재정적 문제로 일반고 신청이 불가피했다면 적어도 전년도 수험생에게는 이를 알릴 의무가 있었다. 학교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외고는 지난 4월 2일 발표한 2018학년도 교육계획서에서 학교의 중장기 발전계획중 하나로 ‘외국어 특수목적 교육의 충실’을 뽑았다. 입학설명회에서도, 자신들이 직접 만든 교육계획서에서도, 일반고의 전환 신청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외국어 교육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더욱 치중하겠다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기습적인 일반고 전환 통보에 학생은 물론 학부모들까지 당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고들 한다. 물론 법적으로 사립학교의 경우 학교를 자유롭게 운영할 권리는 설립자에게 있다(전원재판부 99헌바63, 2001.1.18.). 그러나 설립자가 학교를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다는 말이 곧 학생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면서까지 학교를 운영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수입이 줄어들자 학교의 이름까지 바꾸겠다는 재단, 그리고 여론수렴 없는 일방적 통보에 매일 교가를 부르며 싸우는 학생들. 진정한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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