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호, 김용균, 임세원의 억울한 죽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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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7일 김용균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노동자들의 안전보장을 위한 법 개정안이 통과되기가 왜이리 힘들었을까? 이 문제가 연일 이슈가 되지 않았더라면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하는 수많은 법 중 하나로 남았을지 모른다.
2019년 1월 현재, 또 한 번 누군가의 죽음 이후 그의 이름을 앞세운 개정안이 만들어지고 있다. 정신과 의사이자 교수였던 故 임세원 씨의 이름을 딴 ‘임세원법’이 국회 곳곳에서 개정안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진료실 안 비상벨과 대피공간 등을 설치하게 하는 것, 안전요원 배치를 의무화하는 것, 의료인 폭행에 가중처벌을 하는 것. 늦더라도 고칠 것은 고쳐야겠지만 왜 필요한 법안들이 죽음 이후에야 발의가 되고, 발의된 법안이 국회 본회의의 문턱을 넘기까지 또 누군가의 죽음이 있어야 했던 것일까?
사(死)전 법 개선은 불가능한 것인가.
■ ‘윤창호법’ – 음주운전은 살인입니다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이 2018년 11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3살 청년 윤창호 씨는 만취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여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세상을 떠났다. 꿈 많을 나이 음주운전 사고로 꿈을 다 펼치지 못한 어린 청년의 죽음에 그의 친구들이 나섰다. 故 윤창호 씨의 친구들은 일일이 국회의원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했다. 억울하게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친구의 이야기를 알렸다. 그들은 직접 법안의 골자를 잡아왔다고 알려졌다. 윤창호 친구들의 노력 끝에 음주운전의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이 만들어졌다.
윤창호법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과 ‘도로교통법’에서 음주운전에 해당하는 조항이 강화된 것이다. 혈중알코올농도가 0.05% 이상일 때 도로교통법에 의해 형사처벌 대상이었으나, 윤창호법 시행 이후 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이면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그 밖에도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하게 하더라도 ‘1년 이상 유기징역’이었던 것이 윤창호법 시행 이후에는 최대 무기징역으로 형량이 높아졌다. 앞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2019년부터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 법안이 새해 적용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평균 400건의 음주운전이 적발되고 있다.
■ ‘김용균법’ - 28년을 기다린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총 144p에 걸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은 법의 보호대상을 확대하여 안전조치와 보건조치를 하도록 하고 가맹점의 안전과 보건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또한 산업현장에서의 안전권 보장을 위한 ‘작업중지권’을 근로자에게 부여하고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여 작업을 중지한 근로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를 금하였다. 나아가 도금과 같은 위험한 작업의 경우 ‘도급을 금지’하는 규정으로 원칙적으로 도급금지를 내세웠다. 끝으로 도급인에게 산업재해 예방 책임을 강화하고 법 위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1981년에 제정되어 1990년 개정된 이래 28년만에 전면적인 개정이 이루어졌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근로기준법’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대응하고자 산업안전보건법이 만들어져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 사고’가 발생하였다.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비롯해 근로자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논의가 이루어지며 산업안전보건법 정부안도 발표되었으나 야권과 재계 등의 반발로 지지부진했다. 24살 청년 故 김용균 씨의 사고 이후에야 논의가 급진전되었고 28년만에 간신히 진일보한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
■ ‘임세원법’ – 안전한 의료환경은 어디에
과거 응급실 폭행 사건 등으로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조항을 둬 의료현장의 안전을 보장하자는 목소리가 있었다. 기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폭행 등으로 진료 행위를 방해하면 최대 5년 징역형부터 최대 5천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그러나 이 조항에도 불구하고 폭행사건이 종종 발생했고 처벌을 강화하자는 법안들이 발의되었다. 의료현장에서의 폭행 사건들로 인해 다른 환자의 진료권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까지 있기에 현장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故 임세원 교수의 사고 이후 다시 한 번 의료인의 안전권 보장을 위한 법 개정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의료현장에서의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인력과 시설을 정비해야 한다는 취지로진료실 안 비상벨과 대피공간 등을 설치하게 하는 것, 안전요원 배치를 의무화하는 것, 의료인 폭행에 가중처벌을 하는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도 나왔다. 이제라도 의료환경 개선의 움직임이 이는 것은 다행이지만 아직까지도 의료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던 현실을 지적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다만 임세원 교수의 유족은 고인의 뜻을 이어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없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을 뿐이다.
■ 입법, 한 걸음만 더 빨리
처음 발생한 사고가 아니다. 매번 문제가 될 때 뜨겁게 일었다 꺼지는 관심은 국회에 수많은 계류 법안을 만들어냈다. 이슈화가 되어 언론에 기사가 많이 날 때 법안이 우수수 발의됐다가, 정작 관심이 식어 국회 본회의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 법안들이 있다. 이는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하는 입법부가 한 발 빠른 입법을 하고 법 개선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지니도록 변해야 함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 사람의 이름을 앞세운 법안이 만들어지는 것은 분명 늦었을지라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전에 충분히 발의되어 시행될 수 있는 법안들이 왜 이제야 나오는 것인지, 이전에 발의된 법안들이 또다시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어야만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젊은 청년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부터 산업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수많은 목소리가 있었다. 2016년 5월 겨우 19세의 청년이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전동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사고가 발생한 이후 ‘위험의 외주화’, ‘산업현장의 열악한 환경’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위험의 외주화’는 여전했고 안전에 대한 책임을 하청업체에게 미루는 산업의 생태계는 그대로였다.
국회에서의 한 발 빠른 입법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한 명의 국민을 살려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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