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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반도체산업 부침과 부흥 노력 및 시사점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09월14일 16시15분
  • 최종수정 2024년09월14일 15시00분

작성자

  • 김양팽
  • 산업연구원 신산업실 전문연구원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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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요약>

일본은 미국에서 반도체가 개발된 직후 제조 기술을 이전받아 이를 활용한 개인용 전기 전자제품을 생산하면서 1980년대 중반에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했다. 당시 일본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일본 정부의 정책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최초로 발명한 미국에서는 초기에 반도체를 대부분 국방용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제조 기업의 주요 고객은 미국 정부였다. 따라서 미국의 반도체 제조 기업들은 정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였다. 

한편 일본 기업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이후 무기 개발이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반도체를 활용해서 개인용 전기·전자 제품을 생산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반도체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했고, 다수의 전자제품 생산 기업이 자사 제품에 반도체를 채용하기 위해 생산하면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 일본의 산업정책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외환 규제를 통해 수입을 막으면서 수출을 촉진하는 전략이 주로 이용되었다. 반도체산업 역시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 제품의 수출은 늘리고 미국산 제품의 수입은 철저하게 방어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노력으로 인해 1980년대 중반에 드디어 미국을 추월하여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일본과의 불공정 거래를 해소하기 위해 슈퍼 301조를 발동하고 미·일 반도체 협정을 추진하면서 일본의 반도체산업 발전에 제동을 걸었다. 이후 일본의 반도체 제조업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현재 시장 점유율 10% 미만으로 추락한 상황이다. 물론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자 일본 정부는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았으나 번번이 실패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미국을 선두로 기존의 반도체 선진국들이 공급망 안정화를 이유로 자국 내 반도체 제조 설비 유치에 적극적으로 일본 정부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산업 초기부터 제조 장비와 소재 분야도 함께 발달하여 현재 후공정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반도체 제조업 부활로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이 과열될 뿐만 아니라 제조 장비와 소재를 공급받고 있는 국내 반도체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과의 과도한 경쟁보다는 새로운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1. 들어가며 

 

코로나19 영향으로 발생한 글로벌 반도체 부족 현상 이후 미국을 비롯하여 과거 반도체 선진 국에서는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재점검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반도체 공급 문제로 인해 자국 산업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자국 내 반도체 제조 설비 확충을 위한 정책들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경제 성과 효율성을 이유로 제조 공정별로 여러 국가에 걸쳐 구축된 반도체 공급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과거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을 앞서기도 했으나 1980년대 중반, 미·일 반도체 협 정을 시작으로 점차 반도체 제조업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산업 부활을 위해 2000년대 초반, 다양한 지원 정책을 실행하였으나 실패로 끝나면서 반도체산업에 대한 별도의 정책은 오랜 기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최근 전개되고 있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변화의 틈을 타고 또다시 반도체산업 부활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들을 마련했다. 특히 쇠퇴한 반도체 제조업 부활을 위해서 대만의 TSMC와 미국의 마이크론을 적극 유치하여 생산 설비에 대해 최대 50%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정책도 진행 중이다. 

게다가 국내 기업 육성을 위해서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출자하여 라피더스(RAPIDUS)라는 파운드리 기업을 설립하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일본은 과거 세계 반도체 시장을 제패한 경험이 있으며, 제조 장비와 소재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 이러한 정책이 계획대로 마무리되고 일본의 반도체산업 부활이 실현된다면 세계 반도체 시장은 지금과는 또 다른 구조로 변할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반도체 공급망에서 구축되어 온 한국과 일본의 수직 협력관계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일본 반도체산업 전반을 확인하고 최근 일본 반도체산업의 정책 목표를 분석하여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대응 방안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2. 일본 반도체산업의 흥망성쇠


(1) 일본 반도체산업의 성공 


1) 트랜지스터 개발 

 

1947년 미국에서 트랜지스터가 발명된 직후인 1948년에 일본의 통상산업성 산업과학기술연구소 전기연구소는 트랜지스터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고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AT&T가 독점금 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될 것을 우려하여 1952년 트랜지스터 기술을 유료로 공개하자 곧바로 기초 특허를 구매하여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했다. 

일본 기업들 또한 AT&T가 기술을 공개함에 따라 엔지니어를 파견하고 기초 특허를 구매했으며,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와 GE(General Electric)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 제조 방법 특허와 노하우 등을 습득했다. 

트랜지스터의 발명은 기존 전자제품 생산에 큰 혁신을 불러왔다. 1954년 미국 텍사스인스트루 먼트(Texas Instruments, TI)가 최초로 진공관을 트랜지스터로 대체한 부피가 작고 휴대가 가능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발표했다. 곧이어 1955년 일본의 동경통신공업1)이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출시했는데 1957년 일본 국내 음악 열풍을 타고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여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소니의 이러한 성공을 보면서 도시바, 히타치, 마쓰시타 전기산업(현 파나소닉) 등 기존 대기업들도 트랜지 스터라디오 제조에 뛰어들어 1959년 일본에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공급하는 기업은 11개로 성장하여 미국 트랜지스터 라디오시장의 50%를 일본 기업이 차지했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트랜지스터 라디오 생산국이 됨과 동시에 세계 최대의 게르마늄 트랜지스터 생산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최근 반도체는 첨단기술의 집합체로 생산을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과 장비가 필요하지만, 당시 트랜 지스터는 수작업으로 생산하는 전형적인 노동집약적 산업 중 하나로 당시 일본의 여공들이 생산라인에 투입되어 반도체산업의 초석을 다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집적회로(集積回路, Integrated Circuit) 생산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반도체라고 칭하는 제품은 1957년 미국에서 개발된 실리콘 트랜지스 터 집적회로가 정확한 명칭이다. 트랜지스터는 라디오와 같이 휴대용 전자제품을 현실화하는 등 전기·전자산업에 혁명적인 영향을 미쳤으나 고열이 발생하고 트랜지스터 간의 연결 부위가 고장나는 등 한계가 노출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많은 트랜지스터를 실리콘 기판 위에 집적하여 제작한 것이 바로 집적회로(이하 반도체)이다. 1957년 TI가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고 페어차일드가 1961년에 양산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반도체 시대가 열리게 되었으나 미국에서는 1960년대 중반까지 주로 군수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트랜지스터 라디오 이후 전자제품 기업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고 기존의 트랜지스터에서 반도체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발생했다. 이에 1960년대 후반, 일본 전자제품 제조업체는 반도체를 자사 제품에 사용하기 위해 직접 생산하거나 반도체 제조업체와 협력하여 기술과 품질을 개선하면서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진입했다. 이와 함께 일본의 정밀 기계 기업과 소재 기업들이 다수의 전자제품 기업에 반도체 제조 장비와 소재를 공급하면서 반도체산업의 후방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대규모 전자제품 생산업체들은 자사 제품에 사용되는 반도체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고, 특히 1964년 동경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 최초로 트랜지스터 계산기2)를 개발한 샤프는 1971년에 자사 반도체를 사용한 휴대용 계산기를 출시했다. 

 

캐논은 미국의 TI와 기술 협력을 통해 휴대용 계산기를 출시했는데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이러한 캐논의 성공에 자극받은 히타치, 마쓰시타, 도시바, 산요전기 등 거의 모든 종합전기·전자제품 생산업체와 중소 규모의 재팬비지콘 등 약 20개사가 서로 앞다투어 계산기를 생산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1990년도 일본경제신문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탁상용 전자계산기 시장에서 일본 기업의 점유율은 카시오 53%, 샤프 38.5%, 캐논 2.8%, 산요전기 2.5%, 도시바 2.3%로 일본 기업이 완전히 장악 했으며, 세계 시장도 유사한 상황이었다. 일본 기업의 연간 계산기 생산량은 1965년 4,300대에서 15년 후인 1980년에는 6,000만 대를 생산했고 가격은 1만 원 수준으로 낮아졌는데 이 과정에서 계산기의 부품인 고집적 회로 VLSI, 마이크로프로세서 같은 반도체 제조 기술도 발전할 수 있었다. 

 

3) 세계 반도체 시장 석권 

 

1970년 인텔이 디램(Dynamic Random-Ac\-cess Memory, DRAM) 개발에 성공하여 메인프레임 시장을 대부분을 독점하면서 막대한 수익이 발생하자 NEC, 후지쓰, 도시바, 히타치, 미쓰비시 등 일본 거대 전자제품 기업들이 앞다투어 디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1973년 오일쇼크로 인해 반도체 매출이 급감하자 인텔을 비롯한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를 줄였으나, 일본 기업들은 오히려 투자를 늘리며 경쟁력을 강화했는데 이는 정부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후 1970년대 오일쇼크를 겪으며, 수출 위주로 경제를 일으키던 일본 정부는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과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신산업으로 반도체산업을 낙점하고 ‘초LSI기술연구조합’이라는 관민단체를 주도적으로 조직했다. ‘초LSI기술연구조합’은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연구 개발 비용의 중복 투자를 방지하고, 기술 노하우를 공유하며, 시장 변동에 대해 공동 대응할 수 있는 기반으로 작동하게 된다. 일본 정부는 일본의 반도체산업 생태계 자생을 목표로 하여 일본의 거대 반도체 기업과 함께 이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리콘 웨이퍼와 같은 반도체 소재, 부품, 에칭이나 증착장비 같은 공정장비 관련 중소기업들을 육성하여 현재까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메인프레임에 주로 사용되던 디램이 대용량 컴퓨터와 통신장비에 필수 부품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디램의 수요는 폭증하기 시작했고 투자를 지속했던 일본 기업들은 우수한 공정 수율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단가를 경쟁력으로 세계 시장을 제패할 수 있었다. 특히 NEC는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으며, 이 시기 매출액 기준 반도체업계 상위 10개 사 중 6개사가 일본 기업이었다. 1980년대 들어 NEC, 도시바, 히타치,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들이 64K 디램 부문에서 처음으로 미국 기업을 추월했고, 1987년에는 256K 디램을 중심으로 세계 디램 시장의 80%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기업들은 1983년부터 정부를 등에 업고 가격 공세를 펼쳤으며, 1985년 일본 저가 공세에 미국 시장이 잠식되었고 미국 내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70% 폭락하여 1984년 초 3달러였던 64Kb 램 가격이 ​75센트로 급락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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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의 저가 공세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벌어진 첫 치킨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1986년 1M 디램 생산 원가는 미국 이 11.83달러인데 일본 도시바는 3분의 1 수준의 3.31달러로 가격 경쟁력에서 큰 차이가 났고, 디램의 원조인 인텔은 시장점유율이 1974년 82.9%에서 1984년 1.3%로 추락했다. 이후 인텔은 실적 악화로 인해 1985년 메모리 반도체사업에서 철수를 선언하고 2만 4,000명에 달했던 직원 수를 1만 8,000명으로 줄였고 1986년에는 메모리 사업을 완전히 정리했다. 그리고 일본에 반도체 특허를 제공하던 RCA는 1986년 폐업하게 된다. 그 결과 일본이 미국을 넘어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2) 일본 반도체산업의 쇠퇴 


1) 미국 정부의 반격 

 

일본 기업의 공격적인 마케팅 영향으로 미국 기업이 피해를 보게 되자 미국 반도체산업협회 는 1985년 6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통상법 301조 위반 혐의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청원서를 제출했다. 인텔의 창업자인 로버트 노이스 도 미국 무역대표부에 일본 반도체산업 정책의 불공정성을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으며, 마이크론은 NEC, 히타치, 미쓰비시, 도시바 등 일본 반도체 기업들을 반덤핑 혐의로 제소했다. 이러한 기업과 단체의 요청에 따라 미국 정부는 일본에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그리고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일본, 서독, 영국, 프랑스와 재무장관 회의를 열어 일본 엔화와 서독 마르크화의 고평가와 미국 달러 저평가가 이뤄지도록 하는 플라자 합의를 체결했고, 이 합의로 인해 일본 기업의 반도체 가격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게다가 1986년 일본 반도체 기업은 미국에 생산 원가를 공개하고 일본 내 미국 반도체 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높이기로 한다는 내용의 미·일 반도체 협정이 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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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987년 일본 정부가 미·일 반도체 협정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서 미국이 통상법 301조를 통해 무역 보복을 시행했고, 일본산 TV에 100% 보복관세 조치를 시행하면서 일본은 반 도체산업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에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2) 일본 반도체산업의 추락 


제1차 미·일 반도체 협정(1986년 9월~1991년 7월)에 이어 1991년에 제2차 반도체 협정이 체결되었고, 5년 후인 1996년 2월에 재검토하여 협상이 이루어졌다. 1988년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은 일본이 미국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으나 이후 1992년부터 급감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1983년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디램을 개발한 삼성전자는 9년 만인 1992년에 세계 최초로 64M 디램 반도체를 발표했으며, 1997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일본을 추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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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일본의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인 NEC와 히타치제작소는 메모리 사업 부문을 분리해 합병하며 NEC히타치메모리로 출범했고, 2000년 5월 회사 이름을 엘피다 메모리로 변경했다. 하지만 엘피다는 고전을 면치 못하다 2012년 파산했고 2013년 미국의 마이크론이 엘피다를 인수하게 된다. 파나소닉은 1952년 네덜란드 필립스와 합작회사를 설립해 반도체사업에 진출한 뒤 1990년을 전후해 반도체 매출에서 세계 상위 10개 기업에 포함될 정도로 그 위상을 자랑했으나, 2019년 반도체사업에서 철수했다. 

낸드플래시를 처음으로 개발한 도시바는 2017년 메모리반도체 사업을 미국 사모펀드에 매각하였고 2019년 10월 사명을 키옥시아로 변경하여 현재 일본에서 유일하게 메모리반도체인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다. 비메모리의 경우 히타치와 미쓰비시가 SoC(System on Chip) 등 비메모리 사업을 합쳐서 2003년 르네사스 테크놀로지를 설립했고 2010년에는 NEC의 비메모리까지 합병했다.

 

3. 일본 반도체산업의 성공과 쇠퇴 요인 분석


(1) 일본 반도체산업의 성공 요인 

 

일본 반도체산업의 성공 요인 중 첫 번째는 일본 전자업체들 간의 경쟁이다. 일반 반도체를 발명한 미국의 반도체 개발 목적과 주요 용도는 군수 및 항공우주 개발용이었으므로 주요 고객은 미국 정부였다. 1955년부터 1959년까지 미국 반도체 기업 매출의 38~45%를 미국 정부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격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미국 기업들은 원가 절감 노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군대 보유가 금지된 패전국으로 반도체를 일반 소비자용 제품에 적용하여 품질과 가격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게다가 일본 반도체 기업은 대부분 종합 전기·전자 제조업체로 반도체를 자사 제품에 채용하기 위해 생산했으므로 단기적인 반도체 수익 변동과 상관없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을 진행하여 미국을 추월할 수 있었다. 일본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일본인들의 소득이 급격히 늘어났고 전자제품 매출이 늘어 규모의 경제가 발생했으며 반도체 수율이 급격히 높아져 원가가 떨어지면서 가격경쟁력도 강화 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성공 요인은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과 기업 구조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공업화가 진행되었으며, 기술 기반이 확립되었고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으로 반도체의 품질과 수율을 높임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했다. 그리고 독립회사 시스템인 미국은 오일쇼크 등의 불황에 매출이 감소하자 반도체산업에 대한 투자를 줄였으나, 여러 계열사가 얽혀있는 일본은 다른 계열사로부터 교차로 보조를 받아서 불황에도 지속해서 투자를 진행했다. 그 결과 다시 호황이 왔을 때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성공 요인은 일본 정부의 지원과 보호이다. 일본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경제 발전을 위해 중화학공업을 집중해서 지원하면서 전기·전자산업을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으나, 1950년대 말 소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전기·전자산업을 지원 대상에 포함했다. 그리고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 이후 일본 정부는 첨단산업 육성을 결정하고 반도체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미국과 유럽의 반도체 수입을 제한하고 연구 개발 및 설비투자를 지원하는 형태로 일본 반도체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견제로 인해 정부 지원은 대폭 축소되었고 일본의 반도체산업은 경쟁력을 잃게 된다. 

 

마지막 성공 요인은 지정학(地政學)적 관점에서 미국 정부의 지원이다. 1949년에 일본을 자본주의 체제의 일원으로 부활시키려는 미국의 계획이 확정되면서 일본의 경제안정을 미국이 직접 추진 하게 된다. 그리고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가 높아짐에 따라 중국을 견제 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의 경제성장을 지원했다. 1970년대 초반, 달러 가치가 절상되었고 에너지 절약형의 일본 자동차를 비롯하여 각종 우수한 제품들이 뛰어난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미국 소비자들에게 선택받으며 부품으로 사용되는 반도체산업도 발달할 수 있었다. 

 

(2) 일본 반도체산업의 쇠퇴 요인 

 

한때 미국을 추월하여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한 일본의 반도체산업은 1990년대 초반부터 급격하게 쇠퇴하게 된다. 이렇게 쇠퇴의 길로 접어들 게 된 첫 번째 요인으로는 세계적인 수평 분업화 추세에 대한 외면을 들 수 있다. 당시 반도체산업의 세계적인 흐름은 특정 용도용 표준품으로 전환되면서 고성능과 양산효과에 의한 저비용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따라 1970년대 말부터 미국에서 팹리스가 성장했고 대만에서 전문 파운드리 기업인 TSMC의 등장으로 인해 설계와 제조가 분리되었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이러한 추세에 편승하지 못하고 SoC 개발에도 메모리반도체와 같이 설계와 제조를 함께 함으로써 비용 절감에 실패했다. 게다가 일본 전자제품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이 낮아지면서 새로운 고객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반도체 사업부 적자가 누적되었고 지속적인 투자가 어렵게 되었다. 

 

두 번째 쇠퇴 요인은 시장을 무시한 기술 제일주의이다. 일본은 혼신을 다하는 장인 정신을 가리키는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 그리고 주어진 장소에서 목숨 걸고 일한다는 ‘잇쇼켄메이’(一生懸命) 정신으로 유명하다. 초기에 이러한 장인 정신이 반도체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는 오히려 문제가 되었고 일본은 기술력의 신화에 도취하여 시장 상황을 외면하다가 몰락하게 된다. 1980년대까지 디램은 대형 컴퓨터 나 교환 전화기에 주로 사용되며 고성능의 디램이 사용되었으나, PC의 보급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 하지만 일본 반도체 기업은 특유의 장인정신 때문에 여전히 고성능 제품에 집착하여 가격 경쟁력 등이 저하된 것이다. 

 

 세 번째 쇠퇴 요인은 동상이몽의 관민 프로젝트 남발, 즉 정부의 어긋난 지원 정책이다. 1980년대 후반 일본 반도체산업은 1970년대 통신산업 성(MITI)이 주도한 ‘초LSI기술연구조합’을 기반으로 황금기에 진입했고 일본 반도체 제조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뿐만 아니라, 제조 장치와 반도체 재료의 국산화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하지만 반도체산업이 몰락하도록 이끈 것도 일본 정부였다는 평가를 피하지 못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미· 일 반도체 패권 경쟁이 진정된 2000년 이후 일본 정부는 반도체산업의 부활을 위해 국가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여러 가지 프로젝트가 난립하면서 기업들에 혼란을 가중시켜 오히려 반도체산업 부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300mm 웨이퍼 관련 공정 기술 개발 협의체인 ‘Selete’와 초미세 공정 기술 및 SoC 기술 개발 협의체인 ‘STARC’를 모태로 NEC·히타치·미쓰비시 등 일본의 11개 반도체 회사가 구성한 공동 프로젝트인 아스카(ASCA) 프로젝트가 2001년 4월부터 2006년 3월까지 5년 간 진행되었다. 그리고 2002년 소니, 도시바, 샤프 등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결성한 SoC 양산에 적합한 생산기술 개발을 위해 차세대 반도체 개발(HALCA)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도시바, NEC 일렉트로닉스, 히타치, 르네사스 등 일본 반도체 10개사가 공동 출자해 2002년 7월에 첨단 SoC 기반기술개발(ASPLA)을 설립했다. 비슷한 시기에 정부 주도의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으나 대부분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났다. 게다가 일 본 경제산업성은 최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국가가 건설하여 수탁 제조하게 되면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인 대만 TMSC에 대항할 수 있다고 기업들의 참여를 호소했으나 비용 부담 등의 문제로 무산되기도 했다. 

 

네 번째 쇠퇴 요인은 반도체사업이 종합전자제품 제조 사업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본 반도체산업의 추락 원인으로 업계 관계자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것은 반도체사업이 종합전자제품 사업에서 하나의 부문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은 적자 수주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이는 반도체는 생산·판매량이 많을수록 비용을 낮출 수 있으므로 처음에는 적자가 발생해도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일본의 반도체사업은 사내 거래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반도체 단독의 채산성에 구애받는 경우는 거의 없고 외부 판매라 할지라도 회사 전체에 이익이라면 문제 없다는 식의 경영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반도체 기업이 종합전자제품 기업의 계열사로 되어 있어 반도체사업에 거액의 투자가 필요 하다 하더라도 회사 전체의 균형 차원에서 단독 결정이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어 빠른 투자 결정이 늦어졌고 결국 반도체산업이 쇠퇴하게 된 것이다. 

 

끝으로 기정학(技政學)적 관점에서 미국 정부의 견제로 인해 일본의 반도체산업은 쇠퇴하게 되었다. 1980년대 이전까지 미국 기업이 장악했던 반도체 시장은 어느새 일본 기업들이 잠식했고 1981년부터 시작된 레이건 정부는 당시 전 세계 반도체 매출 상위 10개 기업 중 6개사가 일본 기업이라는 데 큰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레이건 정부는 일본 반도체 기업의 덤핑이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압박했고, 미국 언론은 일본 반도체 기업의 저가 공세를 ‘제2의 진주만 공습’으로 비유했다.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도 일본 반도체산업의 강세가 꺾이지 않고 미국 반도체산업에 큰 피해가 발생하자 미국은 일본에 대한 통상 압박을 강화하여 일본의 반도체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4. 최근 일본의 반도체산업 정책 


(1) 반도체·디지털산업 전략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글로벌 반도체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들은 반도체 공급망에 관한 재평가를 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발명된 반도체는 오랜 기간에 걸쳐 제조 공정별로 전 세계에서 경쟁력 있는 국가들이 담당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형성되었다. 그중에서 제조 분야는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 지역에서 담당하고 있었는데, 글로벌 반도체 부족 현상을 겪은 미국을 비롯하여 EU, 일본 등이 반도체 제조 시설을 자국 내로 유치하기 위한 정책들을 앞다투어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2000년대 초반 반도체산업 정책 실패 이후 반도체 관련 정책을 별도로 발표하지 않았으나, 2021년 6월 경제산업성에서 ‘반도체 디지털 산업전략’을 발표했고 스가 내각이 반도체 전략을 ‘성장전략’에 담아 각의에서 결정했다. 

 

경제산업성에서 발표한 반도체 전략으로는 첫째로 첨단 반도체 양산 체제 구축, 둘째로 차세대 첨단 반도체의 설계·개발 강화, 셋째로는 반도체 기술의 그린이노베이션, 넷째로 국내 반도체 제조 기반 재생, 다섯째로는 경제 안전보장 관점에서의 국제전략 추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첨단 반도체 양산 체제 구축을 위해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대만 기업인 TSMC를 유치했고 이를 위해 추경예산을 편성하여 TSMC의 설비투자 금액의 약 50%까지 지원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지원 정책에 따라 TSMC 제1공장은 2022년 착공하여 올해 12월에 제품 출하를 시작할 예정이며, 제2공장도 올해 초에 착공하여 2027년 하반기에 제품을 출하할 예정이다. 외국 기업을 유치하여 일단은 국내 반도체 제조 기반 재생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6월 일본 정부는 반도체·디지털산업 전략을 개정하였는데, 개정 이유로 2021년 최초 수립 이후 2년이 지나는 가운데 세계 정세가 시시각각 변화하고 경제 안보 리스크 및 디지털화 친환경 대응의 중요성이 높아지며 관련 분야의 포괄적인 대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제시했다. 반도체 분야의 개별 전략 중 주요 내용은 첫째, 2030년까지 자국 내 반도체 생산 기업의 반도체 부문 합계 매출액 15조 엔 이상 달성을 통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며, 둘째로 첨단 로직·메모리 반도체, 산업용 특수용도 반도체, 첨단 패키지, 제조 장치와 부품 소재별 등에 대해 3단계 전략을 추진해 2030년대에는 실용화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특히 첨단 로직 반도체 분야 제조 기반 확보와 기술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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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본의 반도체산업 부활 움직임 

 

일본은 한때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면서 건설한 반도체 제조 공장이 남아 있으나, 대부분이 구형 제품, 즉 레거시 반도체 생산 설비이다. 이는 지난 20년 이상 일본의 경기 침체와 더불어 반도체 제조 공장에 대한 신규 투자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1년 대만 TSMC에 대한 투자 지원 발표 이후 자국 기업인 키옥시아와 미국의 마이크론도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아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TSMC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투자를 유치한 목표는 명확하다. 지난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와 같은 일이 재발하더라도 소니를 비롯한 덴소 등 일본의 반도체 수요기업들이 차질 없이 반도체를 공급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지난 수십 년간 반도체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낙후된 기술을 보완하기 위하여 외국 기업을 유치한 것이다. 게다가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제조 공장을 건설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와 함께, 반도체 제조에 가장 필요한 웨이퍼뿐만 아니라 제조 장비와 소재 등의 50% 이상을 일본산 제품 사용을 추구함에 따라 후방산업의 경쟁력을 계속 강화 하겠다는 목표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 일본의 반도체산업 정책은 경쟁력이 약한 첨단 반도체 생산 설비 구축과 동시에 경쟁력이 높은 제조 장비와 소재 분야도 함께 지원하는 전략이다. TSMC 제1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일본 수요 기업에 맞추다 보니 최첨단 공정이 아니라는 비판이 있었으나, 제2 공장에서는 10nm 이하의 공정을 도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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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일본 정부와 토요타, 키옥시아, 소니, NTT, 소프트뱅크, NEC, 덴소, 미쓰비시 UFJ은행 등 일본 주요 기업 여덟 곳은 지난달 공동으로 출자해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를 설립하면서 최첨단 공정인 회로 선폭 2nm 이하의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최첨단 2nm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하는 라피더스는 홋카이도 치토세시에 생산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홋카이도는 제조업 비중이 9.9%에 불과해 국내 평균(20%)의 절반 수준으로 라피더스는 홋카이도의 산업구조를 크게 변화시킬 게임체인저로 기대되고 있다. 라피더스의 코이케 아츠요시 사장은 도마코마이시-삿포로시-이시카리시 일대 첨단산업의 집적을 도모하는 ‘홋카이도 밸리’ 구상 계획에 대한 포부를 표명한 바 있다. 그리고 TSMC 의 세 번째 공장이 홋카이도에 들어설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홋카이도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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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일 반도체 협력 

 

일본의 반도체산업 발전을 저지했던 미국이 최근 일본의 반도체산업 부활 움직임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디지털산업 전략에서 ‘경제 안전보장 관점에서의 국제전략 추진’을 한다고 했는데 대만의 TSMC와의 협력뿐만 아니라 반도체산업 재건을 위해 과거 반도체 분야에서 갈등을 빚었던 미국과도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2022년 7월 워싱턴에서 열린 외 교·상무 장관의 ‘2+2 경제 대화’에서 차세대반도체 개발에 협력하기로 합의했으며, 일본에 미· 일 차세대 반도체 공동 연구센터도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미국은 반도체 설계와 개발, 일본은 제조 장치와 재료에 강점이 있다”라면서 “양국이 서로 보완해 첨단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대만 의존에서 벗어나겠다는 목표가 있다”고 분석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은 2022년 11월 한 경제포럼에서 “지난 5월 14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출범한 인도·태평양경제 프레임워크(IPEF) 안에서 일본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반도체 협력”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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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사점

 

일본의 반도체산업은 성장부터 쇠퇴까지 전 주기를 경험했고 최근 부활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반도체는 미국에서 발명되었으나 일본 기업이 빠른 속도로 추월했는데 이는 일본의 종합전자제품 제조 기업들이 자사 전자제품에 사용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개발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반도체산업 초기에는 다양한 전자제품에 필요한 제품을 개발하여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었으나, 점차 내부 거래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일본 전자제품업체들의 경영 실적이 악화됨에 따라 반도체 분야도 함께 쇠퇴하게 되었다. 

일본의 반도체산업은 제조 장비와 소재 분야도 함께 발달했는데 이는 일본 기업은 반도체 초 기 제품인 트랜지스터부터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다수의 전자업체가 참여하면서 제조 장비와 소재도 함께 개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도 1980년대 반도체산업을 육성하기로 결정한 이후 제조 장비 및 소재 기업에 대한 지원도 함께 진행 하여 현재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일본의 반도체산업 흥망성쇠에 미국 정부가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50년대 미국은 지정학적 관점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경제 발전을 지원했고 일본 기업의 반도체 생산을 견제하기보다 저렴한 일본 제품 구매를 확대하며 일본 경제성장을 지원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일본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미국을 추월하고 무역수지 적자 폭이 커지자, 일본 반도체산업을 견제했고 그 결과 일본 반도체 제조업이 쇠퇴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은 일본 반도체산업의 부활 움직임에 기술 협력 등 지원을 하고 있다. 이는 현재 반도체 제조업이 한국과 대만 등 특정 국가에 집중되어 있어 이를 분산시키기 위한, 즉 기정학적 목적으로 미·일 반도체 협력이 재개된 것이다. 

 

일본의 이러한 정책 변화에 대응하여 한국은 일본과의 반도체 공급망 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한국은 이전 일본의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대체했으며, 최근 파운드리 사업도 본격화하고 있어 일본 반도체산업의 부활로 새로운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의 반도체 제조 기업과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지금까지 구축해 온 공급망이 무너지면 양국 기업 모두에게 손해이므로 협력관계 유지가 필요하다. 게다가 일본은 반도체산업 부활을 위해 미국, 대만 등과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일본에 R&D센터를 설립하는 등 기존의 수직 협력과는 다른 협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더욱이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으므로 한국과 일본은 과도한 경쟁 관계를 구축하기보다는 선의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상호 반도체산업이 발전하는 방안 모색이 필요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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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경통신공업은 1958년 소니로 사명을 변경했다.  

2) 세계 최초의 전자계산기 가격은 53만 3,000엔으로 당시 중형 승용차와 맞먹는 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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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산업연구원(KIET)이 발간한 [월간 KIET 산업경제 8월호] ‘특집’에 실린 것으로 연구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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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9월14일 16시15분
  • 최종수정 2024년09월14일 15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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