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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 <67>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고집스런 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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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4월06일 16시43분
  • 최종수정 2024년03월08일 09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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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독자의 요구를 감안하고, 그런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시를 써야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시인은 시인 자신의 필연에 따라 자신의 시를 써내는 것이 옳은가, 이런 문제는 아주 사소한 문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문제야 말로 시와 시인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가치의 정립과도 연관되는 아주 중요한 판단 준거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건청 시집 『석탄 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2000. 시와시학)은 이른바 ‘독자 정책’이라는 것을 무시하였고, 내 나름의 고집까지를 담고 있는 시집이다.


아래의 시는 탄광 사고로 두개골 골절상을 입은 광부 남진명 씨의 부상 및 치료 과정에 나타나는 부당하고 불평등한 관계를 시로 써서 고발하고 있는 시이다. 시인은 이 사건이 온당하게 처리되어 피해자에게 올바른 판단이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시인은 시적 감성으로는 처리되기 어려운 사건을 문제화할 목적으로 이 사건의 경위서를 시 속에 들어내 보이는 파격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사건 경위가 매우 소략하게 기술되어 있으며, 피해자 자신의 실책이 원인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피해경위서는 회사의 담당 계원 이인철이 기술하였고, 피해자와 목격자의 진술은 담당계원 이인철의 기록과 동일한 것으로 되어 있다. 시인은 이 사건경위서 자체를 그대로 자신의 시에 제시함으로써 이 문서가 지닌 불평등 관행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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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석탄 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 (시와 시학사. 2000.5)을 내고 나서 어느 술자리에서였다. 더불어 술자리에 앉은 분 중, 한 분이 말했다. ‘아니. 이 시대에 ‘석탄’이라니 그거 너무한 거 아니오.’ 오늘 날처럼, 현란한 가치가 순간적으로 명멸해 가는 감성과 직관의 시대에 ‘석탄’을, 그것도 ‘관찰 기록’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 시집의 제목에 배어 있는 고집스러움을 탓하는 말이었다.

  사실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시대 독자들의 요구를 너무도 배려하지 않은 아집 같은 것이 이 시집의 제목에 강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이, 독자를 향해 글을 쓸 때엔 나름의 전달 전략이 없을 수 없겠다. 시인은 그가 독자로 선택하고 싶은 사람들을 선택하고, 그들을 위한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글을 읽어줄 사람의 취향과 기호를 파악하고 그들의 바람에 부합되는 글을 써내야 하는 것이 원칙이기도 할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코오드’가 맞아야 한다는 말일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이 시집은 내 나름의 고집으로 누구도 관심 갖지 않고 있는 우리 시대의 불평등 문제를 정공법으로 다뤄보겠다는 의도가 짙게 배어 있다. 우리 시대의 시가 가고 있는 방향의 정반대 쪽으로 가서 가장 궁벽하고 외진 현실과 친해 보겠다, 이제는 황폐해 질대로 황폐해진 폐광촌으로 가서 거기 남겨진 상처의 딱지들이 어떻게 아물고 있는지, 그리고 딱지가 떨어져나간 흔적에 어떻게 새살이 돋아나고 있는지, 그런 걸 나의 시적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고투한 내 시의 궤적이 담겨져 있다. 『석탄 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이 그 시집이다.

  나는 1990년대 후반의 몇 년 동안, ‘석탄’에의 관심 속에 살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탄전지대인 사북, 고한, 황지, 장성 같은 곳들을 숱하게 헤매 다녔다. 이제는 거의 폐광이 되어 사람들이 떠나간 광부들의 집단 마을과, 산등성이로 벋어간 녹슨 레일과, 도처에 쌓인 폐광석들- 그런 것들이 만들어 내는 스산하고 아픈 상처들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메모지에 옮기기도 하였다.

  1980년대 이후의 한국 노동 운동의 본격적 시작으로서의 큰 의의를 갖는다는 ‘사북사태’가 일어난 것이 1980년 4월 21일이었다. ‘사북사태’를 조금만 헤집고 보면 거기 우리가 지금도 당면하고 있는 모든 우리 사회의 갈등요소들이 모두 망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과 그 문제, 빈민문제, 노사문제, 관료들의 경직된 사고, 그리고 조직 폭력과 인간 소외의 문제에 이르는 모든 문제들이 그 속에 내재되어 있고, 그것이 인내의 한계를 넘어 자연 폭발한 것이 ‘사북사태’였다.

  ‘사북사태’ 후 탄광마을 사북, 고한, 황지, 장성과 같은 지역들은 소위 운동권 지사 열사들이 가장 큰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힘의 결집을 추구하던 노동 운동의 성지였다. 그리고, 민중을 표방하는 많은 시들이 그곳과, 그곳에 연관되는 이념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을 글로 썼다. 80년대가 지나고 90년대가 도래하면서 그곳을 성지처럼 생각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그곳 탄광 마을들은 더욱 상황이 나빠져서 흉물스런 탄광 마을의 흔적들만 남았다. 폐광이 되고 사람들이 썰물 져 빠져나가고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사람들만 남아 스산한 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니까, 탄광 마을에 그렇게도 열렬한 애정을 쏟아 붓던 소위 운동권 사람들의 애정은 진짜 애정이 아니었나 보다. 나는 탄광마을 사람들과 그곳에 열렬한 애정을 표하던 사람들이 떠난 그곳에 낯선 이방인이 되어 방문하였다. 나의 관심은 그곳에 남은 삶의 흔적과 소외의 찌꺼기들과 극심한 불평등의 실체를 ‘보자’는데 있었다. 광부들이 떠난 집단 마을은 슬레이트 지붕과 부로크 담벼락으로 지어져 있었다. 부엌과 방 하나씩으로 이뤄진 저 슬레이트 지붕 아래서 사람들은 탄광 마을의 겨울 혹한을 견디었을 것이다. 규폐나 진폐를 앓는 광부들이 기침을 콜록이며 걷던 골목으로 사라지는 개 한 마리, 석탄박물관 전시실에 전시된 ‘합의 문서들-석탄 채굴 과정에서 죽어간 사람들과 회사간에 작성된-의 그 극심한 불평등 약정, 찌그러진 탁자와 술잔들, 검게 흘러가는 시냇물, 이런 것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틈만 나면 그리로 달려갔고, 거기서 ’석탄‘을 보았다.

  우리나라의 ‘석탄’은 대략 4.5억 년 전 쯤, 지각의 변동으로 땅에 묻힌 양치식물들이 탄화되어 형성된 것들이라 한다. 고생대의 것이어서 연기가 나지 않는 무연탄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석탄’이 4.5억 년 전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폐광된 탄광 마을에 짙게 드리워진 한숨과 낙담, 좌절과 절망, 소외와 부조리- 이런 것들이 지금 땅 속 깊이 묻히고 있고, 그렇게 묻힌 오늘의 절망들이 언젠가는 검은 ‘석탄’으로 채굴되어 밝은 빛과 뜨거운 열로 타오르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이 새로운 고생대이며 중생대로서 이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끌어안으며 지층에 덮여가고 있음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석탄의 ‘형성 과정’은 이렇게 이루어져가고 있고, 그 형성과정에 관한 ‘관찰 기록’이 나의 시집 『석탄 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에 담겨져 있다.   

  ‘석탄’을 중심으로 한 무뚝뚝한 고집이 엿보이는 시집이지만 내 나름의 진정성과 폐광 마을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탄광촌의 현실에서 이데올로기를 걷어내고 가슴으로 찾아가 보고 발견한 ‘절망의 근원’이 거기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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