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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 <58> 안일, 타성과의 싸움 [동리목월 2023 가을호 권두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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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12월02일 16시47분
  • 최종수정 2023년11월15일 11시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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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도시 생활을 끝내고 양촌리 모가헌으로 옮겨 산 지 어느새 20년이 훌쩍 넘었다. 새로 집을 지으면서 옮겨 심었던 오동나무며, 뒷산의 목련도 자라서 이제는 그 나무의 꼭대기를 머리를 젖히고 올려다보게 자라올랐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 속에 어김없이 때를 맞춰 오고 가는 새들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자연 현상들이 화해롭고 조화롭게 운행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집 뒤 산벼랑에서 이따금 죽은 족제비나 두더지를 발견하기도 하였으며, 지난 봄에는 멱통을 물려 죽은 너구리를 만나보기도 했었다. 살고 죽는 것이 짐승들에게 한정된 것만은 아니었다. 몇 년씩 산비탈을 지키면서 향기 짙은 열매를 맺던 산초나무가 시름시름 죽어가고 몇 십 년씩 자라오르던 밤나무가 말라 죽기도 하였다. 뜨락의 단감나무는 주렁주렁 열매를 보여주더니 재작년 겨울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가지가 말라버렸다. 그리고, 죽은 둥치 밑에서 새로 싹이 올라오기 시작하였고 이제는 새로 움튼 싹이 키 높이로 솟아올랐다. 배롱나무도 마찬가지여서 둥치가 죽고 다시 새싹을 밀어 올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우리가 평범하게 바라보는 산 짐승 한 마리, 나무 한 그루들도 생명 연장을 위한 치열한 고투의 결과물들이다. 산 짐승 한 마리, 나무 한 그루, 풀꽃 하나의 소중함에 새삼 눈이 뜨인다. 지상의 모든 개체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존재로 완성된 것들이다. 바위 틈서리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한 그루도 살아남기 위해 바위틈 어딘가로 뿌리를 내려 생존을 위한 물을 찾아낸다. 영하의 산비탈, 눈 덮인 산골짝 어딘가엔 맨몸으로 혹한을 견디는 몇 마리 오소리와 산토끼들이 있다.

 

이 지상 어딘가에서 시를 기다리는 시인도 그럴 것이다. 좌절하고 절망하면서 소외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으면서 윤기 나는 몇 마디 말, 치밀한 곳에 숨겨졌던 까마득한 심연까지를 들어내 보여 주는 몇 마디 말을 만나기 위해 참담한 쟁투를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리라. 시인 역시, 안일과의 싸움, 타성과의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혹독한 자기 시련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금년(2023) 2월, 육신의 나이가 만 81세가 되었다. 1942년 2월생이니 도리 없는 80객이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싶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나는 생애 동안 일관해서 추구해온 나의 시업에 관해서 허심탄회하게 돌이켜 볼 수 있는 자리에 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시는 무엇이었으며, 나는 시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려 하였던가에 대해서 숙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나는 내 문학 소년기의 독서 목록들을 떠 올려 보았다. 고등학교 재학 중 국어교사였던 시인 김상억 선생과의 만남은 내 생애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분에게서 시인 이건청으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지침이 될 독서 목록을 전해 받았던 것이었다. 그때 나는 R. M. 릴케의 시와 『말테의 수기』, 『로댕』, 『문학을 지망하는 청년에게』 등과 쿠라다하쿠조(倉田百三)의 『사랑과 인식의 출발』, 스티븐 스펜더, 딜런 토머스, T.S. 엘리어트의 시편들, 그리고, 카프카, 윌리암 포크너의 소설들과 살바돌 달리, 막스 에른스트, 끼리코, 이브탕기 등 초현실주의 화가들을 만나게 되었었다. 

 

이들은 나의 문학 청소년기의 우상들이었다. 이들은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삶의 태도를 가르치는 말씀들을, 나를 감동으로 이끌어 주는 가르침들을 접할 수 있었다. 나는 이들 시와 소설과 그림들 속에서 ‘길’을 찾았고, 시인이 지녀야 할 미학과 정신을 배웠다. 특히, R.M.릴케가 쓴 로댕의 작품론인 『로댕』, 쿠라다하쿠조(倉田百三)의 『사랑과 인식의 출발』은 몇 날 몇 밤을 새우면서 되짚어 읽곤 하였다.

 

F. 카프카는 내 문학이 어디에 있어야 하며 어디를 가면 만날 수 있을 것인가를 일러 준 스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외와 절망을 딛고 닿을 수 없는 지향을 향해 쉼 없이 응전해 가는  시지포스적 운명의 인간에게서 ‘참 나’를 찾으려는 모습을 발견했었고, 나 역시 내 시 속에서 그런 길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었다.

 

살바돌 달리, 막스 에른스트, 끼리코, 이브탕기 등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서도 나는 참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서 상상력의 위대성에 닿아갈 수 있는 지름길을 익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R.M. 릴케는 “쓰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을 때 써라”(『문학을 지망하는 청년에게』), “명성이란 이름을 싸고도는 온갖 오해의 총체다. 명성은 작품을 싸고돈다. 이름에 관한 것이 아니다”(『로댕』)라고 강조해서 말하고 있으며, 쿠라다하쿠조는 “청춘을 보석처럼 간직하고 아끼도록 하여라. 비천함과 더러움에 물들지 말며 맑고 깨끗한 꿈을 지녀라”(『사랑과 인식의 출발』)-이렇게 강조해서 말하고 있었다. 문학 청소년기에 접했던 독서 목록들은 하나같이 시인이 지녀야 할 엄격한 금도를 강조한 책들이었고, 세속에 빠져 일상적 명성이나 명예를 탐해서는 안 된다는 것들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 접한 글들이 내 생애의 문학론으로 정립되어 왔으며, 나는 까마득히 높기만 한 엄격한 정신의 높이에 닿기 위해 허위허위 달려온 게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기에 읽은 이런 독서 목록들은 자유롭고 분방한 상상을 제어하고 견제하고 있는 것들이어서 ‘자유롭고 분방한 것들’을 지향해야 할 시와 길항하는 것들이었고, 박목월 선생은 ‘그래서 네 시가 활달하지 못하다’고 지적하시곤 했었다.

 

박목월 선생에게서 나는 10여 년 문학 수업을 받았다. 1959년 고등학교 학생 시절 선생댁을 찾아 뵈온 후 10여 년, 나는 수도 없이 원효로 4가 목월 선생댁을 찾아갔었으며, 선생께서 봉직하고 계신 선생의 강의실을 찾아 선생의 슬하에서 시적 성장을 이루려고 노력했었다. 나는 선생의 기대에 이르기 위해 숱한 밤들을 지새웠었다. 시인이 지녀야 할 정신적인 바탕인 ‘정신의 염결성’과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화해롭게 조합해 내는 연마의 나날들이 10여 년 고투 속에 쌓이면서 잠잘 수도 먹을 수도 없었고, 정신적 황폐함 속에 젖어 들기도 했었다. 나의 문학 수련 과정은 그만큼 험난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또한 나는 그런 과정을 힘들게 거쳐 왔음을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런 연마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의 본령에 들어설 수 있게 된 것이라 믿는다.

 

박목월 선생은 내가 등단 절차를 마치게 된 후, 선생 내외분께서 영등포 변두리 내 집을 찾아와 주시었었다. 1969년 어느 날 선생 내외분께서 내 집 앞에서 나를 부르고 계셨었다. 선생께서 나가시던 교회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시고 영등포 끝 변두리 내 집엘 오셨었던 것. 나는 아직 개발 전이었던 오류동 논둑 길을 걸으며 선생께서 주시는 귀한 당부의 말씀을 가슴에 새겼다. 그날 선생께서는 내게 2가지 말씀을 주시었다. 그 하나는 “앞으로 네가 타작은 쓰지 않을 것이다” 하는 말씀과 “앞으로 네가 시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이만하면 되었지’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너는 네 시가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라”하는 말씀이셨다. 앞의 말씀은 자신의 문하에서 10여 년 고생하고 시단에 나서는 제자에게 주신 격려의 말씀이고, 뒤의 말씀은 앞으로 시인으로 살아갈 제자에게 주신 경구의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 후 선생께서는 선생 평생의 과업이기도 하셨던 바람직한 월간 시잡지 『심상(心象)』을 창간하게 되었을 때 그 잡지의 편집 실무를 내게 맡겨주시었다. 나는 1973년 『심상』 창간 때부터 1978년 3월 선생께서 타계하시기 까지 5년여 이 잡지를 위해 일했다. 선생께서 작고하신 후 내가 한양대의 시학 교수로 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도 선생의 음덕이었다.

 

지금 와서 시인으로 살아온 5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늘의 나를 지탱해 준 정신적인 자원들이 청소년기의 독서목록에서 배태되고 싹이 튼 것이며, 그것들이 든든한 중심이 되어 준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또한, 스승 목월 선생의 한량없는 사랑과 정신적 훈육이었음을 마음 깊이 되새기곤 하는 것이다.  (동리목월 2023 가을호 권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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