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진구 기자가 메모한 여의도의 모든 것 <19> 개그맨들이 실업자가 된 이유는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11월09일 16시35분

작성자

메타정보

  • 3

본문

“…국민과 소통하는 일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제왕적 대통령의 잔재를 철저히 청산해야 합니다. 권위만 내세우는 초법적인 대통령은 이제 없어질 것입니다. 대통령은 ‘법의 지배’ 틀 안으로 내려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겠습니다.”(2022년 1월 27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를 도입하고, 총리에게 각료 추천권 등 헌법상 권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습니다. 개헌에 도움이 된다면 대통령 임기 단축도 수용하겠습니다. 지방자치 강화, 감사원 국회 이관 등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도 분산해야 합니다.” (2022년 2월 1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여의도에서, 특히 선거철만 되면 대선 총선을 가리지 않고 약방의 감초처럼 나오는 말이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는 내각제를 해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국무총리에게 실질적 권한을 줘야 한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4년 중임제를 해야 한다고 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위에 열거한 것처럼 각 후보가 이구동성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극복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런데 이것이 내게는…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보다 더 큰 웃음으로, 한편으로는 인간의 사악한 이중성을 보는 것 같은 무서움으로, 그리고 반신반의하면서도 ‘혹시나’ 하며 그 말을 믿고 싶어 하는 국민을 보며 서글픔으로 다가왔다. 대선 캠프에서는 제왕처럼 군림해 놓고 대통령이 되면 안 그러겠다고? 대선 후보를 제왕으로 떠받든 측근들이 고스란히 청와대와 각 부처를 점령할 텐데 제왕적 대통령의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그렇게 제왕적인 권위주의가 싫다면 캠프부터 제왕적으로 운영하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닌가?

 

 왜 두 대선 후보 부인의 문제에 대해 각 당과 캠프 인사들이 온 몸을 던져 방어했을까. 이재명 후보의 부인 김혜경 씨의 법인카드, 의약품 대리처방 문제가 터졌을 때 민주당은 뭐라 했나.


 “김혜경 씨가 직접 사용한 건 없지 않습니까?” “수십만 원 정도인데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주가조작 의혹에 비하면 거리도 되지 않지 않습니다.” 


 국민의 힘도 마찬가지다. 김건희 여사의 허위 학력·경력 의혹에 대해 캠프와 국민의힘은 보도자료까지 만들며 “일부 부풀려진 것은 있지만 허위는 없다”라고 강변했다. 윤 후보는 그걸 보고 모른 척 넘어갔고. 앞서 말했지만, 친구와의 술자리라면 강사 경력을 정교사라고 말했어도 부풀리기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이력서에 쓰면 허위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직도 증명된 바 없다, 다 해명이 됐다고 강변한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대선 후보 부인 두 명이 모두 선거운동 현장에 나타나지도 못한 선거를 만들어놓고도 그런다. 후보가 제왕이 아니었다면 가능한 일일까. 그래 놓고 당선이 된 후에는 제왕적인 대통령이 되지 않겠다고 한다. 뉴스가 개그 프로그램보다 더 웃기는데, KBS 사장님이 개그콘서트 폐지 서류에 사인하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


  캠프와 당은 선거 기간 내내 후보를 위해 상대방의 공격은 온 몸을 던져 막고, 후보의 결점은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감추거나 호도하며, 실수가 있어도 인정하지 않았다. 북쪽에 계신 ‘그분’처럼 사실상 ‘완전체’ ‘무오류의 인간’으로 모신다. 당시 윤석열 후보 캠프 최측근 인사에게 “그래도 누군가 쓴소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용없어”라고 했다. 이미 후보 시절부터 제왕이었고, 제왕으로 모신 것이다.

  만약 캠프가 전쟁터의 야전 사령부가 아니라, 우리 후보를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인큐베이터’로 운영됐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캠프는 남을 공격하는 대신 우리 후보의 부족한 점, 잘못한 점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고치는 기구가 됐을 것이다. 이런 기구에서 후보를 제왕으로 모실 까닭이 없다. 소통은 활발해지고, 후보는 겸손해졌을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은 하라고 해도 안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솔직히 제왕이 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당선되면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극복하겠다고 ‘뻥’을 친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극복하는 것은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는 게 아니다. 국무총리에게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것도 아니다. 이양할 리도 없지만, 하면 뭐하나. 자기 말에 ‘토’도 안 달 사람만 쓸 텐데. 대통령이 되면 총리에게 각료 제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고 하는데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얘기다. 헌법 제87조 제1항에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라고 명시돼있다. 대통령이 국무위원을 임명할 때 인사권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기 위해서다. 이보다 더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법이 또 어디 있나. 시행령도 아니고, 법률도 아니고 헌법에 ‘꽝’하고 명기돼있는데도 그동안 대통령이 총리에게 제대로 권한을 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자신들이 당선되면 이제는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의원내각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라면 제왕적 총리는 괜찮은가? 권력을 제왕적으로 사용하는 게 문제지, 그 권력을 대통령이 갖던 수상이 갖던 무슨 상관인가. 흰말 볼기짝이나 백마 엉덩이나.

 

  제왕적 대통령제를 낳는 근본적인 원인은 지금 같이 권력자, 실세, 심지어 그 실세의 측근과 지인에게까지 줄을 서서 자리를 얻으려는 퇴행적 정치 문화다. 이게 사라지지 않는 한, 제아무리 이런저런 제도를 마련하고, 권력을 나눈다 해도 전부 ‘눈 가리고 아웅’이다. KBS 사장 임명이 딱 그렇다. KBS 사장은 KBS 이사회가 후보를 선정해 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얼핏 독립적으로 후보를 선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장 후보를 선정하는 KBS 이사회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11명의 비상임이사로 구성된다.(방송법 46조)

 방송통신위원회는 5명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원장과 위원 1명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여당도 1명을 추천한다. 야당 몫은 2명이다. 이 때문에 언제나 3대 2로 권력 뜻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KBS 이사회라는 독립기구에서 후보 추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KBS 이사회를 권력 마음대로 구성할 수 있는데 뭐가 독립기구란 말인가. 그래서 좀 친한 집권당 쪽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번에 누구를 사장 시켜야 하는데…” 이런 얘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더 웃긴 건 워낙 정권의 입김에 따라 인사가 이뤄지다보니 내가 아는 한 KBS 구성원들, 특히 사장 등 주요 보직에 임명될 가능성이 큰 간부들일수록 스스로 몸을 바쳐 권력에 줄을 선다는 점이다. 이런 걸 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 하는 걸까.


  그래도 제법 머리를 쓴 흔적은 보인다. 방송법 46조 9항은 이사회회의록을 공개하도록 했다. 하지만 사안에 따라 이사회 의결로 공개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는데, 그 사유가 ▲공개하면 개인·법인 및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감사·인사관리 등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하면 공정한 업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이다. KBS 사장을 권력이 의도하는 대로 임명했으니 이런 내용이 공개되면 자신들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당연히 있을 테고, 사장 임명 관련이니 인사에 관한 사항도 분명하다. 구린 걸 감추려는 조항으로는 딱 이다.


  대통령의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 만든 게 삼권 분립이다. 내 친구 우리 반 꼴찌 조진상도 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면 우선 삼권 분립의 정신을 최대한 구현하려고 노력하고, 그래도 정히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순서고, 상식이다. 국회가 제 기능을 한다면 대통령은 법안 하나 마음대로 통과시킬 수 없다. 그런데 집권해 여당이 되는 순간 거대 양당 중 하나가 스스로 삼권 분립, 행정부 견제라는 역할을 사실상 포기한다. 그리고 스스로 청와대의 방패가 되고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데만 열중한다. 그래 놓고 대통령제가 제왕적 대통령을 양산한다고 말한다. 앞서 말했지만, 국무총리에게는 국무위원 제청권, 해임건의권, 국정 행위 문서 부서권 등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총리가 이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면 대통령이 제왕적으로 될 수가 없다. 누가 그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었나. 바로 현직 대통령들이다. 대통령 자신이 국무총리의 별명을 ‘얼굴 총리’ ‘대독총리’로 만들어놓고 왜 대통령제 탓을 하는지 모르겠다. 치매일까? 총리들도 잘한 건 없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자리에 임명된 것에 감지덕지해 헌법이 부여한 권리를 행사하려고 한 적도 없으니 말이다. 

  권한을 줄 생각이 없는 대통령. 법에 명기된 권한을 행사할 생각도 없는 총리. 그러면서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잔재를 청소하겠다는 대통령. 낮에는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없애기 위해 의원내각제가 필요하다면서, 밤에는 지록위마(指鹿爲馬)도 불사하며 권력에 줄을 서는 국회의원들. 


  반복하지만 그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캠프다. 선거 운동 기간 내내 후보를 ‘무오류의 신성’처럼 떠받들고, 후보가 당선되면 그대로 공신이 돼 청와대를 점령한다. 대선 후보가 된 순간부터 스스로 당무 우선권을 헌납하고 당이 그 밑으로 들어간다. 당과 청와대가 왜 서로 수평적으로 존재하면 안 되는 걸까. 어찌 보면 그냥 큰 선거의 후보일 뿐인데. 대선이 끝난 뒤 집권당 의원이 된 분 중에 “이제부터는 대통령과 할 말은 하는 당·청관계가 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분들을 가끔 본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다. 후보에게도 당무 우선권을 헌납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왕이 된 사람과 ‘맞짱’을 뜨겠다고? 


  제왕적 대통령은 대통령제가 만든 것이 아니라 제왕으로 행세하고 싶은 사람이, 그 제왕을 모시고 출세하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영달을 위해 대선 후보에게 당의 모든 것을 들어 바치고, 그를 위해서라면 벌거벗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 무오류 신성불가침의 존재인 대선 후보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불경을 넘어 역린(逆鱗)이고 선거 패배의 길이라고 여기는 후진적 정치문화. 그렇게 만들어진 각 당의 제왕적 대선후보들. 후보와 국회의원, 정당, 그 정당에 소속된 열혈 당원 모두가 이 모양이니 누가 당선이 돼도 우리 대통령이 제왕이 아닐 수가 있을까. 그런데 늘 제도 탓을 한다. 국민을 웃기기 위한 허무 개그일까? 만약 그렇다면… 안타깝지만 우리나라 개그맨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더 이상 생겨날 수는 없을 것 같다. 

<ifsPOST> 

 ※ 이 글은 필자가 지난 2023년 8월 펴낸 책 “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도서출판 북트리 刊>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3
  • 기사입력 2023년11월09일 16시35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