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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엄'으로 되돌아본 2022년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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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12월26일 17시10분

작성자

  • 유연채
  • 前 KBS정치부장,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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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중할까? 인간답게 살고 인간답게 죽는 게 아닐까? 우리 삶의 가치를 좌우하는 틀 인간 존엄(human dignity)을 성찰하게 하는 한 해였다.올해를 보내는 마음이 이렇게 무거운 건 무엇보다 159명 이태원의 죽음을 안고 가기 때문이다.오히려 2차 가해로,국정조사 줄다리기로 상처를 덧씌우는 현실은 대한민국의 존엄 자체를 되묻게 한다.국가는 과연 헌법이 보장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국민의 생명 존엄을 최선으로 지켜주고 있는가? 그 해답을 아직 얻지 못했다.  

 

이태원, 세월호, 천안함…. 집단적 죽음과 희생에 대한 대응을 놓고 사회적으로 갈등하고, 정치적으로 충돌하고, 좌우의 논리로 싸우고, 그래서 어렵게 쌓아온 국격(national dignity)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해를 이어간다. 북한에 의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은 월북몰이, 정치보복 논란으로 맞서며 자국민의 인권과 생명을 살려내지 못한 최고 책임자를 수사로 찾고 있는 중이다.

 

우리 모두는 품격 있는 죽음을 맞기를 원한다. 어느 때보다 올해 ‘존엄한 죽음’(death with dignity)에 대한 공론화가 본격화된 건 역설적이다. 질병 등으로 치명적 단계에 이르렀을 때 본인이 원하면 의사의 도움으로 죽음을 택할 수 있는 ‘조력존엄사법’이 최초로 지난 6월에 국회에 발의 됐고, 국민의 80%이상이 찬성한다는 여론이 나왔다.

이미 법제화 된 ‘연명치료를 거부할 권리’를 넘어 일명 ‘조력자살’ (PAS:Physician Assisted Suicide)을 보다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단계에 이를 만큼 존엄한 죽음은 그야말로 모두의 마지막 소원이 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선택한 것이 아닌 이태원의 죽음이다. 더 억울한 건 이미 주검이 된 죽음에도 마지막 예의조차 표하지 않기 때문이다.존엄은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이기도 하다. “네가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 말씀 한마디를 행하지 못한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열어가는 연말이다.그러나 그 많은 비정한 죽음들을 또 기억하고 갈 때다. 코로나로 사망한 가족에 작별 인사조차 할 수 없었던 비인권적 방역이란 비판이 컸던 지난 3년, 가장 불행한 죽음 앞에서 목소리 한번 크게 내지 못했던 시간이었다.이 방법 뿐이었을까? 보건 당국이 대안을 찾지 않으면 다음엔 참지 않을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이 최대 이슈가 된 2022년이다.이시대 인류가 맞닥뜨린 과제는 지구 생명을 지키는 문제다.우리의 하나 뿐인 삶의 터전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는 위기를 실감하며 산 한 해였다.공존,공생을 위해 화석 연료 사용을 억제하고 비닐,플라스틱,일회용품을 줄이고 음식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탄소중립 실천이 절실하다.지구는 세상 모든 존엄의 덩어리이기 때문이다.지구온도를 낮추는 한국의 기후변화 행동지수는 몇 점일까? ‘기후악당’에 속할 만큼 올해도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전임 대통령이 동물권(animal rights)을 던져버렸다는 국내외적 논란은 충격적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선물 받아 키우던 풍산개를 파양한 것을 놓고 뉴욕타임즈가 신구정권 갈등의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 보도했다.대통령의 개가 동물원에 버려졌다(“orphaned”)는 것이 믿어지냐는 독자 반응까지 실었다. 이 사태를 겪고도 반려견들을 모델로 기부달력을 제작한 데 대한 논란까지, 부끄러움은 늘 국민들의 몫이다.

 

전쟁은 인간 존엄의 무덤이다.한해가 저물어가고 사랑과 평화의 종소리가 울리는 이 시점에도 우크라이나 전선에서는 생사를 건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키이우의 시민도, 징집돼 끌려온 러시아 청년들도, 야만 앞에 그들의 존엄이 죽임을 당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탄 전야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전쟁을 보아야 하느냐며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얼마나 많은 곳에서 경멸 당하고 있는 지를 안타까워 했다.한반도에도 전쟁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북한이 67차례나 미사일 도발을 하며 대한민국이 온통 한 해를 전쟁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가를 걱정하며 지냈다. 그리고 7차 핵실험이 머지않았다 한다.

 

이런 위기 속에도 대한민국 전체가 갈등의 전선에 묶여있다. 잠시만이라도 멈춰 달라는 호소들이 공허할 만큼 정치는 무력하다.소외된 사람들을 더욱 생각해야 할 세밑이다. 소외가 커질수록 존엄의 설 자리는 사라진다.이웃을 향해 따뜻한 손을 내밀고 있는 이름 없는 시민들이 그 자리를 지켜주는 오늘의 영웅들이다. 그래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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