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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쇼크와 한국 금리, 빅 스텝 불가피한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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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9월06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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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인수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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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지난 8월 26일(현지시간)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주최로 열린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물가가 통제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계속 금리를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는 "금리 인상으로 투자, 지출, 고용을 늦추게 만드는 연준의 행보가 가계와 기업에 어느 정도 고통을 가져오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실패하는 건 더 큰 고통을 초래하기 때문에 물가안정을 위해 연준이 가진 수단을 강력하게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9월 연준의 선택은 다시 한번 '자이언트 스텝(금리 0.75% 포인트 인상)'이거나 적어도 '빅 스텝(금리 0.5% 포인트 인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파웰 의장의 연설 직후 미국 증시는 폭락했다. 연설 당일 나스닥은 3.94%,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각각 3.37%, 3.03% 하락했다. 그 여파로 글로벌 증시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이면서 일주일 만에 세계주식 시가총액이 5조 달러 가까이 감소했다. 파웰 의장의 매파적 발언이 어느 정도 예견되기는 했지만, 그 후폭풍은 예상보다 상당히 컸다. 

 

   파웰 의장은 인플레이션에 뒤늦게 대응했다는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스탭 앤 고(stop and go)’ 정책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인플레이션이 2%대로 확실히 안착될 때까지 금리인상 조기 중단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WB) 총재가 획기적인 공급증가가 없는 한 세계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미국이 지난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고용지표가 크게 악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연준의 금리인상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8월 비농업부문 고용증가가 7월(52만 6천 명)에 비해 큰 폭으로 줄어든 31만 5천 명에 그치고, 실업률도 전 달(3.5%)에 비해 소폭 증가한 3.7%로 나타난 것은 연준에 부담이 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물가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전통적 목표에 더해 고용안정을 주요 책무로 간주하고 있는 미 연준이 세 차례 연속 75bp 금리를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다.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경우 단기적으로는 경기가 더욱 침체되고 고용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국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에도 불구하고 자이언트 스텝에 대해 연준이 느끼는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규 고용 증가폭이 시장의 기대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9월에 최소 50bp 금리인상은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한국이다. 현재 한국은 고물가-고환율-고금리라는 3고(高)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물가, 환율, 금리는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서 각각을 타깃으로 한 거시경제 정책의 효과가 독립적으로 나타나기 어렵다. 따라서 종합적인 정책조율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상황이 녹녹치 않다. 당장 천정부지로 올랐던 아파트 가격이 대출규제 강화 등으로 거래절벽에 직면하자, 정부는 부동산시장 급랭을 막는다는 취지로 15억원 이상 아파트에 대한 대출규제 완화 카드를 들고 나왔다.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주택담보대출이 다시 증가하면서 가계부채문제가 또 다시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자칫하면 지난 정권처럼 ‘폭탄 돌리기’ 정책이 되풀이될 수 있다. 물가와 환율 안정을 위해 금리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부동산발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도 저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진퇴양난 형국이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인 미국과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경제구조가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물가는 올라가는데 경기는 하강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주요국들에 비해 크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팬데믹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촉발된 국제유가와 곡물가 상승, 미국 등 주요국의 통화정책 정상화에 따른 금리인상 도미노와 달러화 강세, 미·중 패권전쟁 심화에 따른 공급망 재편과 보호주의의 심화 등 대외적 요인이 한국경제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내적으로도 0.81에 불과한 세계 최저수준의 합계출산율, 올해 2분기에 1,869조원으로 GDP 대비 104%를 넘어선 OECD 국가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 경직적인 노동시장 등 구조적 불안요인이 성장잠재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연속적인 ‘자이언트 스텝’에 어떤 대응을 해야할 지 한국은행과 정부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25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사상 처음 네 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올렸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예고한 대로 기준금리를 연 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9월에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지는 금리역전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3차례 한·미간 금리가 역전된 기간이 있었지만, 심각한 자본유출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자본유출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적했듯이 미국 인플레이션 수치를 고려하면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는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지금 자본이 해외로 나가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국민연금, 개인투자자들의 해외투자에서 비롯된 것이고, 과거 위기 때와는 달리 한국은 현재 순채권국으로 채권시장에서 자본 유출은 없기 때문에 금리역전으로 인한 자본 유출 가능성에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타당한 측면이 있다. 정부에서는 환율 또한 과거와는 달리 원화만 약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 엔화, 유로화 등 주요통화의 절하율이 더 큰 상태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한은과 정부의 설명과 달리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선 환율이 불안하다. 지난주 원화 가치가 연초 대비 11% 이상 하락해 환율이 달러당 1,360원을 넘어서면서 13년만에 최고치를 갱신했다. 원화 환율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월 1,780원까지 급등했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9년 3월에는 1,568원까지 올랐었다. 이처럼 단기간에 환율이 급등하게 되면 국가의 대외신인도는 물론 물가 등 거시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된다. 그런데 외환시장의 과도한 ‘쏠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까지 ‘구두 개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화 가치 하락을 막지 못하고 있다. 현재 대내·외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에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 조정)’을 넘어선 외환당국의 시장개입은 성과 없이 외환보유액만 소진하고 ‘환율 조작국’이라는 비난을 초래할 수 있다. 

 

   최근 고환율로 인한 수출증대효과는 크지 않은 반면 수입물가 상승으로 국내물가는 크게 오르고 있다. 또한, 원화가 지속적으로 절하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될 경우 외국인 투자가 감소하면서 자본이 유출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에 안정적인 환율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환율은 근본적으로 한 나라의 경제 체력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과감한 구조개혁과 규제혁신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주요한 외환대책이 된다. 가수요나 투기적 움직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단기적으로는 환율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8월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직후 시장이 원하는 최소한의 ‘포워드 가이던스’(사전 예고 지침)를 제공하면서도 향후 통화정책 운용상의 신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절충안을 내놓았다. 공식의결문에는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정성적 문구만 포함시켰지만, 기자간담회에서는 “국내물가 흐름이 현재 우리가 전망하고 있는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금리를 당분간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구체적인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하였다. 또한, 이 총재는 비전통적 포워드 가이던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복수의 시나리오를 상정하는 전통적 포워드 가이던스, 즉 시나리오에 기반한 전통적 포워드 가이던스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지금은 한은 총재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와의 정책조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논리에 휘둘리게 되면 정책조율이 아닌 정책지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총재가 “파월 의장 발언 때문에 한국 기준금리를 더 빠르게 올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글로벌 금융시장 여건 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은 더 커졌다. 파웰 때문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느 정도 현재의 고통을 감내해 나갈지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켜나가야 한다.

 

당장의 고통을 미루는 것이 더 큰 내일의 고통을 초래하게 된다는 파웰의 발언이 우리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총재가 말한대로 5%를 웃도는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경우 당장의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보다는 물가안정을 우선적으로 달성해야 한다. 국내외 경제환경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지만, 한은의 ‘빅 스텝’ 가능성도 열린 자세로 수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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