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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23> [이건청 시전집]을 펴내면서- ‘시전집’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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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8월06일 16시30분
  • 최종수정 2022년08월06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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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 사람이 자신의 생애동안 쓴 시를 총 정리하고, 평생의 작업을 분석해서 시전집을 펴내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시전집 한 권이 시인의 전 생애를 담아내고 있으며, 시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연구자들의 분석대상이 되면서 쉼 없이 새로운 가치로 발견되어야 하는 유일의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나는(이건청 시인) 2022년 7월 30일을 간행일로 [이건청 시전집] 전 2권을 펴냈다. 1959년부터 2021년까지 쓴 13권의 시와 연관 자료들을 한 자리에 묶었다. 모두 1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아래에 [이건청 시전집]의 서문을 옮겨 적는다. 책의 서문에는 책을 쓴 저자의 사유와 지향점이 무엇이었던가를 함축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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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청 시전집을 펴낸다. 이 시전집에는 1959년부터 2021년의 작품까지가 수록되어 있다. 그동안 나는 12권의 개인 창작 시집과 1권의 기획 시집의 시편들을 썼다. 13권의 시집 모두와 시전집 수록 시와 연관된 산문·서평 중 일부가 이 시전집에 수록되어 있다. 수록 시집의 서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

 

[李健淸 詩集(이건청 시집)​](월간문학사, 1970. 4. 25), [목마른 자는 잠들고](조광출판사, 1975. 11. 30), [망초꽃 하나](문학세계사, 1983. 4. 30), [하이에나](문학세계사, 1989. 12. 20), [코뿔소를 찾아서](고려원, 1995. 2. 10), [석탄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시와시학사, 2000. 5. 31), [푸른 말들에 관한 기억](세계사, 2002. 4. 22), [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노고지리](서정시학, 2007. 3. 26), [반구대암각화 앞에서](동학사, 2010. 2. 16), [굴참나무 숲에서](서정시학, 2012. 2. 28),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서정시학. 2017. 4. 25), [실라캔스를 찾아서](북치는 마을, 2021. 5. 5), 기획 시집 [로댕-청동시대를 위하여](문학과 비평사, 1989. 2. 20)

 ​

첫 시집 [李健淸 詩集(이건청 시집)]의 서문을 박목월 선생께서 쓰셨다. 새삼스럽지만 선생께서 제자의 첫 시집을 위해 얹어주신 서문을 여기에 옮기는 것은 선생께서 50여 년 전 첫 시집을 내는 제자에게 걸었던 기대를 환기함으로써 오늘의 나 자신을 차갑게 성찰해 보고자 하는 데 있다. 

 

 李君(이군)의 作品(작품)을 보아온 지가 十年(10년)이 넘었다. 그동안 李君(이군)의 끈기 있는 노력과 精進(정진)은 그가 얼마나 誠實(성실)한 文學徒(문학도)임을 충분히 證明(증명)해 주는 것이다. 그는 成熟(성숙)을 기다리는 한 알의 열매처럼 내일에 대한 확고한 信念(신념)과 기대를 가지고, 十年(10년)을 如一(여일)하게 自己(자기)의 세계를 深化 ·洗鍊·硏磨(심화·세련·연마)해 온 것이다. 

 

 진작부터 나는 李君(이군)의 참신한 詩風(시풍)과 그의 타고난 남다른 詩才(시재)를 인정하고 있었다. 다만 보다 알찬 成熟(성숙)을 기다려, 세상에 그를 疏槪(소개)하는 자랑스러운 時期(기대)를 고대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 成熟(성숙)에의 길고 긴 忍耐(인내)와 自己完成(자기완성)에의 어수선한 課程(과정)을 거쳐, 이제 그의 광우리에는 잘 익은 과일로 그득하게 채우게 된 것이다.

 

 그는 內面(내면)에 깊이 沈潛(침잠)하여, 현대정신의 위기와 심연을 意識(의식)의 深層(심층)에서 形象化(형상화)하고 있었다. 不安(불안)과 彷徨(방황), 挫折(좌절)과 劣等意識(열등의식)의 表象物(표상물)로서 그의 작품은 오늘을 증언하는 심각한 문제성과 너른 공감권을 간직하고 있다.

 

 비록 이번 詩集(시집)이 그에게는 處女詩集(처녀시집)이요, 그가 詩壇(시단)의 脚光(각광)을 받게 된 시일은 年淺(연천)하지만, 十餘年(10여년) 동안의 노력으로 이룩된 결정물이요, 또한 앞날의 대성을 약속해 주는, 출발의 발판이 될 것이다. 그의 꾸준한 精進(정진)과 大成(대성)을 축원한다.

                                          一九七十年 四月(1970년 4월)

                                                  朴木月(박목월)

<※편집자 주 : 위의 시집 서문(序文) 원문에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 단어들을 편집자가 한글표기를 병기하였음을 밝힙니다.>​

 

이제 시인으로 살아온 나의 소산을 모두어 펴내는 이건청 시전집을 일별하면서 스승 목월 선생 앞에 면구스러움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은  시 이외의 다른 가치를 더 높여 추구하지 않았으며 시를 지니고 세상 풍진 쪽으로 가서 시가 아닌 가치를 탐하려하지 않았음도 부끄럽지만 밝혀두어야 하겠다.  그리고, 내가 삶의 구석구석에서 직면하던 낙망과 좌절을 헤쳐 갈 때, 시가 기쁨이고 희망이었음도 밝혀두어야 하겠다. 시에 감사드린다.

 

12권의 개인 창작 시집들 속에는 혼자서 묵묵히 감당해야 했던 느낌, 체험, 사유, 상상의 모든 모습들이 반영되어 있음도 알겠다. 어떤 경우에도 직설을 버리고 치환언어를 발견하는 일에 전념했음도 알겠다. ​내 시의 유일한 형태를 깨우쳐 준 모국어-한국어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시집[李健淸 詩集] (1970), [목마른 자는 잠들고](1975)에는 난마의 현실 속에서 맞이하곤 하던 개인의 내면 풍경들이 앙상한 형해의 모습으로 표출되어 있다. 진술의 말들은 배제되었으며 남겨진 파멸 이미저리들만으로 구원을 기다리곤 했었다. 시인은 「말」, 「구시가의 밤」, 「손금」같은 시편들 속에 구명 신호를 담아보려고 애를 쓰곤 하였다.

 

[망초꽃 하나](1983), [하이에나](1989), [코뿔소를 찾아서](1995), [석탄형성에 관한 관찰기록](2000)의 시편들은 썼을 때 시인의 육신 나이 40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가정을 지켜야 했으며 직장인으로서의 소임을 감당해야 했었다. 1980년부터 대학 교수의 직책을 감당해야 했으며, 힘들기로 소문난 대학신문의 주간 교수 직책을 맡기도 했었다. 더구나 이 시기의 한국사회는 산업화, 민주화의 열풍이 노도처럼 몰아치던 시기였다.

 대학 캠퍼스는 민주화 열풍의 격전지였으며 최루탄 가스가 강의실을, 연구실을 휘몰아치곤 했었다. ‘대학신문’은 과열된 민주화 욕구가 표출되는 대표적 혁신 언론이었다. 학생기자들의 욕구는 실정법의 한계를 넘기 일쑤였으며 주간 교수는 학생기자들을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 시기의 시편들은 시인의 객관화된 눈으로 바라본 현실의 모습이 차가운 객관의 언어로 표출되었다. ‘말’, ‘하이에나’, ‘코뿔소’같은 시적 상징들이 시대정신의 치환물로 차용되었으며, 1980년의 ‘사북사태’, 1984년 인도 보팔 시에서 일어난 환경 재난-시안가스 누출 사고 등을 테마로 한 연작시가 씌어졌다. 강원도 태백 장성탄광 3200m 지하 막장까지 내려가, 채탄 작업환경을 목도하였다. 탄광사고 일지, 합의서, 진단서 등이 삽입된 시집 [석탄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도 이 시기에 씌어졌다. 

 

[푸른 말들에 관한 기억](2002), [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2007),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2010), [굴참나무 숲에서](2012),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2017)의 시편들은 오랜 서울 생활을 끝내고 양촌리로 귀촌하게 되면서 쓴 시편들이다. 2007년 대학 강단 정년을 앞두고, 2000년 양촌리에 집과 서재를 신축하고 50여 년 서울살이를 버리고 낙향했으며 자연과 시적 자아와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치유로서의 시의 직능 욕구들이 극대화되어 나타나기 시작한 시편들이 이 시기에 창작되었다. 

 

삶의 근원을, 현실의 근원을 천착하고 유년체험을 소환해 타성에 기우는 시적 자아를 건져내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 펴낸 시집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에는 울산시 울주군 대곡천 일원에서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를 모티프로 한 시편들이 수록되었다. 7천여 년 전까지로 추정되는 암각 도형들을 통하여 한반도 울산 유역에 살았던 선사의 사람들이 보내오고 있는 교신 내용을 수신해 ‘오늘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소명을 시로 형상화 하고자 하였다.

 

[실라캔스를 찾아서](2021)는 우주천문학 ㆍ 고생물고고학 ㆍ 선사지질학 등 연구 축적 속에서 생명의 기표들을 찾아다니며 직면하게 된 새로운 세계를 담아낸 시집이다. 하늘에는 인지능력으로는 측정 불가의 역동적 우주가 실재(實在)하고 있으며, 지구 표층이 형성되기 시작한 38억년 이후 퇴적암에는 헤아릴 수 없는 생명 기표들인 화석이 켜켜이 쌓여 있다. 

3억 6천만 년에서 6천 5백만 년 전, 퇴적암에서 발견되던 화석물고기 실라캔스가 몇 억년의 시간을 물속에 살았으면서도 물속 환경을 따라가 진화되지 않은 육지척추동물의 몸으로 어부의 그물에 잡혀 올라왔다. 지구가 겪은 융기, 충돌, 분화를 포함한 모든 변화양상과 내용은 켜켜이 쌓여 시기별 지질시대(地質時代)의 암반층으로 굳어 있다. 이 우주천문의 세계와 선사지질의 시대가 지니고 있는 무량수(無量壽)의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육신 나이 80에 접어들며 내 궁극의 귀향처를 발견하게 된 것은 기쁜 일이다. 

 

이 시전집에는 최근의 시집들을 앞에, 과거의 시집들을 뒤에 실었다. 현재의 나로부터 자신을 성찰해 보려는 배려였다. 평생을 시인으로 살아오고, 이제 [이건청 시전집]을 모두어 내면서 가슴이 설렌다. 앞으로 이건청 시에 던져지는 반문들이 있다면 이 책이 온전히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시인으로 사는 일의 보람과 시 쓰는 날의 환희를 안겨준 모국어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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