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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15>천상병 시인의 시 읽기 - 무욕의 정신과 자유인의 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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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4월16일 16시35분
  • 최종수정 2022년04월14일 11시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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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은 1930년 아버지 천두용(千斗用)과 어머니 김일선(金一善)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일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고향은 경남 창원군 진동면이었다. 네 살 때 부모를 따라 일시 귀국해서 진동에서 살다가 아홉 살 때 다시 도일(渡日)하여 거기서 소학교를 마쳤다. 중학교 2학년 해방이 되자 귀국하여 마산에 정착하였다. 마산중학교 5학년이 되던 해 김춘수에게서 국어를 배우면서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6․25 동란 중 피난지 부산에서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하였다. 

 

1952년 『문예』 1월호에 시 「강물」, 5~6 합본 호에 시 「갈매기」가 추천되어 시단에 등단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엔 「사실의 한계-허윤석론」이 조연현의 추천을 받아 『문예』에 발표되기도 하였다. 환도 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4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자퇴하였다. 나중에 쓴 그의 자전적 수필에서 ‘월급쟁이에는 관심이 없고’, ‘시인 이상의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자퇴의 변을 밝힌 바 있다. 

 

부산 피난시절에는 그가 문단에 등단하게 되는 등, 미래에 대한 포부와 열정에 차있던 시기였던데 비하여 환도 후의 생활은 힘들고 곤곤한 것이었다. 도시는 폐허였고, 사람들은 약육강식의 현실로 내몰리고 있었다. 환도 후에는 현실에 눈 떠가면서 심한 좌절과 소외를 겪게 되는 시기였다. 그는 소외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면서 생활에 부적응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1967년에는 소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게 되고 체포되어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다. 천성적으로 자유인이었던 그는 엄혹한 취조과정과 정신적 압박을 견뎌낼 수 없었다. 이미 생활에 부적응 현상을 보이던 그가, 취조과정을 거치면서 규격화된 현대 사회의 틀에서 일탈되어 버리고, 단독자로 단절 공간에 던져지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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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천상병 시인의 한 때>

 

 신봉승의 회고 한 토막이다.

< 동백림 사건으로 취조 받고 석방된 뒤의 정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는 얼이 빠져 있는 너를 명동에 있는 금문 다방으로 데려 왔는데 네 첫 마디가 또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했었다. “여기가 뉴욕이냐?” 다방에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면서 뱉어낸 말이었다. 용채를 뜯으면서 계면쩍어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그것이 고문 때문일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신봉승. 「그랬었지 상병아」(천상병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에서>

 

 이후 그는 일정한 거처도 없이 서울 거리와 부산 거리를 떠돌면서 정신적 황폐와 건강 악화로 길거리에 쓰러지게 되었다. 자유인으로 무소유의 삶 속에서 기진해 버린 것이다. 후에, 그의 실종을 죽음으로 받아들인 친구들이 시집 『새』를 1971년에 출간하였다. 첫 시집이 유고시집의 명목으로 빛을 본 것이다. ​

 

1972년 결혼을 하고 일정한 거처가 마련되면서 천상병은 유아적 천진의 세계에 안주한다. 초기의 견고한 순수 서정의 세계로부터 차츰 일상 현실에 대한 관심을 피력하면서 이상 세계와, 일상의 기쁨, 유아 정신적 순수와 종교적 귀의를 노래한 시편들을 썼다. 이 시기의 시편들은 시선집 『주막에서』(민음사. 1979)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오상. 1984),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문성당. 1987), 『귀천』(1989. 살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미래사. 1991). 『요놈! 요놈! 요 이쁜 놈!』(답게. 1991) 등과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청산. 1993) 등에 실려 있다. 

 

천상병의 시편들은 여러 권의 시집들에 중복 수록되어 있어 텍스트 설정상의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자신의 작품 관리를 엄정하게 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는 작품 발표연도 등을 토대로 전기 시와 후기 시를 분류하였다. 천상병의 경우 그와 그의 시를 연구의 대상으로 한 본격적 접근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기존의 연구들이 있었지만 아직도 분석의 많은 여지를 남겨둔 감이 있다. 

 

나는 천상병의 시 세계를 전기 시와 후기 시로 나누어 살펴보려 한다. 첫 시집 『새』 이후의 시들을 모두 후기시로 본 것은 이 때 쓰여진 시들이 시적 긴장이 이완되면서 비슷한 시적 궤적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그러니까, 전기시는 그가 시단에 등단한 50년대 초로부터 60년대 말에 이르는 시기에 쓰여진 시편들로 1971년에 간행된 시집 『새』에 수록된 시편들이 대상이 될 것이다. 시선집 『주막에서』(민음사. 1979)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오상. 1984),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문성당. 1987), 『귀천』(1989. 살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미래사. 1991). 『요놈! 요놈! 요 이쁜 놈!』(답게. 1991)과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청산.1993)에 수록된 작품들 중 『새』 이후에 씌어진 작품들로 유아 정신적 순수의 세계를 노래한 시편들이 그것이다. ​ 

 

천상병의 첫 시집 『새』는 1971년 유고시집 명목으로 간행되었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친구들 도움으로 연명해오던 그가 행적조차 묘연해지고, 그가 행려자로 타계한 것으로 판단한 친구들이 그의 시를 모아 시집을 간행한 것이었다. 

시집 『새』의 시편들이 지니는 시적 특성으로 개인적 자아를 노래하고 있으며, 자아의 토대를 ‘무소유의 미학’을 통해 보여준다. 천상병은 스스로 자신이 당면한 왜소함의 현실에 자족한다. 그가 왜소함의 현실에 자족하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 본능적 욕구를 확장시켜가려는 태도를 포기한 데서 연유된 것이다. 이 점은 맑음과 겸허 또 거기서 우러나오는 서정적 명징의 소산

이다. 그는 가난을 자신의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행복의 절대치를 사소한 일상사 속에서 발견해내고 있다. 그런데, 천상병의 전기시에는 시적 자아를 투시해내는 강한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 ​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 「小陵調」(소능조)​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 고팟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 「편지」 

 

「小陵調」(소능조)에서 가난의 일상을 노래한다. 이 시의 화자는 지금 소외의 처지에 떨어져 있다. 아버지 어머니와는 이승과 저승으로 나뉘어져 있고, 형과 누이들과는 부산과 서울에 나뉘어져 있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가 느끼는 단절감은 저승과 이승의 거리나, 부산과 서울의 거리가 다르지 않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저승에 있고, 형과 동생 같은 혈육들은 부산에 있으며, 나는 서울에 있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이런 단절과 소외를 벗어나 소통할 방도가 없음을 인식하면서 깊은 좌절을 느낀다. 저승과 부산과 서울 사이의 별리보다도 <차비>라는 현실적 조건을 지니지 못한 자신에 대해 좌절하고 있다. 그가 느끼는 비애는 <저승가는 데도 / 여비가 든다면 // 나는 영영 / 가지 못하나?>라는 표현으로 고조되어 있다. <차비>라는 현실적 조건에서 오는 사소한 좌절이 <저승>에 가는 비장한 좌절에로 전이되면서 좌절의 깊이를 더한다.  

 

「편지」는 <가난>을 통해서 통찰한 자아의 모습이 노래되어 있다. <배부른 나>와 <배고팠던 나>를 인격화하면서 가난을 살아가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의 화자가 자신의 처지에 자족하고 있는 것은 <점심을 얻어 먹고 배가 부르기> 때문이다. 이 시의 화자는 어떤 물욕으로부터도 초극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배 고팟던 나>가 혹여 섭섭해 해서는 안 된다는 자기 경계의 의지가 나타나 있다. 즉,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가 그것이다. 차비가 없거나 배가 고프기도 한 일상적 조건들은 살아가면서 부딪게 되는 사소한 좌절들이다. 그러나, 천상병은 이런 사소한 좌절들을 통해서 삶의 본질을 밝혀내고 있다.

 

천상병의 전기시에는 모성 지향과 근원 회귀의식이 나타나 있다. 인간이 현실 속에서 단절을 겪게 될 때 화해의 공간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원초적인 화해의 공간은 어머니의 태반일 것이다. 천상병의 시편들에는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식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 하리라.​ 

 

- 「귀천」 

 

귀천」에서 근원적 귀의처로서의 <하늘>이 노래된다. <하늘>은 근원적인 회귀처이다. 그러니까, 비록, 이 시의 화자가 현실의 번민 속에 곤곤한 삶을 감내하고 있을 지라도, 그것은 하늘의 주민인 화자가 잠시 소풍 나와서 겪는 고통일 뿐이다. 뿐더러, 소풍 와서 겪는 고통마저도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된다.

특히, 이 시의 화자는 <이슬>과 더불어 손을 잡을 수 있는 맑은 존재자이다. 비록, 아침이 오고 새벽빛이 비치면 스러져 버리는 순간적인 대상일지라도 맑고 순정한 <이슬>과 손을 잡고 하늘로 돌아가고 싶은 시적 화자는 이미 어떤 갈등과도 화해한 <이슬>같은 존재자이다. 그리고, 인생을 이슬처럼 스러지는 순간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1연에서 <이슬>과 합일된 화자가 2연에서는 <노을>과 합일된다. 노을빛과 단둘이 노는 기슭이 화자가 자신을 발견해내는 현실인 셈이다. 인생은 순간적인 것이면서 또한 맑고 투명하기 이를 데 없는 절대순수의 존재인 셈이다. 1, 2, 3 연 모두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되어 있는데, 이 미래형 서술어는 그가 이 시에서 노래해 보여준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 아주 절실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천상병의 시에는 천상병 나름의 행복론이 담겨져 있다. 즉, 물질적 풍요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지,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정신이다. 가난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면서 사랑의 정신을 확립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정신은 무소유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 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잎으로 때로 와서

괴로웠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불어라.​ 

 

- 「나의 가난은」 

 

가난’을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시인에게 ‘행복’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가 목적일 수 없는 무소유의 삶의 구체적인 표백인 셈이다. 「나의 가난은」에서 1연은 작은 물질적 행복에 만족해하는 이 시인의 심경 토로가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2연에서는 내일의 일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적 의식이 노래된다. 이런 현실이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비록, 현실에 매인 자신이 조금쯤 서러운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가난은 ‘직업’이고 햇빛에 저금통장이 없는 것처럼 저금이나 조금쯤의 여유도 없지만 자신도 떳떳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천상병의 전기시에는 자유지향과 비상에의 의지가 나타나 있다. 천상병의 전기시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시적 상징이 <새>이다. 천상병의 첫 시집 『새』에 수록된 59 편의 시 중에서 6편이 <새>를 표제로 하고 있다. 곤곤한 현실에 던져진 시인이 <새>의 상징을 통해 날아오르고 싶은 의지를 노래한 것이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靈魂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마리 새.​ 

 

- 「새」에서 

 

시적 상징은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관념을 내포로 하는 환기물이다. <새>는 말할 필요도 없이 현실의 갈등이나 좌절을 떨치고 날아 오르고 싶은 자아의 의지의 치환물일 것이다. 「새」는 시인이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이 시의 화자는 자신의 운명을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것으로 예감한다. 시의 화자가 죽음으로 생애를 마감한 다음날에야 <새날>이 오리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전 생애가 외로움으로 점철된 <내>가 죽고 그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이> 피는 것이다. 외로움으로 생애를 산 시인이 세상을 떠난 후 화자는 <도랑과 나무가지 사이에 앉은 한 마리 새>가 되어 외로움으로 평생을 산 자신의 인생을 바라본다. 죽음의 통과의례를 거친 후에 라야 생의 의미가 질서 속에 바로 놓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의 화자는 실제 현실 속에서는 인생을 조감할 수 없고, 죽음을 거친 후에 라야 만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해낼 수 있는 괴로운 존재자이다. 그러니까, 위의 시에서의 죽음은 현실의 삶을 질서 속에서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죽음>이 <소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변신에의 욕망을 가능케 해주는 것인 셈이다.

 

천상병의 후기시는 그의 첫 시집 『새』가 간행된 1971년 이후에 쓰여진 시들을 말한다. 시기적으로 그가 작고한 1993 년까지 20 여 년에 걸친 긴 시기로, 시적 자아의 문제를 주로 노래했던 전기시 세계로부터 생활의 제반 문제들이 시적 제재로 선택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시적 긴장 역시 이완된다.

이 시기의 천상병은 결혼을 하게 되고 아내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결혼은 방랑의 자유인이었던 그가 가족의 일원으로 안주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아내와 장모와 조카들, 그리고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와 이웃들- 이들이 결혼을 통해 새롭게 관계 맺어진 대상들이다. 천상병은 이런 관계들 속에 자족하면서 그런 자족적인 대상들과의 관계를 노래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시는 초기시집 『새』에 보이던 시적 긴장이 이완되면서 비근한 생활 속의 제재들이 특별한 표현장치 없이 토로되고 있다. 특별한 시적인 표현 장치에 의하지 않고 쓰여진 그의 시들은 순진성과 진솔성이 두드러진 반면, 범박하고 평이한 것이 되어 있다. 천상병의 후기시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성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천상병의 후기시에는 사소한 생활 속 제재 표현이 두드러진다. 천상병은 생활 주변의 사소한 일상사 속에서 시적 제재를 선택하고 있다.​

 

이 近處는 버스로 都心地까지 가려면

約 1時間이 걸리는 변두리.

水落山 아랫마을이다.

 

물 좋고 山 좋은 이곳,

사람도 두터운 人心이다.

그래서 살기 좋은 고장이다.

 

오늘은 부실보실 비가 오는데,

날은 음산하고 봄인데도 춥다.

그래서 나는 이곳이 좋아 이곳이 좋아.

 

- 「변두리」 

 

위의 시는 천상병의 후기시의 한 특징이랄 수 있는 생활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앞의 시는 그가 기거하는 동네에 대한 술회이다. <이 近處(근처)는 버스로 都心地(도심지)까지 가려면 / 約(약) 1時間(시간)이 걸리는 변두리. / 水落山(수락산) 아랫마을이다. // 물 좋고 山(산) 좋은 이곳, / 사람도 두터운 人心(인심)이다. / 그래서 살기 좋은 고장이다.> 행 구분을 하지 않고 붙여놓았을 때 이것을 시로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오랜 방랑의 떠돌이 생활을 끝내고 가정에 안주하게 되었으며 아내의 보살핌을 받게 되면서 그의 시는 타성 속에 빠져버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시가 현실과 사물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일이고 그것의 언어화 작업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시기의 시인은 현실과 사물을 객관화시키고, 시적 자아와의 필연적인 연관성을 구명할 정신적 긴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천상병의 후기시에는 유아정신과 순진미가 나타난다. 현실과의 응전에서 패배한 자아가 가장 쉽게 안주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과거로의 퇴행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이고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어떤 고통도 그 실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 되어 있다.

과거로의 퇴행의 마지막 도달점이 어머니의 태반이라는 점은 정신 심리학자 융에 의해 밝혀져 있다. 천상병은 서울 변두리 수락산 밑에 살면서 안온한 모성의 태반 위에 안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천상병은 어떤 규범에도 구속되지 않으면서 천진스런 유아의 정신 속으로 빠져 들어간 것이다. 그야말로 유아정신에 토대를 둔 순진미의 세계인 셈이다.

 

우리 부부에게는 어린이가 없다.

그렇게도 소중한

어린이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난

동네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요놈! 요놈하면서

내가 부르면

어린이들은

환갑 나이의 날 보고

요놈! 요놈한다.

 

어린이들은

보면 볼수록 좋다.

잘 커서 큰일 해다오!

 

- 「난 어린이가 좋다」 

 

앞의 시에서 시적 화자는 천진스런 어린아이이다. 어린아이에게 건네는 교감의 언어가 직설적으로 토로되고 있다. 여섯 살 어린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화자 역시 같은 또래의 어린아이이다. 시적 화자가 어린아이 자체가 되어 있다. 어린아이의 정신으로 직접 하강해 들어가 일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시적 화자가 유년 정신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들 시편이 1인칭 화자의 목소리로 되어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1인칭 화자는 대상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고백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삶과 밀착된 경험이 토대가 되어 있고, 솔직한 자기 심경이 토로되고 있는 셈이다. 많은 시편들이 유년동경을 시적 정서로 노래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성년의 현실에서 유년을 그리워한다. 현실 속의 시적 자아와 유년의 자아가 엄격히 구분되어 소통할 수 없는 것이 되어 있다. 그러나, 천상병의 경우, 현실 속의 자아가 유년 속으로 퇴행해 가서 유년 자아에 합일되어 있다. 시인 자신이 유년이 되어 있다.

 

천상병의 후기시에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의 하나가 자족적인 자아의 모습이다. 천상병의 시가 자족적인 성향을 지니게 되는 것은 그가 현실과의 응전 의지를 잃은 데서 연유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없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느님을 굳게 믿고 있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 「행복」 

 

위의 시 「행복」이 노래하는 ‘행복’은 그의 초기시 「귀천」이 보여준 ‘행복’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귀천」의 행복은 시적 화자가 처한 삶의 곤곤함 속에서 획득된 것이다. 그러므로 「귀천」의 행복과 실제 삶 사이에는 강한 긴장이 서려 있게 마련이고 너른 내포와 함축이 따른다. 「귀천」이 지니는 강한 긴장은 <지상>에 소풍을 온 <하늘>의 주민으로 설정된 시적 화자가 있고 <노을>과 더불어 노닐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이 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손짓해 불러줄 <하늘>까지 구조화되어 있다. 말하자면, 「귀천」의 ‘행복’은 시적 장치에 의해 끊임없이 파장을 발산하도록 고안 된 것이다.

 

그러나, 위의 시 「행복」에서의 ‘행복’에는 그런 긴장이나 내포와 함축이 없다. 진술적인 토로의 언어들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삶의 책무를 방기함으로써 모든 삶의 조건을 수용하고 모든 욕구까지를 자족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천상병의 후기시에는 종교에 귀의하고자하는 의지가 나타나 있다. 천상병의 후기 시에는 많은 종교시들이 등장한다. 천상병의 시에 종교적 믿음을 토로한 시편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는 것은 그가 기독교 신앙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

대우주의 精氣가 모여서

되신 분이 아니실까 싶다.

 

대우주는 넓다.

너무나 크다.

그 큰 우주의 精氣가 結合하여

우리 하느님이

되신 것이 아니옵니까?

 

- 「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

 

편집자: 精氣(정기),結合(결합)​ 

 

위의 시에서 시인이 노래하고자 하는 것은 신의 존재에 대한 단순한 사유이며, 신의 은총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천상병의 후기시들 속에서 종교적 신념을 노래한 시편들은 특히, 시적 긴장이나 응집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이는데, 신의 섭리나 은총을 노래할 뿐 시적 자아와의 상관성이 추구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에서 시인은 하느님의 실체를 사유한다. 천상병이 도달한 하느님의 실체에 대한 사유는 하느님이 대 우주의 <정기>로 이루어 졌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신의 존재에 대한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술회이다. 이런 사유의 피상성은 뒤의 시 「봄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봄비>를 하느님의 은총으로 노래할 뿐, 봄비와 하느님과의 상관성이나 시적 자아와의 상관이 노래되지 못하고 있다.

천상병의 후기시에는 나름대로의 현실관이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산국의 독재는 흔해빠지지만

스탈린의 소련 독재도

30년 정도였는데

36년이라니

요런 놈은 인간이 아니라

새끼입니다.

말하자면

공산주의 악독성을 밝히는

포스터같은 짐승입니다.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했다니

요놈은

공산주의의 원리조차 모르는

무식하기 짝이없는

진시황같은 욕심쟁이입니다.

 

- 「김일성이라는 새끼」 

 

 

천상병의 시적 관심이 폭넓게 확산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편들이다. 그의 초기시의 시적 범주가 개인적 자아를 토대로 하고 있음에 반하여 후기시의 관심사가 너르게 확산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천상병의 후기시편들은 시적 긴장이 이완되어 있고, 언어의 선택을 감당할 지적 통제 능력마저 사라지고 없음을 알 수 있다.
위의 시 「김일성이라는 새끼」에서 현실을 보는 일상적 관념의 토로를 만날 뿐이다. 현실의 근원을 꿰뚫어보는 강한 투시력과 지적 사고를 통해서만 현실은 진면목을 들어내 보인다. 하나의 현실을 시적 현실로 인식해 가는 힘든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천상병의 현실 인식은 지극히 평이하고 관념적이다.

이상에서 천상병의 후기시에 나타나는 시적 특성들을 살펴보았다. 천상병의 후기시는 삶의 다양한 일상들이 토로되었다. 그의 초기시가 개인적 자아의 문제를 주로 노래한 것과는 매우 달라진 모습이다. 이런 변모는 그의 생활이 정처를 찾게 되면서 시적 긴장을 상실한 데서 온 것으로 보인다. 천상병의 후기시들이 지니는 특질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생활 주변의 사소한 일상사 속에서 시적 제재를 선택하고 있다. 이 시기에 와서 천상병은 일상사 속에 안주하게 되었으며 그런 비근한 제재들을 직설적으로 토로해 보여주는 시편들을 썼다. 
둘째, 어떤 규범에도 구속되지 않으면서 천진스런 유아의 정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야말로 유아정신에 토대를 둔 순진미의 세계인 셈이다. 
셋째, 자족적인 세계 속에 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넷째, 많은 편수의 종교시들이 등장한다. 천상병의 시에 종교적 믿음을 토로한 시편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는 것은 그가 기독교 신앙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다섯째, 그의 시적 관심이 현실 문제에까지 확산되어 나타나지만 현실을 꿰뚫어 볼 투시력이나 긴장의 이완으로 상식적 관념 토로에 그치고 있다.​

 

천상병의 시에 대한 본격적 연구는 적은 편이다. 그의 시에 대한 본격 연구가 적은 것은 그를 기행만을 일삼은 기인으로 보거나, 그를 둘러싼 풍문이나 에피소드가 작품 자체를 압도해버린 결과이다. 천상병의 시는 나름의 변별성과 시적 특성들을 지니고 있고, 그런 점들은 한국 순수 서정시의 소중한 부분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제 본고에서 살펴본 천상병 시의 특성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천상병의 전기시에는 개인적 자아의 모습이 주로 노래되었으며 그의 후기시에는 관심의 범주가 다양하게 확산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전기시의 시편들이 시적 긴장을 지니면서 정제된 언어를 획득해 보여주고 있지만, 후기시의 시편들은 긴장의 이완으로 인해 직설적 토로의 언어들이 주조를 이루게 되었다. 

 

천상병의 전기시의 특질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가난을 자신의 삶의 조건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으며 행복의 절대치를 사소한 일상사 속에서 발견해내고 있다. 그리고, 모성 지향과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식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또한, 무소유의 미학이 추구 되고 있다. 즉, 천상병 나름의 행복론이 담겨져 있다. 즉, 물질적 풍요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지,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정신이다. 가난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면서 사랑의 정신을 확립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 자유를 향한 비상의 의지가 나타나 있으며, 이런 의지는 구체적으로 ‘새’의 상징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천상병의 후기시에는 다음과 같은 특질들이 나타나 있다. 생활 주변의 사소한 일상사 속에서 시적 제재를 선택하고 있다. 이 시기에 와서 천상병은 일상사 속에 안주하게 되었으며 그런 비근한 제재들을 직설적으로 토로해 보여주는 시편들을 썼다. 그리고, 어떤 규범에도 구속되지 않으면서 천진스런 유아의 정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야말로 유아정신에 토대를 둔 순진미의 세계인 셈이다. 일종의 정신적 퇴행으로 유년 세계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삶을 자족적인 것으로 파악하면서 삶의 조건이나 욕구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또한, 많은 종교시편들이 등장하는데 그가 기독교 신앙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유아 정신적 의탁이나 현실적 안주를 위한 기제가 되고 있을 뿐이다. 때로는 그의 시적 관심이 현실 문제에까지 확산되어 나타나지만 현실을 꿰뚫어 볼 투시력이나 시적 긴장이 이완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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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4월16일 16시35분
  • 최종수정 2022년04월14일 11시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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